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라선시에서는 어떻게 대북사역을 해야 하나?
     
현재 북한 경제특구인 라선시와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많은 북한사역단체들이 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줄곧 동일한 시행착오들을 반복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선교활동과 복음전파라는 종교적 의무와 사명 이전에 기독교 사역자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 또한 어떻게 사역을 해야  북한 당국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민족을 위하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가를 검토했다. 잘 알려진 북한선교 단체들의 선교보고를 들어보면 마치 007작전을 능가할 정도로 은밀히 진행되거나 사선을 넘나드는 긴장 속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며 갈수록 지능화되고 음성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열정은 뜨거운데 세부 전략과 목표는 어설프고 치밀하지 못하며 반통일적이다.
     
그런 것들이 사실이라면 반대로 북 보위부나 통전부 등 정보 당국도 이에 뒤처지지 않고 이전보다 더 첨단 방법을 동원해 은밀한 선교활동을 색출할 것이며 자신들의 영토에서 더 이상 지하교회가 확산되거나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할 것이다. 그 결과 지금도 북한에 파견된 미국과 남한출신 선교사들과 목사들이 체포되어 억류되거나 노동교화형을 언도 받고 복역 중에 있는 현실이다. 북 정보 당국은 평소 적대적, 공격적으로 입체적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선교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며 수집하고 있을 것이고 반면 선교 사역자들은 활동반경이  좁아지거나 입지에 제약을 당하고 있다.
    
일반 방북자들이 북한 본토를 방문할 경우에는 일요일이 돌아오면 평양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등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지만 라선시 경제특구에서는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이 찾아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식적인 교회당이 없어 불편하다. 그러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혼자 예배를 드리거나 방북 일행들이 있을 경우 함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이 돌아오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예배를 철저하게 드리려는 의무감이 있기 때문에 북 당국도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선시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본인이 공식적으로 체류하는 호텔이나 숙소에서만 합법적으로 드릴 수 있으며 숙소 외 다른 장소에서의 예배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방북 중에 예배를 드리기 위한 용도나 단순하게 매일 읽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책 한권 정도 가방 속에 소지하는 것은 출입국 검문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한 권 외에 대량 반입을 한다든지 종교전문 서적 등을 대량으로 소지 할 경우에는 방북 목적을 의심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기독교 측에서는 라선시가 개방된 경제특구라고 해도 노골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구제 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 때문에 차라리 성경책을 가져가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성경책이 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 몸이 바로 성경 자체이며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북사역을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그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고작 방북기간 중 식당에서 식사 감사기도를 하거나 호텔 숙소를 나오는 날(체크아웃 타임)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숙소에 성경책을 놓고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필자의 경우에는 청소와 세탁 등 룸서비스를 맡은 호텔 봉사원들에게 팁을 놓고 호텔을 떠날 경우 단순하게 1달러짜리 지폐 한두 장을 의미 없이 두고 나오기보다는 예쁜 카드를 미리 준비해서 고마움의 내용을 카드에 적어 2달러짜리 신권 지폐와 함께 정중하게 놓고 나온다. 경험상 대부분의 북 안내원들이나 관리들은 2달러 지폐가 행운을 불러 온다며 선호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신경 쓸 때 북녘 동포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더욱 좋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주는 미국과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들이 라선시에서 억류된 사건을 살펴봤는데 오늘도 계속해서 최근에 억류돼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캐나다 시민권자 임현수 목사와  임 목사 억류이후 가장 최근에 체포되어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 시민권자 김동철 목사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진선봉에서의 억류사태에 대한 전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대안책을 찾고자 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대북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크리스 김과 이영호 박사 등의 사례를 살펴보며 진정한 대북사역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것이며 대북사역자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 잘 정돈된 도시의 시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는 라선시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흐린 날 바라 본 라진항 인근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임현수 목사의 재판정을 통해 바라 본 북한선교
     
