양난영 / 자유기고가, 독서글쓰기 강사

 

얼마 전 영화 '댄서'를 보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좋았다는 추천은 받았지만 내용은 전혀 모른 채 몇 개 안된 개봉관을 찾아갔다. 19세의 나이로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되었던 세르게이 폴리니의 성장 댄스 다큐 영화였다. 발레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엄마가 홈비디오로 촬영한 15년간의 기록을 토대로 천재적인 발레리노의 삶이 복원될 수 있었다.

▲ ‘바람의 춤꾼’ 메인포스터. [사진제공-강컨텐츠]

현충일에 본 ‘바람의 춤꾼’은 이삼헌이라는 ‘거리의 춤꾼’에 대한 기록으로 로드 댄스 다큐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삼헌 춤꾼의 친구인 최상진 감독이 15년 동안 촬영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세종대학교 무용과에 입학하여 발레리노를 꿈꿨던 주인공이 화려한 무대를 버리고 차가운 거리에서 30년 동안 '거리의 춤꾼'으로 살아온 삶의 족적이 최상진 감독에 의해 복원되었고, 이번에 박미경이라는 제작자가 나레이션을 쓰고 영화로 완성시켜 관객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 한 편의 제작 기간에 15년이 걸린 셈이다. 속편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멋진 촬영 기법이 있어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기록할 수는 없는 법. 이 영화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나레이터(배우 배종옥)의 담백하면서도 감동적인 문장 사이에 녹아있는 두터운 세월의 무게 때문이다.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다큐라는 점, 주인공이 남자 춤꾼이라는 점,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춤이 그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지만 고통 없이 춤을 출 수 없다는 점, 춤이 그 사람의 인생 자체라는 점, 앞으로도 계속 춤을 추리라는 점.

이렇게 같은 시기에 비슷한 영화를 보고 사람들에게 두 영화를 권했더니 “요즘 춤에 꽂히셨네요?”라는 이야기가 되돌아온다. 그러고 보니 춤과 관련된 영화를 모두 재미있게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샐러리맨의 해방구이자 자아탐색으로서 춤의 가치를 보여준 영화 ‘쉘 위 댄스?’도 그렇고,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 영화 ‘더티 댄싱’도 좋았다. 어쩌면 내 안에 춤으로 표현하고 싶은 강한 열정 본능이 영화를 통해 표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댄서'는 천재 발레리노가 겪게 되는 ‘춤을 추는 이유’에 대한 고뇌의 근원을 내적 갈등과 성장의 아픔, 방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는 그의 문신과 어딘지 노쇠해버린(초점을 잃어버린) 눈빛과 표정, 춤을 출 때의 거친 숨소리를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마치 접사 촬영을 한 것 같다.

▲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무를 추는 이삼헌.[사진제공-강컨텐츠]

반면 ‘바람의 춤꾼’의 춤사위에서 보여주는 고통은 시대의 아픔이다. 그의 춤에는 역사의 장면 장면들이 함께 하고 있다. 춤꾼으로서 개인사적인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담겨 있지만 카메라는 그의 춤이 갖는 서사적인 부분에 의미를 두며 담아내고 있다. ‘댄서’가 감성과 개인적 고뇌를 조명하는 일본의 사소설류에 속한다면, ‘바람의 춤꾼’은 웅장한 대하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따라서 카메라의 앵글도 접사 촬영과 대비되는 원경 촬영의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모든 영화는 존재 이유가 있다.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지점이 있다. ‘바람의 춤꾼’이 좌파 진영에서 제작된 영화다운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나처럼 영화의 예술성과 감동적인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광화문에서 그의 춤을 본 적이 없다. 세월호 추모 기간 동안에 가보았던 광화문 광장은 노란색 텐트와 리본이 넘실거렸고, 예술가들은 수 백 일 동안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장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삶의 현장이자 예술 창작소 같은 느낌이었다.

