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Daum영화]

역사상 최초의 남북 공조 수사 영화

관객 수가 700만을 넘겼다. 이미 한물간 분단 소재 영화라니, 흥행이나 되겠어 했는데, 흥행이 된다. 원래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북한이 달러화 위폐 제조 동판을 탈취 당한다. 범인은 남한으로 도망치는데, 탈취 과정에서 아내를 잃은 북한군 형사 림철령이 수사를 위해 남에 파견된다. 림철령을 맞이한 것은 정직 처분 중인 남한의 생계형 형사 강진태. 공조 수사를 위장한 밀착 감시가 임무이다.

북한 당국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판을 회수해 국제적 망신을 피해야 하고, 철령은 아내를 잃은 복수심에 범인 검거에 사활을 건다. 남한 당국은 역사상 최초의 남북 공조 수사의 명분이 살인범 검거라는 데 의심을 품고 어떻게든지 사건의 내막을 캐려고 하고, 진태는 정직 처분에서 풀려나는 데다 특진 욕심에 사사건건 철령에게 제동을 건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영화는 재미있다. 특히 상반된 캐릭터의 활약이 관전 포인트이다. 현빈은 멋짐을 담당하며 날렵한 액션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유해진은 웃김을 담당하며 수다스런 입담으로 능청을 떤다.

영화에서 두 배우 각자의 매력과 그 조합이 일으키는 상승 효과를 빼면 영화는 거의 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강동원, 송강호 주연의 영화 <의형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영화 모두 분단 상황을 소재로 북-순수-동생 대 남-속물-형의 대결과 협력을 그리고 있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탈냉전시대 분단 소재 영화의 변화

분단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가장 오래된 부류는 체제 갈등을 선악 구도로 다루는 것이다. 분단이 소재로 다뤄진 이래, 숱한 반공영화가 이 부류를 차지해 왔다. 고전적인 방식이자 구태의연한 접근법이랄 수 있다.

이 단순한 이분법은 냉전 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흔들리게 된다. 냉전 체제의 산물인 동·서독의 통일, 냉전 체제의 중심 중 하나인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성큼 걸어 들어온 중국,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국지적 분쟁의 증대 등 탈냉전시대 국제 질서는 더 이상 일방적 선악 구도를 허용하지 않는 복잡 다변한 상황이 되었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냉전 체제의 산물이자 냉전 체제의 최첨단이었던 남북 관계 역시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분단 소재 영화의 두 번째 부류가 이로부터 탄생한다. 모든 관계를 선과 악, 아군과 적군으로 이분화할 수 없는 인간적 고뇌와 분단의 비극성이 영화에 담기기 시작했다. <쉬리>(1998)에 이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은 분단 소재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국제적으로 1980년대 말 냉전의 종식, 국내 정치적으로 1987년 직선제 개헌, 1992년 문민정부 수립, 1997년 평화적 정권 교체 실현 등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정착 과정이 냉전 체제에 짓눌린 의식에 숨통을 틔워 주지 않았다면 나타날 수 없었을 영화들이다. 반공영화 일색이던 분단 소재 영화는 이로써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남파 간첩 강동원과 북한 형사 현빈

2000년과 2007년 2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남북한 화해 분위기는 구시대적 냉전 체제의 찌꺼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남북한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져온다. 동굴 속 어둠에 익숙한 사람이 동굴 바깥 빛의 세계를 상상해 보지 못하듯 분단 체제에 길들여져 다른 미래를 생각해 본 적 없던 우리의 의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념보다 민족이란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체제를 떠나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게 된다. 네 편 내 편이라는 편 가르기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분단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나타난다. 이 시기 분단 소재 영화는 양질 모두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룬다. 그리고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런 소재가 공감을 얻고 먹히는 것이다.

특히 2005년 <웰컴투 동막골>은 가장 비극적인 전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북 화해의 판타지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는 분단 소재 영화의 꽃이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북한 요원이 멋있어지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의형제>(2010)의 순수 청년 간첩 송지원(강동원)은 정말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죄 감이다. 김수현, 현빈이 그 맥을 잇는다.

이 부류 영화들의 범주는 넓다. 무거운 전쟁영화에서 가벼운 코미디물까지 다양한 영화를 아우를 수 있다. 적어도 남북의 사회에 공평한 시선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비극의 원인을 분단 체제가 아니라 일방에 돌리는 대결주의적 자세에서 벗어나 있다면, 모두 이 부류로 간주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시선에서 벗어나면서, 주인공이 직면하는 위기나 갈등은 이념이나 체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서 발생하게 된다. 남북 모두에 민폐가 되는 이런 인물은 대개 개인적 욕망과 사사로운 탐심, 또는 비윤리성과 같이 함께 공감하고 함께 지탄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 악한이다. 이 부류 영화의 막차를 탄 <의형제>에서 악한을 담당하는 것은 북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잔혹한 국제 테러리스트이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냉전의식의 산물 반공영화의 부활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래 우리 사회는 퇴행을 거듭해 왔다. 최소한 이것만은 되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들이 하나둘 속절없이 무위로 돌아갔고, 남북 관계는 빠른 속도로 경색되어 갔다. 바야흐로 ‘실용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실용적이지 않은 민족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영화 역시 ‘분단’을 실용적으로 써먹기 시작했다.

