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총감독을 맡은 이철주 감독과 3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노상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새 정권이 탈권위를 이야기하는데 아직 우리 행정부는 탈권위적이지 못한 것 같고, 그 배경에는 대통령 참석이 불투명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이철주 감독은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목전에 두고 행정자치부가 행사 장소를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행사 총감독인 자신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변경한데 대해 30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 참석을 전제로 멋진 기념식을 준비하다가 참석이 불투명하니까 규모를 줄이고 장소도 바꿨다. 과연 행자부가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미나, 특히 한 세대 바뀌는 30주년 기념식의 역사적 가치, 최근 대통령까지 바꿔낸 촛불의 메시지를 알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통상 청와대는 대통령의 일정을 미리 확정 통보하는 경우가 드물고, 취임 초기라 국내 정치상황이나 외국방문 등의 일정도 유동적인 상황에서 행자부가 문 대통령이 6.10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행사장소를 일방적으로 바꾼 것.

세종문화회관 노상 카페에서 만난 이철주 감독은 이 행사의 총감독을 제의받은 때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대통령선거를 한 달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 행정자치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측으로부터 행사 총감독 제의를 받았다고.

“위촉 제안을 받고서도 좀 놀랐다. 대통령이 결정도 안 났는데 준비하는 모습에 권력이 무섭구나. 세상이 바뀌나 설렘도 들고 그랬다.”

대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자신을 이 행사의 총감독으로 위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 서둘러 준비팀을 구성하고 행사 준비에 한창이던 이 감독은 일방적인 행자부의 행사장 변경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한 상태.

▲ 문재인 대통령은 5.18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감독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가 아닌 정부청사에서 근무하겠다는 공약을 접하고 광화문광장에 무대를 꾸미고 대통령이 종합청사에서 걸어나와 무대에 오르는 구상을 뼈대로 행사를 기획했다.

게다가 “기획자 입장에서 욕심은 김정숙 여사를 합창단에 세우고 싶었다. ‘유쾌한 정숙씨’가 뜻깊은 기념식에 같이하는 의미있는 30주년 무대를 꾸미는 모습을 기대했다”하니, 그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김정숙 여사는 성악과를 졸업하고 한때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을 지내기도 했다.

기념식 장소는 이미 포스터 등에 세종문화회관으로 확정 공지됐고, 문제는 당초의 공연 구상들도 축소될 위기에 처한 것.

이철주 감독은 이번 기념식에 대해 “지난 30년 많은 안타까운 일들, 기적 같은 성과 그 모든 과정들을 기억해야 한다. 마침 새 정권이 출범해 기대도 많다. 새로운 다짐을 하자. 기억과 다짐이라는 주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가장 힘이 됐던 것은 노래였다”며 식전행사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들을 연곡으로 재편곡해서 ‘평화의나무 합창단’과 ‘서울시 합창단’이 공연한다. 특히 전체를 관통하는 노래는 이한열 열사 추모곡인 ‘마른잎 다시 살아나’이다. 이 노래를 해금 협연의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해 새롭게 무대에 선보인다는 것.

재외동포들과도 함께하기 위해 제2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임진강’을 합창곡에 반영했고, 독일국적 한국계 첼리스트인 ‘이상 앤더스’(윤이상을 존경해 지은 이름) 씨도 무대에 선다. 시민대표가 정부에 바라는, 국민에게 바라는, 청년들에게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레퍼토리도 넣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기념식 장소를 변경한 행자부는 공연 예산도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감독은 “편곡도 마치고 연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된 출연료를 깎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출연진 선정이나 전체 제작비가 전달됐는데 별 이야기 없다가 임박해서 공연진을 교체하고 예산을 줄이라는 것은 부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촉박한 시간에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맞춰보는 연습과정이 녹록치 않고, 무대 리허설도 당일 새벽부터 진행해야 하는 등 공연조건도 최악이다. 기존 뮤지컬 공연팀의 일정에 끼어들어 세종대극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 무리한 극장 사용 과정과 비용도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장소가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으로 바뀌었지만 그 역사적 의의가 큰만큼 대통령의 참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철주 감독의 바람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철주 감독은 “6.10기념식이 법정기념일이라면 그 이유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헤아려 보고 제대로 된 기념식을 매년 치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30주년이라는 뜻깊은 이번 기념식에 대통령이 꼭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현장에 참석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항쟁의 시원이랄 수 있는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지, ‘유쾌한 정숙씨’가 합창 무대에 오를 수 있을 지 지켜볼만한 일이다.

남북 문화교류에 앞장서온 이 감독은 새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진전된다면 남북 예술가들의 공연과 전시, 컨텐츠 교류 등을 추진해보고 싶다면서 세계적 수준의 북한 교예단(서커스단)을 초청해 ‘교예 춘향’을 펼쳐보고 싶다는 특별한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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