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Daum영화]

우리나라 영화에서 로봇, 그것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주인공이 되어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영화는 이 영화가 최초가 아닐까 한다. 영화는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와 위기에 처한 소녀를 찾는 로봇의 동행을 그린 버디무비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하고 투박한 외양의 로봇은 극의 전개를 위한 도구나 소품이 아니라, 어엿하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되어 사람 주인공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려 울리고 웃긴다. 가히 연기 천재라 할 만하다.

▲ [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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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반부에서는 아버지 김해관의 사연에 집중하고, 후반부에서는 로봇 ‘소리’의 사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 해관은 10년 전 딸을 잃었다. 딸이 남긴 유품은 딸의 죽음을 추정하게 하지만 딸의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무런 단서 없이 증발된 딸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아버지의 시간은 여전히 10년 전에 멈춰 서 있다.

그 아버지가 묻는다. 당신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끔찍이도 사랑하는 자식, 애지중지 고이 길러 온 자식이 어느 날 종적 없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냐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포기하고 나머지 생을 아무 일 없었던 듯 살아갈 수 있겠냐고.

영화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절절한 해관의 부성애를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가장 최근의 또 다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는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돌아온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진즉에 이 애끓는 유가족들에게 그만 잊고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윽박질러 오지 않았던가.

하늘이 해관의 정성에 감복한 덕분인지 해관은 우연히 우주에서 떨어진 인공위성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인공 지능을 탑재한 감청용 위성에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수집, 기억, 보관하고 그 위치를 찾아내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 이제 해관은 ‘소리’로 이름 붙인 이 로봇을 길잡이 삼아 실종된 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된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이 녀석이 제 딸을 찾아 줄 것 같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누구나 미친 사람이 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또 울게 된다.

▲ [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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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행적을 좇는 해관의 여정은 험난하다. 평범한 일개 중년 남성에 불과한 그가 인신매매 범죄 집단인 듯한 무서운 사람들의 뒤를 쫓고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며 국정원과 맞서다 체포된다. 이 땅의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들이 국회에서 악을 쓰고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을 하고 물대포를 맞으며 천막 농성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저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건사하는 것을 낙으로 알았을 아버지 어머니들 중 그 누가 자신들이 감히 국가라는 거대 권력과 맞서며 거리의 투사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해관의 통절한 부성애를 따라가는 길은 평범한 삶에 불어닥친 재앙의 참담함을 목도하는 길이자,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거움을 뭉클하게 절감하는 길이다. 당신이 왜 국정원에 잡혀 갔다 나오냐는 아내의 물음에 망연자실 내뱉는 해관의 한숨은 그저 ‘아버지’일 뿐인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향한 것이다.

▲ [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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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봇 ‘소리’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소리’는 비밀 첩보 위성인데, 도청과 위치 추적을 목적으로 개발된 위성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아니라 국가안보국(NSA) 소관 위성 로봇 ‘소리’의 설정은 미국 NSA의 외국 정상 도청 사건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부성애라는 주제의 배후에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깔아 의미심장한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성이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다. 위성의 기능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자 인공지능을 탑재한 한 과학자의 시도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간은 좀 더 능동적으로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에 노력해 왔고,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 인간 위에 군림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명해 왔다. 똑똑하게 말 잘 듣는 놈을 부리고 싶은데 너무 똑똑해서 기어오를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 [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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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봇 ‘소리’의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뇌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간에 대해 ‘불신’이란 판단을 하고, 같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인간에 대해 ‘올바르지 않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옳지 않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적 고뇌’를 거쳐 인간의 명령을 수신하는 것을 거부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위성, 아니, 머리만 있는 인간 같은 이 위성 로봇은 고집하고 주장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에 이른다.

로봇 ‘소리’는 자신의 위치 추적 기능을 이용하여 무고한 소녀가 폭격을 당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자 소녀의 안위를 확인하고자 스스로 궤도에서 이탈한다. “나는 그녀를 찾아야 한다.” 딸을 찾는 것이 해관의 삶의 목적이 되었듯이, 폭격당한 학교에서 울부짖는 소녀를 찾는 것이 ‘소리’가 자신에게 부여한 존재 목적이 되었다. ‘소리’는 목적이 있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며, 그 중심에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 ‘양심’에 대한 자각이 있다. 이 로봇은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설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지충’, ‘설명충’이라고 비하하고 조롱하는 반이성주의, 혐오주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고뇌하는 로봇 ‘소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해관이 묵묵히 아버지의 길을 가듯, ‘소리’는 누더기를 끌고 묵묵히 거친 사막을 건너 한 소녀를 구하러 간다. 비인간적 사회에서 인간은 로봇에게 휴머니즘을 배워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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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이야기의 마지막 감동 요인으로 가 보자. 해관이 끝내 도달하게 된 진실은 어두운 지하 터널 안에 있다. 사랑하는 딸을 험악한 세상에서 보호하고자 그토록 노력했건만, 자신은 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으며, 마지막 순간에 그 딸을 내치고 보호하지 못했다. 위성 로봇을 제어하던 NSA는 실종된 로봇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지만, 통제할 수 없다면 파괴하는 쪽을 택한다. ‘소리’가 묻는다, “보호는 고마운 것입니까?”

보호와 구속은 다르다. 보호란 피보호자를 보호자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피보호자에게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않도록 보살펴 돌보는 일’이다. 즉 ‘보호’란 피보호자의 권익과 요구에 충실하여 피보호자의 자기실현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보호국’ 지위를 부여했다고 식민지화를 위한 강제 합병 조약인 을사늑약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다. ‘보호’란 미명하에 자행되는 지배와 속박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해관이 깊은 어둠 속에서 오열하는 이유는 딸의 죽음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한 보호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봇 ‘소리’에게 보호자를 자처했던 그는 그 뼈아픈 진실을 가르쳐 준 ‘소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진짜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 소리가 말한다, “보호해 주어 고맙습니다.” 이 결말은, 감동적이다.

▲ [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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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상처에 주목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를 돌아보게 하며, 혈연을 넘어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유사 가족 관계를 뭉클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한 영화이다. 또한 인간과 로봇이 점차 서로를 이해해 가며 유사 부녀 관계에 도달하다니, 영화의 독특한 설정과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는 근래 상영작들 중 단연 돋보인다.

딸을 보호하지 못한 아버지의 회한을 절절한 감정으로 토해 내는 배우 이성민과, 그 진심을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는 로봇 ‘소리’에게 감정을 입힌 심은경의 목소리는 슬프고 따뜻하면서도 깜찍한 매력을 지닌 영화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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