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

 

▲ 최북단 휴전선 인근 고대산에 오른 6.15산악회 회원들. [사진제공-6.15산악회]

늦었음을 알았을 때 곧 바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유익했다. 동두천역에서 신탄리․백마고지 쪽으로 가는 8시15분발 통근열차를 타야만 6․15 산악회 2월 산행, 고대산 등반의 약속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그러자면 1호선 창동역에서 7시 20분발 전철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교훈 1: 늦었음을 알았을 때 곧 바로 다시 시작하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7시 12분이었다. 이른바 총알택시를 탄다 해도 눈꼽 떼고 옷 갈아입고 배낭 챙기고... 어림도 없었다. 포기해야 하는가. 단연 아니었다! 늦었지만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어야 했다. 아니 늦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머리감기, 면도하기 생략, 아침밥 먹기 생략, 무릎관절통 파스 붙이기 생략. 그러나 점심밥과 김장김치를 챙겨 배낭을 꾸리고 등산화 신발 끈도 채 묶지 않은 채 내달렸다.

 마침 우이동쪽으로 달려오는 빈 택시를 잡았다. “가장 빠른 시간으로 방학역으로 가주세요.” 택시기사님께 오늘 신탄리․고대산 산행에 따른 열차편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다행히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차는 막히지 않았다. 기사님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쏜살같이 차를 몰아 방학역에 내려주었다.

▲ 신탄리역에서 고대산 입구에 이르는 길. 우측 옆 전신주에 달린 나무판에는 '통일을 고대하는 마을길', 그리고 그 밑에 두 줄로 '분단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개찰구를 거쳐 차타는 곳에 올라가니 동두천행 열차가 녹천역에 도착하고 있음이 전광판에 나타났다. 4분 뒤에 방학역에 도착할 터였다. 이렇게 지각자는 7시 36분에 1호선 방학역을 떠날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 세면하고 옷 갈아입고, 점심밥 챙겨 배낭꾸리고 6000원 택시요금 거리를 달려 열차 타는 곳에 이르기까지 실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절묘한 움직임이었고, 눈 떴을 때의 절망감이 작은 승리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열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김재선 6․15 산악회 총대장과 김래곤 총무에게 오늘 늦어지는 사정과 7시 36분 방학역을 떠났음을 알려주었다. 동두천역에서 8시15분 통근열차는 놓쳤지만, 택시를 타고서라도 신탄리역 약속시간을 맞추려는 생각이었다.

도시 지하철과는 다르게 교외를 달리는 전철은 차창 밖 경관을 볼 수 있다. 도봉산, 사패산이 보였고, 반대편에는 수락산이 이미 뒤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눈으로는 창밖 풍경을 보면서도 이 열차를 타기까지 초조했던 순간들의 작은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늑장을 부리며 야단법석을 떨게 된 사연이 떠올랐다.

토요일(산행 전날)은 ‘박근혜․황교안 즉각퇴진, 특검연장, 공범자 구속을 위한 16차 범국민행동’의 날이었다. 양심수후원회는 언제나처럼 깃발을 들고 미대사관 인근 KT 앞에 모여 촛불집회에 동참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 체감온도는 영하 6~7도 정도로 느껴졌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오시는 89살의 양원진 선생님을 비롯하여 강담, 김영식, 김영승 선생님 등 80세가 넘으신 선생님들이 함께 하였고, 김재선 운영위원(산악회 총대장)을 비롯한 젊은 회원들이 자리를 지켰다.

나는 이날따라 피치 못할 약속이 있어 먼저 현장을 떠나야 했었다. 그래서 김래곤 총무에게 내일 아침 창동역 출발 열차시간을 물어보았다. 김래곤 총무도 당장 떠오르지 않았는지 집에 돌아가서 확인하여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밤 10시가 다 되어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침 7시 20분 창동역을 떠난다고 알려주었다.

▲ 산 입구에 이르는 길 옆 바람개비 지지대에 '경의선을 타고 평양지나 유럽까지',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글이 쓰여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12시쯤에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아침 6시에 시계종을 맞춰놓았다. 그런데 2시 반쯤에 잠에서 깨어 좀처럼 잠을 다시 들지 못했다. 5시 20분이 지났다. 조금 더 누웠다가 산행준비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 공교롭게도 시계종은 울리지 않았고, 어떻게 눈을 떴을 때는 7시 12분이었다. 그렇게도 잠이 오지 않더니 어떻게 2시간 가까이 잠을 잔 것이었다.

