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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화제의 신간> 뇌성마비 장애인 김성윤의 『아름다운 동행』
이미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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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7  13: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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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이가 책을 냈다.

내가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이 80년대 후반인데,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묶은 책을 출간하였으니, 30여 년 정진의 세월이 이제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의 첫 수필집을 받아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그의 책을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답례일 것 같다.

이 책을 지은 김성윤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 김성윤, 『아름다운 동행』, 교음사 [사진-교음사 제공]

그렇다면 김성윤의 수필집은 장애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작가의 꿈을 이룬 장밋빛 성공담이 아닐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나는 그런 성공담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걸 희망 고문이라고 하던가. 긍정이나 낙관이라는 단어로 현실을 치장하여 한 가닥 항거의 의지조차 접게 만드는 그런 책들은 차라리 안 읽는 것만 못하다.

그게 아니면 김성윤의 수필집에는 장애 때문에 겪은 차별을 준열하게 고발하는 비판 정신이 담겨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는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이나 이동권 확보 투쟁 같은 데 앞장 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이가 아니다. 김성윤은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서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가족과, 그를 지탱하는 정신적 원동력인 신앙생활, 그리고 그의 장애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함께하는 글벗들을 버팀목으로 삼아 오늘도 힘겨운 현실을 헤쳐 가는 장애인, 평범한 장애인이다.

그의 수필집은 사실 어마어마한 문장력을 뽐내고 있지도 않으며, 읽는 이에게 날카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의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법적으로 어색한 문장도 눈에 띈다. 때론 답답할 만큼 우직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현실에 순응한다. 그가 세월호 침몰 사건의 충격 앞에 슬퍼하고 기도하면서도 야당의 비난을 받는 박 대통령이 가엾다고 할 때, 나는 그의 순진함과 선량함에 화가 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가령, 이렇다. 김성윤은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에 갔다. 거기서 단종의 외로움이 '마음에 확 와 닿아' 깊은 공감을 느낀다.

외로움 그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없이 혼자 보낸 곳, 그곳을 생각하며 나도 외로웠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따가운 시선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나는 거의 집에만 있어야 했지. 또한 누구에게도 나의 장애로 불편함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때로는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고 동감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내 삶을 혼자 판단을 하고 극복을 해야 했다. 그래도 난 그 단종보다 행복하다. 그나마 가족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 '비극적인 두 남자' 중에서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삶, 그 고독한 세상과의 싸움에서 김성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노력, 노오오력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노력조차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지 걱정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을 많이 받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학교 다닐 때나 다른 단체 생활을 할 때, 특히 노력상 모범상은 내가 독차지하였다.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 것 같아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상(賞) 자랑' 중에서

김성윤은 취업이 하고 싶어 10년 걸려 불편한 손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남들이 1시간이면 하는 일에 4, 5시간이 걸렸다. 2년 걸려 웹마스터라는 어려운 과정까지 떼고 5개의 자격증을 땄다. 그래도 남들보다 속도가 느린 그에게 취업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렵사리 취업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 어렵게 취업을 해도 최저임금에 만족해야 한다. 지난 날 나는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일과 상관없는 식사 준비며 청소까지 해야 했다. 장애를 갖지 않은 동료들로부터 차별과 모멸을 받았다. 아침에는 거울을 보면서 단단히 결심을 하고 웃으며 나갔다가도 돌아올 때는 엉망으로 기분이 구겨져서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쓰라려도 참았다. - '바보의 행복' 중에서

김성윤은 이를 악물고 혼잣말을 했다. "그래, 실컷 이용해라. 다 알고 있지만 참아 주겠다. 더 나은 날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서 온갖 것을 헐값에 뺏고 나서 나를 버렸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11개월 만에 인원 감축을 한다며 김성윤을 해고했다.

