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측 선수단을 이끌고 평양에서 열린 제2차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과 17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포화 속에 탄생한 평화의 꽃’.
지난달 16일부터 24일까지 평양 능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제2차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를 일컬어 나온 표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수단의 입국을 이틀 앞둔 지난달 14일 남북은 열흘 전 파주시 군사분계선(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 사건을 두고 서해지구 군 통신선으로 ‘군사적 결판을 내보자’, ‘가차없이 응징할 것’이라며 일촉즉발의 충돌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6일 남측 선수단을 포함해 165명의 방북단을 이끌고 평양에 들어간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그 와중에도 남북고위당국자접촉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1일부터 극적 타결에 이른 24일까지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8개 참가팀을 2개조로 나누어 조별예선을 거쳐 순위결정전과 준결승, 결승전까지 예정된 경기를 치러야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몸은 경기장 주석단에 앉아 있지만 눈과 귀는 온통 군사분계선에 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비상연락망을 통해 한국 정부와 통화하면서 북측으로부터 신변안전 담보를 받고 여차하면 조기철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전갈을 받고 북측과 긴박한 협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회를 계속하겠느냐는 의사를 북측과도 수시로 상의하고 확인하면서 대회는 진행됐다.

김경성 이사장은 평양 대회를 마친 후 지난 14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마련한 정례 정책포럼에 참석해 ‘체육교류로 열어가는 남북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긴박한 당시의 상황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이사장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연이어 대규모 방남과 방북을 성사시킨 불굴의 의지와 비결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1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사)남북체육교류협회에서 김 이사장을 만나 며칠 전 포럼에서 못 다한 뒷이야기를 더 들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는 듯 ‘포화 속에 탄생한 평화의 꽃’이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자신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성사시킨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를 정의했다.

이번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에서 열렸던 제1차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 당시에도 북측 선수들이 입국하기 20일 전에 북에서 대북전단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이에 다시 남측이 대응사격을 하는 등 정전상태인 한반도의 긴장이 유감없이 펼쳐진 상황이었다.

▲ 김경성 이사장은 지난 14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정책포럼에서 '체육교류로 열어가는 남북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지난 10년간 자신의 경험을 담백하게 소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대회 성사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쉽지 않은 긴장 상황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비결이 있었다면?

■ 김경성 이사장 : 지난 8월 16일 남측 선수·임원만 84명 방북했는데, 이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대규모 방북사례가 된다. 2회 평양대회는 직전까지 남북이 비보도 보안을 지키면서 철저한 준비작업을 거쳐 8월 15일에야 첫 보도를 했다.

8월 14일 지뢰폭발 남북 군사상황이 시작됐는데, 남측 당국에서 16일 방북을 승인했다. 다른 사업 같았으면 못 가게 했을 것이다. 17일부터 한미 을지훈련기간이 되면서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국민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작년 1회 대회 때 유사한 군사긴장 상황을 겪고도 북에서 내려오면서 이미 대회의 체질이 강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회 연천대회도 군사적 충돌 상황속에서 잘 치러졌다. 그런 군사상황에서도 북이 내려왔다는 것은 그동안 남북체육교류협회가 북과 지속적으로 해 왔던 평화적 사업의 성과가 이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때도 북측 4.25체육단이 우승했는데 4번의 만찬에 모두 참가했다. 우리 측 남경필 도지사를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 기업인 등 700여명이 북측 선수 및 임원들과 대화의 기회를 가졌다.

작년 연천 대회 이전에 남북 간에 대화가 거의 없었는데, 결국 축구대회를 하다보니까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보면 남북대화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11월 국내에서 3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 개최

□ 평양대회 이후 연속적으로 구상,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15세미만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작년 1회 대회 때부터 북측과 남북체육교류협회가 장기사업으로 합의한 것이다. 기본 틀은 봄에는 평양, 가을에는 남측 도시, 겨울에는 중국이나 유럽, 남미 등 따뜻한 나라에서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이번 2회 평양대회를 봄에 하지 못한 이유는 남북관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것이고 3회 대회는 가을에 남쪽으로 내려올 차례이다.

