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방식 어렵게 어렵게 과정 부풀려”

▲ 세월호 인양작업이 한창인 23일 낮 영화 <다이빙벨>의 주인공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인천부두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생각보다는 굉장히 시간을 끌었고, 인양 방식도 어렵게 어렵게 과정을 부풀린 생각이 든다.”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의 인양 과정이 주춤거리자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설명에 대해 영화 <다이빙벨>의 주인공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23일 “사실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철조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은 23일 오전 “목표 높이까지 약 11m를 남겨둔 상황이나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선체의 자세가 변동됨에 따라 잭킹 바지선 와이어와 세월호 선체 간 간섭현상이 발생했다”며 “필요시 환풍구 등 일부 인양 지장물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세월호는 두 대의 바지선에 의해 인양되고 있지만 인양받침대가 좁고 바지선의 용량도 충분치 않아 인양 작업이 더뎌졌다. [사진제공 -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이종인 대표는 23일 오후 1시 인천부두에 자리잡은 알파잠수기술공사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월호 상단 쪽이 바지(선)에 걸려서 못 올라오는 것”이라며 “인양 받침대가 폭이 좁고 바지의 용량도 충분한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평이 돼야 하는데 한쪽이 눌렸다”며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가 기울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해난구조작업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그는 지금 세월호 인양방식은 “부서지기 쉬운 오래된 목선 침몰선 건질 때 쓰는 방식”이라며 “세월호 같은 경우는 선체에다 직접 줄을 감아서 들면 배가 바닥에서 바로 세워진 다음에 올라오게 돼 훨씬 쉽다”고 말했다. “비용도 부풀려야 될 거고 그래서 인양방식을 그렇게 한 것 같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하와이 이민 추진하다 영화 <다이빙벨> 나와 오해 풀려

이종인 대표가 세월호 구조작업에 투입하려다 정부로부터 거절당한 구조장비 ‘다이빙벨’의 이름을 딴 영화 <다이빙벨>이 김기춘, 조윤선, 김종덕, 서병수 등에 의해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변화된 것은 없다.

그는 “누가, 어떻게 했는지 증거가 없었는데 이번에 밝혀진 것”이라며 “예상했던 것이기 때문에 미친놈, 미친년하고 넘어가는 거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정치는커녕 사건 조치도 못하는 진짜 무책임한 집단”이라고만 일축했다.

▲ 이상호 기자가 촬영 제작한 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이종인 대표는 “다이빙벨을 사용한 것은 실패”라고 인터뷰했다. [캡쳐사진 - 영화 <다이빙벨>]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촬영 제작한 영화 <다이빙벨>이 우여곡절 끝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유튜브에 공개돼 200만 이상이 조회한 것으로 나타난데 대해 그는 “영화 장르로 사건이 남아있는 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뉴스처럼 없앨 수도 없고 다행스러운 것 같다”며 이상호 기자와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세월호 사건 발생 5일만에 1차로 자비를 들여 다이빙벨을 이용한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지만 정부 측의 사고현장 접근 불허로 되돌아간 뒤 다시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의 요청을 받고 다이빙벨을 이용해 수색작업을 한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다시 쫓겨난 과정에선 곡절도 겪어야 했다.

그는 “처음 시도한 것 자체가 잠수시간을 거의 2시간 가까이 했지 않나. 그것만 해도 정부에서 해온 20분짜리 잠수시간하고는 너무너무 차이가 나니까 현장에 우리를 놔놓을 수 없는 거다. 조직 운영상. 그래서 우리가 쫒겨 나오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유가족들의 강압에 의해서 ‘실패한 걸로 얘기해라. 해군이나 해경 구조세력이 협조한 걸로 얘기해라’. 사실은 그렇게 얘기하라고 했지만 실상을 인터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에서 그걸 해봐야 변명밖에 더 되느냐. 내가 죽더라도 원하는 대로 해주고 말았다.”

“사실은 완장을 차고 가족대표라는 사람들이 나를 폭행하고... 현재 구조세력에게 나쁜 영향가면 끝까지 쫓아와 때려죽이겠다 그런 협박을 하고. 내가 그런 게 무서워서 그런 얘기를 했겠나. 죽은 애들이 불쌍해서 ‘그래? 근데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진짜 불쌍하더라. 그러니까 ‘그래 알았어 그렇게 얘기해 줄께’ 얘기를 한 거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이 대표는 미국 하와이로 이민 가려고 자녀의 학교까지 알아보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진행하던 중 영화 <다이빙벨>이 나와서 오해가 풀리면서 이민은 없던 일이 됐다고.

