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자장가 소리보다 폿소리를 더 듣고 자랐다”는 철원에서 활동하는 정춘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지뢰꽃>이 13년 만에 복간돼 나왔다.

▲ 정춘근 시집, 『지뢰꽃』, 문학인(2015.1.). 168쪽. 9천원

이 시집의 ‘작가의 말’에 해당하는 자서(自序)에는 ‘인간 지뢰’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 대신 자리해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한반도의 현 상황을 “무서운 일이지만/지뢰가 묻힌 철조망 밖에는//정교하게 세뇌된/우익 지뢰 인간 4천만/좌익 지뢰 인간 3천만/7천만 개 지뢰가 있다”고 묘사한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지뢰’를 비롯해 ‘수복지구’, ‘삐라’, ‘백마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낙타고지’, ‘승일교’, ‘철조망’, ‘비무장지대’ 등 분단 상황과 민족의 아픔을 알리는 시어들이 난무한다.

분단 70년을 맞는 오늘날, 분단의 아픔 중에서도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것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주입이리라.

“기관총 탄피 주워 색연필과 바꿨지/박격포 파편 주워 연필과 바꿨지//칼빈 총알 주워서 지우개와 바꿨지/삐라 열 장 주워서 공책과 바꿨지//그렇게 배운 반공 이념은 총알보다/강하게 내 머리에 박혀 버렸지” (「우리들의 학용품」 전문)

그래서 그는 반공 이념에 찌들고 분단 상황에 무심한 이들을 향해 “빨간 모자를 벗어라 관광객들아/여기를 로마 유적쯤으로 생각하려거든/냉큼 떠나라//이곳은 원통하게 죽은 귀신들이 쉬는/유일한 사당이니”(「노동당사」 부분)라며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시집 후기에서 “이 땅에 문학은 민족의 아픔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분단의 철조망에 희망이 찢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노력은 문학인의 몫”이자 “문학은 국적이 불분명한 이론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분단 상황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시인은 “골리앗같이 거대한 분단 실체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가 문학인에게 필요하다”면서 “작은 노래 가락이라도 우리 민족이 입을 모아 가슴으로 합창을 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늘의 소리가 될 것이며, 외세를 몰아내는 만파식적일 것이라 믿는다”고 알린다.

시를 통한 ‘분단 극복’과 ‘외세 배격’. 이는 통일과 자주의 다른 이름 아닐까? 분단의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분단의 시어를 쓰지만 시인의 시선은 미래로, 통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규배 시인은 발문에서 정춘근 시인을, 박봉우-김남주-김규동-이기형-이만주 시인으로 이어지는 통일시 계보를 잇는 통일시인, 그것도 ‘우리 시대의 순정한 통일시인’이라고 헌사한다. 특히, 세상을 뜰 때까지 통일의 열망을 애끊게 노래했던 이만주 시인이 2010년에, 김규동 시인이 2011년에, 이기형 시인이 2013년에 각각 타계했기에 정춘근 시인의 존재가 무게감 있게 와 닿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나아가, 이 시집이 신간이 아니라 복간임에도 반가운 이유는 분단 상황에 더해 오늘날의 시대 상황 때문이다. 민족화해를 말하면 ‘종북’(從北)으로 매도되는 세상에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의 시집이 용감히(?) 나왔기 때문이다. 통일운동가나 투사가 아니라 오히려 시인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분단 문제와 더불어 민족 문제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시집을 구해 대면해보는 것도 시인의 용감함에 보은하는 또 하나의 용감함이리라.

정춘근 시인은 1999년 『실천문학』 봄호에 작품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지뢰꽃>(2001)을 비롯해 <수류탄 고기잡이>(2006), <황해>(2010), <반국 노래자랑>(2013) 그리고 이번에 증보판 <지뢰꽃>(2014) 등을 출간했다.

현재 시인은 고향 철원에서 문예창작 지도와 노인들 대상으로 문맹퇴치 사업에 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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