2015년 1월 30일 경제협력사업 등과 관련한 실무 면담을 목적으로 라선시에 입국한 캐나다 국적의 임현수 목사는 당월 31일 평양의 부름을 받고 이동한 후 장기간 소식이 끊겼으며 그 후 6개월만인 7월 3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국내외 기자들 앞에서 그동안 억류된 경위와 자신의 혐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평양봉수교회 주일예배시간에 나타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종교적인 참회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임 목사는 또 다시 5개월만인 12월 16일 자신의 범죄혐의에 대한 재판정에 나타났다. 평양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최고재판소 법정에서 실시된 재판에는 국내외 기자들과 참석자들이 100여명 정도 참석할 정도로 열띤 관심을 보였으며 공개 형식으로 진행된 재판실황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방송에 의해 서방세계에 공개됐다. 아나운서의 브리핑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2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에서 특대형 국가전복음모를 감행한 재캐나다 목사 림현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중략) ...재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 60조 국가전복음무죄. 제60조에 해당하는 피소자(피의자) 임현수에 해당하는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범죄사실을 확정한 기소장이 제출되었으며 사실심리가 있었다...(중략)...림현수는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반공화국 적대행위에 추종하여 조선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고 모독하다 못해 공화국을 무너뜨리려는 흉심 밑에 국가전복음모를 기도한 모든 사실들을 인정했다. 이어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증인과 증거물들이 제시되었다.”

특이한 사살은 이날 법정 안에는 대형 TV 한 대가 준비됐는데 검찰이 임 목사의 범죄 증거자료인 동영상을 방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방송 모니터 내용들은 놀랍게도 평소 임 목사가 한국과 미국에서 강연하거나 설교한 내용들이 요약되어 편집된 영상물이었다. 화면 자막은 대부분 영어로 나왔으며 방송국 이름을 표시하는 화면 우측상단에는 ‘JSTV LWGMC’ 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이 방송국은 미국과 한국에서 방영되는 기독교전문 채널인 ‘예수위성방송’이라는 매체를 뜻하는데 JSTV는 LWGMC(Living Water Global Mission Conference, 생명수 세계 선교회)라는 단체와 같은 재단이며 사하에 신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예수위성TV는 1988년 미주에서 시작된 위성방송이며 미국 Los Angeles 코리아 타운에 본사가 있고 한국에는 부산 범일동에 지사가 있는 선교방송이다.
   
이날 법정에서 틀어 준 영상물은 임 목사가 강연한 영상을 평소 JSTV에서 방송한 것이었는데 북 정보당국과 검찰이 이 동영상을 입수한 것이다. 검사들은 이 방송 내용과 여러 강연 영상들을 재판부에 증거 자료로 제시했으며 법정에 앉아있던 방청객들과 기자들은 숨을 죽이며 방송을 시청했고 임 목사도 피의자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었다. 증거자료들은 주로 임 목사가 남한교회들과 미국교회들의 초청을 받고 강연하거나 설교한 장면들이었으며 대부분 체제를 비판한 내용들이다. 법정에 울려 퍼진 이 목사의 설교내용을 들어보자.

“정권을 잡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 그것은 아주 ‘악(惡)’입니다. 악 그 자체야. 악한 영들인데,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평양의 ‘쇼(Show)’하는 모습은 10%도 안 되는 북한의 모습을 겉으로만 보시는 거고, 아주 공포정치가 돼가지고 점점 더 상황이 심해집니다...(중략)...북한에서 복음의 씨만 뿌리기만 하면 교회 나올 수 있는 준비된 기회가 오리라 생각을 하고...”

증거 자료들은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이날 검사는 논고를 통해 임 목사를 사형에 처할 것을 재판부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변론을 통해 사형이 아니라 다른 형벌을 내려주기를 요청했고 결국 재판부는 임 목사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판결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임현수 목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간 자신의 혐의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저지른 가장 엄중한 범죄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고 국가전복 음모행위를 감행한 것이며 캐나다, 미국, 일본, 브라질, 한국 등(을 다니며) 교회에서 사역보고를 하면서 공화국(북한)을 비난했다. 또한 공화국 인민들이 심장으로 받드는 수령영생위업과 주체혁명위업 계승에 대해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똑같은 악담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신성한 국가에 대한 가장 모독적인 도전이며 극단적인 망동이었다. 공화국에 대한 이러저러한 지원의 명목으로 각지를 돌아친(돌아다닌 것도) 것도 미국과 남조선(남한) 당국의 반공화국 압살정책에 편승하여 북의 체제를 뒤집어엎고 종교국가를 세우기 위한 거점을 꾸리기 위한데 있었다.
     
