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결성 25주년을 맞는다. 통일운동사에 있어 한 조직의 사반세기 역사도 범상치 않지만 무엇보다 정부당국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고 ‘건재’하다는 것도 특별나다.

범민련 측에 따르면, 범민련은 대규모로 '침탈'을 받은 것이 20여 차례가 넘고 한때 범민련 간부가 동시에 10명 정도가 구속된 적도 있으며, 또한 범민련 간부들의 구속기간을 합치면 180여년에 이를 정도다. 범민련 투쟁이 ‘범민련 사수투쟁’으로 불릴 정도였다.

범민련을 10년 동안 이끌어온 이규재 의장은 범민련 결성 25년사를 어떻게 볼까? 이 의장은 범민련 25년사를 한마디로 “자주와 대단결의 한길”이라고 표현했다. 이 인터뷰는 27일 오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편집자 주


 

▲ 이규재 의장은 범민련 25년사를 한마디로 “자주와 대단결의 한길”이라고 표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범민련 25년사는 자주와 대단결의 한길”

□ 이계환 :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된 지 25주년이 됐다. 소감은?

■ 이규재 : 먼저, 범민련 결성 25돌을 맞아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농판에서 시장에서 모든 일터에서 통일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6.15시대 참다운 애국자들께 존경과 따뜻한 동지애의 인사를 드린다. 특히, 북측과 해외의 동포들에게 건강한 인사를 드린다.

범민련의 역할은 통일운동의 대중화다. 그런데 25년 동안 정부당국으로부터 너무 많은 탄압을 받아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 범민련 본연의 목표인 대중화의 길로 나아가겠다.

□ 범민련 25년사를 간략히 정리한다면?

■ 한마디로 범민련 25년사는 자주와 대단결의 한길이라 말할 수 있다. 1988년 8월 1일 남측의 각계 인사 1,014명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는 90년 제1차 범민족대회와 11월 20일 범민련 결성으로 이어졌다.

범민련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하는 남과 북, 해외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 단체들과 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하여 결성되었다.

범민련은 1990년부터 해마다 8.15를 맞으며 범민족대회를 성대히 개최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고 민족의 대단합을 힘있게 추동해왔다. 또한 90년대 범민족대회 소집운동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을 범민족적 4대 정치적 과제로 제시하고 언제나 선봉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2000년대 6.15공동선언 실천기를 맞아 범민련은 자기의 3자연대 기치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으로 계승하고 6.15공동위원회를 통하여 광범위한 대중적 지평을 열어 왔다.

범민련은 통일 과정에서 나서게 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전체 민족의 의사와 요구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해마다 범민련 남북해외 공동의장단회의를 개최해오고 있다. 당면해서는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동족을 겨냥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한반도 재침략 저지, 북미평화협정 체결과 미군철수, 6.15공동선언 이행 등을 실천하고 있다.

▲ 이규재 의장과의 인터뷰는 27일 오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범민련 남측본부]

□ 범민련 남측본부 25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 지난 25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내가 처음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되던 2005년, 평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6.14-17)에 참가했던 것이다.

민족공동행사에 매번 선별 불허되었던 범민련 남측본부가 남측 대표단 300여명과 함께 처음으로 평양 순안공항에 첫 발을 내딛던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해 7월에 범민련 남측본부 주최로 열린 ‘범민련과 함께 하는 금강산 통일기행’(7.15-17)에 소속단체 성원들과 초청인사, 후원회원 등 200여명이 대거 방북했을 때가 생각난다. 금강산에서 범민련 진군가를 부르며 범민련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 범민련은 남.북.해외 3자 연합체이다. 지금도 그 3자 역할이 잘 진행되는가? 남북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3자가 어떤 경로로 소통을 하고 있는가?

■ 범민련 남측본부가 계속 탄압을 받는 조건이기 때문에 또한 범민련 남측본부가 노력하지만 부족한 면이 많다. 아직 3자연대 역할을 온전하게 펼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민련은 남북해외 3자연대의 기치 아래 상설적인 3자연대 사업을 일관되게 고수해 왔다.

