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전경. 비날레스는 독특한 지형과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사진제공-임영태]

아바나에서 비날레스로 가다

오전 9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를 했다. 전날과 동일한 메뉴였지만 조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식사였다. 한동안 우리는 이 아침식사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 오전 비날레스(Vinales)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식사 후 우리는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했다. 11시경 우리를 비날레스로 데려다 줄 택시가 도착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0시가 되자 갈 택시가 벌써 도착했다. 갑자기 우리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특별히 챙길 짐이 많지 않아서 금방 정리가 됐다.

비날레스는 아바나에서 서북쪽으로 약 140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비아술 버스로 이동할 경우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도로가 우리처럼 잘 정비돼 있지 않은데다가 비아술 버스의 경우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80km 이상을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날레스는 고속도를 타고 가다가 좁은 지방도로를 따라 산길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날레스는 생태도시로도 유명하며 ‘쿠바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회암 지대가 솟아서 만들어진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양이 장관을 이루며, ‘피날 델 리오(Pinal del Rio)’주의 ‘오르가노스(Organos)’산맥 쪽에 위치해 있다.

강을 뜻하는 리오(Rio)라는 지명과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날레스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14개의 ‘프로빈시아(provincial)’가 합쳐져 하나의 비날레스 ‘무니시피오(municipio)’가 되고 있는데, 동쪽은 ‘라 팔마(La palma)와 ‘남 콘솔라시온(Consolacion del Sur)’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마따암브레 광산(Minas de Matahambre)’무니시피오와 인접해 있다. 또 북쪽은 ‘멕시코 만’, 플로리다 해협과 마주보고 있다.

비날레스는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즈음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은 ‘국가기념물’로 지정돼 오늘날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비날레스 계곡은 ‘쿠바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광객들에게 알려주는 매력적인 장소가 되고 있는데, 산과 계곡 사이에 펼쳐져 있는 넓은 경작지가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는 곳이다.

비날레스는 일찍부터 과일과 가축사료가 되는 건초, 쿠바 시가의 원료가 되는 타바코의 경작지로 유명했다. 쿠바에서는 시가(담배)를 크게 ‘아바노스(habanos)’라고 표현하는데 특히 이곳은 ‘아바노스의 세계’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시가의 품질이나 경작지 규모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주1)

비날레스의 유명한 관광장소로는 일명 ‘두 명의 자매(Dos Hermanas)’라고도 불리는 벽화가 있다. 모고테라 불리는 거대한 암석 절벽 위에 길에 180m, 높이 120m의 대형채색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1960년대 초 이곳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도록 결정하면서 시작되었고, 화가 레오비힐드 곤잘레스 모릴요의 지휘로 인근 농부들을 동원해 5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이 지역의 형성과정과 인간의 혁명적인 진화 과정을 상징하는 달팽이, 해수면, 공룡과 사람의 모습 등을 그려놓았다.

또 천연동굴이 많은 비날레스 계곡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도망쳐온 흑인노예들이 숨어 지내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그 중 ‘산 미구엘 동굴(Cueva de San Miguel)이나 ‘인디오 동굴(Cueva de Indio)’이 특히 유명하다. 마치 공룡이 산을 파먹은 듯한 절벽 아래에 커다란 산 미구엘 동굴이 있고, 그곳에 당시 살던 노예들의 거주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이 동굴 안에는 당시 숨어살던 도망노예들의 조그만 무덤이 있는데, 도망자들은 스페인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면서도 자신은 무덤은 십자가로 표시해 놓았다.

대표적인 비날레스의 동굴 중 하나인 인디오 동굴 안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 강을 따라 작은 보트를 타고 동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이 동굴 안에는 곳곳에 자연이 빚은 조각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주며, 동굴 출구 쪽에는 이곳을 관광하는 거의 모든 투어의 점심식사를 담당하는 큰 레스토랑이 있어 유명하다. 이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코에 맞으면 영원히 행운이 함께 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우리는 당연히 비날레스에 가면 이처럼 널리 알려진 벽화와 동굴을 당연히 구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우리는 비날레스에서 그걸 구경하지 못했다. 그 사정은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 쿠바 지도-비날레스의 위치.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의 명물 중 하나인 대형 벽화.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의 명소인 인디오 동굴.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의 명소인 인디오 동굴. 바깥에서 본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는 쿠바 시가의 원료가 되는 잎담배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한 야외 식당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자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진제공-임영태]


