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3일부터 7일까지 평양시 동대원구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정태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달 초 3일부터 7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평양시 동대원구에 있는 공장을 찾은 김정태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이사장.

2005년 10월 1일 선교구역 영제동에서 창업식을 하고 2008년 11월 부분 준공을 시작한 이후 이듬해인 2009년 2월 28일 마지막 방문을 했으니 그로부터 약 6년 6개월 만에 자신이 설립한 공장을 찾은 것이다.

간간히 열렸던 평양 가는 길이 지난 8.25합의 이후 종교·노동을 중심으로 조금씩 규모가 커지기도 했지만 남북경협 사업자의 평양 방문은 처음이다.

특히 분단 60만의 첫 합영회사라는 기대 속에 평양시 한복판에 대규모 설비를 넣은 후 시험가동을 시작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평양을 떠나와야 했던 김정태 이사장으로서는 이번 평양방문이 말 그대로 고대해 마지않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공장방문이 얼마만이냐고 묻자 전화기 너머에서 “80개월 3일만”이라는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린 간절함이 잔뜩 묻어났다.

올해 73살의 나이에 평생을 투자한 공장의 기계가 멈춰 서 있는 꼴을 보고 온 김 이사장의 가슴속엔 남 모를 아쉬움과 억울한 사연이 있을 법도 한데, 그는 어느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구상에 몰두해 있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살려 완성한 리포트도 발표해야 하고 남북의 산업별 균형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발전플랜을 짜는 일도 구체화하고 있다. 실물경제로 들여다 본 남북관계 발전의 효과라는 주제로 완성한 20쪽 짜리 리포트는 필요하다면 제대로 된 자리에서 발표하고 관계 요로에도 전달해 정책화하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대마의 상용화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는 지금도 끊이질 않고, 관련 주제만 나오면 누에가 실 뽑아내듯 술술 말도 빨라진다. 조선 산업의 성장과 쇄락을 목격한 이 사업가에게 폐 선박 수리는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다.

분명한 건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의 대표인 김 이사장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녹슬고 있는 방직 기계들이 24시간 힘찬 동음을 울리며 17~18년 전 그가 구상했던 대로 대마, 비단, 면 등 천연 직물을 마구 뽑아내는 것이리라.

지난 18일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의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나 최근 방문한 평양 공장의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그동안 무르익힌 여러 구상을 들었다.
 

     

▲2008년 10월 30일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준공식에서 김정태 이사장(오른쪽 두번째)이 북측 박창련 민경련 부위원장(오른쪽 세번째)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최근 평양에 다녀 온 것으로 알고 있다.

■11월 3일부터 7일까지 4박 5일간 회사 이사진 두 명과 함께 평양에 있는 공장을 방문했다. 2009년 2월 28일 마지막 방문을 했으니 80개월 3일 만에 방문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5.24대북제재조치를 발표하기 1년 전부터 기업의 방북을 막았기 때문에 실제로 기업인으로서 평양 방문은 내가 가장 최근에 갔다 온 것이고 그 전에는 가장 마지막에 갔다 온 경우이다.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왔나.

공장 현장상태, 운영상태, 설비 상황 등을 검토하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는 분단 60년 만에 처음 만들어진 합영회사로 우리의 주식회사와 유사하게 운영된다. 북측 이사 4명과 남측 이사 4명이 있으며, 대표자가 김정태 이사장이다.

□설비 상태는 어쨌나.

■기계 설비, 그중 자동직기는 통상 6개월 중단이 되면 부품은 완전히 못쓰게 된다. 또 컴퓨터의 인버터 등이 손상되기 때문에 복구 가능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자동직기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동안 북에서 기계를 사용하진 않았었나.

■북쪽에서는 기계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 수준이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의무가 기술지원이다. 다음으로 계획한 상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일이다.

□기계를 방치하면 못쓰게 된다는 것은 북에서도 알고 있을 텐데.

■사실은 그쪽에서도 일부 가동을 했다. 우리가 있을 때 이미 시운전이 끝나서 40%정도는 기계가 가동되고 있었고 여러 공장 중 대마 공장은 거의 90% 가동되도록 해 놓고 왔다.

우리 기술진이 들어갈 수 없는 상태에서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가동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대마는 50% 정도가 가능할 것 같고 타월 공장은 25대 중에 7%, 4대가 돌아가는 제직공장은 10~11% 정도, 3대가 겨우 돌아가는 편직공장은 11%정도, 가공공장·염색공장은 올 스톱 상태이고, 양말공장은 80대 중 6대가 돌아가고 있다.

