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약하다. 하지만 평화를 찾는 여성은 강하다’는 말도 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평화’를 찾아 한반도에 군사분계선(MDL)이 있는 사실상 중무장지대인 비무장지대(DMZ)를 도보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24일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를 진행해 판문점 북측 지역을 거쳐 경의선 도라산 출입경사무소(CIQ)를 통해 남측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들이 애초 밝힌 대로 판문점 MDL이 아닌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국했다고 해서 이들의 의지와 용기가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WCD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그리고 미국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12개국 여성 지도자와 해외동포 평화운동가 등 3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들 ‘평화 여성’들이 DMZ를 도보로 건넌다는 것은 곧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는 것으로 한마디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근본 이유는 ‘용감’이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 이유에서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 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닌 김 대통령의 ‘용기’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는 한 노르웨이 시인의 ‘마지막 한 방울’이란 시를 인용해 칭송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해 6월 평양에 온 김 대통령에게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으며”,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라고 한껏 추켜세운 바 있습니다.

이들 ‘평화 여성’들도 세 번의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들이 WCD 취지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의 분단과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잔재인, 판문점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도보”를 하겠다는 ‘창조적인 용기’를 구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날 남측에 도착한 ‘국제 반군사주의 여성 네트워크’ 창립멤버인 그웬 컬크(70세) 씨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경에서 편도 티켓을 끊고 개성을 통해 결국 오늘 남한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밝힌 대로 ‘편도 평양행’이라는 ‘배수지진의 용기’를 보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들이 판문점을 통과해 남측 지역으로 입국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경의선 도로를 통해 입국한 ‘유연한 용기’입니다. 남측 당국과 북측 당국이 모두 이들에게 판문점 경로 대신 경의선 도로 이용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DMZ 남측 구간을 관할하는 유엔사에서 반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애초의 계획을 바꾸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들이 판문점 통과만을 고수했을 경우 유엔사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명분을 챙길 수는 있었겠지만 남측 땅을 밟는 실리를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경직된 용기’보다 ‘유연한 용기’가 나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이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에게 ‘용감한 여성들’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하등 이상할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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