김 이사장은 14일 포럼에서도 현실적 일정을 고려할 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나는 11월쯤 경기·강원도에서 3회 대회를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회 장소는 여러 지역이 경합하는 만큼 특정하지는 말자고 덧붙였다.

□ 무리한 일정은 아니라고 본다는 건가.

■ 제가 추진을 안 하면 몰라도 추진을 하면 가능할 것이다. 다만 3회 대회가 2회 평양대회 일정과 간격이 너무 짧고 내년 1월 겨울대회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꼭 해야 하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 지난 14~15일 북에서 국가우주개발국, 원자력위원회 등을 앞세워 위성발사와 핵실험 의지를 밝힌 상황인데 대회 진행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나?

■ 남북 간에 실제로 포탄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과 견주어서 위성 발사 등 의사표시를 한 것이 더 큰 긴장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북에서 인공위성을 쐈으니 유엔이 나서서 국제대회를 하지 말라고 제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No’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산가족 상봉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인데 과연 평화적인 경기까지 손을 댈 것인지는 생각할 여지가 있다.

북측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이미 가장 기분 나쁠 수 있는 대북 삐라를 뿌린 연천지역에도 와서 경기를 치르지 않았나.

▲ 8.24.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제2회국제유소년축구대회 우승팀인 북측 4.25축구단에 김경성 이사장이 우승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제공-남북체육교류협회]

□ 유소년축구대회 북측 파트너십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북측 파트너는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위원회인 4.25체육단인데 군 소속이라는 특성상 남측 민간과 연계해주는 민족화해협력위원회(민화협)이라는 창구가 필요한 것이다. 북측 민화협은 국제대회와는 직접 상관없고 창구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또 4.25체육단이 국제축구대회를 주최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니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체육성, 조선축구협회 등을 거쳐 평양국제축구학교로 대회 주최가 조정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는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와 평양국제축구학교(교장 현철윤)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경기도, 강원도, 연천군이 후원하고 있다.

□ 유소년축구대회의 참가범위를 더 넓히거나 확대해야 하지 않나.

■ 그렇다. 작년 1회 대회 때는 남북을 포함해서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이 참가했었다. 이번엔 거기에 남미의 브라질과 유럽의 크로아티아가 추가로 참가했다.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FIFA대회는 17세 대회부터 시작되고 그 미만 연령대의 대회는 없다. 또 15세 유소년대회에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대회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대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

또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 경기를 성사시켰던 과정을 돌이켜 보면 앞으로도 남북 당국이 이 대회를 관계 개선 등의 평화적 사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제2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가 진행된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 전경. [자료사진-통일뉴스]

□ 이번에 대회를 치룬 5월1일경기장은 북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인 ‘아리랑’공연으로 유명한 곳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지난해 10월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준공한 이후 이번 대회가 5월1일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대회였다고 들었다.

5.1경기장에서 '아리랑' 대신 월드컵 예선전을

■ 과거 5월1일경기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월드컵 지역 예선도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를 수밖에 없었다. 5월1일경기장은 15만 명의 관중이 들어가는 거의 세계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로 짓다시피 개건을 한 후 북은 특히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월드컵 예선 경기를 이곳에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봤지만 15만 명의 관객이 뿜어내는 엄청난 축구열기를 세계에 송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은 스포츠를 통해서 내부결속과 함께 북의 위상을 키우고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체육강국의 메시지를 통해 내부결속도 시키지만 국제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리랑은 더 이상 계획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북에서 내부결속 수단으로 봄부터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아리랑’을 준비하면서 여름, 가을까지 집단체조를 했는데, 지금은 스포츠를 주요 매개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 축제가 가졌던 효과나 의의가 스포츠로 전환된 것이라고나 할까.

또 최근에는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오는 엘리트 체육 외에도 생활 스포츠를 강화하고 있지 않나. 이는 국민건강에 대한 홍보와 함께 개선되고 개방된 북한 사회의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는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월1일경기장은 다목적 체육경기장으로 새로 지어졌다. 북측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준공한 5월1일경기장은 15만석의 관람석을 가진 축구장과 육상주로, 예비 운동실, 선수침실, 감독실, 심판원실, 검사등록실 등이 국제기준에 맞게 갖춰졌으며, 수영장, 탁구장, 미니골프장, 피로회복실을 비롯한 체육 및 문화 후생시설과 서비스 시설이 최상의 수준에서 완비되어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는 물론 관람객의 편의도 충분히 보장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경기장에서는 축구경기 외에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종목들과 탁구, 수영 경기 등이 열리게 된다.