열차가 동두천역 두 정거장을 앞두고 있을 때 김래곤 총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류기진 선생님께서 의정부역에서 잘못 내리셨다가 다음 차로 오신다는 것, 바로 내가 타고 가는 열차에 함께 타신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두 지각생은 동두천역에서 반갑게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은 올해 93세이시다. 산행에 거의 빠지지 않으시고, 언제나 산행 목표(정상)에까지 앞장서 노익장을 과시하셨다. 산악회 등반이 없는 날에도 북한산 대동문까지 일주일에 몇 번씩 오르시고 이른 아침에는 4․19 묘소를 몇 번 다녀오시는가 하면 역기, 아령 등 체력관리에 남달리 충실하셨다. 조선인민군 군관 출신으로 낙동강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시고, 퇴로가 막히자 지리산 등에서 유격활동을 하시다 포로로 잡히셨으나 당국은 전쟁포로의 제네바협정과 정전협정을 무시하고 오히려 감옥에 보내 수십 년 옥고를 치르셨다. 선생님은 신념의 고향으로의 2차 송환을 기다리고 계신다.

동두천역에 도착하여 역승무원에게 신탄리 가는 버스가 있는가 물었더니 바로 역 앞에서 떠난다고 한다. 내 예상은 맞았다. 8시 15분 통근열차는 놓쳤지만, 바로 버스를 타게 된다면 신탄리역 약속시간에 많이 늦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우리가 버스 정거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 순간 39-2 신탄리행 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또 한 번의 절묘한 순간이었던가! 김재선 총대장에게 9시20분에 신탄리에 도착한다고 알렸다. 그런데 버스는 거의 타는 손님이 없어 속 시원하게 휙휙 달렸다. 9시 20분이 아니라 9시 10분쯤에 신탄리역에 도착했다.

교훈 2: 오래된 것이 모두 귀한 것만은 아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과 노수희 부의장, 김영승 고문님이 보였고, 민통선 안에서 6․15 사과원을 경영하시는 전환식 사장님과 이재훈님이 멀리 파주에서 달려오셨다.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님과 <통일뉴스> 후원인이시며 백두대간을 등반하신 산악인 전용정님이 오셨다. 유학수, 류경완 회원과 이정태 6․15산악회 산악대장, 김래곤 총무, 김재선 총대장 등이 있었다.

이렇게 모두 14명이 신탄리역을 떠나 고대산 등반길에 들어섰다. 몇 년 전쯤만 해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있었던 휴전선 최북단 정거장이었지만, 지금은 백마고지 역까지 통근열차가 다니고 있다. 그 선로를 건너 등산로 입구 쪽으로 간다. 오늘 산행은 제3 등산로를 밟기로 했다.

▲ 정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 맨앞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93세 류기진 선생. [사진제공-6.15산악회]

고대산(832m)은 다 아는 것처럼, 휴전선에 가장 가까이 있고, 북녘 산하를 조망할 수 있는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에 걸쳐 있다. 결코 악산은 아니지만, 특히 제2등산로와 같은 칼바위 능선이 있는 만큼 평범하지도 않다. 제3등산로 입구에서 6․15 산악회 깃발을 들고 앞장서야 할 김래곤 총무가 이곳에서 김현수 회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류기진, 권오헌)보다도 더 늦게 통근열차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전반적인 등반 안내와 인도는 김재선 총대장이 맡아했다.

낙엽송 길을 지나 제2등산로 길로 갈림길을 지나면 계곡을 맞게 된다. 고대산 정상 쪽에서 시작되는 고래골(물길)이었다. 약수터에 이르러 모두들 미끄럼 방지용으로 아이젠을 착용했다. 대부분 회원들은 최근에 나온 착용하기 쉬운 아이젠이었으나 나는 70년대식 아주 옛날식 아이젠이었다. 착용하기는 불편했지만, 단단하고,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는 산행의 오랜 연륜을 은근히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랑은 얼마나 부질없는 속빈 강정이었는지는 오래 걸리지 않아 들통 나고 말았다.

곳곳에 단단한 얼음이 박혀 있는 응달진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얼마를 가다보니 왼쪽으로 매바위(410m, 암봉 또는 표범바위라고도 한다)가 우뚝 솟아 있다. 다시 표범 폭포로 가는 길을 버리고 마여울 물길을 건너 쉼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뒤에 따라오는 김래곤 총무와 김현수 회원을 기다렸다가 합류했다. 이제 모두 15명이 함께 산을 오르게 되었다. 위도상 철원에 가깝고, 고도가 높아지고 있어 날씨는 쌀쌀했다.

▲ 표범바위. [사진제공-6.15산악회]

점점 등산길은 얼음판으로 되고 있었다. 아이젠을 했으니 자신 있게 걸으려 했지만 핑 미끄러졌다. 얼음이 단단해서인가. 길옆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가팔라지는 산길을 올랐다. 기울기가 급한 ‘목재계단’에 이르렀다. 고대산 정상까지는 1.3km, 한없이 이어진 목재계단이었지만, 얼음으로 덮인 계단을 밟지 못하고 길 아닌 눈길을 나무에 의지하여 오른다. 모두들 쉬운 등반이 아니었다. 그런데 93살이신 류기진 선생님은 어떠하실까. 오히려 침착하게 뒤로 밀리지 않고 선두 대열을 지키셨다.

