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스토리 세계사』 1권을 완간한 임영태 작가와 6일 신촌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식의 중간 매개자를 자처하며 ‘대중적 저술가’로서 많은 역사서들을 펴낸 임영태 작가가 세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토리 세계사』(21세기북스) 10권을 완간했다.

통사(通史)식 서술방식을 탈피해 인류의 탄생부터 현대까지 세계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 인물, 그리고 역사적 테마를 고대편(1~3권), 중세편(4~5권), 근대편(6~7권), 현대편(8~10권)으로 나누어 모두 100꼭지 정도의 스토리로 엮은 것.

임영태 작가는 지난 6일 오후 서울 신촌 소재 한 커피숍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세계사라면 서양사의 확장으로 이해한다”며 “세계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그 비중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이 동일한 비중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서양은 세계사의 여러 부분 중 하나”에 불과했고, 서양 외에도 중동과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등이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동양의 경우도 동아시아 역사라면 거의 중국사로 대변되는데, 나는 그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아시아 역사는 북방민족, 중국, 만주와 한반도, 일본,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작가는 “근대의 주역은 유럽 중심 서구라는 것이 맞다”면서 근.현대에 들어서서 서양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서양사 위주 서술 방식을 넘어서고 있다.

그는 이미 『인류이야기 현대편』(1~3권)과 『인류이야기 근대편』(1~3권)을 통해 근대는 시민혁명을 중심으로 전쟁과 혁명을 정리했고, 현대는 제국주의 침략과 이에 저항하는 제3세계 혁명을 중심으로 서술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는 그는 미국을 ‘전쟁국가’로 규정하기도 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사라는 거시적 안목에서 그는 중국의 부상이나 한국의 압축성장이 우연이 아니라며 “역사적 과정에서 축적된 자기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아시아가 이미 역사과정에서 축적된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동아시아가 세계사의 중요한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는 것.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현대에 와서는 한반도가 계속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 같다”며 한국전쟁과 북핵문제를 예시하고,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국력의 차이가 있었던 당나라로부터 고구려가 30년 가까지 장기전을 벌이면서 국력이 소진돼 결국 내분으로 무너진 역사적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50년사』(1,2권)의 증보판을 준비 중인 그는 “우선 북한 현대사 증보판을 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동아시아사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조건이 되면 『스토리 한국사』도 한번 써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도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덧붙였다.

하루 12시간씩 저술에 매달려 방대한 역저를 마무리한 그는 “결국 역사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결정하는 데서 굉장히 중요한 거울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라”는 말로 소감을 가름했다.

푸른나무 출판사 편집주간과 현대사연구소 연구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 총괄 등을 거쳤고, 『대한민국사 1945∼2008』, 『북한 50년사 1, 2』, 『두 개의 한국현대사』 등 많은 저술을 내놓은 임영태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 『스토리 세계사』는 약 300쪽 분량의 10권 책으로 엮어졌으며, 100꼭지 가량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먼저 『스토리 세계사』 완간을 축하드린다.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는?

■ 임영태 : 이 책은 사실 단번에 기획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미 『인류이야기』 근대편과 현대편을 낸 게 있는데, 그게 기반이 됐다. 거기다가 고대와 중세는 완전히 새로 써서 합친 것이다.

원래 현대편 같은 경우는 내가 세계사에 관심이 있어서 ‘현대세계에 대해서 정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거의 10년 전부터 했었다. 그래서 그 때 세계사의 흐름 중에서 주로 제3세계 혁명, 혁명가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 중에서 제국주의 침략과 거기에 저항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한번 정리했다. 근대편 같은 경우는 시민혁명을 중심으로 해서 역시 전쟁과 혁명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세계사 중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 세계사를 변화시키는데 획기적 의미가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쭉 보는 게 필요하다 것이었다. 특히 주로 서양 중심 세계사가 펼쳐지는데, 우리 시각에서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작년에 세계사 전체를 고대나 중세부터 연결시켜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자료연구나 여건 등이 쉽지 않아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들 텐데,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계기나 여건이 있었나?

■ 이건 통사(通史)가 아니고 사건, 주제,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세계사 전체를 통사로 정리하는 작업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되고, 이런 방식으로 쓰면 쉽다고 생각했다. 전체 100개 정도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약간 이야기, 스토리를 엮어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사실 이런 작업이 쉬운 건 아닌데, 현실적인 문제와도 관계가 많았다. 일단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기간을 정했고, 그 기간 동안에 정리를 해야 했다. 정해진 기간이 나한테는 컸다. 그런 게 없이 무작정하고 계속 썼다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 정해진 기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맞춰 마무리짓기 위해선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 시간을 많이 들여 거의 이 작업만 했다. 매일 12시간 정도 글을 썼다. 파주에 가서 썼는데 파주 출퇴근하는 게 합쳐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그 시간을 제외하고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는 이 일을 했다.

