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간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지난 20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회담한 뒤 “러시아는 북한과 ‘최고위급’을 포함한 접촉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들어선 이래 전통적으로 제일 먼저 만나던 중국을 미루고 러시아의 최고지도자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고 북·러 관계가 밀착하는 광경이 자주 나타났으니까요.

전통적으로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어느 한쪽에서 최고지도자가 바뀌면 바뀐 쪽의 지도자가 가장 먼저 상대편의 지도자를 만난다는 불문율이 있어 왔습니다. 양국이 혈맹관계이자 순치(脣齒)관계로 불린 이유입니다. 그런데 굳이 따진다면, 이 불문율을 먼저 깨트린 건 중국입니다.

대략 2012-13년경에 남과 북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최고지도자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북한과 중국의 새 지도자들끼리의 첫 정상회담이 예상됐습니다. 그런데 2013년을 넘기고 나서 2014년 올해 들어 7월 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에 앞서 남한을 먼저 방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북한은 시 주석의 남한 방문 직전인 6월 말에 이미 <노동신문> 논설에서 ‘대국주의자’라는 말로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이후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중국은 7월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을 규탄한 언론 성명을 발표하는 데 동참합니다.

이에 북한은 7월 20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중국의 남한 방문과 유엔 안보리 동참을 싸잡아 “이런 해괴한 광대놀음(유엔 안보리의 북한 규탄 성명)에 일부 줏대 없는 나라들도 맹종하여 미국의 구린내 나는 꽁무니를 따르면서 저저마다 가련한 처지에 이른 박근혜를 껴안아보려고 부질없이 왼심을 쓰고(조바심을 내고) 있다”고 최고조로 비난합니다.

결국 북한은 7.27정전협정일에 즈음해 매년 행하는 중앙보고대회에서도 중국의 6.25 참전이나 양국의 혈맹관계 강조는커녕 아예 ‘중국’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습니다. 북·중 관계가 심각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러 관계는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지난 2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10월에는 리수용 외무상이 각각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11월 8일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야조프 전 소련 국방장관 90회 생일 축하차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습니다.

특히, 북·러 경제협력이 눈에 띕니다. 양국은 지난 10월, 250억 달러 규모의 북한 내 3500㎞ ‘철도 현대화 사업’을 비롯해 6월에는 루블화 결제 허용, 7월에는 나진항 3호 부두터미널을 개통했습니다. 앞서 러시아는 북한에 109억 달러 채무 중 90%를 탕감하기로 합의한 바도 있습니다.

아무리 러시아와 가까워진다고 해도, 북한이 전통적 혈맹관계이자 대국인 중국을 향해 ‘줏대 없는 나라’라고 치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국익이 중요하다는 말일 테지만, 이 경우에는 뭔가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들립니다. 어쨌든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상을 치르고 내년 초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할 공산이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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