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비날레스에서 트리니다드로 가는 고속도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제공-임영태]

비날레스를 떠나는 날 아침

오전 8시 어김없이 아침식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못 먹겠다. 입맛도 없고 계속 구토가 날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다. 아무리 아파도 식사를 거르는 일은 없었던 나로서는 참으로 이례적인 경험이었다. 결국 아침식사는 포기했다. 물과 주스만 조금 마셨다.

교수님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걱정하신다. 할 수 없이 원장님께 약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간이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원장님이 펄쩍 뛰며 말씀하신다.

“간이면 큰일 나지. 아니야, 위장이 문제겠지. 속이 뒤집어져서 그래.”

내가 말한다. “속이 뒤집힐 것 같고, 니글거리고, 토할 것 같아요. 속이 쓰리거나 하지는 않는데요.”

원장님 왈. “왜 속이 쓰려?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껍지. 간이라면 소변이 완전히 노랗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여기 온 날, 그러니까 그저께 소변이 거의 빨간 색이었는데요 ….’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혹시 계속 구토 증상을 보이는 건 간이 해독작용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트리니다드로 향하면서도 그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 있었지만 ‘의사선생님 말씀을 믿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9시 조금 넘어서 우리를 트리니다드로 데려다줄 택시가 왔다. 아바나에서 비날레스로 우리를 실어다 준 그 젊은 푸조차 기사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차에 짐을 싣고 출발했다. 이틀밖에 안 됐지만 까사 주인과도 헤어지는 게 약간은 아쉬웠다. 주인아저씨와 인사를 나눈 뒤 촌티가 나는 해맑은 그 집 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1960년대 후반 내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택시가 출발한 뒤 우리는 기사에게 가는 도중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비날레스 관광투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기사는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쪽이어서 그럴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한다. 굳이 보고 가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컨디션도 그렇고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이어서 우리를 간단히 포기했다. 비날레스에서는 자연의 모습을 바라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비날레스에 들어오면서 넘었던 고개를 넘었다. 차는 국도를 잠깐 달리다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고속도로에서는 이곳에 오면서 봤던 광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비날레스를 출발하고 1시간쯤 지나서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우리가 아바나에서 비날레스로 갈 때 쉬었던 바로 그 휴게소였다. 휴게소는 반대편에 있어서 중앙선을 넘어서 들어가야 했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차량이 드문드문 다녀서 얼마든지 중앙선을 넘나들 수 있었다. 중앙에 차선 하나의 정도의 넓이로 잔디가 심어져 있지만 도로와 높이가 같고 평평했기에 그걸 넘어가는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다.

▲ 이틀간 우리가 묵은 집 현관. 이곳에서 나는 그동안 묶은 빨래를 해치웠다. 현관 옆 빨랫줄에 내 모자와 윗조끼가 걸려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두 분이 묵었던 집 주인 후안의 초등학교 아들. 나는 그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우리 차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도로 옆 사탕수수밭. [사진제공-임영태]

 

▲ 아름다운 비날레스 자연이여 안녕! 원래 구경하려고 했던 곳을 다 못 봐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비날레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본 것만 해도 우리는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아름다운 비날레스 자연. [사진제공-임영태]

 

중간에 차량을 바꿔 타다

택시는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한동안 달리다가 아바나 근처에 가까이 오니까 핸드폰 문자가 된다. 한국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의 사정을 알리는 답변 문자를 간단히 발송했다. 트리니다드로 가는 중이며 그곳에 가면 역시 연락이 안 될 수 있으니 그렇게 알라고 전했다.

우리는 비날레스에서 트리니다드까지 160꾹에 가기로 예약한 상태였다. 트리니다드는 상당히 먼 곳에 있다.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까지 거리만 해도 314km 되었으므로 비날레스에서 트리니다드까지는 450km는 되는 거리였다. 택시로 꼬박 6~7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그 3분의 1밖에 안 되는 아바나에서 비날레스까지 가는데 100꾹을 지불한 것과 비교하면 이건 상당히 싼 가격인 셈이다. 비아술 버스를 타더라도 거의 비슷한 가격이 들었을 것이다.

처음 아바나에서 비날레스로 우리를 데려다준 젊은 친구는 고속도로에서 120km를 넘나드는 고속질주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가 중간에 달리던 차를 갑자기 세우더니 뒷 트렁크에서 볼트조임 공구를 꺼내들고는 승용차 앞바퀴 볼트를 조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몇 차례 그 일을 반복했다.

그걸 보면서 순간, 나는 ‘어, 저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바퀴 볼트를 조이는 게 분명한데 저런 손공구로 해서 될까? 기계로 드르럭 조아야지, 저걸로 제대로 조아질까? 더구나 120km의 고속질주를 하고 있는데 ….’