별도로 물류회사가 있는데, 8.5톤 트럭 20대, 11톤 트럭 20대 등 총 40대가 들어간 트럭 중에 현재 8.5톤과 11톤 트럭 각각 7대씩만 운행하고 있고 나머지는 거의 폐차 수준이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일부 돌아가긴 하는 것 같은데, 북측이 어떻게든 해 보려고 노력은 한 것인가.

■북측에서도 노력을 했다. 경공업성 방직국장 등 최고기술자들이 동원돼서 해보려고 노력을 했더라.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 있는 걸 뽑아서라도 조금씩 가동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원단을 제직하는 편직기계 중 텐타기, 쉐어링기, 염색시설 등 고급시설은 원체 크기도 한데 써보지도 못하고 전부 정지된 상태이다. 준비 공정에서 직물 정경기 등도 제대로 사용 못했다. 대형 건물에 한 대 놓을 정도의 대형 장비인 정경기 같은 경우에는 약간의 하자가 발생한 것뿐이었는데도 연속된 공정에 대한 기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보니까 전혀 활용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다.

실크공장 안에 60미터 길이로 전시됐던 이탈리아제 연사기 30여대는 한 번도 가동하지 못해 썩어가고 있는 정도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기계는 그저 쇳덩어리가 아니라 때론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김 회장은 한 가지 사례만 더 기록해 달라며 기계 종류별로 꼼꼼하게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기계 외에 건물 같은 것에는 별 문제 없었나.

■2009년 2월 말 평양에 갔을 때 당시 평양시 통일로 옆에 3층 건물 2동과 부속건물 등 건물 3동을 지으라고 지시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다 되어 있었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관리하기가 어려우니까 5천 평 정도 증축을 하라는 것이었다. 기계 설비도 이쪽으로 다 옮겨놓았더라.

□3년 전쯤 평양대마방직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중국 박람회에 나온 적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양말, 타월 등 첫 설비를 시운전해서 나온 제품들을 내 보냈던 건데, 마지막 후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제 값을 못 받았던 일이 있다.

□손실규모에 대해 계산을 해보았을 텐데.

■애초 북에 440만 달러어치를 새 설비로 넣었고 나머지는 중국 공장에서 사용하던 기존 설비와 국내에서 컨테이너 200개 규모로 올려 보낸 자동직기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부품, 경비를 포함하면 1천600만 달러 정도가 평양에 들어갔다.

기계·설비는 폐기될 것이 상당히 있기 때문에 여기서만 400만 달러 정도 손실로 봐야 하고 물류쪽은 전액을 손실로 봐야 한다. 총 40대 트럭 중 지금 14대가 돌아다니긴 하지만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약 300만 달러 손실로 본다.

더 중요한 건 영업손실인데, 이건 뭐 계산할 수가 없지만 수백억 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가보고 싶었을 텐데...이번 평양방문은 어떻게 성사됐나.

■우리 회사는 합영회사이기 때문에 이사장인 내 쪽에서 희망하면 북측에서는 초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북측에서 기업이 돌아갈 방향을 연구해서 올라와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정부쪽에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보내지 않다가 이번에 부처 간 합의를 봐서 도와준 것으로 보인다.

▲ 73세의 노 사업가는 섭섭함도 잊고 어느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구상에 몰두해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공장이 평양에 있는데 지난 6년간 가질 못하게 했으니 정부쪽에 많이 섭섭한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5.24조치는)솔직히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한 실책 중에 가장 큰 실책이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대통령까지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정부는 남북 민간경협과 교류를 장려하고 지원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리 대결정책을 도입하면서 기존 남북관계를 깨뜨렸다. 잃어버린 10년이다 뭐다 하면서 국내 여론을 악화시키고 남북관계를 훼손한 것이다. 남북관계는 일관성있게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한 면이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실책이라고 본다.

□정책의 실패뿐만 아니라 정부가 민간 기업에 직접적인 손실을 발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보상도 없지 않았나.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북한 내륙에 투자한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본다. 개성공단은 똑같은 대북업체인데, 개성공단은 살려놓고... 실제 북한은 내륙이지, 조그마한 변방 도시가 아니거든...내륙을 깨뜨린 것이다.