웃기는 말로 땅파는 심정으로 했다. 조정래 선생이 새벽 한두시까지 글을 썼다고 하던데 사실 나는 그렇게는 못쓴 것 같다.

□ 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심지어 감옥을 만들어놓고 자물쇠를 밖에서 채우게 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하던데.

■ 그분들이야 책을 쓰면 돈이 되니까.(웃음)

□ 직접 연구자는 아니지만 연구성과를 종합해서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표현하나?

■ 우리는 별로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데 일본 같은 데는 그런 사람이 제법 있고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전문연구가와 대중을 매개하는 사람들인데, 거기에 대해서 특별한 이름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전문가를 2라고 하면 보통 일반인을 1이라고 보고 ‘1.5 전문가’라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유시민 같은 사람은 ‘지식 소매상’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결국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대중적 저술가’라고 본다. 지식의 중간 매개자다.

□ 학계에서 아직 덜 밝혀졌거나 정론이 없는 경우 어떤 기준에서 취사선택하고 전달해 줄 것인지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 그렇다. 전문가들의 경우 특히, 역사에서 전문가들은 엄격한 편이라고 본다. 철저한 증거 사료, 주로 고문헌, 거기다가 유물과 유적, 이런 것이 확고히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도 상당한 시간을 거쳐, 논쟁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정설로 인정한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할 만한 능력도 없고, 또 그런 입장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고대문명의 경우나 고조선, 고구려사도 그렇고 흔히 말하는 재야사학자들과 제도권 내의 주류사학자들과의 갭이 굉장히 크다. 나 같은 경우는 양쪽 다 좀 문제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전문가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지만, 오랫동안 학문적 풍토 자체가 식민사관의 영향이라든지, 아니면 실증주의라든지 이런데 너무 강하게 제약당하고 있다 할까. 물론 실증주의가 나쁜 건 아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니까.

그리고 학문적 풍토 자체가 제자와 스승과의 관계에서 다른 주장을 펴거나 할 때 자기 존립기반 자체가 없어지는,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보수적인 측면이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재야 사학자도, 일정 측면은 이해된다. 사실 우리 민족사가 굉장히 광대했다, 영광스러웠다, 이런 걸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근거나 이런 게 희박한 상태에서 너무 과도하게 주장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내 입장은 절충적이랄까, 중간적 위치에 있다. 나는 가능한 양쪽 주장을 소개하면서 내 생각을 같이 달려고 노력한다.

“서양은 세계사의 여러 부분 중 하나”

□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 비해 우리 시각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사례를 들어주면 좋겠다.

■ 일반적으로 세계사라면 서양사의 확장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서양은 세계사의 여러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흔히 동양과 서양이라고 비교하는데 세계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그 비중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이 동일한 비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세 이전까지는.

크게 나눠보면 서양이 한 부분이 있다면 동양에는 흔히 중근동이라고 부루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이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인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부분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반도, 일본, 그리고 북방까지 연결되는 동아시아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꼭 같은 비중으로 나누어서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중세 이전까지는 그런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4개 부분을 같이 볼 때 세계사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동양의 경우도 동아시아 역사라면 거의 중국사로 대변되는데, 나는 그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역사는 북방민족, 중국, 만주와 한반도가 연결되는 부분, 그리고 일본, 물론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쪽은 손을 못 댔는데 이런 부분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 동아시아 같은 경우 북방민족이나 이런 쪽을 신경써서 썼고, 우리 경우도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 책을 정독하지 못 했지만, 예를 들어 중국 양자강을 농경문화 시발지로 보는데 타당성이 있나? 우리 ‘소로리 볍씨’가 더 오래된 것이라는 증거도 이미 나왔는데.

■ 흔히 문명발상지로 4대 문명을 이야기하고 중국 문명의 출발점이 황화라고 80년대 이전까지는 보통 봐왔는데, 최근 요하문명이 발견돼 이제 이것이 거의 깨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요하지역에서 굉장히 오래된 문명이, 신석기문명부터 시작해서 청동기문명까지 나오는데 이를 요하문명이라고 한다. 중국의 황화문명보다 길게 보면 2천년, 짧게 보면 최소한 천년 이상 앞선 문명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 황화나 양자강 문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 중국은 중국 문명의 시발을 그쪽으로 맞추어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쪽 지역 문명은 중국의 정착 농경문명과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많은 한국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게 그쪽 문명은 아무래도 우리 문명하고 연결돼 있지 않느냐고 본다.

그런데 지역이 중국이고 중국이 거의 독점적으로 발굴하고 연구하고 정리해서 체계화시키는데 우리는 거의 접근을 못하고 있다.

농경문명의 경우도 아직까지는 일반적으로 황화지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주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데서 그보다 앞선 탄화된 볍씨라든지 이런 게 발굴되고 그래서 다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니까 반드시 ‘중국에서 농경문명이 시작돼서 한반도나 일본,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 이렇게 볼 수 없는 측면들도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봐야겠지만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고대사, 중세사는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고, 최근의 연구 성과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영역인데, 직접 새로 정리해보니까 어떠했나?

