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Daum영화]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1700만 백수의 가치’라는 칼럼이 눈에 띈다. 청년 10명 중 7명이 백수라는 최악의 청년 취업 비상시국을 맞아 ‘백수의 가치’라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칼럼은 “누군가의 친구, 애인처럼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없는 정서적 지지를 파트너에게 보낸다. 트럼프의 트위트를 리트위트하는 ‘트잉여’들은 미디어를 만들고, 오늘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은 저커버그의 수익에 기여한다. 알파고가 학습한 기보는 승부에서 패배한 수많은 기사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기록인데, 구글이 그냥 가져간다. 인류는 알파고를 보며 구글의 위대함이 아니라 패배자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백수를 쓸모없는 잉여 인간 취급하는 시각에 한방을 날린다.

글쓴이는 알바노동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알바노동자란 취업과 실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준백수에 해당하리라. 글은 전문을 다 인용하고 싶을 만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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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다. ‘백수’가 모두 ‘일하지 않는 자’는 아니다. 그가 한 일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 또는 그가 한 일에 대한 노동의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자도 백수라 불린다. 백수가 얼마나 바쁜가. 영화의 주인공 권유도 집의 가스 밸브를 잠그라는 엄마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만큼 바쁘다. 놀리는 말이 아니다. 돈 받고 게임하면 프로게이머인데, PC방 죽돌이는 게임에 미친 놈일 뿐이다. 백수처럼 취급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많은 일을 하는 전업 주부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게다가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백수’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자’일 확률이 크다. 영화에서 ‘권 대장’ 권유는 태권도 국가대표까지 지냈지만 폭행 사건으로 자격 박탈을 당한 뒤 PC방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한때의 잘못으로 태권도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난 순간 그는 평생의 할 일을 잃었고, 사실상 사회에서 퇴출당했다.

초보 해커 ‘여울’은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극도로 낯을 가리는 이 대인기피증 환자를 받아 줄 회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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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수효과 회사 신입사원 ‘데몰리션’이나 용산전자상가 컴퓨터 수리 전문가 ‘용도사’, 지방대학 건축과 교수 ‘여백의 미’는 딱히 백수랄 수는 없지만 처지는 백수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임금 적고 일은 고된 3D 업종 말단 스태프거나, A/S계의 전설이라지만 지금은 망해 가는 전자상가에서 준실업 상태에 있거나, 자칭 교수라지만 이름뿐인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일해도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의 루저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 권 대장의 게임 멤버 ‘은폐’, ‘엄폐’는 인터넷 성인 방송계 종사자 커플. 모두 명함 내밀 만한 처지는 아닌 이 사회의 비주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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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마디로 눈총 받는 비주류들이 주류 질서에 가하는 반격이자 존재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그들을 쓸모없는 패배자로 취급하고 백안시하지만, 그들은 가상 세계에서 끈끈한 동지애와 의리로 연전연승해 왔다. 그들을 게임 폐인이라고 비난하지만, 기실 그들은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떠받치는 역군들이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그 뒷감당에 돈을 처바르는 이들이 있는 데 비해, 이 가진 것 없는 인물들은 투입량에 비해 산출량이 큰 고부가가치 생산자들이고, 결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알뜰하고 충실한 소비자들이다. 희생물이었지만 끝내는 영웅이 된다.

이들은 왜 하필 전투 게임에 빠졌을까? 여울 같은 경우는 전투 능력도 변변치 않아 민폐만 끼치는데도 말이다. 게임보다 훨씬 복잡한 룰에 의해 움직이는 현실의 전쟁터에서 채워지지 않는 승부욕이 그들을 가상 세계로 이끌지 않았을까?

▲ [사진-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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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전작 <웰컴투 동막골>로 따뜻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 바 있다. <웰컴투 동막골>이 6.25라는 과거의 실제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 영화 <조작된 도시>는 현재의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현실 세계로 확대시키며 또 다른 판타지를 만들어 간다. 현실의 루저들이 게임 속 최강자가 된다 한들 그것은 결국 대리 만족에 불과한 것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거기 기다리는 것은 변함없이 비루한 현실이다. 감독은 게임 속에서 단련된 능력과 의리 하나로 뭉친 팀워크를 게임 밖 세계로 끌어내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는 진정한 위너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들이 맞서야 할 현실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다. 언론과 사법부는 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하수인들이다. 감옥을 지배하는 악은 감옥 밖의 악과 손잡는다. 범죄는 은폐되고 조작되어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된다. 아마 또 다른 영화 <재심>이 권유의 현실 버전쯤 될 것이다.

▲ [사진-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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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현실 고발 영화를 걷어차 버린다. 콤플렉스와 과시욕이 결합되어 일그러진 인격을 지닌, 희대의 악인(惡人) 캐릭터 조커를 연상시키는 사이코패스는 빅브라더처럼 현실을 지배하며 모든 현실적 부조리를 비현실적으로 매개한다.

불편할 정도로 진지하고 잔혹하기조차 한 전반부의 현실 전개 간간이 만화스러운 설정이 끼어들더니, 어느 순간 현재가 배경인데도 미래 사회의 느낌을 주는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게임보다 더 게임 같은 화려한 전투가 펼쳐진다.

불의한 세력의 힘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압도적 우위에 있는데, 궁지에 몰린 이 보잘것없는 주인공들은, 마치 그들의 차가 폐차 직전의 마티즈에 아우디 엔진을 장착하고 폭주하듯이, 알고 보면 쓸 만한 그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폭발시킨다.

▲ [사진-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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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현실을 다룬 영화가 대세다 보니 이 영화의 전개는 나의 진지한 감성을 당황시켰다. 감독의 전작의 향토적, 자연친화적 영상과 흐뭇한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는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울아들은 B급 감성에 A급 액션을 장착한 영화에 흡족함을 표했고, 아마 신나게 전투 게임을 즐겨 본 10, 20대라면 짜릿한 충만감을 느끼며 영화에 빨려들 것 같다.

감독의 상상력과 그것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능력은 최고이다. <웰컴투 동막골>의 팝콘 터지는 명장면에 비견될 만한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는 마티즈의 후진 액션과 쌀알 액션을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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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권유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여 같은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천상병, ‘나무’ 전문 )

영화는 썩은 나무가 아닌데 썩은 나무로 취급되는 이들의 반란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판타지에 불과할지라도 영화는 모든 썩은 나무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불의한 질서가 시스템을 장악한 현실 속에서, 게임에 빠진 아들을 끝까지 믿어 주고 지지해 주는 권유의 엄마나 “이렇게 능력 있는데도 취직할 데가 없어?”라며 이들을 격려하고 함께하는 교수야말로 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감독은 아마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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