마음속으로 살짝 불안감이 교차했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뒷좌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이 더 불안해 할 것 같았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지금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안전문제야 이 친구가 알아서 하겠지.’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앞자리에 앉은 나는 너무 피곤해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드렁드렁 코를 심하게 골며 자지 않았을까? 비몽사몽 하는 가운데서도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탄 택시는 아바나 시 외곽에 도착해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더니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왜 시내로 들어가지? 그냥 고속도로를 계속 타고 가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얼마간 가더니 ‘La Rapido’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서 기사가 차를 세운다. 그곳에는 여러 대의 차량들이 서 있었다. 나는 정비소에서 차량을 정비하거나 다른 차로 교체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젊은 기사가 내리더니 다른 차량 기사와 뭐라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와서는 차를 갈아타라고 말한다.

젊은 기사가 이 기사가 산타클라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 이 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순간 젊은 차량 기사는 아바나와 비날레스가 주무대여서 여기까지만 실어다 주고, 나머지는 아바나 동쪽에서 활동하는 다른 기사가 맡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를 소개시켜 준 마이클을 통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게 아니었다. 그 기사는 차가 고장이 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다. 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차량을 교체하는 이유를 정확히 묻지도 않고, 항의를 하거나 따지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당연히 그랬어야 할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절차도 없이 간단히 시키는 대로 짐을 다른 차에 옮겨 실었다. 하지만 젊은 기사가 자기에게 원래 계약한 금액인 160꾹을 전부 달라는 요구는 거절했다.

비날레스에서 아바나까지의 거리보다도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까지의 거리가 훨씬 먼 데, 그렇게는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일 새로운 기사가 자기가 돈을 안 받았으니 못 가겠다고 중간에 주저앉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80꾹을 젊은 기사에게 주고 나머지 80꾹은 트리니다드에 도착한 다음 새로운 기사에게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 아바나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더니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라고 길이 나쁜 것은 아니다.[사진제공-임영태]

 

▲ 저 멀리 공장에서 내뿜는 시꺼먼 매연이 공업도시 시엔푸에고스의 존재를 알리는 듯하다. [사진제공-임영태]

 

▲ 시엔푸에고스를 지나니 길이 아래위로 조금씩 굴곡지고 약간 휘어지기도 한다. [사진제공-임영태]

 

공업도시 시엔푸에고스를 지나다

새로운 기사는 약간 나이가 들었다. 젊은 친구는 영어가 약간이라도 됐는데 이 양반은 전혀 안 된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답답하다. 그래도 이 기사양반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떠들어댄다. 즐겁게, 그리고 재미있는 표정까지 지어가면서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앞자리 운전석 옆에 앉아서 상대를 해줘야 하는 나는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라틴아메리카에 여행을 오면서 간단한 스페인어 몇 마디도 안 배우고 온 나를 탓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뒷자리에 앉은 원장님이 몇 마디씩 알아듣고 대꾸를 해주어서 그런대로 유쾌하게 갈 수 있었다.

우리가 바꿔 탄 택시는 산타클라라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산타클라라 240km라고 돼 있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산타클라라까지 240km라면 거기서 남쪽 바닷가로 얼마간 더 내려가야 하는 트리니다드는 300km는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바나에서 산타클라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처음에는 왕복 8차선 길이었다. 그러다가 얼마간 달리니 어느새 왕복 6차선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 달리니 산타클라라 90km라고 적힌 표지판과 함께 인터체인지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바나에서부터 150킬로미터를 달린 셈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기사는 시엔푸에고스를 지나서 트리니다드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길은 구불구불하고 아래위로 굴곡이 있는 험한 길이라며 몸짓으로 설명해준다. 내가 그의 흉내를 따라하면서 웃는다. 앞으로 가게 될 길은 시골길이며 산길이라는 이야기였다.

택시는 시골길을 달렸지만 한동안은 평지가 계속됐다. 좌우로 사탕수수 농장이 보인다. 소들을 방목하고 있는 목장도 보인다. 한참을 달리니 시엔푸에고스가 나온다. 아마도 시엔푸에고스는 혁명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그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비행기 사고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겨놓았다. 시엔푸에고스는 멀리서 보아도 산업도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공중으로 퍼지고 있었다.(주1)

시엔푸에고스를 지나면서 보니까 곳곳에서 마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차량보다도 마차들이 중요한 운송수단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는 트리니다드와 산타클라라에서도 시내에서 중요한 운송수단이 되고 있는 마차를 많이 만났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쿠바의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쿠바는 에너지 위기 이후 농업에서도 트랙터 대신에 소를 이용하여 밭갈이를 애용하게 되었다.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고 친환경 농업, 소농 중심의 다품종 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우리가 탄 택시가 시엔푸에고스의 한 주유소에서 잠깐 멈춰 섰다. 기사가 화장실에 갔다 오란다. 이곳 역시 화장실에서 돈을 받고 있었다. 현지화폐 1쎄우페(CUP)를 받았다. 주유소는 휴게소 겸용이었다. 물과 음료수, 술, 몇 가지의 과자, 그리고 차량용품도 팔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야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이 더위에 야구를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야구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저쪽에서 출발한다며 빨리 오라고 소리를 친다.

