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쿠바의 병원 모습. 의사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쿠바 의료의 기초 패밀리 닥터

게바라 기념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마차를 탔다. 1인당 1꾹이다. 마차는 관광용일 뿐 아니라 차량이 부족한 쿠바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이보다 더한 시골은 마차와 더불어 우마차, 말까지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는 호텔 광장 근처에서 내려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은 벌써 지났고 이제는 저녁이다. 음료와 피자, 스파게티를 파는 음식점이었다. 우리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켰다. 한국에서 먹는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니 먹을 만하다. 약간 짜긴 하지만 맥주, 음료수와 함께 먹었더니 짠 맛이 반감됐다.

숙소로 돌아온 뒤 저녁 원장님은 안주인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가 의사였던 탓에 두 사람은 특히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들은 쿠바의 의료체계와 의사들의 생활, 쿠바 경제와 국민들의 생활, 쿠바와 미국의 관계 개선 등을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쿠바는 경제수준은 낮지만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 선진국이다.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쿠바의 의료체계를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겠다.

전통적인 의료 선진국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건 노동당의 복지정책 덕분에 1970년대 세계가 모델로 삼은 최고의 복지국가는 영국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대처 집권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로 모범적인 의료제도가 붕괴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의표체계도 훌륭한 축에 속한다고 평가되었지만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의 개인의료 보험체계의 도입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 개인 보험제도가 가장 발전한 미국의 의료체계가 가난한 사람을 죽이고 부자만을 살리는 제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가 전 국민의료보험체계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전개했으나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쳐야 했다.

교육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의료체계는 돈이 많이 필요하기에 부자나라, 소위 말하는 선진국일수록 잘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의료의 선진국 모델이었던 유럽 선진국들도 신자유주의 거센 바람 앞에서 위기를 맞고 있고, 모범국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되는 한국이나 일본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유아사망률이 쿠바보다도 높은 등 의료 후진국의 모습을 보이는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의료복지제도의 축소 바람에도 끄떡없이 무상의료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가 쿠바이다.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와 함께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이한 쿠바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전 국민 무상의료 체계를 지켜내 오늘날 의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쿠바 의료체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 전 국민을 돌볼 수 있는 기초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쿠바는 ‘패밀리 닥터’(주1)라고 불리는 제도를 통해 지역예방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96% 이상의 국민에 대한 지속적인 접촉과 위험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패밀리 닥터는 쿠바 1차 진료 의료의 기둥인 셈이다.(주2)

쿠바는 오래 전부터 사탕수수가 많이 나는 나라답게 쿠바인들은 에스프레소에도 설탕을 덤뿍 넣어 먹을 정도로 단 것을 좋아한다. 그런 식생활 습관은 비만을 불러올 수 있는 조건이지만 우리는 쿠바에서 의외로 비만인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멕시코에서 비만인 사람을  많이 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경제 위기 이후 쿠바 농업 생산이 다각화되면서 채소와 과일 생산이 늘어나고 자연식이 증가하면서 국민건강이 좋아진 측면도 있다. 또한 부족한 의료약품 때문에 침, 뜸과 같은 대체요법이 발전하고 요가, 기공 등 운동요법도 활성화되면서 예방의료가 발달한 측면도 있다.

쿠바가 패밀리 닥터 제도 같은 기초의료와 예방의학, 대체의학만 발전한 것은 아니다. 1차 의료기관으로 패밀리 닥터와 시군구 지구 진료소가 있고, 2차 의료기관으로 시군구 병원과 각주의 위생센터, 혈액은행, 사회복지 서비스를 하는 주 병원이 있으며, 3차 의료기관으로 대학, 연구센터, 바이오의료산업을 포함한 전국 병원이 있다. 이처럼 단계적인 의료체계 뿐만 아니라 쿠바는 첨단의료 기술과 외화획득의 수단이 되고 있는 전문의료, 백신 산업도 발전했다.

▲ 쿠바의 의료를 다룬 SBS의 다큐멘터리 <맨발의 의사>의 장면 1. [사진제공-임영태]

 

▲ 쿠바의 의료를 다룬 SBS의 다큐멘터리 <맨발의 의사>의 장면 2. [사진제공-임영태]

 

▲ 쿠바의 의료를 다룬 SBS의 다큐멘터리 <맨발의 의사>의 장면 3.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체 게바라 1. 그는 쿠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스타였다. 특히 그의 유해가 묻힌 산타클라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체 게바라2.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체 게바라3.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체 게바라 4.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체 게바라 5. [사진제공-임영태]


의료선진국 쿠바는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쿠바가 의료선진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쿠바혁명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혁명 이후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가 무상교육과 함께 무상의료, 사회보험을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굳건히 지켜온 결과다. 하지만 쿠바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결코 그냥 얻어지지는 않는다.