이 점에서 엠비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가장 불행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를 가동중단 상태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좋은 기회를 무산시킨 5.24조치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다.

5.24조치 이야기를 하는데 당시 상황에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더라도 남북경협의 주축인 민간 경협은 그대로 놓아두었어야 한다. 민간교류, 민간경협은 꾸준히 투자가 되어있는 것이라면 전시(戰時)에도 남겨두어야 한다.

기업을 보호해주고 그것은 유지하되 정부가 과거처럼 지원했던 쌀이나 비료 같은 것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로 대처했다면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은 (남측 민간과의 관계 등 많은 것이) 중단되면서 대결구도가 되니까 핵이나 인공위성 각종 무기개발 등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지 않았나. 원래 그 정도까지 군사력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5.24조치로 인해 한반도의 군비증강으로 위험부담만 더 늘리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5.24조치는 북의 군사력 증강을 오히려 방조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민간교류를 막은 5.24조치가 왜 잘못된 것이냐 하면 북한 옆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20년 동안 피땀 흘려서 키운 기술인력을 중국이 손도 안대고 앉아서 접수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중국이라는 경제대국이 없다면 북한이 재정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었지만 5.24조치 이후에 실제로 북한은 거의 300%이상 외화 수입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5.24조치로 우리 기업만 망하게 됐지, 북한 경제 제재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물경제에 몸담았던 경험으로 볼 때는 노무현 정부 5년간 꾸준히 남북교류가 신장되다가 2007년에 남북관계는 피크에 달했다고 본다. 그 전에는 노태우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까지 10년 동안 남북교류 규모가 약 30배 늘어났다.

김대중 대통령 들어서는 아이엠에프(IMF)위기로 오히려 남북 교류가 축소됐다. 그랬던 것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23%정도 신장되어서 2007년이 된 것이다. 당시 북한이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벌어들인 외화가 10억 달러 정도였다.

지금 북한은 해외 인력 송출을 통해서 20억 달러, 상품 수출로 2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호텔에 중국 관광객이 가득 차는 등 관광 수입도 만만치 않다. 그밖에 추가 수입 등이 있다고 보면 북한 경제는 과거에 비해 외화 수입면에서만 보더라도 300%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평양 방문에서 북측과 어떤 협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북측에서 나한테 한 요구는 합영회사 대표로서 이 회사가 돌아가도록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만약에 남북관계가 안 풀리면 평양에서 생산된 제품을 1월부터는 중국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1월까지 생산되는 제품들을 모아서 그때부터는 중국업체를 모아서라도 판매하자고 말했다.

중국업체가 들어오면 나에겐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르지만 회사 대표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러겠노라고 답변하고 온 것이다.

혹시 북쪽에 다시 못 들어가면 2월에 중국에서 이사회를 다시 개최해서 중국업체와 거래하는 문제에 대해 조율할 예정이다.

□6년 만에 평양을 방문하신 건데, 특별히 눈에 띄었던 점은.

■시장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거기서 창출되는 소득이 북 경제의 30~40% 신장에 기여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평양 시내를 두 바퀴 둘러보면서 이야기도 들어보니까 건설 경기가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확산됐다고 말하더라. 원산, 신의주, 나진·선봉 등. 그 정도 건설을 했으면 인력이 있을 텐데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지방도 하고 평양도 하고 확산이 되고 있다’고 대답하더라. 건설로 인한 경제성장은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판단한다.

내 느낌으로는 건설경기와 시장경제가 가져다주는 경제성장률과 과거에 비해 더 많이 늘어난 외화수입 등 이런 걸 감안할 때 북한은 지금 상당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지표상으로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런 면을 실제 볼 수 있었다.

▲북측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둘러보고 있는 김정태 이사장. [자료사진-통일뉴스]

□초기 합영회사 합의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처음에 북에서도 합영회사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평양에 주재하면서 직접 경영을 하고 내가 회사를 대표하는 이사장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나. 이런 합영회사는 우리 밖에 없었다.

개성공단에 쉽게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잘 돌아가는 중국 공장을 평양에 넣은 이유는 우리 기업이 평양에서 자리 잡기 전까지는 대북 사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공적인 모델이 이루어져야 남북관계가 된다고 봤다.

그는 평양에서 첫 합영회사를 설립한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과거 자신이 정말 어려웠을 때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과 1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독대를 하면서도 북의 중심이 평양인데, 개성공단 같은 변방(?)에 집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하기도 했다.

