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6월, 20여일간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네 명. 70대 초반의 전직 교수, 60대 초반의 현직 내과의 원장, 50대 후반의 인터넷 신문 대표, 그리고 50대 후반의 출판기획자인 필자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앞서 변화하기 전의 쿠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한 멕시코 고대문명 유적과 ‘멕시코 혁명’ 후예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멕시코와 쿠바 여행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쓸 생각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 멕시코 칸쿤 해변 풍경. [사진-임영태]

칸쿤 해변을 구경하다

5월 16일, 화요일이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째다. 아니 시차와 날짜 변경선으로 하루 차이가 나니까 실제로는 8일째다. 오늘은 멕시코를 떠나 쿠바로 가는 날이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우리에게 쿠바는 오랫동안 금단의 땅이었다. 사회주의, 아니 공산주의 국가 쿠바를 방문하는 것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를 방문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쿠바는 남한과 수교하지 않은 친북한 국가이다. 그런 점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우리는 아침 6시경에 일어났다. 아침을 준비하고 짐을 챙겼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서 숙박소에 두었다. 9시가 조금 넘어서 간단한 가방 하나씩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칸쿤 해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와서 세계적인 절경으로 명성이 자자한 그 해변을 보지 않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다. 9시 30분, 칸쿤 해변 유원지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R-5번이었다. 전날 숙소 주인에게 물어서 그곳 가는 버스 번호를 알아두었다.

버스는 만원이었다. 냉방도 안 되고 사람도 많아서 더웠다. 온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창문을 열어 놓아서 가끔씩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 일행이 버스에 오르자 한 멕시코 청년이 앉았던 좌석에서 일어나 교수님께 자리를 양보한다.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눈매가 무척 매력적인 아름다운 청년이다. 아마도 나이는 스물두세 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그 청년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전방 철책선(GOP)에 배치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버스는 한동안 시내를 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버스 안은 한산해졌다. 버스는 그 뒤에도 해변 호텔존을 한동안 달렸다.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그림  은 풍경이 펼쳐진다. 곳곳이 명승지다. 눈을 즐겁게 만들고 가슴을 뛰게 하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차는 계속 달렸다. 40분 정도 달려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름 높은 칸쿤 해변가에 다달았다. 우리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순간 버스에서 내렸다. 더 이상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감각적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리고 보니 정확히 우리가 내려야 할 곳에 내렸다. 호텔존과 약간 떨어진 모래사장이었다. 해변 모래사장에는 곳곳에 야자수로 지붕을 만들어 놓은 그늘막이 있어서 사람들이 쉬기에 적당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수기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 칸쿤 유원지 가는 길-버스 안에서. [사진-임영태]

 

▲ 칸쿤 유원지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사진-임영태]

 

▲ 칸쿤 호텔존. [사진-임영태]

 

▲ 버스에서 내려 바라다 본 칸쿤 해변. [사진-임영태]


칸쿤에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다

버스에서 내린 뒤 도로가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색, 푸른색, 옥색의 물빛이 빛나는 카리브해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수평선이 바로 보였다. 이 대표가 우리나라 수평선보다 짧아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별로 그런 느낌이 안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 친구 어머님 문상 때문에 제주도에 갔다가 바다를 잠깐 보았을 때 그 생각이 언뜻 들었다.

바다에서는 연신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두 쌍이 해변가에서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하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추측컨대 일본인으로 여겨지는 한 팀과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까지 동반한 흑인가족도 사진촬영에 열심이다. 일본팀은 신혼여행 온 게 분명해 보였지만 흑인가족팀은 약간 모호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진사까지 동원하고 예복까지 입은 것으로 봐서는 신혼여행이나 그와 비슷한 행사일 것으로 짐작됐다. 혹시 재혼인가? 아니면 아이들은 낳고 뒤늦게 결혼식을 올린 것인가?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 답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바닷가로 내려갔다. 카리브해의 파도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든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동해보다 물빛이 더 푸르고 맑지는 않지만 파도는 동해만큼 세차다. 해안가가 완만해서 어찌 보면 동해 파도보다 더 거세게 몰아친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풍광이 뛰어나다. 말 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 칸쿤의 명성이 헛되지 않구나 싶다.

나는 지금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서 익히 보아온 그 멋진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진을 찍고 파도를 향해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다. 모래가 너무 부드럽고 아름답다. 몇 년 전 이곳을 강타한 허리케인의 영향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인터넷 자료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허리케인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이렇게 고운 모래였을까?

칸쿤의 바닷가에 서니 먼 이국땅 칸쿤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 농민이 생각났다. 2003년 9월 10일,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 전 회장 이경해 씨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 등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칸쿤에서 이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 할복자살했다. 칸쿤의 이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호텔에서는 농산물의 자유거래를 위한 WTO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었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농민들과 진보세력은 거기에 강력히 반대하며 싸웠다.