1959년 쿠바혁명 직후 의사의 3분의 2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초래됐다. 그런 바탕 위에서 쿠바는 새로 의사를 양성하고 무상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를 구축해야 했다. 카스트로의 혁명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공을 들인 결과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체계가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는 50년 이상 지속된 미국의 가혹한 경제제재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에 따른 심각한 경제난과 허리케인 피해 등으로 쿠바는 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이한다. 그 결과 쿠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한국(2만 4,000달러)의 30% 수준인 7천 달러(2013년 기준)에 불과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다.

그런데도 쿠바는 의료 부문에서만큼은 어느 선진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5.91명,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16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비율로 보면 의사수가 최고인 것이다.

<표> 각국의 인구당 의사 비율

 

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인구 1천명당 의사비율

캐나다

66,583

309,576

18,265

2.14

칠레

17,250

10,000

6,750

1.09

쿠바

66,567

83,880

9,841

5.91

멕시코

195,897

88,678

78,281

1.98

한국

75,045

83,333

16,033

1.57

미국

730,801

2,669,603

463,663

2.56

우루과이

12,384

2,880

3,936

3.61

자료: 홍조, “가난한 이들의 의료선진국 쿠바를 가다(2)”, <프레시안> 2007.3.21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더라도 쿠바의 의료·보건 수준은 한국이나 미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 백신 접종률 등 각종 보건 지표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의료와 의약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쿠바가 보유 중인 생명공학 분야 특허는 500개가 넘는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의약품 수출국이기도 하다.

2003년에는 합성형 뇌수막염(Hib)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백신 개발 기술도 최고수준이다. 또한 쿠바는 B형간염 대항백신을 개발하여 예방접종을 통해 B형간염 근절을 향해 나가고 있다. 쿠바는 뎅기열 치료재인 인터페론의 주요 생산국이며 항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여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쿠바의 의료관광도 유명하다. 가디언에 따르면 2006년 의료치료를 위해 쿠바에 입국하는 사람이 이미 2만 명을 넘어섰으며, 2000년대 이후 매년 20% 넘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수가가 싸서 의료관광 수익은 2006년 기준으로 연 4천만 달러(약 42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쿠바는 미국과 비교해 60~80%의 비용으로 암·백내장 수술 등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많은 외국인이 선호하고 있다.(주3)

쿠바에는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매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의료치료를 위해 찾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신동 마라도나는 코카인 등 약물중독으로 위독한 상태까지 빠졌으나 쿠바에서 심장질환 치료와 중독 재활치료를 받고 재활에 성공했고, 스무 살 난 쿠바 여성과 결혼까지 해 세계의 화제가 됐다. 그는 이후 피델 카스트로의 문신을 할 정도로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또한 쿠바는 세계적인 의사 수출국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청소년 가운데 학생을 선발해 국립 의과대학에서 무상으로 교육시킨다. 이렇게 기른 의사들은 세계 곳곳의 재해 현장에서 적극적인 의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만 2,000명 이상의 쿠바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내전의 전쟁터나 난민촌, 또는 의료혜택이 부족한 오지에서 활약 중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숫자는 더욱 많다. 2012년 베네수엘라에 파견돼 활동하고 있는 쿠바 의료인력만 3만 명에 달하며 그 대가로 쿠바는 하루에 9만 2천 배럴의 석유를 공급받았다. 그 외에도 2012년 세계 68개국에 파견된 쿠바 의료인력은 의사 1만5천명을 비롯하여 3만9천여 명에 달했다. 2013년 8월 브라질은 농촌지역과 도시빈민지역에서 일할 쿠바의사 4,000명을 파견 받았다. 이렇게 해외 의료인력 파견을 통해 쿠바가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이 2012년 기준으로 60억 달러에 달했다. 쿠바의 주요 현금수입원인 관광수입이 2011년 25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큰돈인지 금방 알 수 있다.(주4)  

▲ 혁명광장 앞 내무성 건물의 체 게바라 얼굴상.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피델 카스트로.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라울 카스트로. [사진제공-임영태]

 

▲ 아바나 가정진료소 의사(왼쪽)와 아바나 구시가의 종합진료소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과 인도주의․연대성
   