비날레스로 가면서 만난 것들

비날레스까지는 택시로 2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우리는 택시비로 100꾹을 지불하기로 예약했다.(주2) 택시를 소개해 준 것은 마이클이었다. 우리는 비날레스의 숙소도 예약을 해놓았는데, 그 또한 마이클의 절친(마이클의 절친은 쿠바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의 소개를 받기로 한 것이었다. 아무튼 아무런 예약이나 준비도 없이 쿠바에 온 우리로서는 마이클의 주선으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렸다. 우리는 며칠간 묵었던 숙소 주인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마이클의 가족들과도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비날레스와 트리니다드를 비롯, 쿠바의 다른 도시들을 구경한 뒤 다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무거운 짐은 이곳에 맡겨놓기로 했다. 나는 LA에 있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간 책들과 멕시코에서 산 박물관도록 등을 내려놓았다.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10시 30분 우리를 태운 택시가 출발했다. 아바나 외곽으로 나가자 고속도로가 나타났다.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는 그냥 평지에 곧게 쭉 뻗어 있었으나 도로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포장은 중간중간 부서진 곳이 많았다. 우리는 비날레스로 가는 도중 몇 군데서 도로포장 공사하는 현장을 만났다. 하지만 고속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어서 사고 위험성은 거의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속도 제한 표지판을 몇 번 보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었다. 단속하는 교통경찰도 없었고, 감시카메라는 더더구나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탄 택시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질주했다. 기사는 젊은 친구였다. 나이를 물으니 스물두 살이란다. 군대에 가 있는 둘째가 우리 나이로 22세, 이 대표 아들이 23세니 그 동년배인 셈이다. 하지만 기사청년은 그 아이들과 비교하면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한다.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은 되었는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날레스로 가는 도중 우리는 고속도로 곳곳에서 히치하이킹을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바에서는 지나가는 차가 비었으면 사람을 태워주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쿠바에 에너지 위기 상황이 도래하면서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쿠바인들이 장거리 이동 시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비용이 비싸다. 관광객들을 위한 장거리 버스로 비아술이라는 고속버스가 있는데, 10꾹, 20꾹씩 하는 비용을 내고 타고 다닐 수 있는 쿠바인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트럭이나 승용차에 함께 타고는 방법으로 이동 수단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카풀과 하치하이킹 제도는 장거리 이동뿐만 아니라 출퇴근 시간에도 통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아바나를 제외한 여타 도시에서 출퇴근 시에 승용차를 함께 나누어 타고 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그들은 카풀이 아니면 버스, 또는 트럭이나 트랙터를 개조한 대형운반차량을 타고 출근하고 있었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차량 통행량은 많지가 않았다. 비아술 버스가 가끔 보였고, 그 외는 승용차가 대부분이었다. 화물 트럭이나 탑차(냉동차인지는 알 수 없지만)도 가끔 보였다. 몇 번 만난 대형트럭은 대부분 건축자재를 싣고 가거나 물건을 수송하고 있었다. 식료품이나 농산물을 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들도 가끔씩 보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물동량이 많지 않고, 운반수단이 열악하다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생산능력뿐만 아니라 산업자재와 제품, 농산물을 제 시간에 운반할 수 있는 수송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쿠바는 1990년대 중반 한때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었는데, 그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부족한 수송능력이었다. 농촌에서 과일이나 식품을 생산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싱싱한 상태로 도시와 전국에 보급하지 않으면 금방 썩어버린다. 에너지 문제 때문에 운송능력이 저하되면서 쿠바의 식량위기는 더욱 가중되었던 것.

우리가 탄 차량은 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린 뒤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라고 해야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엮어 만든 작은 건물이 달랑 하나 있는 정도였다. 그 안에는 테이블 두 개에 의자가 몇 개씩 놓여 있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입구에서 돈을 받고 있었다. 국영일 텐데도 돈을 받고 있어서 거슬렀다. 쿠바에서는 대부분 화장실에서 돈을 받았는데, 줄 때도 있고 안주고 적당히 알아서 넘어간 곳도 있었다. 화장실에는 소변을 볼 곳도 따로 없고 뚜껑도 없는 좌변기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물이 안 나왔다. 물 내리는 손잡이가 고장 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예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구분이 잘 안 되었다.