■100억 원 정도 쓸 수 있는 돈이 있었을 때, 아들과 딸을 불러 놓고 내가 어쩌다 보니 북한을 알게 됐는데 대마, 실크 등 천연섬유 소재 사업을 북에 심어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하는 게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 사업에 손을 대면 너희들에게 한 푼도 줄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 때 선뜻 자신의 뜻을 이해해 준 자녀들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섬유산업에는 화학섬유와 천연섬유가 있는데 이미 남쪽에서는 천연섬유를 하기 어려우니까 차라리 북으로 옮겨서 남의 화학섬유와 북의 천연섬유로 특화 발전시키는 방향을 모색했다.

초기경제에서 섬유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이 분야만 발전시켜도 중국을 얼마든지 견제하고 최소한 우리 기술이 북에 떨어지니까 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3억5천만 달러에서 5억 달러 규모까지는 쉽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개성공단 전체 해보아야 1억 달러 정도 되는 걸 생각해보면 평양에서 섬유 제조업을 하는 것은 그 몇 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타산이 섰다.
 

□그에 앞서 1998년 신의주 건너편 중국 단둥지역에서 대마 이모작 농장을 경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해 전인 1997년에 미국에 있는 신부님들과 함께 국수나누기운동을 하면서 북측 탄광촌에 국수를 보내주는 일을 했었다. 단둥에 꽃제비들이 많이 넘어와서 고생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사하러 갔다가 차라리 이거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문시 월청진에 228만평의 땅을 사서 건물 짓고 농장 만들어서 탈북자 돕는 사업을 했다.

그러다가 그 아이들 때문에 중국 공장을 북으로 넣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 '말하자면 대북 교역으로 거둔 세금으로 북을 도와준 것'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근 3~4개월 걸려서 2050년까지의 경제성장 등에 대해 연구한 결과 남측은 1인당 국민소득(GDP) 10만 달러, 북측도 5만 달러에 도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미래학자들이 제시한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륙진출기업들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먼저 지난 20년 동안 누계 100만명 정도의 고용창출을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때 24%씩 성장한 것을 20%씩만 적용해 보면 올해에만 17만명 정도의 신규 일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앞으로 내륙진출기업들이 활성화되면 남쪽에서만 앞으로 400만 명까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완전고용까지 나오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교역은 북한에 퍼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길이다.

더욱이 이젠 우리의 성장 동력을 북한 외에는 찾을 수 없다.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18개 동구권 국가와 교류하는 북방정책을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만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노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하지 않았고 아직도 중국과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지금도 우리는 1만 달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일 것이다. 노 대통령 때 1인당 GDP가 2만2천 달러로 올라갔었고 지금도 2만 달러 대에 멈춰있다. 곧 10년이 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을 살려주면 그것은 고스란히 구매력이 된다. 우리가 북의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면 20년간 남측 건설, 토목은 북 한 곳만으로도 엄청난 호황을 누릴 수 있다. 북의 노동력을 800만 명이라고 추정, 우리는 북과 상호연계해서 꼭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도 살리고 그밖에 고급인력은 그것대로 활용하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북한의 지하자원을 공동 개발해서 고급품을 만든다면 거기서 오는 이득이 엄청나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세계의 부국이 된다는 미래학자들의 전망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 안목에서 남북관계를 보아야 하는데 이걸 너무 정권적 차원으로 낮추어서 정책을 펼치는 것은 굉장히 가슴 아프다.

과거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도 남북경협 규모는 총액 104억 달러 정도였으며, 남측 경제에 미치는 부가가치 규모만 240억 달러에 달했다. 부가세만 24억달러, 즉 2조 5~6천억원 규모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쌀·비료 도와 준 것이 1조 8천억원 정도 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대북교역으로 거둔 세금으로 북을 도와준 것이다.

따져보면 실물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이런 점이다. 이런 기조로 2050년까지 남북 교류가 활성화된다는 가정 하에 거둘 수 있는 세금만 1천조 원이 넘는다.

특히 7천조 원으로 평가되는 북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가 낙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은 가난한 나라만은 아니다.

