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정은 북측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에게 24일 친서를 보낸 것입니다.

지난 19일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에 이희호 여사 및 현정은 회장이 조의를 표한 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김대중평화센터 및 현대아산 측에 개성공단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제 그 이유가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24일 김양건 비서가 개성에 나와 이들을 맞이하며 ‘김정은 친서’를 건네준 것입니다.

먼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날 개성을 찾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편에 전달한 친서에서 이희호 여사에게 “(김정일) 3년상에 화환과 조의문을 보내온 것은 국방위원장 동지에 대한 고결한 의리의 표시라고 생각한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지께서는 생전에 여사께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족과 통일을 위한 길에 모든 것을 다 바쳐온 데 대해 자주 회고하셨다. 우리는 선대 수뇌분들의 숭고한 통일 의지와 필생의 위업을 받들어 민족의 통일 숙원을 이룩하기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음으로, 김 제1위원장은 역시 개성을 찾은 현정은 회장에게 전한 친서에서 “선생은 이번 3년상에 지성 어린 추모 화환과 조의문을 보내옴으로써 우리 국방위원장 동지와 정주영 전 명예회장, 정몽헌 전 회장들과 맺은 깊은 인연을 귀중히 여기고 대를 이어가려는 마음을 뜨겁게 표시하셨다”며 “정주영, 정몽헌 선생들이 민족과 통일을 위한 길에 남긴 애국적 소행을 온 겨레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제1위원장은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에게 평양 방문을 청했습니다.

‘김정은 친서’의 메시지는 ‘인연, 의리, 유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여기서 ‘인연’은 ‘김정일-김대중’, ‘김정일-정주영·정몽헌’으로 맺어진 관계를 뜻하며, ‘의리’는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떴지만 그 배우자와 후대들이 기일에 잊지 않고 상호 조의를 표하는 등 인간적 유대를 지속하는 것을 말하며 그리고 ‘유지’(遺旨)란 이들이 살아생전에 합의한 ‘민족과 통일을 위한 길’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김양건 비서가 ‘김정은 친서’를 김대중평화센터와 현대아산 측에 전달하는 이날 ‘비방 중상을 중지해야 남북이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 대화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북측으로서는 최고의 형식과 최상의 정중함으로 남측에 작게는 남북관계 개선을 크게는 통일문제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측 당국이 ‘김정은 친서’에 대해 북측이 민간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다소 편협해 보입니다. 사실 ‘김정은 친서’의 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2002년 박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상태로 사실상 정치적 낭인 시절이었으니 북측의 방북 초청은 단비와 같았을 것입니다. 6.15공동선언의 혜택으로 방북한 박 당선인은 김 국방위원장에게 “6.15공동선언도 7.4공동성명에서 뜻이 뿌려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정희-김일성’ 인연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제 ‘김정은 친서’는 우회적으로 2002년 평양에서의 ‘박근혜-김정일’ 인연을 묻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의리가 있는가? 당시 ‘박근혜-김정일’ 대화에서 나온 7.4성명과 6.15선언 등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북측이 남측 당국에 보내는 ‘해방과 분단 70년’을 맞는 내년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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