▲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된 제2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 모습. [사진제공-남북체육교류협회]

양궁·마라톤·격투기도 남북교류 유력 종목

□ 축구 외에 다른 경기 종목들에 대한 협조와 교류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2년 전부터 양궁장비를 꾸준히 지원해 왔다. 양궁장비는 1세트에 보통 1만 달러 정도 된다. 어지간한 초정밀 총포보다 비싼 고가 장비인데, 지금까지 정부 승인을 받고 20세트 이상 보내줬다.

지난해 5월 중국 강서성에서 남북 양궁대회를 열었는데, 장비 활용과 기술 교류뿐만 아니라 선수지도도 진행했다. 북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감독들을 인정한다. 또 실제로 성적이 좋아지니까 북측도 양궁교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바라고 있다.

□ 남측 감독들이 평양에 가서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 양궁은 특히 단기적으로 열흘 정도만 지도해도 효과가 크다. 장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 장비에 선수 체형별로 맞춤형으로 활용하는 방법, 야외경기에서 바람에 적응하는 방법 등을 ‘원포인트’ 지도방법만 가져도 상당히 효과가 있다.

또 북측 선수들이 집중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기술전수만 이루어져도 성적이 많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그밖에 어떤 경기종목이 남북 교류에 유력하다고 볼 수 있나.

■ 남북이 함께 교류하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종목으로 축구와 양궁, 마라톤을 꼽고 싶다.

축구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종목이고 양궁은 우리 민족이 잘하는 종목이며, 마라톤은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의 모습을 상징하는 종목이라고 생각한다.

또 북한이 전통적으로 격투기가 강하다. 복싱, 레슬링, 유도, 특히 태권도 등. 그런데 북은 격투기에 강하면서도 개정된 룰 등에 대한 숙지가 덜 되어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반면 남측은 약해지고 있다. 사회체육 저변이 확대되면 격투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격투기 종목에서는 기술이나 시설, 인프라, 용품 등 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전하지 말고 성과내라'

□ 사업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업수지는 어떻다고 할 수 있나.

■ 수익사업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원사업으로 한 것이니까 대차대조표를 따지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개인재산은 많이 썼다.

살면서 진화된다고 할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남북교류 사업을 하면서 이 분야로 진화되면서 행복도 찾아지는 것 같다. 물론 돈을 벌고 싶지만 남북이 같이 버는 사업을 만들면서 벌고 싶다.

□ 남북관계가 곡절이 많았는데 흔들리지 않고 대회를 지켜온 비결을 이야기해 달라.

■ 2006~2008년까지는 이 대회가 남북을 오가며 진행되던 정기교류전이었다. 남측 선수들을 매년 봄·가을에 6번 평양에 데리고 갔고 같은 기간에 북 선수들은 남측에 4번을 방문했다.

3년간 남북 선수들이 남북을 10회 왕래했던 거다.

이렇게 정착되던 남북유소년축구대회 정기교류전이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남북에서 할 수 없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다 중단했을 때 이 대회를 중국으로 가져가서 매년 겨울에 남북 선수들이 만나서 합동훈련도 경기도 했다. 2014년 겨울까지 중국에서 하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 스포츠 교류는 허용을 했기 때문에 작년에 연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작년에 포탄이 날아다니던 연천으로 북측 선수들이 내려 온 것이다. 이게 기본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평양공단을 개발하다가 5.24로 막혔을 때 그 기반을 단둥으로 옮겨서 축구화를 만드는 아리스포츠공장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니 북측과 두터운 신뢰가 만들어진 것 같다.

김 이사장은 지난 14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정책 포럼에서도 “통일사업은 일관되고 지속적인 사업이어야 한다”며 조급하게 선전하려 하지 말고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지난 8월 뜨거웠던 평양에서 9박10일을 함께 한 관계자들과 만찬장에서 ‘홀로아리랑’의 가사를 읊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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