누가 앵커를 끌어 올리도록 지시했나

▲ 이종인 대표는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의 결론을 갖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특히 김지영 감독이 추적한 세월호 항적기록 등을 토대로 한 전문가로서의 분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초기에 침수사고가 있었던 것 같다. 충돌이나 이런 걸로 선저면에 손상이 가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추정하고 “병풍도 가까이 가서 기관실에 물이 차서 메인 엔진이 죽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침수사고 등으로 인해 배에 이상이 생겨 배를 멈출 경우 통상 메인 엔진을 후진으로 돌려 멈추는 방법과 엥커(닻)를 내려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엔진이 침수됐을 경우 선택은 앵커를 내려(드롭 앵커) 해저에 끌어(드래깅) 감속(슬로우 다운)하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

그는 “두세 샤클, 약 60미터 정도 수심에 맞춰서 수심보다 조금 더 깊게 이렇게 하면 앵커가 가다가 걸리고 걸리고 해서 선속이 제어된다”며 “흔히 있는 일이다. 기본적인 배를 제어하는 방법 중에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지영 감독이 가져온 항적도를 보고 해군에서 준 항적도와 비교해서 보니까 정부에서 발표한 그 끊어진 부분이 이어져 있는데, 그 부분이 공교롭게 지그재그로 돼 있다”며 “삐뚤삐뚤 그건 앵커가 가다가 뭔가 파지했을 때, 뭔가 돌출된 부분에 걸렸을 때 배가 옆으로 돌아갔다가 가던 타력에 다시 그게 비껴지면서 진행하고, 진행하고 이랬던 느낌이 강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중에 보니까 엥커 두 개가 다 배에 있더라”며 “앵커를 그렇게 내려서 배가 섰으면, 병풍도에서 200~300미터 밖에 안 될 텐데, 거기서 누구 지시로 누가 앵커를 다시 끌어올렸냐는 거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병풍도 인근에서 앵커로 감속해 세월호가 멈춰섰을 때 승객들을 구조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

참고로, 보통 메인 엔진이 물에 잠겨도 엥커를 끌어올리는 발전기는 위쪽에 있어 물에 잠기지 않고 더 위쪽에 비상발전기도 있기 때문에 앵커를 끌어올리는 양묘기(윈드라스)는 사용이 가능하다.

“그 당시 조류 상황상 앵커를 거두면 먼바다로 밀려나가는 건 뻔한 것”이라며 “누가 그렇게 먼바다로 끌려 나가게끔 지시했으며 조치했는지. 선원들도 말이 없고”라고 혀를 찼다.

“200여명이 살아있었다는 얘기다”

▲ 조현호 <미디어오늘> 기자가 방문해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을 건네자 이종인 대표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수습한 시신들을 200여구 이상 본 유가족이 “200여명이 다 부패됐더라”고 증언한데 대해 “두 달 안짝 찬물에서 시신이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물밑에서 압축된 공기로 연명했다가 들어 올리니까  부패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수심 30미터 지점이면 공기가 4분의 1로 줄어들고 (에어포켓 등에서) 숨을 쉬다보면 결국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하게 되는데, 몸 속에 공기가 네 배로 녹아들어가 있다가 다이버가 시신을 데리고 나오면 몸속 공기가 4배로 커진다. 이 경우 “얼굴이고 뭐고 불고 부패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에 비해 “어떤 아이는 엊그제 죽은 것처럼 얼굴이 깨끗한데, 그 당시에 바로 죽은 거다. 배가 침몰하면서 뭔가에 부딪치든지 바로 숨을 쉴 여력 없이 바로 죽은 거다”고 해석했다.

그는 사고 직후 구조작업 실패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아무리 (상부에서) 시킨다고 그래도 옳지 않은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선을 긋고 “그런 사고가 나면 또 그런 세력이 가서 거기서 주도권을 잡고 접근을 불허하고 뭔가 또 그렇게 할 거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완전 방해꾼 취급하고 적군 취급하고 그러면 안 된다”며 “국민이 돈 내서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거다. 국민은 적당히 속이고 때 돼서 적당히 구슬리면 그냥 넘어가는 줄 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뭔가 숨기려니까 계속 가리고 가리고 이렇게 되는 것 아니냐. 뭘 숨기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달력에는 아직도 4월 16일은 없다. 왜냐하면 거기다가 천안함처럼 몇 주기라고 쓰기도 그렇고”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터뷰 약속을 기다리며 잔물결 일렁이는 인천부두만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던 그는 최근 화재가 집어삼킨 사무실 대신 손수 임시로 지었다는 사무실에서 평소 즐기는 커피 한잔에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 갔고, 인터뷰 도중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을 출간한 조현호 <미디어오늘> 기자가 방문해 서명한 책을 건네자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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