한국 농민 이경해 씨도 이 시위대열에 참석해 격렬하게 싸우던 중 경찰이 설치한 3미터 높이의 철조망 바리케이트 위에 올라가 ‘WTO가 농민을 죽인다!’는 항의구호를 외치며 뛰어내려 할복자살했다. 그는 농업시장의 전면개방을 반대하며 싸우다 이곳 칸쿤에서 가슴 아프게 생을 마감했다.

우리들은 생각한다. 우리들은 바란다. 죽기보다는 죽을 각오로 싸우기를. 싸우다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름다운 칸쿤의 해변 모습을 사진으로 처음 본 것도 그때였다. 언론에서 이 비극의 현장을 대비시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호텔존이 위치한 그림 같은 칸쿤 해변 모습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언젠가 저 해변에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바다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한편에서는 이 바닷가 호텔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농민들의 삶을 주무르는 협상을 진행하고, 한편에서는 농민들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각국 각료들의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그때의 일을.

역사는 역사대로 의미가 있고 기억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여행객은 몫은 그것만이 아니다. 또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사진찍기, 바라보기, 생각하기, 느끼며 감상하기. 여행객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 쿠바로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아쉽지만 바다의 그 풍광만 내 마음에 남겨두고 떠나기로 했다.

11시 전후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12시 30분 공항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쿠바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쿠바 항공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쿠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비자 신청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쿠바 정부에서 내어주는 비자를 대신한 서류가 필요하다. 캐나다에서 갈 때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나눠주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인해 보아야 했다. 

▲ 칸쿤 해변 풍광. 백사장이 길게 있다. [사진-임영태]

 

▲ 해변에 나와 즐기는 관광객들. [사진-임영태]

 

▲ 해변가의 연인. [사진-임영태]

 

▲ 해변에서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사진-임영태]

 

▲ 카리브해의 파도. [사진-임영태]

 

▲ 카리브해에 몸을 담근 관광객들. [사진-임영태]

 

▲ 칸쿤 해변에서 만난 호텔. [사진-임영태]

 

▲ 칸쿤 해변에서 만난 호텔. [사진-임영태]


쿠바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쿠바 항공사 쪽으로 가고 있는데 한 남자가 ‘쿠바에 가느냐’고 묻는다. 항공사 직원은 아닌 듯하고 어딘가 쿠바 정부에서 파견 나온 관리인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듯해도 어딘가 모르게 약간은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냄새가 풍긴다. 우리가 그렇다고 하니까 따라오라고 하면서 앞장 서 걷는다. 우리는 어디 사무실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뒤따라갔다.

그런데 그는 잠깐 걷다가 공항대합실 한 귀퉁이에 창가에 멈춰 선다. 그리고 우리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한다. 우리가 여권을 내주자 손가방에서 인쇄된 종이 4장을 꺼내 창틀 난간에 기대어 쓱쓱 싹싹 적어나간다. 순식간에 두 장이 나란히 붙어 있는 비자를 대신한 증명서가 4장 만들어졌다. 이름과 국적 등 아주 간단한 사항만 적혀 있다. 그리고 1인당 25달러씩, 모두 100달러를 내라고 한다. 이건 뭐지? 돈을 줘야 하나? 우리가 간접지식을 통해 익힌 내용과는 차이가 있는데, 설마 사기꾼은 아니겠지?

그 남자는 100달러를 받더니 우리의 인적사항이 적힌 비자대용 종이증서를 우리에게 넘겨주고 떠난다. 우리는 그 종이증서를 들고 쿠바 국적 항공사(에어쿠바나)에 짐을 부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다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업무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사람들 바쁜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느긋하다. 한참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됐다. 수하물로 부칠 짐을 올려놓았다. 짐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수하물 꼬리표도 안 붙인 상태다. 그런데도 직원은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다. 다행이 컨베어 벨트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해 짐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

우리가 비자(종이증서)와 여권을 넘겨주니, 멕시코 입국 신고서도 함께 내놓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찾았으나 나는 끝내 못 찾았다. 수하물로 부치는 큰 트렁크 속에 섞여 들어간 모양이다. 나중에 쿠바에 도착해 뒤져보니 고이 모셔져 있었다. 내가 없다고 하니 멕시코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확인증을 받아오라고 한다.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가 확인서를 요청하니 30달러 벌금을 내란다. 이런 ~, 속이 쓰리다. 싸울 수도 없다. 말도 안 통할 뿐 아니라 항의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30달러를 날리고 나니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탓이지. 여기 그대로 묶여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비싼 수업료라 생각하고 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기로 했다.