집에 있으니, 그 나름대로 행복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다니지 않고, 늦잠도 마음껏 잘 수 있어 행복하다. 사실 난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누가 논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육체가 건강하다면 식구들에게 눈치가 보이겠지만, 내가 일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차별로 취업을 할 수 없으니, 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눈치도 주지 않지만, 마음은 빨갛게 피멍이 들어 있다. - '나는 백조다' 중에서

김성윤은 뇌성마비 장애로 몸의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의 불편한 걸음걸이는 때로 집안에서조차 그를 맥없이 쓰러지게 한다.

내동댕이쳐 물건처럼 바닥에 쓰러져 반쯤 드러누운 상태로 눈을 감으면 그대로 모두 놓아버리고 싶다. 지고 다니던 짐들, 부실한 몸, 다친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털보다 가벼운 영혼만으로 떠오르고 싶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따라 날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할 필요 없이 훨훨 햇살이 따사로운 곳에서 민들레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땅에 붙어 있어 안전하고 다닥다닥 모여 있는 친구들과 더불어 외롭지 않을 것이다. - '재회' 중에서

그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통합 교육도 특수 교사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짧은 학창 시절을 이렇게 추억한다.

필기도 반도 쓰지 못했는데 칠판을 지워 버리고, 체육시간은 원숭이같이 흉내는 내지만 똑같이 할 수 없었다. 미술시간도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음악시간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노래를 아름답게 불러 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못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 내가 알고 있어도 받아쓰지 못하고 지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에게 병신이라는 놀림과 그야말로 왕따를 당했다. 그 시절은 정말 지옥이었다. - '그래도 보고 싶다' 중에서

어느 영화에선가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대사가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자의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장애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존재로 취급되고 우리 사회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한다. 마치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듯이 그의 생에 간섭하고 그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침해한다.

"아가씨 집이 어디야?" "언제부터 그렇게 장애인이 됐어?" "매일 어디로 그렇게 출근해?" "아가씨 나이는 몇 살이야?" "아이고 불쌍해." "시집은 갔어?" "누구하고 같이 살아?" "아가씨 직장 다녀?" "직장이 어디야?" "얼마 벌어?"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 '외출' 중에서

김성윤이 외출하면 낯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또는 상대방의 인격은 안중에도 없는 듯 무례하게 말을 건다. 김성윤은 '참 한가하고 기운도 많다'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쯧쯧"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는 '나 자신은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데 웬 청승들인지…….' 하고 어이없어 한다.

아침에 그와 마주친 한 할아버지는 "병신이 아침부터 이 바쁜 시간에 가루 걸리게 돌아다녀, 집에 처박혀 가만히 있지!"라고 호통을 친다. 불편한 발 때문에 일반 양말을 신을 수 없는 그가 좌판에서 두꺼운 등산양말을 고르는 것을 보고 "돈 많아."라고 비웃고 가는 여자도 있다.

장애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비싼 등산양말을 신느냐는 뜻이다. 김성윤은 속으로 "나도 아무 양말이나 신고 싶단 말이야!"라고 항변한다.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가 "돈도 없을 텐데 택시타고 다니지 말라."면서 돈을 받지 않는다. 지나친 간섭과 친절은 동전의 양면이다.

심지어는 모임에 가면서 기분이 좋아 혼자 미소를 머금은 그에게 지나가던 아저씨가 "뭐가 좋아서 웃고 다니냐."고 한 마디 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을까라는 것이리라. 장애인은 웃어도 비웃음을 당한다. 김성윤의 하루는 인격 모독과 비웃음과 멸시와 차별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않다. 그의 삶은 늘 어디서 구정물을 뒤집어쓸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비장애인들에게 불편한 것으로 취급된다.

요즘 청소년들이 욕으로 '애자'라는 말을 쓴다는 것을 아는가. 상대를 비하하는 모욕적인 표현이 '애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애자의 준말이다.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에게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을 나무라며 그런 표현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학생이 답한다.