그리고 1996년 몽골에서 현지 미국대사를 만나 한해 5백여 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는 일에도 관여했으며, 캐나다 큰빛교회가 세운 중국 길림성 도문시 월청진 마패교회를 탈북유도 거점지역으로 삼았다. 또한 미국 필라델피아 ‘안디옥교회’(담임목사 호성기), 미국 휴스턴 ‘언덕교회’(담임목사 옥승웅), 미국 로스엔젤레스 ‘은혜한인교회’(담임목사 한기홍), ‘벧엘교회’(원로목사 손인식), 미국 뉴욕 ‘예일교회’(담임목사 김종훈), 미국 ‘세인트루이스교회’(담임목사 김경식), 브라질 상파울루 ‘동양선교교회’(담임목사 황은철) 등이 반북운동을 하고 있는 교회들이다.

이어서 남조선(남한)에는 서울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 강원도 춘천시 ‘한마음교회’(담임목사 김성로), ‘대학생선교회’(대표 박성민), 경남 양산 ‘세계로교회’(담임목사 손현보), 서울 강동구 ‘광성교회’(담임목사 이성근), 서울 영등포구 ‘한성교회’(담임목사 도원욱), 서울 강남 ‘모자이크교회’(담임목사 박종근), 인천 ‘선목교회’(담임목사 최선규) 등도 마찬가지로 반북운동을 하는 교회들이다.
    
이들 교회들은 공화국에 대한 허위와 날조, 기만으로 빚어진 설교를 하는 것은 신앙심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정의와 진리, 선의에 대한 부정이고 배반이다. 진정으로 종교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에 충실하다면, 민족의 화합과 통일에 도움이 되는 선한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소위 동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족이 가장 미워하는 대역죄를 지었으며 다시 한 번 공화국 전체 인민들과 온 민족 앞에 나의 형언 할 수 없는 대역죄를 머리 숙여 깊이깊이 사죄합니다.”

위 내용들은 북 당국이 공개한 기자회견 전문이다. 혹자들은 이 발표문과 참회문 등은 임 목사가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북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작성한 것을 임목사가 읽어내려 갔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임 목사도 어느 정도 그 내용들에 동의를 하고 인정했다고 보인다. 사흘 후인 8월 2일 일요일에는 평양 봉수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예배가 끝날 무렵 광고시간을 이용해 강단 앞에 나와 미리 준비한 속죄의 참회문 원고를 읽어내려 갔고 이 장면도 이튿날 공개됐다.

“저는 커 가면서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으로 세뇌되었고, ‘고난의 행군’ 시절에 목격한 북한의 참상이 지도부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중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령님은 정말 소박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지닌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자로서 양심에 어긋난 행위를 한 사실을 반성합니다. 대역죄를 머리 숙여 깊이 사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으며 두 번 다시 신앙에 어긋나는 악행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임목사의 이런 속죄와 참회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2015년 12월 16일 최고재판소에서는 ‘국가전복 음모’ 등의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고 임 목사는 현재 교화소에서 복역 중이다. 임 목사의 사례를 통해 확실히 파악된 사실은 비록 종교집회 현장이라 해도 반북적인 발언들은 이처럼 자신의 신변과 사역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는 체제와 최고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이를 ‘1호 범죄’라 하여 중형에 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드나드는 대북 사역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20년 가까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대북지원 사업을 대가 없이 했어도 1호 범죄에 걸려들면 정상참작이 안 되며 가차 없이 준엄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 북을 왕래하는 사역자들은 일관성 없는 자신들의 이중적인 언행을 삼가해야 한다. 비근한 예로 북한 관리들이나 인민들 앞에서는 아부성 발언을 남발하면서도 남한이나 미국에 도착하면 북한을 비방하며 돌변해버린다. 사역자들 중에는 북한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과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낭설들을 토대로 명확한 근거 없이 체제를 비판하거나 지도자를 모함하는 이가 더러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지나친 반북 발언들이 기독교 사역의 진정성을 훼손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동시에 북측으로부터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보는 바와 같이 평소 임 목사가 인도주의적인 차원과 종교적 긍휼 차원에서 대북지원사업을 아무리 거창하게 벌였다 하더라도,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협하거나 폄하한다고 판단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는다. 아울러 주권국가로서 헌법과 사회법 등의 법치가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면서 강력한 법적 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법정에서 증명된 임 목사의 발언들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 기독교의 북한 선교관은 북한 체제와 정부를 부정하거나 소위 ‘북한 붕괴론’을 단골 메뉴로 삼고 있다. 대북 선교정책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순수하게 섬기려는 진정성 보다는 개종이나 지하교회 같은 종교적 성과와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현상들을  구제사업을 가장한 일종의 기독교 점령군이나 십자군 식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기독교 종교국가를 세우려는 체제전복 음모로 받아들인다.
     