몇 백 조에서 몇 천 조까지 든다고 하는 통일비용도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정치논리를 개입시키지 않고 민간경협만 활성화시키면 북에 돈 한 푼 주지 않아도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북의 1인당 GDP가 지금 남쪽 수준인 3만3천 달러가 되도록 도와주면 우리 경제는 5만달러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김정태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천연 섬유 원료로서 대마의 경제성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대마는 한국과 미국만 까다롭고 중국만 해도 전혀 제재를 받지 않고 재배한다. 세계에서 재배되는 대마는 104가지 정도가 있는데 한국에서 재배되는 대마는 최고 A급이고 중국산은 목질이 많이 섞인 저급품이 많다. 캐나다는 대마 종자의 고단백을 이용해 식품, 화장품, 바디유 등 용도로 많이 쓴다.

□방직에는 줄기만 쓰지 않나. 씨앗 등은 더 개발할 여지가 있을텐데.

■(웃음)화장품까지 개발이 다 되어 있는 상태이다. 대마의 항균력을 이용한 스킨로션은 여드름 같은 것을 많이 잡는다. 또 대마 잎사귀는 액화시켜서 에센스를 추출,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대마에는 피부 알러지와 녹내장 등에 좋은 성분이 있다.

다 되면 남북 학자 20명을 뽑아서 바이오 쪽으로 연구개발을 하려고 한다. 대마는 버릴 것이 없다. 대마속대로 제지개발까지 돼 있다. 대마 속대에서 섬유질 50~60%을 채취해 커피 필터지, 티백용 종이 등 고급 용지를 다 실험했다. 제지만 해도 6천만 평에서 대마를 재배하면 1억달러 매출 금방 올릴 수 있다.

버릴게 없는 대마의 무궁무진한 활용에 푹 빠진 김 이사장은 여러 가지 새로운 용도와 기술을 개발했으나 대마에서 실을 뽑는 기술 외에 일체의 특허 출원을 하지 않았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재배지도 없는 상태에서 특허 출원은 전력노출에 불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측에 6천만 평의 대마 재배지를 요청했고 현재는 1차로 평안도 선천군 등에 6백만 평의 대마 밭을 운영하고 있다.

□대마와 함께 실크와 면도 함께 다뤘던 특별한 구상이 있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박정희 정부 당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 실크 한 품목이 25%를 차지했다. 그때 정부가 육성한 양잠이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실크를 쓰고 있는 일본은 지금도 잠사공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100년 전에 브라질에 단지를 만들어서 지금도 거기서 가져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취약한 점 중의 하나가 이처럼 기존 산업 중 유지되어야 할 것도 남아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약간의 보완을 거쳐 양잠 등이 북에 자리를 잡도록 하면 북의 수준에서는 최선일 수 있고 우리 경제에도 힘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보고 서로 상생 발전하는 길이다. 한반도 전체를 구상하고 키워나가려는 이런 관점에 입각해야 올바른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이사장은 남과 북에서 분야별로 10여명 전문가들을 뽑아서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한반도 플랜을 만들어 나라에 내놓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또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를 남북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모델로 만들고 싶다며, 정부가 원하면 주고 싶다는 말도 했다.

제대로 투자해서 양잠, 대마, 면을 생산하는 농촌(양잠-황해도, 자강도, 대마-평안도 선천군 일대, 면-황해남도)도 살리고 여기서 원자재를 공급함으로써 공장도 가동하고 제품 만들어서 수출하면 외화벌이도 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기업을 농촌특화사업부터 시작해서 노동자들의 기술수준을 높이고 제조업의 살길을 만들며, 거기에 부가가치를 얹어서 천연소재 제품을 파는 회사로 만든다면 남북이 서로 상생하는 건전한 모델이자 민간교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김정태 이사장 북한 내륙투자사업 연혁

 

1998년 신의주 맞은 편 중국 지역에서 대마 2모작 등 실험-합영회사 설립구상

2000년 북측 해주 농업과학원과 함께 대마 재배 기술지도

2001년 북측 새별 총회사와 대마 임가공 사업

2004년 10월 통일부 협력사업자 승인, 북측과 합영기업 설립 합의

2005년 4월 직기 육로운송

2005년 10월 1일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창업식(평양시 동대원구 선교구역 영제동)

2007년 11월 물류운송사업 시작(트럭20대, 북측 내륙운송 위주)

2008년 10월 30일 부분 준공식(남북 1천500만달러씩 5:5투자, 부지 4만5천m2, 고용인원 500명, 15개 공장에서 실뽑기, 제직, 염색, 가공 등 전 공정 처리하고 이불, 옷, 양말, 넥타이 등 완성품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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