"전 장애인이 싫어요!" 내가 더 충격을 받은 이유는 저 차별주의적 언어를 너무도 당당하고 공공연하게,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발언한다는 점이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책의 뒤표지에는 '장애를 이겨낸 승리의 노래'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장애에 굴복해서 자포자기했더라면 오늘의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김성윤의 인간 승리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그의 고통과 차별과 편견으로 점철된 일상이 다가온다.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오늘 하루도 묵상한다.

'주님 오늘 하루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주님 알고 계시지요.'

'그래 그래 데레사 힘들어도 성실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 알지.'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상처를 많이 주어도 대부분 참 잘 견디지, 알고말고.'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니.'

'몸이 불편하여도 컴퓨터를 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내가 주지 않았니? 데레사 더 욕심 부리지 마! 다른 것들은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이야.'

'상처 받고 힘들어도 그것은 네가 살아가는데 평생 지고 갈 십자가야, 그냥 참으렴.'

'묵묵히 네가 할 일만 하면 돼!' - '이제는 튕기고 싶다' 중에서

여기까지 읽고 나는 시야가 흐려져 잠시 책장을 덮어야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김성윤은 평생을 참으며 살아왔지만, '장애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온' 나머지 '튕기면서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장애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정말 많지 않다. 내가 싫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난 정말 외톨이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올리는 김성윤의 묵상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내면의 소리인 것 같다.

김성윤의 수필에 담긴 그의 삶의 궤적은 그다지 드라마틱한 사연도 없고 특별한 이야깃거리도 없어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밋밋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 소소한 삶의 편린들을 통해 우리 사회 평범한 장애인이 겪는 일상이 어떤 것인지, 김성윤은 일본대사관을 마주 보는 소녀상만큼이나 또렷한 시선으로 그 실상을 증언하고 있다. 김성윤 스스로 고발 문학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되, 김성윤의 일상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장애인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록 문학이 되어 버렸다.

성윤이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야학에서였다. 소규모 가내 공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 노동하는 이들이 사회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그들의 손에 지식이라는 무기를 쥐어 주고자 했던 야학에 성윤이가 찾아왔다.

그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었고 그의 손은 물건을 제대로 쥘 수 없었으며 그의 걸음은 늘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그는 간신히 중학교만 졸업한 상태였는데,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망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리고 시를 썼다. 나는 국어교사였다.

지금도 내 책장에는 성윤이의 시가 한 묶음 자리 잡고 있다. 야학을 떠난 후에도 성윤이의 시집을 출간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다. 성윤이는 다행히 좋은 스승과 글벗들을 만나 수필을 배웠고 자신의 책을 갖게 되었으니, 미안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김성윤의 수필집 <아름다운 동행>에는 깜빡 잊고 우산을 두고 온 날, 한 젊은이가 우산을 받쳐준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는 세상을 저주한 것이 죄송'하여 하느님께 회개했다고.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버스도 잘 타지 않는 작가가 큰맘 먹고 버스를 탄 날, 천천히 올라오라는 버스기사의 부드러운 한 마디에 그는 감격해서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처럼 기쁜 날도 있나 보다'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 책이 우리 사회 장애인의 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그리고 쉬우면서도 어려운 '아름다운 동행'에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만으로 장애인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갑과 을의 차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 등 온갖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경쟁을 숭상하고 그에 따른 양극화와 승자 독식의 체제가 사회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개인의 선의나 선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김성윤은 어떤 악조건이 닥쳐도 '신께서 시련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주시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조개에 모래가 박혀 진주의 아름다움을 만들듯이' 참고 인내해 왔다. 개인적인 성실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아오면서 텔레비전에서 장애인들이 데모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변화할까' 하고 비웃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하철 승강기가 장애인들의 10년 넘는 투쟁으로 설치된 결과 노인들도 유모차를 끄는 아주머니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활동보조인 제도가 생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을 하였다. 그 결과 사회는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했다. 아직 지금도 문제가 많다. 오늘 장애인의 날, 하루 챙기는 것보다 더 좋은 쪽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교육을 받으며' 중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동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차별과 편견에 반대하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열에 동행해 주는 것이야말로 모든 김성윤들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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