휴게소에는 먹을 것이라고 해봐야 음료수, 술, 커피밖에 없었다. 과자는 딱 한 종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뻥튀기 비슷한 느낌이 드는 비스켓 종류였다. 휴게소에는 비아술 버스와 몇 대의 승용차, 택시가 서 있었다. 비아술 버스는 외형상으로 보아서는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못지않게 깨끗했다. 신형버스는 모두 중국산 제품이다. 시내에서 만난 중고품 버스는 세계 각국 제품이 다 보였지만 신형버스는 어김없이 중국산이었다. 벌써 중국이 자동차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바나에서 비날레스 가는 길.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차가 거의 없다. [사진제공-임영태]

 

▲ 비날레스 가는 길. 휴게소 건물이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사진제공-임영태]

 

▲ 휴게소 매점 모습.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가 비날레스까지 타고 간 택시. 겉모양은 새차처럼 깨끗하나 실제로는 오래돼 노후했다. [사진제공-임영태]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날레스 절경

그런데 나는 휴게소에서부터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말짱했는데, 차가 휴게소에 들어설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속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 멀미를 하나? 생각해 보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차멀미 같은 건 안 하기 때문이다. 택시의 에어컨도 빵빵하게 잘 나오고 있어서 더위를 먹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게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징조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잠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금방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 

휴게소에서 잠깐 쉰 다음 택시는 다시 1시간가량 더 달렸다.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들어서 얼마간 더 갔다. 얼마간 시골길을 달린 뒤 택시는 고개를 넘어 약간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갔다. 산길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험하거나 위험한 느낌이 드는 길이 아니었다. 다만 평지가 아니라 약간 높은 지대를 올라가서 산골오지로 가고 있다는 정도의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목적지 마을의 까사(casa)에 도착하기 전 비날레스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는 비날레스 계곡을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시내 남서쪽에 있는 호텔 하스미네스의 주차장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원래 작은 술집이 있었는데 1959년 카스트로 사령관이 이곳을 본 후 호텔과 전망대를 짓도록 결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품 판매점과 작은 까페테리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진도 찍고, 비날레스의 자연경관도 구경하고, 기념품도 감상했다. 물도 한 잔 마셨다. 이곳 기념품점에도 온통 체 게바라가 판을 치고 있다. 책들도 팔고 있었는데 역시 체 게바라가 대세다. 피델도 보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비날레스를 홍보하는 책이나 그림에서 본 장면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경치가 멋지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시골동네 같은 느낌이 든다. 내게는 우리네 시골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국적이지만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시골사람이어서 그런가?

전망대의 그 좋은 경치를 보고 있는 데도 몸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는다. 역시 머리가 빙빙 돌고 머리가 띵하다. 속도 계속 니글거린다. 아니 왜 이렇지? 하지만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아직 눈치를 못 챈다.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전망대를 구경한 뒤 10여분을 더 달려 우리가 묵을 까사에 도착했다. 비날레스 시가 중심지에서 한참을 더 들어간 시골 촌락마을이다. 마을 전체에 문화주택처럼 비슷비슷해 보이는  집들이 나란히 열을 지어 서 있다. 우리 일행은 그 가운데서 각각 다른 집에 나누어 들었다. 한 집에 방을 두 개씩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손질해 방 한 개를 민박으로 내놓고 있었다.

우리가 숙박한 그 마을 집 구조는 대부분 비슷했다. 대체로 방 두 개, 거실, 부엌 그렇게 돼 있었다. 그 가운데 방 하나를 빌려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든 집은 식구가 많아서 거실을 사용하기 힘들었지만, 교수님과 원장님이 든 다른 집은 식구가 단출해서 그곳을 주로 함께 썼다. 집 주인 후안은 초등학생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어서 홀아비인가 했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나머지 가족은 딴 곳에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가 떠나는 일요일 아침 다른 가족들이 온다며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전망대 휴게소의 기념품 판매점. 역시 체 게바라가 압도한다. [사진제공-임영태]

 

