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놀랄만한 사건들이 매일 터져 나오는 터에 어지간한 비상식적인 일들은 이제 기사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지난 21일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5월 19~21일 중국 선양(심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참석 등과 관련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 고발사건에 대해 조사를 한다며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반북단체 간부가 고발하고 사법기관이 법정으로 끌고가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런데 6.15남측위원회가 어떤 조직이고, 이창복 의장이 누구인가? 한마디로 모든 통일운동 관련 단체와 개인의 총집결체이고 그 유일한 대표자다.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을 국가보안법에 걸어 조사한 것은 남측 통일 관련 모든 단체와 개별인사를 국가보안법으로 다루겠다는 공안당국과 박근혜 정권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튼 남북 민간교류는 6.15, 8.15 계기 남북해외 공동행사 등을 거치면서 2005년 마침내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 6.15해외측위원회의 결성으로 이어져 6.15(민족)공동위원회로 결실을 맺었다. 6.15남측위원회는 진보재야단체 만이 아니라 여야 의원들까지 망라된 민화협, 시민사회단체, 7대 종단까지 망라돼 있다. 남측 통일운동의 총집결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한 2005년 평양 6.15통일대축전에는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 등 당국대표단이 참석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고, 서울 8.15민족대축전에는 북측 당국대표단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이 현충사를 참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6.15남측위원회는 그야말로 남북해외 민간은 물론 남북 당국까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유일한 통일운동 연대조직인 것이다.

그러나 전 민족적 축복 속에 열렸던 남북해외 민족공동행사도 2008년 금강산 6.15민족통일대회를 끝으로 보수정권 하에서는 더 이상 열리지 못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제3국에서나마 공동위원장회의 등을 통해 연대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매번 6.15남측위원회의 중국행을 ‘북한주민접촉 신청’의 수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불허해왔고, 실제로 중국에서의 회합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간주,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처분을 내려왔다. 6.15남측위원회를 비롯한 민간 통일운동 진영은 이같은 정부의 접촉 불허와 과태료 부과 조치를 무릅쓰고 회합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6.15남측위원회가 24일자로 발표한 규탄성명에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이 교류와 접촉을 촉진하는 취지아래 애초 ‘신고제’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팩스 송수신 등 간접접촉마저 ‘수리거부’라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불허하며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등, 공권력을 남용하여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를 심대히 침해하고 있다”면서 “6.15남측위원회는 법적 절차에 따라 사전 신고를 모두 마쳤고, 6.15남북해외위원장회의에서 다룬 내용 역시 남북공동선언 이행, 6.15 및 8.15 민족공동행사 추진 등의 내용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24일자 규탄성명에서 “경찰이 남북 민간 교류협력 추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정부가 민간 차원의 남북간 평화, 안정 추진 노력에 재갈을 물리려는 반통일적 폭거”라며 “서울지방경찰청이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열린 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 위원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등) 고발 사건에 대해 조사한다며 경찰에 출석할 것을 통보한 것은 청와대발 게이트 사건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고 남북 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폭력적인 법 집행”이라고 비판했다.

통일부는 공안 당국의 이창복 의장 조사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행정기관이 사법기관의 일에 왈가왈부할 수 없는 위치라는 점은 그렇다치더라도, 통일부는 자신들이 행정처분을 이미 내린 6.15남측위원회의 활동을 빌미로 경찰이 이창복 의장을 조사하는 사태에 대해 “파악해 보겠다” 식의 나몰라라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6.15남측위원회는 우리 사회 민간통일운동의 총결집체로 이념과 종교, 부문과 계층, 지역 등을 모두 뛰어넘어 포괄하고 있다. 이런 조직의 대표자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는 것이 오늘의 보수정권의 현주소다.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팔순을 바라보는 재야의 원로로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전직 상임대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나 김상근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과 함께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원로다.

이번 공안 당국의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에 대한 국가보안법 조사는 마땅히 중지되어야 하고, 누가 이를 기획, 집행했는지 낱낱이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긴 안목으로 남북관계를 구상하고 민간 통일운동의 입지를 보장함으로써 당국과 민간이 남북관계 개선의 두 축으로 양립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균형감있고 성숙한 정책을 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쓰나미가 몰려온 지금, 국정 정상화를 향한 첫 걸음은 이창복 의장 조사 중단부터 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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