20여년 간 많은 것을 희생하며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해왔던 임 목사에게 북 당국이 이토록 엄중한 처우를 한 것은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 임 목사는 노동교화형이라는 수형생활을 통해 자신이 20년 간 벌여온 대북사역을 전반적으로 돌이켜보며 많은 것을 반성하고 가치관도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문제를 바라보는 임 목사의 역사의식도 대폭 전환되었을 것이며 자신과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북 인민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니 만큼 하루속히 석방되는 것이 좋을듯하다.

라선시를 비롯한 경제특구에서 이처럼 빈번한 억류사태가 발생한다면 북 입장에서도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다. 외국의 투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시장을 확장하고 개방해야 하며 외부 투자자들로 부터 많은 사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억류사태가 자주 발생하면 외국인의 투자와 경제활동이 위축되거나 백지화 될 수 있다. 특히 외국의 투자가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종교문제로 인해 긴장상태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경제특구로서의 기능이 상실될 수가 있다.

▲ 라선시에서 평양으로 떠나며 연락이 투절된 지 6개월 만에 평양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임현수 목사가 회견문 낭독 후 눈물을 닦는 모습(2015.7.30.). [사진제공 - 최재영]

 

▲ 기자회견 사흘 후 평양봉수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임현수 목사가 신자들 앞에서 참회문을 읽어내려가는 모습(2015.8.2.). [사진제공 - 최재영]

 

▲ 최고재판소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임현수 목사의 모습. 이날 재판부는 ‘무기노동교화형’을 언도했다(2015. 12.16). [사진제공 - 최재영]

 

▲ 최고재판소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사들은 임현수 목사에 대한 범죄혐의 증거물로 한국에서 설교한 방송내용을 제시했다. 자신의 설교가 나오는 법정 TV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임 목사의 뒷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법정에서 범죄혐의 증거물로 제시된 방송 화면 상단에 ‘JSTV LWGMC(예수위성방송국 생명수선교회)’라는 방송국 자막이 써 있었다. [사진제공 - 최재영]


가장 최근에 억류된 미국시민권자 김동철 목사
   
임현수 목사가 기자회견을 마친 얼마 후 2015년 10월 2일, 라선시에서는 또 다시 억류사태가 발생했다. 한때 미국 버지니아주의 박시몬 목사가 설립한 ‘미주북한선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김동철 목사가 간첩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김 목사는 체포된 이듬해인 2016년 4월 29일 열린 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 등의 혐의로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마침 필자가 백두산을 등정하고 중국 연길에 체류 중일 때 라선시를 여행하고 돌아 온 조선족 동포들을 통해 최근 미국국적의 조선족 목사가 체포됐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김 목사는 미국 워싱턴DC로 이민을 온 후 청소와 햄버거 장사 등을 통해 돈을 벌면서 이민생활의 기반을 닦았고 후에 편의점 등의 자영업으로 자수성가했던 인물이다. 결혼 후 슬하에 딸 두 명을 둔 그는 텍사스에 있는 댈라스침례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댈라스에서 개척교회를 설립했으며 그곳에서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 후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미국에서 30년 이상 체류하며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거주하며 편의점을 운영하였으나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미국으로 유학 온 북한 출신의 조선족 여성을 만나면서 교제를 하던 중  2001년 그녀와 함께 북한선교를 목적으로 중국 옌지로 건너가 결혼식을 치렀고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었다. 마침 부인의 친정이 함경도였는데 그는 종종 중국에서 함경도 지역과 라선시를 오가며 대북사업과 선교사역을 병행했다. 사업수완이 좋았던 김 목사는 라선시의 호텔 외에도 청진시에서도 소규모 봉제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중국 훈춘에도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등 방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많은 사업을 벌였다.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간혹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미국을 방문해 북한선교 집회를 가졌으나 미국에는 특정한 교회에 소속되거나 전문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는 없었다.
    
김 목사 내외는 북 당국이 보낸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 초청장을 받고 2015년 9월 30일 부인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훈춘을 거쳐 라선시 들어간 후 라선시에 있는 자신 소유의 ‘두만강호텔’ 안에서 체포됐다. 라선지구의 군사기밀이 담긴 자료를 건네받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연행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체포된 장소는 10여 년 전 당시의 화폐로 1200만 위안(약 21억 6000만 원)의 거액을 들여 건축한 4층짜리 호텔이었으며 이날 부인은 체포되지 않았다.
    