예를 들면 범민련은 매년 남북해외가 공동의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그 결정서를 관철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 면에서 범민련의 3자연대 역할은 민족문제 해결에서 선제적이고 주동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범민련 3자연대 조직만이 가지는 힘이 아닐 수 없다. 범민련은 그 힘이 통일을 실현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 것보다도 직결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범민련 전체 성원들과 후원회원들은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범민련의 생명력은 남북해외 3자연대에 있다. 따라서 범민련 결성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떤 탄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해외 공동의장단 회의를 비롯한 3자연대 사업을 단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범민련 강화가 6.15공동위 강화에 기여하게 돼”

▲ "범민련과 6.15공동위는 대립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한계성을 보완할 수 있는 상호 협력적 관계이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범민련 25년 역사에서 2000년 6.15공동선언이 있었다. 6.15공동위원회 출범 이후 범민련 남측본부의 역할이 축소됐거나 애매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 일각에서 그런 평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범민련 운동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거나 혹은 범민련 해소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시대와 민족의 부름에 화답하지 못하고 범민련 남측본부가 응당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동지적 비판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깊은 반성과 각오로 되새기겠다.

6.15시대 역량편성에 있어 두드러진 변화발전은 6.15공동위원회의 결성에 있다. 합법적이고 군중적이며 대규모의 사업과 활동을 전개하며, 남북해외 3자연대를 대중화해 나가는데 있어서 6.15공동위원회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며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6.15공동위원회가 합법적이고 군중적인 3자연대 조직이라면 범민련은 ‘우리 민족끼리’ 정신과 원칙에 기초하여 투쟁과 대중화를 이끄는 선봉대이다. 범민련의 투쟁과 힘은 6.15공동위원회의 활동을 보다 힘차게 안내하는 견인차이다.

따라서 범민련의 강화는 6.15공동위원회의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 동시에 6.15공동위원회의 질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남북해외 3자연대 운동에 있어 범민련과 6.15공동위원회를 민족의 화해와 협력, 단합과 대단결을 위한 두 축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범민련과 6.15공동위원회는 대립적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한계성을 보완할 수 있는 상호 협력적 관계에 있다. 6.15공동위원회는 광범위하게 구성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일정한 제한성과 동요성도 있기 때문에 범민련이 자기의 고유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범민련이 가진 3자연대운동의 원칙과 투쟁전통, 6.15공동위원회가 가진 대중성을 상호 공유하며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노력해야 한다. 범민련과 6.15공동위원회는 함께 가야하고 또 함께 성장해야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6.15공동위원회 강화를 통해 각계각층의 모든 세력이 6.15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도록 범민련이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공동의 강령과 규약 아래 굳게 결속된 3자연대 조직으로서 범민련이 단결과 실천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동안 많이 부족했다. 앞으로 범민련은 6.15공동위원회가 원칙성과 역사성을 구현해 나가는 거족적인 통일운동체가 될 수 있도록 범민련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사업구상에 몰두하는 이규재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지금 남북관계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렵다. 지금 시기 ‘통일운동의 기관차’ 역할을 자임하는 범민련  남측본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 조국통일은 당국 간의 만남이나 협상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성별의 차이를 떠나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만나고 접촉하며 공동행보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가운데 비로소 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

우선, 민간 교류와 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6.15시대 10년이 그 반증이다. 서로 이해하고 협력의 방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남과 북, 해외 온 겨레의 역량은 하나로 단결할 수 있다. 단결은 말이나 구호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결의, 공동사업, 공동행동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튼튼해지게 된다. 6.15시대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공동행사를 적극 벌인 것 또한 단결을 위한 노력이었다.

지난 10월 말 평양에서 성대하게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남북사이의 적극적인 연대와 단결의 힘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으며 단결의 위력 앞에서는 반통일 세력의 방해책동도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2의 6.15시대를 열겠다’는 남북노동자들의 단결된 의지와 공동의 실천이 만들어 낸 성과이다.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이어 민간차원의 다양한 연대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완강하게 밀고나가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범민련이 ‘통일운동의 기관차’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범민련 25년 역사가 증명하듯이 8천만 겨레는 범민련의 통일에 대한 완강성, 철저성을 높게 평가하고 기대하고 있다. 3자연대의 안목으로 정세를 정확히 공유해 나가는 가운데 6.15열차를 힘차게 끌어주고 밀어줄 것이다.    

“우리는 범민련 운동의 대중화를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 "범민련 간부들의 구속기간을 합치면 180여년에 이를 정도이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통일운동은 대중운동이다. 그런데 범민련이 대중과 유리돼온 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 1988년 1,014명의 발기로 시작된 범민련은 90년 결성 시기 남측 진보개혁 진영의 거의 모든 세력과 단체, 인사들이 망라된 대규모 상설조직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결성 이후부터 시작된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은 수많은 세력과 단체, 인사들의 이탈을 가져왔다. 지난 25년간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탄압은 범민련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었다. 