그러나 쿠바 의료정책의 기본은 돈이 아니라 인간이다. 쿠바 의료진의 해외파견도 혁명 이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외지원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런 원칙에 변함이 없다. 1999년 11월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9회 중남미 정상회담에서 제안되어 설립된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scuela Latinoamericana de Medicina, ELAM)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대학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외곽에 위치한 그란마 해군기지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교수가 500명, 직원은 1,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맨발의 의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진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은 연대성, 통합성, 인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중남미를 비롯한 의료진이 부족한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을 불러들여 의사로 양성 한 후 돌려보내 고국의 의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1998년 10월 거대한 허리케인 두 개가 잇따라 중미와 카리브 지역을 덮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4개국에서 사망, 행방불명자가 18,500명이나 되었다. 쿠바는 이곳 피해지역에 1천 명이나 되는 의료진을 보냈는데, 현지에는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가 결정적으로 부족했다. 이 경험을 통해 쿠바는 원조지역의 의료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지원을 더욱 확충했으며 동시에 현지에서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세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주5)

그렇게 해서 쿠바에 라틴아메리카 의학대학이 세워졌다. 첫해의 입학생은 1,595명이었으나 해마다 학생들이 늘어나 2005~2006년 학기에는 1만661명의 유학생들이 의학을 배우게 되었다. 이 학교에는 중남미 17개국과 아프리카 4개국, 미국 등 28개국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왔다. 연대성의 원칙에 기초하여 6년 동안 수업료, 책값, 의복비 등 모든 것을 쿠바가 부담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 매달 100페소의 장학금까지 지급되며 4,000여명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고 있다.

이 학교의 입학기준은 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25세 미만의 학생으로 각국의 교육부에서 발행하는 학적증명서(또는 성적증명서)를 쿠바대사관에서 공증을 거쳐 제출해야 한다. 그 외 출생증명서, 건강증명서, 에이즈증명서, 임신증명서, 범죄사실증명서 등도 제출해야 한다. 1년에 1,500명을 모집하는데 쿠바와 연대하고 있는 각국 정부, NGO, 진보정당 등과 소통하여 입학절차 등에 대해 소개하고, 추천을 받고 있다. 별도의 입학시험은 없으며 입학을 원하는 사람은 쿠바로 입국해서 준비학기(1학기) 과정을 밟는다.(주6)

외국인의 경우 6개월간의 스페인어 코스가 있다. 전체적으로 준비기간을 포함하여 6년 반의 교육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처음 2년 동안은 학교수업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기초의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4년간의 임상교육으로 쿠바의 다른 의과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병원에 직접 나가 실습교육을 받는다. 6학년이 되면 쿠바의 보건부에서 실시하는 국가시험을 볼 수 있으며 떨어질 경우 3~4개월 후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합격하면 일반의 자격을 받으며, 쿠바나 남미, 또는 본국으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3년의 전문의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교육에서 주목할 것은 “전반적 통합 의학”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전반적 통합 의학”은 보건의료를 생물학적 차원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심리학적, 문화적 차원, 나아가 영적인 차원까지 통합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 그치지 않고 신체적․정신적․사회적 행복이 온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유전체(Genome) 연구에 기초한 유전자 결정론에 경도된 현대 의학을 넘어설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생물학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의 영향, 면역계와 질병에 대한 사회적 영향까지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주7)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데는 앞에서 본 구비서류 외에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 졸업 후 기존의 의사가 있는 지역이 아니라 가난한 농촌이나 원주민 거주지에서 일하겠다고 맹세하는 것. 쿠바의 의사교육은 최저계층, 빈민지역 의료 활동의 사명을 부여하고 있지만, 유학생이 귀국 한 이후 반드시 빈민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쿠바 의학 교육은 인간교육, 인격교육도 함께 시행한다. 쿠바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실습하면서 의사로서의 양심과 도덕을 배운 그들은 대부분 그러한 맹세를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의사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쿠바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이 무상이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도 돈이 한 푼도 안 들어간다. 모든 국민이 무상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심장병 수술처럼 한국이나 미국이라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병의 치료도 전액 무료이다. 놀라운 일이다. 작고 가난한 나라 쿠바가 미국의 코앞에서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이런 곳에서 나왔다.

▲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쿠바의 무상의료와 더불어 인도주의와 국제주의, 연대성을 말해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사진제공-임영태]

 

▲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나라 현황.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의 한 병원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 공원에도 체 게바라의 축소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쿠바 독립전쟁의 영웅 막시모 고메즈는 산타클라라 시장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사진제공-임영태]


풍요로운 쿠바를 기원하며

인간 사회에서 먹고 입고 자는 문제, 즉 의식주는 생활의 가장 기본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의 삶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제대로 교육받고 아플 때 치료받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인간의 삶이 풍요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좀 더 풍족한 생활, 즉 물질적 풍요도 필요할 것이고 문화적인 삶도 필요할 것이다.