한편 김 목사가 체포되기 전에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하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일성 대장을 위급한 상황에서 구해 낸 중국인 ‘장울화(張蔚華)’ 집안과 친분을 쌓으며 동업자 관계를 유지했다. 2015년 1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길림성 푸쑹(撫松, 무송)에 있는 장울화의 손자 ‘장치(張琪)’를 찾아가 라선시에 요양원을 설립하는 사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장울화는 24세의 나이에 1937년 일경에 붙잡혔으나 함께 활동한 김일성의 은닉처를 숨기기 위해 사진 현상액(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며 김일성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훗날 김일성 주석은 이 사건을 두고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세히 소개했으며 항일투쟁 당시 자신의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인 세 명중에 가장 첫 번째로 장울화(장위화의 한국식 한자음)를 꼽았다. 두 번째 은인은 평양역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를 막은 소련군 중위 ‘노브첸코’, 세 번째는 중국 길림 감옥에서 구출 해준 ‘손정도’ 목사이다.
    
북 당국은 이들 3인의 후손들을 평소 ‘연고자 가족’으로 분류해서 특별대우를 해주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도 장울화의 기일이 되면 해마다 푸쑹에 있는 묘소에 조화를 보내고 있으며 주요 국가기념일에는 ‘장치’와 ‘장진취안’ 등 ‘장울화’의 자손들을 귀빈으로 초대하는 등 끈끈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평소 김동철 목사도 북측 당국과의 관계가 원만했는데  2015년 4월에는 라선시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의 동상 제막식 행사에 ‘장치’의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김 목사가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0년  노동교화형을 언도 받았는지가 처음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재판에 앞서 2016년 3월 김 목사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11년부터 남조선 정보기관원들의 지원을 받아 공화국(북한) 내부 정보를 남조선 정보기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시인했으며 북 당국은 그 이후 방송매체를 통해 “2013년 4월 남조선의 수구 세력 인사들에게 포섭된 김 목사가 전직 북한 군부의 간부에게서 군사기밀이 담긴 USB와 카메라를 넘겨받으려다 중국 국경지대에서 검거됐으며 돈으로 매수한 현지 주민을 돈으로 매수해서 군사기밀을 빼냈다”고 발표했다.
    
그 후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방송자료 화면을 보면 재판정에서의 담당검사는 “김동철 목사는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만큼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변호인은 “김동철 목사가 나이가 많은 만큼 강성부흥하는 공화국의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형량을 낮춰 주기를 요청한다”고 발언함으로서 재판부는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 한인 시민권자인 김동철 목사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수갑을 찬 모습으로 재판정에 들어서는 김동철 목사의 모습. 재판부는 이날 김 목사에게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사진제공 - 최재영]

 
‘크리스 김’을 통해 본 성육신적 사역과 사랑
      
‘성육신적 선교’라는 것은 타 문화권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이 선교지 국가의 원주민들과 ‘동일화(identification)’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현지인의 의식주 생활을 무조건 모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진정한 마음의 태도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가장 먼저 인간 대 인간의 신뢰감이 확보된 후에 인간과 하나님과 관계를 소개하거나 맺어주는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 실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탄생한 날을 가리켜 성탄절(크리스마스)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을 찾아 온 예수의 탄생 사건을 신학적으로 ‘Incarnation’ 혹은 ‘성육신(成肉身)’ 혹은 ‘도성인신(道成人身)’이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동정녀 탄생을 통해 본래 자신이 지녔던 신성에 인성을 취한 것으로서 그 결과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 된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 했듯이 타문화권 선교사는 선교지 주민들을 겸손하게 섬기며 동등한 가운데 동고동락 할 때 복음이 그들 내면세계에 깊숙이 파고들어 영혼을 일깨워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성급하게 선교의 결실을 맺으려고 하거나 선교지의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얻으려는 목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북사역자들은 종교적 목적달성에 집착하지 말고 이런 성육신적 원리를 통해 사랑을 실천할 때 기독교가 우리 민족의 통일에 기여하고 이질화된 남북 민족이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소통과 가교 역할에 기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라선시 신해리에 20년 가까이 거주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없이 실천하는 ‘구리스 선생(크리스 김)’을 매우 좋은 케이스로 생각하고 있다. 신해리를 비롯한 그 지역 사람들은 평소 크리스 김을 매우 좋아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동네 주민들을 종교적으로 선동하거나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지를 돌리거나 강요한 적도 전혀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크리스 김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 명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중 이곳 신해리에서 염소농장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다. 마을길도 넓히고 농사도 짓고 상수도 하수도 공사도 하고 인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신해리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운치 있게 펼쳐진 곳에 아늑하게 위치해 있는 평화로운 농어촌마을이다. 크리스 부부는 슬하에 예솔과 지성이 남매를 두고 있고 미국 국적의 백인 수의사도 크리스 김 가족들이 신해리에 정착한 초기부터 함께 15년을 살고 있다. 크리스 김의 부인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인 신은미 박사의 사촌 여동생이다.
   
