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에 걸쳐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고, 남북관계도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면 탐색기 1년을 보낸 다음인 2년차가 적격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신년 초에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와 한때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으나, 내용이 변변찮아 곧 시들어졌습니다. 10월 초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측 실세 3인이 인천을 전격 방문해, 남북대화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대북 전단 살포와 비방중상 등으로 ‘없었던 일’로 되어버렸습니다.

6자회담은커녕 북미대화의 계기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억류 미국인 석방과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NDI) 국장의 전격 방북으로 북미 대화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남측에서는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 사회 분위기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가, 12월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해 ‘종북몰이’의 극치를 이뤘습니다. 북측은 남측, 미국과 대화의 단초를 만들지 못하고 또한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일본과 협상을 시작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증진하는 등 우회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통일뉴스는 <2014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의 대외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박근혜 정부 2년, 김정은 시대 3년을 맞이한 남북의 2014년은 관계개선의 열차가 출발하는 듯하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답답함의 한 해였다.

2014년 남북관계를 예견이라도 한 듯 한파와 폭설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2월 이산가족상봉의 기쁨은 딱 그 순간에 불과했다.

북측의 비방중상 중단 요구에 남측은 통일준비위원회 출범과 통일대박론이란 엉뚱한 답을 내놨고, 급기야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 간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북측 참가, 10월 최룡해.황병서.김양건 방남 등 남북관계 개선의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보여주기 쇼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남북 양측이 관계개선의 가려움을 해소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곳만 긁어 버린 셈이다. 서로 화끈하게 다가가지 못한 시쳇말로 '썸 타다'(호감갔다) 끝난 연인, 딱 그 모습이었다.

비방중상에 발목잡힌 남북관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6.15선언, 10.4선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면서 김일성 주석의 1994년 정상회담 개최 관련 서명 20주년을 강조했다.

즉, 남북 간 비방중상을 끝내고 우리 민족끼리에 입각해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당국 간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1일 <중앙일보> 기고에서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나아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했다.

이에 남북관계 개선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이산가족상봉을 제의했지만, 북한의 선 행동과 비핵화를 거론하고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이 비방중상이라는 성명을 발표해, 남북관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어 북한 국방위는 △설 계기 상호 비방중상 중단, △상호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중지, △한반도 비핵화 의지 표명 등 중대제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북한이 생각한 비방중상은 체제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비방중상 중단'을 두고 남북 간 공방이 이어진 가운데, 2월 1차 남북 고위급접촉이 열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고위급 접촉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성과와 함께, 비방중상 중단이라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비방중상'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던 남북은 유엔발 북한 인권문제와 남측의 동조로 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가 한몫했다.

그리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국물도 없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의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등의 발언은 북한이 비방중상이라고 받아들일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이와 함께,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라는 북한의 중대제안에 남측은 서해 포사격 훈련,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 사상 최대 규모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등으로 답했다.

물론, 남북은 9월 인천 아시안게임과 10월 최룡해.황병서.김양건 방남으로 관계 개선의 희망이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2차 남북고위급 접촉 호응을 촉구한 가운데, 묵묵부답이던 북측은 고위급 3인방을 통해 10월말~11월초 고위급접촉 개최로 화답했다.

여기에도 남북관계 파탄의 불씨는 여전히 있었다. 1차 접촉에서 합의했던 비방중상 중단은 남북의 각기 다른 해석으로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었고, 1차 접촉의 논의를 2차에까지 끌고와야 했기 때문이다.

즉, 남측 청와대와 북측 국방위라는 당국이 만나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실질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방중상 문제에만 매달려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급기야, 10월 10일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 간 총격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2차 고위급 접촉은 물 건너 갔다.

의미 없고 준비 안 된 통일대박론

비방중상이라는 남북 간 첨예한 문제를 풀지 못한 속에서 1월 남측에서 통일대박론이라는 다소 엉뚱한 구호가 나왔다. 게다가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산하에 '통일준비위원회'가 7월 출범했다.

남북통일이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에서 통일이 대박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수 없지만, 통일에 앞선 관계개선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대박론은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5.24조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은 논외의 대상이었고, 이산가족상봉에만 매달린 의제 설정, 통일 이후 한반도 경제지도, 북한 주민 생활개선 등 뜬구름 잡는 통일담론이라는 비판을 샀다.

그리고 통일준비위원회의 역할은 남북관계 개선의 틀을 만들고 이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준비한다는 성격이 다분했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통일대박론은 체제흡수론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014년 남북관계를 결산한 '공보'에서 "반공화국대결책동 밑바탕에는 허황하기 그지없는 체제통일의 망상이 깔려있다"고 반발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통일구상은 △인도주의 의제 △공동번영 의제 △동질성 회복 의제 등 대북 3대 제안을 담고 있지만, '부모잃고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 '탈북자' 등의 표현을 써 의미를 잃었다.

결국, 북한 국방위원회는 4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민족반역과 위선, 반통일 속내로 얼룩진 시대의 퇴적물"이라고 맹비난했고, 이어 조평통도 10개항 공개질문장을 통해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거부했다.

'드레스덴 통일구상'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북한체제는 붕괴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도 모자라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대북 인도적 지원 민간단체의 역할을 배제한 채, 국제기구의 역할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은 '드레스덴 통일구상'의 등장에 따른 북측의 반발로 생명을 다했고, '5.24조치'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으로 30억 원을 민간단체에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또한,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북측 응원단 참가를 두고, 규모와 체류비 등을 꺼내 든 정부의 대북 카드는 결국,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통일구상', '통일준비위원회'가 의미도 없고 준비도 안 된 통일담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낳았다.

남북, '썸 타는' 관계로만 남는가

2014년 남북관계를 요약하면 답답함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큰 행보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야 집권 3년 차부터 성과를 내고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막힌 남북관계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도 예외는 아니다. 김일성 주석의 남북관계 문건 서명 20주년을 야심 차게 보내려 한 계획은 비방중상 문제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4년 남북관계가 답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남북은 각자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남북관계를 풀어가려고 했지만 비방중상으로 대표되는 장벽에 번번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월 1차 남북 고위급접촉과 이산가족상봉, 9월 인천 아시안게임, 10월 최룡해.황병서.김양건 방남 등으로 이어진 기회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내년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남측은 광복 70주년을 남북공동행사로 치르려는 뜻이 있다. 북측도 이를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다.

최근 발표된 조평통 공보의 끝에 "진실로 대화를 바라고 북남관계 개선의 길로 나올 의지가 있다며, 그릇된 대결정책을 하루빨리 시정하고 정책전환을 하여야 한다"는 문구는 북측도 남북관계 개선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다. 비방중상의 문제는 살아있고, 국방부는 북한이 내년을 '조국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면서 군사적 충돌을 대비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없다.

하지만 일부 대북 강경파가 주장하는 '조국통일대전의 해'는 북한이 20년 단위로 밝히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김일성 주석은 분단 30년인 1975년 '조국통일대전'의 의지를 표명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분단 50주년인 1995년 '조국통일대전'을 선포했다. 그의 연장선으로 분단 70주년인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의 해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포했다는 것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군사적 대치상태라는 점에서 북한이 공언한 '조국통일대전의 해'를 단순한 구호로 지나치자는 뜻은 아니다.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은 군 당국의 당연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015년에 마치 실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게 중론이다. 남북이 201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분단 100년의 시계는 순식간에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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