민주항쟁과 노동자 시위에서 참혹하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치러지는 위령제, 추모제 등에서 그의 춤을 만날 수 있다. 흰 옷을 입고 덩실덩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맨바닥 위에서 온 몸을 뒹굴기도 하고 머리를 보도블록 위에서 흔들기도 한다. 항상 맨발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그는 바닥에서 춤을 춘다. 어느새 발바닥은 새까매지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세월호 기간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그의 춤은 계속 되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종이를 길게 깔고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색 종이배를 띄우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세월호를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갈망을 대신 충족시켜보기도 한다. 광화문에서 보지 못한 춤은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 온몸으로 아픔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이삼헌. [사진제공-강컨텐츠]

바다 속에 가라앉은 배, 그 안에 있을 우리의 아이들, 억울한 죽음들.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미의 심정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분노이다. 미비한 재난 시스템과 돈으로 압축된 재벌의 엇나간 욕망과 그것을 눈감아 주거나 함께 헤쳐먹은 정경유착과 소통의 부재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광화문은 노랗게 물들었고, 촛불은 출렁거렸다. 시민들의 마음은 한풀이로 시작해 축제의 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의 춤은 인간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지극히 휴머니스트이다.

그의 춤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샤먼축제’에 초대되면서 새로운 호명을 얻게 되었다. 극락왕생을 염원하고 주술적인 효험이 있는 춤꾼이 된 셈이다. 그런데 샤먼 축제장에 참석한 그는 춤꾼으로서 보다는 이삼헌이라는 한 개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아픔, 군대에서 겪었던 공포와 아픈 기억,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돌아서 프랑스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보여진다.

▲ 프랑스 샤먼축제에서 이삼헌. [사진제공-강컨텐츠]

축제장에서는 자그마한 움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내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되돌아봄, 내가 춤을 추는 이유, 왜 내가 하필 이런 춤꾼으로 살아야 하나 등의 자기 연민과 회의, 민낯의 그의 표정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그러고 보니 그는 무대 위에 오를 때도 화려한 화장을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춤을 출 때 민낯으로 춘다. 따라서 무대와 무대 밖의 경계가 없다.

이 영화의 압권은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이다. 로드 댄스 다큐답게 그는 철로 위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춤을 춘다. 그는 춤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만난다. 폴란드 파비악수용소에서는 나치에 의해 살해된 유대인의 영혼들을 만나고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는 일제시대에 강제 징집된 까레이스키를 만난다. 시대를 뛰어넘어 아픔이 공유된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춤추는 이삼헌. [사진제공-강컨텐츠]

공간을 뛰어넘어 그의 춤이 아픔을 어루만진다. 1980년 광주 5.18항쟁 때 고1이었던 이삼헌의 춤은 2017년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함께 공간의 확장, 시간의 확장이 일어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볼거리와 가치는 충분하다.

영화 관람 후 유지나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GV 시간에 무대 위 의자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주인공 모습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맨발. 30년을 춤꾼으로 살아온 이삼헌의 몸짓은 너무나 왜소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데, 드디어 영화가 관객들과 만난 즐겁고 의미있는 날인데, 주인공은 그것을 온전히 기쁨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오만가지 감정이 겹치는 듯했다.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가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 6월 6일 개봉관 관객과의 대화에서의 이삼헌.[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어느 관객이 질문했다.

“이제 세상이 좋아지고 아픔이 없어져 거리에서 더 이상 춤을 출 일이 없어지면 이제 선생님의 춤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사실 새로운 정권 교체로 인해 더 이상의 아픔은 없을 것 같은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차 있는 터라 나름 일리 있는 질문이었다. 세상의 아픔이 클수록 이삼헌의 춤을 필요로 하는 무대는 많아지고 그의 춤사위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영혼들은 많아지겠지만, 그 역시 그런 아픔이 언제까지나 벌어지기를 원하지는 않을 터라 그가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다.

그는 말을 아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제 카바레에서 만나야죠.”

사람들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유쾌한 대답이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춤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명의 관객이자 소녀상 제작을 하고 있는 김운성 작가가 말했다. “이젠 바람의 춤꾼이 아니라 바람난 춤꾼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다시 웃었다. 앞서 말했던 캬바레와 묘하게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차가운 거리에서 춤을 추었기에 오늘 영화로서 만날 수 있었지만 그의 춤이 계속해서 슬픔을 담고 가기에는 그의 몸이 부서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일상성을 회복하고 웃음과 온기가 가득한 곳에서 행복한 춤을 출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현충일, 그의 영화를 보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해가 쨍쨍 내리 쬐는 날 거리의 축제 현장에서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얼씨구 덩더쿵~’하며 가볍게 날아다니는 그의 춤사위를 만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겼다.

(수정-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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