미국에서 잘 나가던 그들 가족들이 왜 여기 와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고 있을까? 신은미 박사의 방북기를 읽어보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신은미 박사 내외를 안내했던 안내원은 크리스 김 부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의아한 표정으로 신 박사의 남편인 정태일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 사촌 동생분은 미국에서도 좋은 교육을 받고, 유능한 컴퓨터 공학자로 대접도 잘 받고 직장도 훌륭했다고 들었는데, 왜 이곳에 오셔서 어려운 고생길을 마다치 않고 계시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궁금해서리...”

“이해하기 힘드실 겁니다. 김 선생님도 저분이 기독교인인 것 아시지요?”

“네, 잘 압니다만, 그것이 어떻게 련계(연관)가 되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참 설명이 힘든 이야기인데... 기독교인들은 하늘에 신(하나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니 우리 인간들은 그 신의 자식인 겁니다. 우리가 그 신의 자식이니 그 신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니 신의 자식인 우리도 그 뜻을 따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믿고, 행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거지요. 또한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신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나도 집사람이 교회에 나가니까 가끔 골프 약속 없을 때 할 수 없이 끌려가는 정도라서 충분히 설명을 잘 못하겠네요.”

“그리스도 교인들은 다 그렇게 삽니까?”

기독교인들은 모두 그렇게 사냐고 묻는 안내원의 의아한 물음에는 크리스 김과 그의 가족들이 이곳에서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압축한 말이다. 20대에 소명을 받은 크리스 김은  입술이나 말로만 떠드는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온 몸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성육신적 삶’을 살아왔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민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울고 웃는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는 현재 염소농장 운영과 더불어서 중국 단동(연길)에서 라선시를 전문으로 여행하는 ‘크라운여행사’를 운영하며 신해리 마을과 이웃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라선시 인민위원회의 인정과 신뢰도 받고 있다. 오히려 인민들이 먼저 크리스 김 가족들이 독실한 크리스찬인 것을 알아챘고 예배를 적극 권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북측 당국이 그를 경계를 하거나 의혹을 살만한 언행을 한 적이 결코 없다. 그리고 한 주간을 열심히 살고 매주 일요일이 되면 가족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거나 친분이 있는 해외동포 대북사역 지원자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린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는 북 당국이 허락하는 공식적인 종교 행위이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이다. 필자는 크리스 김에게서 특권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미국시민권자가 아니라 라선시 인민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평범하게 사는 그의 모습에서 그곳의 상황에 맞춰 신해리 사람으로 살아온 진솔한 신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 크리스 김 가족이 거주하는 신해리 살림집(좌측)과 주택 단지. [사진제공 - 최재영]

 

▲ 좌측에서 네 번째가 크리스 김. 신은미 박사 내외 일행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신은미 박사]

 

▲ 크리스 김 가족들과 함께 신해리에 사는 미국인 수의사(좌측)와 크리스 김의 딸 예솔과 아들 지성이가 산에서 캐온 더덕을 다듬는 모습. [사진제공-신은미 박사]

 
올바른 대북사역을 제시한 노르웨이 출신의 ‘프랭크 잰슨’
    
이미 몇 년 전에 고인이 됐지만 외국인으로서 북한을 이해하고 교류했던 프랭크 잰슨이라는 기독교 신자가 떠오른다. 그는 일찍이 1979년부터 북한에 대한 비전을 품고 발을 들여놓은 후 2천년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왕성한 사역을 했던 유럽의 기독교 신자인데 그가 평소 강조했던 말을 들어보자.

