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후발주자의 이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음과 동시에 선진국이 이룩한 기술을 빨리 습득한다는 뜻이다. 5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높은 차원의 핵개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중론이다. 핵강국인 미국과 러시아도 다섯 번째 핵실험에서 소형화된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하니, 북한도 이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후발주자의 이점에 따라 핵기술 발전이 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도 5차 핵실험을 단행한 9일 조선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조선핵무기연구소는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하였다”면서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에 대해 비교적 야박한 군사전문가들도 ‘스커드’, ‘노동’, ‘무수단’ 등 미사일에 핵탄두가 탑재될 경우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 그리고 괌 등이 북한의 핵공격 위협권에 들어가게 된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2020년이면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것이고, 그 무렵이면 북한이 많게는 1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올 정도다. 국제사회 통념상 북한이 자동적으로 핵보유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이제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갈림길에 섰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전략적 인내’였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5차 핵실험으로 무엇이 ‘전략’이고 무엇이 ‘인내’인지 형해화되었다. 들어맞지 않고 있다면 ‘전략’이 아니며, 참을 수 없다면 ‘인내’도 아니다. 전략적 인내란 그냥 대북압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하는데 북한은 그 테이블에다 핵폭탄을 터트렸다.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대북제재 실패론과 함께 협상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한국도 대북제재에 앞장서 왔다. 한국은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위성 발사에 맞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려 대북 강경책의 포문을 열었으며, 특히 대북제재를 강화해 9월이 되면 북한이 무릎을 꿇고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북한은 9월 9일 9시(북측 시간)에 오히려 무릎을 펴며 용수철처럼 튕겨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말했는데, 이 같은 감정적인 언사는 문제 직시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 군도 “북한의 핵사용 징후가 포착되면 평양을 지도에서 아예 들어내버리겠다”는 식으로 호언했는데, 그럴 능력도 의심스러울뿐더러 무엇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전시작전통제권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 등은 여전히 대북압박 쪽에 미련을 두고 있다. 치기 어린가, 정책 오류를 인정하기 싫은 거다. 지금 언론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북 압박정책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새로운 대북제재론, 둘째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 또는 전술핵 배치론 그리고 셋째 선제타격론 등이다. 과연 이들 방법이 유효할까? 먼저 새로운 대북제재의 경우,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다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에서의 추가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4차 핵실험 때 채택된 결의 2270호의 구멍을 메우고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매번 제재를 업그레이드한다고 해서 먹힐까? 다음으로 독자 핵무장의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탈퇴해야 하고 나아가 한미동맹 파탄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전술핵 배치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서 벗어나고 북한의 핵개발 논리의 근거가 될 수 있으니, 결국 남과 북이 도긴개긴되는 셈이다. 또한 선제타격론의 경우, 북한의 핵사용 징후 포착시 정밀타격 미사일 등으로 북한 지휘부를 직접 응징 보복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너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핵실험 동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 정보 수준에서 오판에 의한 선제공격이 되기 쉽다. 이처럼 새로운 대북제재론은 불확실하고, 독자 핵무장론 등은 비현실적이며, 선제타격론은 무망하다.

5차 핵실험 후 이를 발표하는 북한 조선핵무기연구소의 성명은 실질적이고 차분했는데, 남한의 대응은 거칠고 감정적이었다. 이제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침착하자. 앞에서 살펴봤듯이 북한의 핵개발 전략을 대북제재나 핵무장으로, 또는 군사적 개입으로도 막거나 대처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는 것은 대화와 협상밖에 없지 않은가? 이와 관련 북한이 핵보유의 목적이 자위력에 있다고 한 점에 주목해 보자. 그렇다면 북한에게 핵포기를 위한 조건, 즉 굳이 자위력를 형성할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이 방법을 북한이 지난해 초 이미 제안한 바 있다. 다름 아닌 ‘한미 연합군사연습 임시 중지 대 핵시험 임시 중지’ 제안이다. 당시 한미는 ‘두 사안의 부적절한 연계’라며 거부했으나 이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북한은 한미 군사연습을 ‘북침전쟁 연습’으로 간주해 절대적인 체제위협으로 느끼고 있으며, 한미 역시 특히 이번 5차 북핵 실험에서도 나타나듯 북한의 핵실험을 심각한 안보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보다 더한 ‘적절한 연계’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1994년 3월 한미는 북핵문제의 성공적인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의 조건부 중단을 공표한 전례도 있다. 물론 북한이 5차 핵실험 직후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조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한미 연합군사연습 임시 중지 대 핵시험 임시 중지’ 제안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핵심은 북한도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를 선호한다는 점이고,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도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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