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 70년을 맞아 발표된 일본 '아베담화'에 대해 양징자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공동행동' 공동대표를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전후 70년을 맞아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4일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담화'를 두고 한국과 미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세계 언론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아베담화' 발표 이후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아베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도 있다.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도 아닌 제삼자가 일본의 현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아베담화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양징자 일본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역사교육의 부재"라고 답을 내놨다.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20여 년 넘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청춘을 바친 양징자 공동대표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났다. 1957년에 태어난 전후 세대로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온 양징자 대표는 '아베담화'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일본 젊은이들의 역사교육 부재를 통탄했다.

"'아베담화, 굉장히 교묘하고 악질하다"

양징자 대표는 '아베담화'에 대해 "주어가 없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은 무라야마 총리 담화에서 나온 식민지 침략, 사과, 반성 등의 단어를 지워버리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전쟁법제(안보법제)로 여론이 악화하고, 같은 여당인 공명당이 사죄, 반성 등의 단어를 넣어야 한다고 압박하니까 그렇게 발표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하지만 말만 넣었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두 과거형이다"라며 "그 외에도 예쁜 말들, 아름다운 말들을 늘어놨다.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르고 누가 하는지도 모르는 문맥이라서 굉장히 교묘하고 악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베 총리가 호전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이라는 점에서 "그냥 두면 머리가 좋지 않아서 자기 생각을 말했을 것 아닌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가끔 본질을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양징자 공동대표.[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아베담화'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위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해왔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며 "러일전쟁은 식민지배 아래에 있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면서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담겨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하고 아베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본 내 여론이 확산추세이다.

실제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7월 37.7%에서 43.2%로 상승했다. 또한, '아베담화'에 대한 평가도 42.7%가 사과로 적절했다고 답했다.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도 지난 15일과 16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57.3%가 '아베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피해국 시민의 관점에서 이러한 일본의 여론은 이해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는 현재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읽게 한다. 양징자 대표의 전언에 따르면, 일본에는 '샤자이 스카레'(사죄에 지쳤다)라는 말이 회자한다는 것.

즉,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사죄했는데 또다시 사죄를 하라는 것이 지겹다는 반응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이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한다"는 발언 이후 여러 번 반성이라는 단어를 썼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처음으로 공식 문서로 '통절한 반성'이 들어간 이후 다섯 차례 문서로 남겼다.

이를 두고 일본사회는 얼마나 더 사죄해야 하느냐는 반문이다. 그래서 '아베담화'의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양징자 대표는 "사과라는 것은 상대가 받아들여야 성립된다. 상대가 이제는 됐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일본의 일반 국민은 '한국은 사죄가 목적이 아니라 일본을 반대하는 목적으로 사죄를 강요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 여론은 이미 '아베담화' 발표 이전부터 있었다"고 지적했다.

▲ 양징자 대표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법제'를 반대하는 젊은층이 과거사 청산 문제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역사교육의 부재 탓이라는 이유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전쟁법제 반대 젊은층, 올바른 역사교육으로 이끌어야"

그렇다면 최근 일본 전국에서 벌어지는 전쟁법제(안보법제)를 반대하는 젊은층들의 목소리와 행동에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일본 젊은층들은 아베 정부의 전쟁법제를 두고 연일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조용하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문화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집회는 세계, 특히, 한국사회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의 목소리를 이들 젊은이에게 기대하기란 다소 어려운 듯하다. 양징자 대표는 "전쟁하기는 싫고 앞으로 전쟁하는 나라가 되는 것은 싫지만 과거 전쟁을 한 나라였다는 사실에 대한 고찰과 반성으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전쟁법제로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원치 않지만 침략전쟁을 벌였던 일본이라는 범위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양 대표는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바로 젊은층의 전쟁반대 운동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일본 젊은층이 전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준다면 과거사 청산운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양 대표는 "분명히 전쟁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들이니까 앞으로 과거사 청산문제에도 이어지게 우리가 잘 운동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아베담화' 이후 일본의 과거사 청산의 걸림돌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지식인들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양 대표의 전언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들은 한.일 관계개선을 위해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 운동단체들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문제해결 방식으로 제시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음에도, 운동단체들이 피해 할머니들을 강요해 받지 못하도록 했고, 결국 문제 해결이 어려워졌다는 것.

하지만 당시 국민기금에 대해 운동단체들이 나서서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먼저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사실은 간과한 주장이다. 양 대표도 일본에 거주하는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에게 국민기금 수령 의사를 타진했지만, 송 할머니가 수령을 반대했다.

양징자 대표는 "피해자의 의지로 반대했는데 피해자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라며 "그 당시 피해자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의지로 반대했는지에 대해서 모른다. 할머니들을 운동단체에 의해 쉽게 조종되는 존재로 보는 몰인권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 양징자 대표는 지난 20일 정대협 등이 주최한 '아베담화와 이후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전략 토론회'에 일본측을 대표해 자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국 시민, '위안부' 피해자 중심에서 문제 해결 동참해야"

양 대표와 인터뷰를 통해 '아베담화' 발표 이후 일본 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포함한 과거사 청산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과연 문제의 해법은 없는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양 대표는 그래서 한국시민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민족문제만으로 볼 것이냐, 여성이라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냐 시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민족문제냐, 아니냐는 오랜 논쟁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만, 여기에 민족주의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란 무엇이냐는 철학적 논의도 끊이지 않는다.

일부 단체들은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반일시위를 열면서 '평화의 소녀상'에 태극기를 두르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여기에 '민족'을 부르짖지만, 과연 이들이 내뱉는 '민족'이 진정한 '민족'의 의미인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양징자 대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자 중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할머니를 민족수난의 상징으로 보는 발언은 거슬린다. 중대한 인권유린을 당한 인간의 피해라는 것은 민족의 수난, 민족의 피해가 아니라 우선 당사자의 피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해결책은 피해자가 받아들이는 해결책,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책을 일본 정부가 내놔야 한다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민족을 앞세우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로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려 한다고 한다. 이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강조했다.

전후 세대 재일조선인으로 20여 년 넘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뛰어든 양징자 대표는 재일동포와 한반도 문제에 깊은 고뇌를 갖고 운동을 해 온 인물이다. 그리고 결혼 후 역사인식이 없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일본사회가 어찌 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위안부 운동에 참여했다.

"나는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통해 재일조선인 여성으로서 나의 고통과 고민을 사회에 호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서, 피해자에게 모든 문제를 묻고 진행하는 것이 운동하는 사람으로 맞는 자세라고 생각했고 여기까지 왔다"

일본에서 특히, '아베담화' 이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은 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재일동포로, 올바른 역사교육으로 젊은 세대를 깨우치게 하려는 양징자 대표의 활동이, 인터뷰 내내 보인 쾌활한 웃음처럼 희망의 빛이 되길 기대한다.

(수정 27일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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