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국망(國亡)의 위기에 처할 때면 단군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시기 몽고의 침입에 맞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과 고조선을 우리 민족의 뿌리로 내세웠고,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화 과정에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계연수의 『환단고기』가 다시 단군과 우리 고대사를 재조명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단군은 우리 강토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건립함으로써 우리 민족 형성에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단일민족 형성의 시원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1,500여 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존속은 우리 민족 형성사에서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393쪽)

재야운동가로서 진보정당 정책연구소 등에서 일해오다 ‘40년 만에 다시 역사학도로 돌아온’ 박경순의 첫 번째 결과물,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내일을여는책)는 ‘한반도문명의 뿌리 찾기’로 단군과 고조선을 조명하고 있다.

▲ 박경순,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 내일을여는책, 2017.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에서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을 담아 “한반도문명 창조의 주역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주민집단이 아니라 한반도 후기구석기시대 신인의 직계후손들인 옛 유형의 한반도인, 즉 신석기시대 한반도인들이다”라는 게 주요 논지의 하나다.

“한반도 고대문명은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를 소유한 외부인들이 이주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고 있던 후기구석기시대 신인들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신석기문화를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청동기문화의 시작은 기원전 35세기경으로 중국보다 적어도 1천년 이상 앞섰”다고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고조선의 건국으로 한반도 원주민들에 의한 고대문명이 탄생됐다”며 『삼국유사』에서 기록한 B.C. 2333년 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30세기 초로 파악하고 “고조선은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주변 지역의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그 근거로 “단군릉 발굴에 의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출생연대가 5,011±267년(1993년 기준)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북측 논거를 제시했다. “단군의 출생연대를 기준으로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확정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라는 것.

이 흐름에서 보면 저자가 ‘궁산 문명’으로 부르는 북한의 ‘대동강 문명’이 떠오르고 “수많은 역사자료들에서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고 밝히고 있고, 수많은 유적유물들이 평양을 가리키고 있으며,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까지 발견되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었다고 확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단재 신채호가 「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고」에서 “시대를 따라 지명이 천도(遷徙)했으므로 만일 지금 패수 대동강을 옛날 패수로 알고, 지금 평양 평안남도 수부(首府)를 옛 평양으로 알면 평양의 역사를 그릇 앎일 뿐 아니라 곧 조선의 역사를 그릇 앎이니, 그러므로 조선사를 말하려면 평양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듯이 평양의 위치 비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진보적 재야사학계 일각에서도 대동강과 평양을 고조선의 중심지로 설정할 경우, 신채호 등이 제창한 부여-고구려-발해로 계승되는 대륙사관을 벗어나 우리민족의 역사 강역이 한반도 안으로 축소되면서 ‘한반도 안의 민족 고대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돼 있다.

‘고조선 수도 평양’ 외에는 저자 역시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지 않고 지금은 중국 대륙에 속해 있는 대릉하로 비정하는가 하면, ‘기자 동래설’이나 ‘위만 조선’, ‘한사군 한반도내 설치’ 등 기존 ‘식민 사관’에 대해 단호히 배격하는 일관된 입장을 취해 대륙사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국가 고조선을 조선-후조선-만조선으로 이어졌다고 파악하고, 노예제적 성격 사회인 고조선의 경제와 문화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발굴된 유적들을 근거로 최소 6천년 이전 신석기시대부터 누에치기를 했고, 비단실을 뽑아 의복을 만들었다든가 역사기록들을 토대로 ‘선인사상’이라는 독특한 철학사상이 있었다는 설명 등이 그것이다.

실증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에 대해 이처럼 손에 잡힐 듯한 풍부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북측의 기존 연구성과를 토대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은 분단사학이 아닌 통일사학의 관점에서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 학계에서 거둔 연구성과들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또한 ‘우리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이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 ‘21세기 민족문제’도 각별히 조명하고 있다.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통해 우리 민족 형성의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에 겨레가 완성되었으며,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되어 중앙집권적 고대국가가 형성됨으로써 민족 형성의 정치적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기에 겨레에서 민족으로 발전해 우리 민족의 원형이 만들어졌고, 중세 시기에 민족 형성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385~386쪽)

저자는 “분단의식의 극복과 민족자긍심의 제고”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저자의 논지들이 주류 강단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비주류 재야사학계에서마저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이 책은 주석이 달린 학술서가 아니고, 단정적 표현들도 더러 눈에 띈다.

저자도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갈라져 과학적인 토론과 연구보다 대립과 갈등만을 빚어 왔던 한국 사학계에 건설적인 논쟁을 위해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면서 “처음하는 작업이라 부족한 점과 한계가 많이 노정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해 동북아에서 미국과 자웅을 겨루면서, 허리 잘린 한반도의 민족분단 현실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시기, 촛불 대선이 끝나고 나면 우리 고대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남북이 머리를 맞댈 필요성을 이 책은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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