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은 / 6.15산악회 회원


▲ 삼각산 비봉을 뒤에 두고 둘레길 옛성길 봉우리에서 함께 한 6.15산악회 회원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6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고 신록의 푸름이 더해만 가는 셋째 주 일요일 아침. 전날 비가 내렸던 터라 내심 산행 걱정을 했는데, 하늘이 마치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산행에 나서기 적당하게 바람도 불었다. 짙푸른 산 빛마저 어우러져 8월의 한 날이라고 해도 누구도 의심치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의 걸음이 느려도 부담스럽지 않게 발을 맞춰 함께 걷는 이들이 있는 6.15산악회의 산행길에 나섰다. 아침 9시경 산행 출발을 앞둔 불광역에 하나둘씩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산행이지만 일 년을 넘게 산에 함께 오르다 보니 이제 웬만한 회원들과 거리감도 사라지고 데면데면하지 않아 좋다.

▲ 곳곳에 빼어난 장관을 자랑하는 삼각산은 등산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오늘은 마치 예부터 수도의 상징처럼 우리 곁에서 꿋꿋하게 자리해온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836.5m)을 오른다. 불광역 쪽에서 올라 비봉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라고 한다.

북한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가 있어 삼각산으로도 불린다. 북한산에는 마치 뼈대를 이룬 듯한 여러 개의 능선 등산 코스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비봉능선을 거쳐 내려온다고 해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여름처럼 날씨가 몹시 덥고 바위산 코스로 비봉까지 올라가는 것이 버거운 회원을 고려해 산악회 집행부는 비봉으로 곧장 오르는 코스를 접었다. 그리고 큰 길 건너 숲길을 따라 사브작사브작 산책하듯 오르는 둘레길 7구간 옛성길을 택했다. 한 시간여를 걸어 구기터널을 거쳐 탕춘대성 암문 입구를 지나는 길까지 걸었다.

메르스 위협이 채 물러가지 않았는데 예전 휴일처럼 둘레길 걷기와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산행이라기보다 산책길을 걷는다 싶을 즈음 만난 탕춘대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날씨 탓도 있지만 오래 걷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선생님 한 분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늘 산행에서 B팀으로 순한 코스를 택해 산행을 하시던 선생님은 중간에 하산길이 있으면 내려가실 요량으로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뒤로 처진다. 물론 팔, 구순임에도 불구하고 산악회 앞에서 날듯이 산을 오르내리는 선생님도 계신다. 그래서 6.15산악회 산행 때는 주변 등산객들이 놀라는 눈길을 보내는 건 다반사다.

어쨌든 나도 산행 기간이 길어져 적잖이 힘들던 차라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오르리라 마음먹고 동행을 자처했다. 6.15산악회는 회원들에게 산행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고, 힘들어 더 못 가요, 배고파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때쯤 앞서 가던 회원이 점심 먹을 자리를 마련해 모두들 기다린다고 손짓을 한다. ‘아, 이제 좀 쉴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을 얼른 재촉했다.

신록이 우거진 숲속 한 편에서 자리를 펴고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과 과일이랑 떡, 음료 등 먹을거리를 이쪽저쪽 펼쳐놓고 서로들 나눠 먹는다. 점심시간 회원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 같다. 점심시간은 왜 그리 쉽게 가는지, 곧 산상강연이 이어졌다.

▲ 서울평통사 김종일 대표는 한반도 정세에서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강화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이날 산상강연에 나선 서울평통사의 김종일 대표는 최근 한반도 정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일 또는 미일 안보조약, 미일 군사동맹이라고 강조하면서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 된 역사적 사건과 사실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또한 일본의 미일방위협력지침 및 관련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미사일 방어체계 등 군사동맹의 강화를 꾀하면서 아태지역의 맹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보 진영은 어떻게 현재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하나의 대오로 운동적 실천과 연대를 공고히 해나갈 수 있을지를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회원들은 6.15공동선언 15주년을 맞는 올해 6.15남북공동행사가 무산된 점을 서로 안타까워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광복 70주년 8.15 남북공동행사가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히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과 노력으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다시 열어젖힐 날을 그리는 회원들의 눈에는 푸른 산 빛이 그늘졌다.