쿠바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의식주와 더불어 교육과 의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문화생활도 비교적 풍요롭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지금보다 풍요로운 물질적 삶을 누려야 하고, 지금보다 나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 현재보다 더욱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쿠바는 지금보다 나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시장경제의 도입하며 경제개혁과 협동조합 실험 등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다.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쿠바가 혁명을 통해 이룬 가장 핵심적인 가치들을 보존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숙소의 안주인은 의사로 직장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까사는 남편이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본래 남편은 엔지니어 출신이었으나 월급이 적어 제빵기술을 배웠으나 부모님이 물려준 이곳에 2년 전부터 이 까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까사를 짓는데 상당한 돈이 들었는데, 그 돈을 대부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부인이 의사여서 신용도가 높은 관계로 은행대출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이자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까사를 짓는 자재값이 너무 비싸고,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 주방 기구 등 모든 물품들은 암시장(black market)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그들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어서 부담이 크다고 했다.

커피, 설탕, 쌀, 기름 등은 배급이 되지만 부족하고, 부족분과 과일, 야채 등 나머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비싼 가격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생활이 힘들다고 틀어놓았다. 이중화폐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부족물품을 구입하는데 쿠바 페소(CUP)로 모두 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외국인 전용 화폐인 쎄우쎄(CUC)로 구입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은데, 현재 쿠바인의 월급이나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가격이라는 것이다.

쿠바 정부는 관광산업을 본격적으로 개방하면서 1994년부터 이중화폐 제도를 도입했다.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다른 가격정책을 폄으로써 내국인에게는 부족한 수입 안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 외국 관광객에서는 최대한 많은 외화수입을 올리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중화폐 제도는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대내적으로 물가상승, 암시장의 횡행, 쿠바 화폐가치의 하락,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등 여러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대외적으로도 쿠바 경제에 대한 신용도에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쿠바 정부도 2013년 10월부터 이중화폐 제도를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당장 이중화폐 제도를 폐지할 경우, 쿠바 페소화의 폭락과 함께 물가상승에 따른 쿠바인의 생활고가 예상되고, 미국 달러화에 예속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쿠바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져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의 이야기와는 달리 의사들 봉급이 그래도 라울 카스트로 집권 이후 많이 올랐다고 한다. 의사봉급이 현재는 1,600쿠바페소(CUP) 정도인데, 이를 쎄우쎄로 환산하면 64쿡(CUC) 정도다. 마이클의 25꾹(600쿠바페소)의 거의 세 배 가까운 금액이다. 하지만 의사들도 봉급만으로는 중산층 생활이 어림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수가 높은 해외근무를 자원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렇게 해외에 나가면 몇 년씩 가족들이 헤어져 지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이혼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식인이면서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 이들 부부는 대체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환영했고 일말의 기대감도 내비췄다. 하지만 미국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아마도 호텔 짓고, 신용카드 쓰게 만들고 하는 일일 것이라면서 상당한 경계심도 내보였다. 그들은 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쿠바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당장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제도가 폐지되거나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시장경제가 가속화되고 10년, 20년의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러시아와 동구권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만 해도 교육과 의료에서 상당한 후퇴가 나타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코 우려로만 끝날 일은 아니다. 

나는 쿠바의 의료․교육 체계와 함께 사회주의, 인간, 경제발전, 풍요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바람도 없는 가운데 산타클라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혁명의 전설 체 게바라가 잠든 이곳에서 오늘밤을 보내는 느낌과 감회가 남달랐다.

▲ 산타클라라의 생수와 음료수 상점 1.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의 생수와 음료수 상점 2.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의 한 상점 모습. 술과 음료수, 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과자 종류가 진열돼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의 한 서점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산타클라라의 비달 광장 주변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비달 광장 주변의 봉황목이 주변의 풍취를 더해준다.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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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밀리 닥터들은 ‘콘술토리오’라고 불리는 자택 겸 지구의원에서 간호사와 팀을 이루어 약 120가구 정도를 돌본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에서는 담당하는 환자가 75가구까지 줄어들기도 하지만 시스템은 동일하다. 이들은 건강상담과 간단한 진단과 의료처방 등을 하면서 사람들의 건강을 일차적으로 돌보며 24시간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 요시다 자로 지음/ 위정훈 옮김,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파피에, 20011), 33~58쪽 참고.

3) 조현찬, “쿠바의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Escuela Latinoamericana de Medicina, ELAM)”, http://www.koreahealthlog.com/?p=11054(인터넷검색:2015.8.25)

4) “브라질, 빈민층 치료 위해 쿠바 의사 4,000명 고용”, <뉴시스>, 2013.8.23.(인터넷검색:2015.6.23)

5) 요시다 다로, 위의 책, 178~180쪽.

6) 조현찬, 위의 글(http://www.koreahealthlog.com/?p=11054)

7) 최형록, “쿠바의 ‘라틴 아메리카 의대(ELAM)’”, <세상속에서>,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IhYd&articleno=6337730 (인터넷검색:201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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