▲ 쿠바의 행정구역은 15개 주와 1개의 특별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쿠바에서 방문한 도시는 비날레스, 아바나, 시엔푸에고스, 트리니다드, 산타클라라 등이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혁명박물관에서 만난 혁명 영웅 까밀로 시엔푸에고스. 그의 이름을 딴 도시 시엔푸에고스. [사진제공-임영태]

 

▲ 혁명박물관의 밀랍인형 체 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 [사진제공-임영태]

 

▲ 시엔푸에고스 거리(사진_위키백과 사전). [사진제공-임영태]


아름다운 고도 트리니다드

시엔푸에고스를 지나 다시 택시는 시골길을 달린다. 경치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다닌 길은 대부분 평지였으며 산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아바나에서 비날레스로 가면서 고갯길을 넘었고 산을 보기는 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험한 산은 아니었다. 구릉이나 우리네 뒷동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엔푸에고스를 지나서 트리니다드로 가면서 드디어 산을 보게 된다.

쿠바는 남동쪽 끝에 있는 가파른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과 그 주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평탄하거나 구릉이 있는 평야를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다닌 고속도로 주변에서는 산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물론 시에라 마에스트라 외에도 일부 바닷가 지역에 산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트리니다드로 가면서 쿠바에서 산다운 산을 처음으로 보았다.

택시가 휴게소를 출발하고 시골길을 한참 동안 달려가자 저 멀리서 산이 나타났다. 아마도 저 산을 넘어야 도시가 나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경치가 그만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넘으니 바로 도시가 나타나지 않고 바다가 나왔다. 바닷가를 한동안 달렸다. 우리가 바다를 보고 좋아 하니까 기사아저씨는 천천히 달리며 그걸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차창 밖으로 사진도 찍으라고 창문도 내려준다. 바닷물 빛깔이 여러 가지다. 남색, 푸른색, 초록색, 그리고 또 다른 색….

조금 더 나아가니 표지판에 트리니다드 16km라고 돼 있다. 드디어 저 멀리 트리니다드가 산 능선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트리니다드는 바로 해변이 아니라 해안에서 약간 들어간 고지대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바닷가로 얼마간 더 가면 앙꼰 해변(Playa Ancon)이 나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다. 스페인은 쿠바를 점령한 뒤 5개의 도시를 가장 먼저 건설했는데, 바라코아(Baracoa), 바야모(Bayamo), 트리니나드(Trinidad), 아바나(Habana), 까마구에이(Camaguey)가 그곳이다. 1514년에 건설된 트리니다드는 쿠바에서 3번째로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이곳은 주위 환경과 조건이 담배 공장과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하기에 좋았다. 그래서 스페인은 이곳에 많은 투자를 했고, 스페인 식민지 시대 쿠바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오랫동안 번성했다.
그러나 1868년 1차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트리니다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독립운동이 벌어지자 스페인은 군대를 파견했고, 스페인 출신의 농장주들은 많은 자금을 대며 독립운동 진압에 앞장섰다. 1차 독립전쟁 이후 트리니다드에 살던 스페인 농장주들은 모두 본국으로 도망갔고, 도시는 독립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트리니다드의 영화도 모두 사라졌다. 이후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발전 대상지역에서 밀려나게 됐다.(주2)

역설적으로 이곳은 발전이 정체되면서 옛 스페인 양식의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게 됐다. 그 바람에 도시 전체가 쿠바를 대표하는 옛 도시로 남게 됐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번영은 없지만, 옛 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로운 관광도시로 많은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1988년 도시근교의 로스 잉헤니오스 계곡과 함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러한 사연을 지닌 쿠바의 고도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트리니다드는 특히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여행안내서에는 ‘고도의 면모를 지닌 아름다운 도시’라고 소개돼 있다. 사진작가들도 이곳의 작품 사진을 많이 찍어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루밖에 있지 않았고, 또 사연도 있고 해서 그 아름다운 면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언뜻 본 바로는 명성만큼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겪은 일들과도 관계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트리니다드에서 그다지 즐겁지 않은 추억을 경험했던 것이다.

▲ 시엔푸에고스를 지나 트리니다드를 가는 도중에 만난 해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다리를 지나면서 본 해변가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저 멀리 트리니다드가 보인다.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를 앞둔 주변 시골 풍경. [사진제공-임영태]

 

▲ 트리니다드에 들어오다.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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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시엔푸에고스’는 쿠바의 중앙 남쪽에 위치해 있다. 남쪽은 카리브해, 북쪽은 비야 클라라(Villa Clara) 주와 인접해 있다. 또 서쪽은 마탄사스, 동쪽은 산끄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와 경계를 이룬다. 이 도시는 ‘쿠바의 남쪽 진주’라 불리며, ‘아바나’로부터는 245km, ‘산티아고 데 쿠바’(쿠바의 끝)로부터는 658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에는 쿠바에서 두 번째로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구가 있다. 여러 가지 공업이 발전된 도시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2) 길벗투어, “[쿠바 브리가다 기획④] 쿠바 제대로 알기⑵: 마탄사스, 트리니다드, 비날레스, 그란마”, <민중의소리>, 2013.11.19(인터넷검색:2015.8.1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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