이윽고 군부대 물탱크 지점에 이르렀다. 느슨해진 아이젠을 고쳐 매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아이젠 역할을 할 수 없게 닳고 닳아버린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얼음을 디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오래된 것이 모두 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성하게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북녘 산하까지 선명한 고대봉

▲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 흐릿하나마 철원평야가 보인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마침내 고대산 정상에 올랐다. 등짝에선 땀이 배어나고 있었지만, 찬바람이 매섭게 살속을 파고들었다.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지난해 2월에 올랐을 때만큼 맑지는 못했다. 그래도 갈 수 없는 북녘 산하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민통선 안마을인 대마리와 그 북쪽의 백마고지 전적비가 있는 구릉이 보인다. 더 북서쪽으로 백마고지가 보이고, 더 북쪽으로 남측에서 말하는 김일성고지(780m, 고암산)도 아련히 보인다. 여러 차례 직접 밟았던 민통선 안의 이곳저곳을 고대봉에서는 한 눈에 들어왔다.
 
양심수후원회에서도 1995년 11월 4~5일에 걸쳐 임진각-화석정-전곡-산정호수-승일교-고석정-월정역과 전망대-노동당사-백마고지 전적비- 태풍전망대 등 휴전선 최북단 역사기행을 한 바 있다. 그 뒤로도 2002년과 2013년에도 비슷한 코스의 철원 일대 기행을 했었다. 철새들은 자유로이 오고가지만,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철벽 차단된 북녘 산하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지금은 철마가 백마고지역까지만 운행되지만, 옛 경원선은 남쪽의 최북단역인 월정역을 지나 북녘의 평강-세포-통지원-원산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았던가!

여기서 빼어놓을 수 없는 시간이 김재선 총대장의 한북정맥(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시작되는 오성산-백운산-도봉산 등으로 이어지는 북한강과 임진강으로의 분수령 지맥)이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전국 유명 산들을 모두 밟은 김 총대장은 이곳에서도 우리가 조망할 수 있는 주변 산들을 설명해 주었다. 바로 동남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철원 동송읍의 진산인 금학산(947m), 약간 오른쪽으로 보이는 보개산(752m), 남쪽으로부터 먼저 보이는 지장산(877m) 등등이 있었다.

▲ 비닐막 안에서의 식사. [사진제공-6.15산악회]
▲ 10인용 비닐막에 15명이 들어갈 수 있다니. [사진제공-6.15산악회]

우리는 고대봉 표지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우선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찬바람 때문에 터 잡기가 쉽지 않았다. 고대봉에서 서쪽으로 삼각봉(815m) 대광봉(810m) 정자까지는 갔지만, 바람 막을 자리는 없었다. 이때 전문 등산인 전용정님이 10인용 비닐 천막을 꺼내셨다. 15명이 촘촘하게 붙어 앉아 춥지 않게, 막걸리까지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쳤다.

올해 6․15 산악회가 꼭 금강산에 갈 수 있기를 빌면서

하신길로 택한 제1등산로는 얼음이 많지 않았다. 제2등산로의 칼바위 능선도 아니어서 고개삼거리 - 큰골 물합수점을 지나 등산로 입구-매표소 입구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 등산에 정말 지각생은 따로 있었다. 양호철 회원이었다. 너무 늦어 아예 산행을 포기하고 뒷풀이 장소를 잡았다. 지난 해 들렸던 ‘강변오리집’이었다. 지난해 이맘때였지만, 싱싱한 채소가 여러 가지 있어 기억에 남는 집이었다. 그전에는 신탄리의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돼지고기를 구어 먹곤 했었다.
 
이날 요리도 더덕․생유황주물럭오리와 생유황오리가 있었다. 뽕잎, 양배추, 부추, 홍당무, 양파, 상추 등 샐러드와 술안주가 푸짐했다. 마지막엔 오리탕 수제비가 덤으로 나왔다.

6시 38분 떠나는 통근열차에 맞추어 뒷풀이를 끝내고, 밖에 넓은 정자에서 산에서 못했던 산상강연 시간을 가졌다. 이정태 산악대장 진행으로 참가자 소개에 이어 권오헌 산악회장이 촛불집회와 탄핵정국의 현황보고, 그리고 지난 7~8일 심양에서 6․15 민족공통위원회 남․북․해외 위원장 회의에서 결의한 올해 안에 반드시 ‘조국의 평화와 통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민족대회를 성사시켜야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짧게 마쳤다. 그리고 올해 6․15 산악회는 꼭 금강산에 갈 수 있기를 빌면서 산행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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