“남북이 전쟁을 하는 것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며 양측의 군대를 유지하는 것도 지출이 크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섬기는 대상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하나님은 북한에 대하여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물음이 없으면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사회적인 틈새를 노리고 그 빈 공간에 기독교 복음을 심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것이다. 남과 북이 단절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우선 소통이다. 복음전파보다 소통과 교류가 가장 우선이다.”

프랭크가 북한에 대한 비전을 품은 지 1년 뒤인 1980년 한국정부로부터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서 석탄을 구입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본격적으로 북한과 교류하게 되는데 프랭크는 목회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노르웨이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지도자로서 늘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노벨상을 수여하는 평가단에 포함되어 있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데도 드러나지 않도록 일조했다. 프랭크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자.

“당신이 북한 선교사가 되기 원한다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선교활동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해야한다. 북한 사역자들은 말하는 것보다 우선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문화권에 들어간다면 그들의 문화를 알기 위해 좀 더 귀 기울여야 하며 그런 후에야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원리가 바로 나의 대북사역의 초점이다.”

프랭크가 강조한 것처럼 우리가 섬기는 대상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계시는가를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북한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것 같이 우리 마음도 북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 할 때 비로소 대북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선교 한답시고 북 인민들에게 다가가 무조건 가르치거나 주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들을 바라보고 필요가 무엇인지 듣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일부터 조용히 시작해야 한다. 어떤 사역자들은 다짜고짜 복음을 전파하거나 지하교회를 세우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런 타임이 아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런 사랑이 자신에게 있는가를 질문하며 그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낮아지며 겸손히 섬기며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그들은 초대하며 신뢰할 것이다. 
 
라선시에서 빵공장과 병원사역을 하는 ‘미국 만나미션’
      
크리스 김이나 플랭크 잰슨 외에도 스벤에릭 요한슨 선교사도 매우 긍정적인 대북사역자 중에 한명이다. 또한 라선시에서 빵 공장과 병원을 건립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진료하는 미국 만나미션의 사역도 매우 바람직하고 객관적이다. 특히 만나미션에서 대표적으로 사역하는 이영호 박사는 한때 채플실을 만들어 놓고 자체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할 정도로 북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인물이다.
    
현재 그는 정기적으로 라선인민병원을 진료하는 것 외에도 시골에 세운 결핵요양원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는데 백내장팀 수술은 1년 2회(봄가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그 외에도 의약품 지원과 치과, 내과 진료를 하고 있다. 대북지원팀이나 NGO 관계자들 중에는 대부분 목사, 신학교수들이나 독실한 신자들이 많아서 라선시를 방문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미국 만나미션은 1999년부터 라선시에 빵 공장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97년 나진에 밀가루 80톤을 전달한 것을 계기로 구제사역을 시작한 이후 1998년에는 트럭 9대 분량의 밀가루를 지원해오다가 현지 관계자들의 제안으로 1999년 9월 빵공장을 설립해 매일 1만 2,000개의 영양빵을 나진과 선봉지역 탁아소와 유아원에 공급해왔다.
    
또한 2003년 10월 9일 엑스레이를 비롯해 내시경 검사시설 등 최신의료장비를 갖출 나진신흥병원을 설립했는데 이는 하루에 1,000명 이상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종합 진료소 규모이다. 나선시로부터 부지를 임대 받아 이처럼 나진신흥병원과 어린이 영양빵 공장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특히 병원은 2,500평 대지에 2층 건물이며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X-레이과, 병리과, 한방과 7개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고 초기에는 북측 의사와 간호사 25명과 중국 의사 5명이 진료를 맡고 있으나 지금도 상주하는 의료진이 부족하다.
     
이처럼 만나선교회는 ‘독자기업’이라는 독자적인 형태의 대북사업 모델을 만들어냈는데 평소 계약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 북측 사회에서 외국의 독자 기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설립자인 신종현 장로가 수년간 노력한 끝에 성사됐다. 독자기업은 외국 기업에서 직접 직원을 고용하고, 그 직원이 북한 영토 내에 상주하면서 모든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 형태를 말하는데 만나선교회가 고용한 중국인과 조선족 직원이 라선시에 상주하면서 자재 관리부터 생산, 배급까지 일련의 과정을 담당해왔다. 사역의 결정권도 북한 당국이 아닌 미국 만나선교회의 임원들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사역이 가능하고 배급의 투명성과 효율성도 높다고 한다.
      