그 다음 이번에는 출국 심사 과정에서 내가 매고 있던 가방이 걸렸다. 텀블러에 물이 남아 있었던 걸 깜빡했던 것이다. 이거 참, 오늘 계속 우왕좌왕이군. 물을 버리고 다시 가방을 검색대 위에 올려놓고 통과했다. 그때 입국장의 젊은 직원이 함께 가던 일행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꼬레아!’라고 답하니, ‘God Bless!’를 한국말로 뭐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쿠바 여정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기원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라시아스!(감사하다)’라고 답한다.

코리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비행기 탑승 게이트는 A6이다. 그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맛이 괜찮다. 난 평소에 파스타는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편이지만 이곳에서는 즐겨 먹는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칸쿤 국제선 대기실은 멕시코이지만 멕시코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멕시코인인 듯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백인이 대부분인데 유럽과 미국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다. 일부 라틴계 백인과 메스티소, 그리고 소수의 흑인과 동양인이 있었다.

▲ 칸쿤 유원지에서 공항 가는 길. [사진-임영태]

 

▲ 칸쿤 국제공항 탑승 대기실. [사진-임영태]


‘땅콩 회항’이 떠오르다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바로 비행기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다시 짐검사와  입국심사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거나 들고 가는 짐을 샅샅이 뒤져본다. 또한 가는 목적, 돈은 얼마나 가졌느냐 등 보통 입국신고서에 적는 내용을 검색요원이 직접 묻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미국의 적대국으로 살면서 국가의 생존을 염려해야 했던 쿠바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생긴 관행이겠거니 하고 생각해본다.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를 탈 때와는 약간은 다른 과정과 절차를 거친 다음, 드디어 우리는 쿠바 항공기내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크기가 작았다. 칸쿤에서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한 편밖에 없다고 한다.

그동안 쿠바는 밖을 향해 문을 열고 싶어도 미국이 밖에서 문을 잠가놓은 때문에 그게 안 되었다. 하지만 이제 밖으로 향하는 문도 얼마든지 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으니 훨씬 활발해질까? 전문가들은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면, 미국 여행객이 많이 늘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금 쿠바 여행객이 연간 350만 명 정도 되는데 쿠바와 미국의 관계가 본격화되면 미국 여행객만 350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배로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탑승하는 동안 비행사 직원들은 승객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우리나라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직원들과 너무 대조적이다. 멕시코, 미국 등 다른 나라 항공사도 비슷했다. 그들은 일단 탑승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비행기는 너무 친절하다 못해 과잉이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왜 그럴까?

나는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 보았다. 우리의 산업화, 특히 서비스 산업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일본식의 과장되고 지나친 친절 서비스 매뉴얼까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꼭 일본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의 한국 서비스 산업은 노동자에게 지나친 친절과 감성노동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적기의 경우 승무원의 노동 강도가 다른 나라 비행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높은 것이다.

어찌 보면 ‘땅콩 회항’사건도 과잉서비스와 높은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한국의 경영풍토에서 생겨난 부산물 같은 것은 아닐까? 물론 땅콩 회항의 직접적인 원인은 재벌 오너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이런 노동여건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쿠바 항공기에는 남녀 승무원의 숫자가 비슷했다. 다수가 여성인 우리와는 다른 조건이다. 승무원들의 경우 힘을 쓸 일이 많은데 남성들이 많이 근무하는 게 타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가 탄 항공기의 남자 승무원의 덩치가 엄청났다. 그는 힘 좀 제대로 쓸 것 같다. 여성 승무원의 경우에도 나이가 들고 체구도 엄청 크다. 비행기 승무원의 체격이 저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승객이 감상하기 위한 꽃이 아니라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라틴계(스페인계)로 여겨지는 백인남자 승무원은 건장하고 외모도 잘 생겼다.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다. 그 외에 남자 승무원이 한 명 더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흑인(혼혈) 여승무원은 건강한 쿠바형 미인얼굴이다. 40대 중반은 됐을 것 같은 여승무원은 쿠바 항공의 광고모델로 등장할 같은 얼굴이다. 두 여승무원 모두 쿠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들 키가 크고 골격이 우람하다. 비행시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비스켓과 주스, 음료수, 물이 제공되었다. 나는 주스를 한 잔 마시고 비스켓을 먹었다.

비행기는 한 줄에 6명씩 앉는 소형으로 국내선 저가항공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비행기는 쿠바 국적기다. 비행시간이 불과 1시간 20분에 불과해 금방 아바나에 도착했다. 쿠바와 칸쿤은 1시간의 시차가 있는데, 아바나가 1시간 빠르다. 그 때문에 칸쿤에서 오후 3시 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아바나 공항에 오후 5시 25분에 도착했다. 

▲ 쿠바 입국을 위한 수속 장소. [사진-임영태]

 

▲ 쿠바 국제공항 대기실에서 바라본 정문 방향 모습. [사진-임영태]

 

▲ 공항 대기실에서 쿠바의 첫 모습을 엿보다. [사진-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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