분단 소재 영화의 세 번째 부류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007은 실업자가 되었지만, 한반도라는 박물관에는 냉전 시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일촉즉발의 긴장과 대립, 경쟁, 비방, 헐뜯기, 물밑에서의 첩보전, 체제 와해 공작 등 살아있는 냉전 체제의 체험학습장이다.

이 비극적 역사가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될 줄이야! 통일 노력 대신, DMZ 관광도 팔아먹고 분단 소재 영화도 팔아먹는다.

분단 상황은 영화 <베를린>(2013), <용의자>(2013)처럼 주로 첩보물이나 액션물의 배경으로 유효적절하게 활용되고, <간첩>(2012)처럼 남한 내부 소시민의 삶을 반추하는 배경으로 써먹기도 한다. ‘분단’이란 소재는 쓸모가 많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유턴을 거듭해 오면서 의식의 보수화도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반북 의식과 적대감도 고조되었다.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로도 부족하여 거의 석기시대 수준으로 돌아갔다.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았다. 짧았던 봄은 갔다.

이를 반영하듯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의 축 북한이란 설정을 부활시켰다. <연평해전>(2015)을 거쳐 <인천상륙작전>(2016)에 이르면 분단 소재 영화는 완전히 냉전 시대 반공영화로 회귀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공동의 적을 쫓는 남북 형사의 우정

그런데 2017년 영화 <공조>가 개봉을 했다. 남북 관계 빙하기에 남북 공조라니! 이건 시대를 앞서가는 건가, 아니면 상황 파악 안 돼서 나온 시대착오적 영화인가.

영화는 <의형제>의 구도와 유사하지만, 바뀐 시대 환경에서 멋진 북한 형사가 종북 좌빨 논란을 부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위폐 동판을 제작하고 관리하다가 사달이 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정해서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이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극우 보수들의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으로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대사나 상황 설정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공동의 적을 추격하며 쫓고 쫓기는 활극에만 최대한 집중해서 오락성을 극대화시킨다. 단순하고 유쾌하고 훈훈하고 뒤끝 없다. 영리한 선택이다.

그래, 시대가 흉흉할수록 우리는 좀 영리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벌건 대낮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들고 “계엄령을 선포하라”거나 “빨갱이를 죽여 버리자”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 시위를 벌이는 시대가 아닌가. 탈이념적 오락거리는 그래도 반공영화의 왜곡된 애국주의보다는 건전하다.

게다가 악당 차기성은 물론 북한 형사 임철령, 남한 형사 강진태 모두 이념과 체제에 복속(服屬)된 인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적과 동기를 지닌 개인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영화는 전향적이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남북 관계가 그러하듯 처음부터 남북 간 공조가 잘 될 리는 없다. 남북의 형사는 티격태격하면서 말뿐인 공조에서 진짜 공조에 도달하게 되는데, 영화는 두 캐릭터의 갈등과 화합의 과정을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다. 갈등할 때의 상호 비방으로 최소한 남북 사회 비판의 산술적인 균형을 맞춰 주고, 화합할 때의 상호 교감은 일시적이나마 민족 화해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오글거리는 대사를 남기고 진태에게 달려가는 철령과, 철령을 구하기 위해 결국 차를 돌리는 진태의 우정에 동화되는 순간, 지난 해 대북 제재를 이유로 함경북도 수해의 참상을 외면한 통일부와 보수단체의 비인도적 조처가 이와 대비되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조는 그 자체로 진보적인 것이다.

더구나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리고 남북 공조 수사를 한다는 설정은 지금과 같은 시대적 환경에서는 거의 파격적이다. 남북 인사와 요원들이 스스럼없이 섞여 인사를 나누는 서울과 평양의 풍경이라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영화는 잠시나마 우리를 꿈꾸게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사고 싶었던 장면, 어렵게 되찾아 온 위폐 동판을 철령이 남한 형사 구하겠다고 들고 나갈 때, 철령의 상관이 분명 권총이라도 빼들 줄 알았다. “동무, 미쳤나? 그깟 남조선 형사의 목숨 하나 구하겠다고 공화국의 명령을 위반하는기요?”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철령을 잃을까봐 만류하던 상관은 더 이상 철령을 잡지 않는다. 맹목적 반북의식의 상투성에서 슬쩍 비켜난 순간, 감시하고 의심하던 남북 형사 간에는 흐뭇한 형제애가 싹트게 된다. 뻔한 오락영화지만, 영화에는 의외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