특히 신흥종합병원은 미국의 만나의료팀을 현지로 보내 북측 의료진에게 최신 의료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심지어 대형 병원에서도 1차 검진 이후 확진(1차 검진을 확인하는 검진)이 필요한 경우에는 만나종합병원에 보낼 정도라고 한다. 또한 만나선교회는  75곳의 탁아소와 유치원 등에 빵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두 달에 1만 권 이상 생산할 수 있는 학습장(노트) 공장을 설립해서 6살부터 11살까지는 칸으로 된 공책을, 11살 이상은 줄로 된 공책을 2005년부터 공급해왔다. 북측 인민들은 17년 넘도록 아무런 조건 없이 묵묵히 빵을 나눠주고 있는 만나미션을 바라보며 만나미션이 무엇을 곳인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

‘통일지향적 대북사역’을 해야한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라선시에서의 경쟁적인 선교정책을 중단하고 통일지향적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거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선교열정과 자기만족을 위한 선교 과시욕을 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조용한 선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북한선교를 하려면 북한영토에 교회당을 세우고 수천 권, 수만 권의 성경책을 배포해야 하는 것으로  많은 사역자들이  믿는다. 이런 분별없는 과잉 선교가 진정한 선교를 방해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게 한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 하나로부터”의 마음가짐으로 통일지향적인 선교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교회의 무모한 북한선교 정책이 하루 빨리 수정되고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해왔고 동시에 북한 사역자들에게는 대북사역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해왔다. 그동안 대북사역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아쉬웠던 점들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한다. 대북사역자들은 사역의 특성상 복음전파 이전에 민족화해와 협력정신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북한에 대한 팩트에 관심을 갖고 객관적 해석을 하는 일에 사회적으로 가장 먼저 앞장서야 한다.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자료수집이 필요하다면 기존 보수언론에만 의존하지 말고 12정탐꾼 중에 여호수아 갈렙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북한의 기독교 정책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왜 그토록 지하교회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대북 선교사들의 억류사태와 추방사태가 왜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북한의 공식 기독교에 관해서는 무조건 매도할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와 처소교회 그리고 공식적인 교회당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한국교회의 통일의 파트너인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파트너십이 절실하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한반도 분단사와 한국전쟁 등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이해는 물론 북미관계와 국제질서에서의 대북정책에 대한 객관적 소신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대북사역자들은 대북사역의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북한에 대한 내재적 이해와 접근을 위해 대폭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북한을 일방적으로 왜곡한 행태에서 벗어나 역사적, 시사적 재해석 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을 바로 알고, 바로 알리는 운동”이 한국교회와 해외한인교회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대북자료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정책 수립과 중보기도를 하는데 활용될 수 있으며 올바른 통일정책도 가능하다. 안 그러면 뜬구름처럼 허상을 잡는다.
    
그리고 대북사역자들은 북한붕괴나 흡수통일(혹은 북진통일)의 잘못된 통일관에서 벗어나 민족공조와 상생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통일관이 필요하다. 대북풍선 전도지 삐라 살포행위처럼 잘못된 선교관은 현지 사역자들을 오히려 더욱 어렵게 하거나 오히려 기독교의 이미지와 입지를 제한한다. 남북 간의 ‘화해’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 복음적 이슈이기 때문에 지금은 선교활동보다도 남북 간의 소통과 화해의 중계자 역할이 필요하다. 언론과 학교교육에서 제공된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대북관은 대북사역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반북의식의 고착화에서 한국교회와 사역자들이 먼저 벗어나야 한다. 북한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대하는 ‘적대세력-냉소세력-비판세력’을 ‘이해세력-우호세력-소통세력’이 되도록 사역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또한 북한의 실체를 축소하지도 말고 과장하지 않아야 하며 민족의 앵글로 접근하여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남북이 적대적, 대립적 상황일수록 한국교회가 직접 나서 양측의 ‘만남과 교류’, ‘소통과 통합’, ‘유대와 연대’의 단계를 넘어 ‘민족공조’에 이르도록 힘써야한다. 이에 필자는 남북을 셔틀왕래하며 남과 북의 모든 국립묘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우리 민족의 역사화해를 모색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와 화해의 불씨를 지폈던 것이다.(계속)

 

▲ 한국 가톨릭 측에서 설립한 나선인민병원 모습. 가톨릭의 의료사역은 북 당국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미주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의 책임자 유용석 장로가 라선시를 방문해 활동하는 모습. 기윤실의 봉사활동은 북 당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한가운데가 유 장로). [사진제공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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