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된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이 전례 없이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역대 최고 강도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대북 제재안은 미국이 중국의 양보를 끌어낸 모양새이지만 중국도 미국으로부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어느 정도 양보 받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G2이자 신형대국관계에 있는 양국이 대북 제재안과 남한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모종의 거래를 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중국이 의외로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받은 것도 그렇지만 당장 사드와 관련해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 이상기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3일 방미한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 직후 “우리는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고, 이어 24일 백악관은 중국과 합의한 대북 제재안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오비이락일까요?

계속해서 24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사드 부지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다소 엉뚱한 발언을 했으며, 이어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도 25일(현지시간)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기로 합의한 것이고, 양국이 아직 사드를 배치하기로 합의하지는 않았다”라고 한 발 뺐습니다. 분명 이들의 발언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맞서 중국 등의 반대와 관계없이 사드의 남한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기류 변화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왕이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이 계기가 됐습니다. 케리 국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이 대북 제재안과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담판을 지었고, 왕이 부장이 유엔 안보리를 통한 고강도 대북 제재에 동의하는 대신 케리 국무장관은 사드 문제를 양보하는 이른바 ‘빅딜’을 성사시킨 셈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본질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가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안보가 아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협상 카드였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케리-왕이 회담에서 케리 장관이 사드를 대북 제재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안타깝고 난처한 건 남과 북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북한의 위성 발사가 있은 바로 그날, 2월 7일 사드 배치 선언을 한 박근혜 정부의 무대책과 무전략이 한심할 따름입니다. 사드가 미·중의 전략적 게임 차원인 것도 모르고 대북 제재를 한다며 화풀이하듯 사드 배치를 선언했으니까요. 결국 사드 카드를 미국에 거저 줌으로써 미국은 이 카드를 갖고 중국과 협상함으로써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한은 사드 배치 문제가 공중에 떴으며 북한은 강력한 제재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뒷수습을 해야겠지요. 미국은 사드 배치를 늦추거나 아예 무산시킬 수도 있고, 중국은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받아들였으니, 속된 말로 미국은 남한을 그리고 중국은 북한을 각각 달래야 하니까요. 그런데 양국은 이미 남과 북을 달래기 위한 다음 수순으로 들어갔습니다.

방한 중인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26일 ‘중국의 안보리 결의 동의와 한·미 간 사드 논의 연기에 연관성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사드는 외교적 협상칩(bargaining chip)이 아니다”며 “안보리의 외교적 트랙과 사드 배치 문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앞의 케리-스캐퍼로티-해리스 등의 발언이 버젓이 있는데도 남한을 순간적으로 달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요.

왕이 부장은 방미 중에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를 병행할 것을 미국에 몇 차례에 걸쳐 제안했고, 케리 장관으로부터 “북한이 비핵화협상에 응한다면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 어쨌든 북한에게 향후 평화협정 논의를 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립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남과 북이 합심·협력해 외세에 대응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분리·대결 상태이니 미국과 중국의 거래에 놀아나는 것도 하릴없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묻지마 식 사드 도입 결정에 남과 북이 일시에 난감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