▲ 전망대 휴게소의 책 판매대. 체 게바라가 대부분이고 피델이 일부 차지하고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전망대 휴게소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전망대 휴게소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전망대 휴게소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전망대 휴게소에서 바라본 비날레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야외 식당에서 먹은 자연식 성찬

우리는 그곳에서 마이클이 소개해준 그의 ‘베프(베트스프렌드)’를 만났다. 마이클의 베프는 놀랍게도 수다쟁이 아줌마였다. 그녀는 영어도 되고, 수다도 재미있게 떨었다. 아마도 그 마을의 마이클쯤 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그 아줌마의 통역으로 의사소통도 큰 문제없이 해결했다. 또한 그녀의 소개로 다음날 오전 ‘말타기 체험(Riding Horse)’과 비날레스 택시투어도 예약을 했다.

택시투어는 사정이 생겨서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서도 관광객들을 연결시켜 주는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에이전트는 아바나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런 식이라면 쿠바처럼 크지 않는 나라에서는 인맥으로 연결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게 가동되고 있었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공식적인 사무실을 갖춘 여행사들이 이들의 업무를 상당부분 가로채 가겠지만 얼마간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들 중 일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를 잡은 뒤 점심식사를 하러 나섰다. 운전기사 친구에게 맛있는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숙소에서 차로 한 20여분 달려 도착한 식당은 위치가 전망대 못지않게 좋다. 우리의 가든 같은 곳으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이 좋았다. 식당 주변, 바로 앞에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우리 외에도 다른 일행들이 몇 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는 뷔페식이었다. 가격은 1인당 10꾹이다. 비싸지만 음식이 대단히 풍성하다. 쿠바에 온 후 만난 가장 풍성한 식탁이다. 음식은 생태식으로 다양하고 푸짐하다. 과일, 열대 채소, 쌀밥, 팥죽, 돼지고기, 소고기, 그리고 닭고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맛은 생각보다 못하다. 전체적으로 너무 심심하고 닝닝한 맛이었다. 맛있는 요리집이 아니라 풍성한 자연식단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거의 식사를 못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대부분 컨디션이 별로인 듯하다. 나는 계속 속이 안 좋았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나는 음식의 양념이 안 맞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먹는다. 닭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었다. 채소와 과일도 먹었다. 가급적 컨디션이 안 좋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교수님도, 원장님도 거의 식사를 못한다. 이 대표도 음식맛이 별로라면서 제대로 못 먹는다. 아마도 음식맛이 아니라 이미 입맛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걸 아직 몰랐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만 잘 먹었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속으로는 견디기 힘든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음식들이 너무 아깝다. 사실 입에 착 감기는 그런 맛은 아니어도 유기농의 자연식품으로 먹을 만한 음식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걸 제대로 못 먹었으니 말이다.

▲ 우리의 비날레스 숙소에 있는 흔들의자. 비날레스 가정에는 집집마다 이 같은 흔들의자가 몇 개씩 있다. [사진제공-임영태]

 

▲ 우리의 비날레스 숙소 모습.[사진제공-임영태]

 

▲ 우리의 비날레스 마을 모습.[사진제공-임영태]

 

▲ 점심 식사를 한 야외 식당.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에서 맛본 자연식. 이외에 돼지고기와 닭고기, 소고기도 있는 푸짐한 식단이었다. [사진제공-임영태]

 

▲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사진제공-임영태]

 

▲ 식당에 다양한 올드카들이 주차돼 있다. 아마 관광객을 싣고 온 차들인 모양이다.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 주위에서 본 비날레스의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 주위에서 본 비날레스의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 주위에서 본 비날레스의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 주위에서 본 비날레스의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 식당 주위에서 본 비날레스의 경관. [사진제공-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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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길벗투어, [쿠바 브리가다 기획④] 쿠바 제대로 알기⑵ 마탄사스, 트리니다드, 비냘레스, 그란마, <민중의소리> , 2013.11.20 (http://www.vop.co.kr/A00000700263.html) 참고

2) 보통 비냘레스까지 가는 비아술은 1인당 12꾹, 택시는 15꾹 정도의 가격이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택시비를 약간 비싸게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다른 여행일정과 숙소예약, 택시예약에 대한 편의를 감안하면 약간의 팁이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서 비아술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데도 택시비가 만만치 않다. 아마도 10꾹 정도는 들어야 할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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