▲ 화해와 협력의 시대, 평화통일의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6.15산악회 회원들이 산상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곧 6.15산악회 권오헌 회장님의 간략한 정세 분석과 6.15합창단 6월 초 오사카 공연 보고 등이 뒤이었다. 6월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의미가 깊이 전해진 탓일까? 다른 산행 때보다 산상강연이 조금 늦은 시간에 끝났다.

▲ 메르스 확산 사태 속에서도 6.15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정세에 대해 말씀하는 권오헌 선생님.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우리가 머물던 자리를 정리하고 선두를 따라 남은 산행 길을 잡아 걸었다. 그런데 산을 내려가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걸었는데, 웬걸 걷다 보니 바위도 오르고 일명 깔딱고개까지 나오고, 계속 산을 오르는 분위기다.

사실 더운 날씨에 긴 시간을 걸어서인지 몸이 지쳐 있어 어려운 코스가 아니었지만 얼른 하산을 하고 싶었다. 자꾸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산을 올라가는데, 코스가 왜 이런지, 얼마나 더 산행을 해야 하는지, 언제쯤 내려가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릎마저 고장을 일으키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내 인내심이 잠시 바닥을 쳤다.

산행 코스가 바뀌고 변동 사항이 생기면 적어도 회원들에게 알려줘야지 체력 안배와 마실 물 등 스스로 산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평소 선두를 따라 조용히 산행을 하는 편인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여러 회원들이 한마디씩을 거들며 양해를 구했다.

애초 비봉을 오르지 않는 걸로 들었던 이날 산행 코스는 결국 비봉을 거쳐 내려오는 코스였고, 산행 시간이 평소보다 2시간이 더 걸렸다. 마음결이 가스러져 북한산의 미끈한 화강암들을 미처 눈에 담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무릎 통증으로 뒤에 처져 산을 내려오는데, 산을 오를 때 동행했던 선생님이 기다렸다 함께 내려와 주셨다. 다음 산행에 올까 말까 하는 마음이 절로 났었는데,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 푸른 산 빛 그늘 아래 화해와 협력의 소식을 전해듣기 위해 자리한 6.15산악회 회원.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구기동 자락 한 음식점에서 산행 뒤풀이가 이어졌고, 한 순배의 술잔이 돌고 좋아하는 열무국수까지 폭풍흡입하고 난 뒤였다. 손전화기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잠시 멍 하니 어디 두었는지를 애써 기억하다 점심 먹은 장소 뒤편 큰 바위 위에 얌전히 올려놓았다는 기억에서 멈추었다. 나는 그곳에 손전화기를 놓고 내려왔다고 확신했고, 회원들에게 손전화기 분실을 알림과 동시에 어디에 있을 거라고 알렸다.

그때부터 뒤풀이 자리는 웅성웅성, ‘위치 추적해봐, 전화를 걸어봐, 지금 어떻게 올라가, 간다고 찾을 수 있겠어? 그냥 버린 셈 쳐, 약정기간 지났으면 버려, 첫사랑 전화번호 남아 있어 꼭 찾아야 돼?’ 등등 산악회 회원들은 분주하게 말을 거들고, 총 대장님을 비롯해 몇몇 회원은 전화기를 찾으러 산으로 간다며 배낭을 메고 나섰다. 그렇게 시쳇말로 ‘멘붕’의 시간이 흐르고, 아, 그때 내 눈에 배낭 밑에 깔린 분홍색 커버의 낯익은 손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 마치 짐승 한 마리가 어미의 등 뒤에 올라탄 듯한 모습의 기암괴석, 삼각산에는 이런 기암괴석이 무척 많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전화기 찾았어요!!” 막 산으로 걸음을 내처 나섰던 이들이 내 외침을 듣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만 늦게 전화기를 찾았더라도, 에고에고 몇몇 분들은 산을 오르는 생고생을 해야 했을 판이다. 마치 내 전화기를 잃어버린 양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도 주저함 없이 산을 오르겠다던 이들의 눈빛에서 화해와 협력의 6.15를 기억해낸다.

걱정과 우려를 쏟아내던 회원들은 우연치 않게 일어난 ‘손전화 분실 소동 사건’으로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소동을 일으켜 2차 뒤풀이를 감당해야 했고, 이렇게 산행기를 쓰게 되었다.

마음의 거리낌을 쉽게 덜어내게 하고, 산 빛을 닮은 이들과 함께 색다르게 6.15를 기억하게 한 6월 산행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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