한편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동족대결정책으로 인해 통일정세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해마다 연례적으로 개최되던 6.15공동행사는 물론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거의 차단되었다. 범민련을 비롯한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공안탄압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로써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활성화,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던 통일운동은 다시금 심각하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결국 남북공동선언이 부정되는 순간 전쟁과 대결만 남게 되고 통일운동은 험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비단 범민련 운동뿐만 아니다. 이 속에 통일운동의 대중화, 범민련 대중화의 답이 있다. 하기에 우리는 범민련 운동의 대중화를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또한 범민련은 정세가 엄혹할수록 조직을 더욱 튼튼히 꾸리고 자주와 애국을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들을 통일애국의 기치 밑에 묶어세우기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다. 범민련의 대중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면서 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며 실천투쟁 속에서 합법화를 쟁취하고 범민련을 확대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때 범민련 대중화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 범민련 남측본부는 그간 정부당국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돼 무수한 탄압을 받아 왔다. 아직 구속 중인 인사는?

■ 범민련은 결성 첫날부터 오늘까지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이렇게 오랫동안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당한 단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문익환 목사, 강희남 의장, 이종린 의장, 나창순 의장, 역대 의장은 모두 구속, 징역형을 살았다. 6명의 사무처장 역시 구속되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규모 침탈만 20여 차례가 넘는다. 범민련 간부들의 구속기간을 합치면 180여년에 이를 정도로 범민련에 대한 탄압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집요하고 가혹한 것이었다.
 
지금은 노수희 의장 한 분이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내년 7월, 4년 만기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10명의 동지들이 감옥에 있었는데 만기로 출소하거나 집행유예로 모두 나왔다. 그러나 지금도 나창순, 이성근, 김영승 선생님을 비롯하여 팔순이 넘는 고령의 원로선생님들과 20여명의 동지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토록 악랄하게 범민련 3자연대 운동을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6.15시대 자주통일운동을 하는 모든 통일일꾼들이 진지하게 사색해봤으면 한다. 

“소속과 사는 곳이 달라도 우리 모두가 범민련이다”

▲ 지난 2014년 11월, 3년 6개월 징역형을 마치고 만기 출소한 후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출소 환영 및 2015 승리를 위한 단결의 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규재 의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 올해 범민련 결성 25주년 행사를 갖는다. 소감은? 더욱이 이 의장께서는 3년 6개월 징역형을 마치고 2014년 11월에 만기 출소했다. 25주년을 맞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 지난 2011년, 광주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21돌 기념대회에 참가하고 나는 4년 만에 다시 참가하게 된다. 감회가 새롭다.

먼저, 그동안 탄압을 이겨낸 동지들의 수고와 노력을 격려하고 더욱 다지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범민련 25년의 역사와 활동을 각계와 함께 공유하고 3자연대 강화를 위해 힘을 모아나갈 생각이다. 이번 행사의 구호를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우리 모두가 범민련이다”로 정했다. 3자연대의 정당성과 위력, 그리고 대단결의 원칙과 정신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중심구호 중 하나가 “대중속으로!”이다. 향후 범민련의 조직 강화와 대중 속에서 연대연합을 더욱 힘있게 확대 강화해 나갈 것을 결의하고 범민련의 활동 토대를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이번 기념대회는 모두의 삶을 통일로 이어내며, 처지에 맞는 기여를 사색하는 장이 될 것이다. 소속은 달라도 사는 곳도 달라도 우리 모두가 범민련이다. 범민련과 더불어 살아 나가자. 동지들을 기다리겠다.

□ 개인적 운동사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 나는 평생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해 왔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자 많은 운동가들이 좌절하거나 이탈했다. 나는 이게 이상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운동을 한 것이지 소련의 근로시간 단축이나 임금인상 투쟁을 위해 투쟁한 게 아니지 않은가. 이곳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한 것인데 소련이 붕괴됐다고 운동을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 2015년 3월 6.15산악회에서 산상강연을 하고 있는 이규재 의장. 이 의장은 6.15산악회에 꼭 참석해 건강을 다지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 범민련이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특히 청년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지난 8월의 전쟁위기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우리 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불의불시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땅에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가를 깨달았다.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통일문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남북이 이전에 합의한 약속들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분단은 과거이고 통일은 미래이다. 미래 통일조국에서 살아갈 청년학생들이 통일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과거 통일운동은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매년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통일의 의지를 달구었다. 통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청년학생들도 자주의 심장, 애국의 열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청년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듯이 청년학생들이 통일운동의 당당한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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