■ 특히 우리 역사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면, 일단 그쪽에 관심이 많이 갔고,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상당히 연구가 많이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료도 굉장히 잘 정리돼 있고.

이번에는 충분히 내가 그 내용을 반영했다고 볼 수는 없다. 내 개인적인 능력도 그렇고 시간적인 촉박함 때문에 그랬던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중간매개자의 역할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연구 성과를 상당히 잘 반영할 수 있는 방향에서 책을 한 번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아시아사를 써보고 싶다. 주로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몽골까지를 포함한 북방, 그리고 일본, 그리고 된다면 베트남까지. 이게 현재와 꼭 연결되는 것 같다. 지금 사실 동아시아가 굉장히 세계 중심으로 바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토 분쟁이라든지 역사 문제라든지 이런 논쟁 차원에서도 굉장히 뜨거운 지역이 되고 있는데 결코 2천년 전의 역사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직접 연관돼 있는 것 같다.

□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경험이 최근 근현대사를 정리할 때 어떻게 작용했나?

■ 사실 근현대사 하고 내 과거사정리위원회 경험하고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세계사 같은 경우도 사실 일반적인 근현대사 같은 경우는 비판적 경험에서 정리가 많이 돼 있다. 책들도 많고 학자들도 그런 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역시 한국이 나오는 세계사 교과서라든지 역사책 같은 경우를 보면 약간 도식화 돼 있는, 강대국 중심의 역사 정리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다른 관점, 이를테면 미국사 같은 경우도 미국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내부 문제, 인디안 학살이라든지 멕시코 영토를 사실상 빼았아 영토를 확장한 것, 이런데 관심을 많이 뒀다. 그리고 미국이 그 이후에 세계로 계속 확장해가면서 패권국가로 서 가는 과정이 대부분 전쟁을 통해서 되는데, 그래서 나는 미국을 ‘전쟁국가’라고 표현했다.

이런 과정들에 대해 비판적 관점에서 정리가 돼 있긴 하지만 일반인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정리하려고 생각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과거역사에 대해서 은폐되거나 왜곡됐다는 표현들을 쓰는데, 사실 자체를 정확히 밝혀내는 게 과거사정리위원회 목적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했던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과도 맥락이 같이 닿는 부분이 있다.

당나라의 저강도 전쟁 전략이 고구려 멸망 초래

□ 고대사와 중세사를 정리하면서 새로웠다 할까, 눈에 들어온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특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없는데, 이런 생각은 들었다. 우리 한국사를 외세에 의한 침략의 역사, 한의 역사라고 표현하는데, 외국으로부터 침탈당한 횟수가 930회 정도 된다고 하더라. 적은 횟수가 아니고 상당히 수난 받았다 이야기할 수 있다.

세계사를 보면서 또 다른 측면에서 드는 생각은 그 어떤 지역에서도 전쟁이 없었거나 수탈을 받지 않고 침략을 당하지 않은 나라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한국사를 특별히 “수난의 역사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 들었다.

한국사가 다른 나라처럼 확장의 역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우리가 당하기만 한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별로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 고대에는 우리도 강대국에 속했나?

■ 고구려 같은 경우는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표현하는데, 고구려가 강국으로 있을 당시에는 5개 정도 강국이 있었다. 중국의 남.북조(북위, 남진 등)와 고구려, 유연, 지금 티벳 쪽인 토혼욕, 그 중에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중국이 완전히 통일된 뒤 당나라의 경우는 세계적인 제국이었으니까 그때는 고구려와 당의 힘의 관계는 사실 차이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다 멸망하지 않았나? 당나라도 고구려 침공에 국력을 소진했다.

■ 나는 당나라와 고구려 전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나라가 처음에 대군을 끌고 가서 안 되니까 그 다음에 계속 소모전, 저강도 전쟁을 한다. 거의 25-30년 정도 매년 침공한다. 사실 고구려가 그걸 막으려고 2,30년 동안 시달렸다.

사실 고구려가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당나라와 상당한 힘의 차이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국력이 상당히 소진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는 연개소문이 죽고 내분이 일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큰 차원에서 보면 당나라의 저강도 전쟁 전략이 결국 고구려 멸망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바로 연결할 수 없지만 지금 북한 같은 경우도 미국이나 남한, 이런 관계에서 벌써 20년 이상 핵문제로 시달리는데 좀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든라.

□ 근현대사도 전쟁과 혁명이 점철됐다. 물론 이 책의 시각은 패권과 저항을 주로 다뤘지만 현대사의 굴곡이 커 보인다. 근현대사를 정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역시 근대의 주역은 유럽 중심 서구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역이라는 의미는 소위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서양이 세계사의 중심으로 아주 빠르게 서면서 결국 세계사를 주도한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든다.

내부에서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서 힘을 기르고 외부적으로 결국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가면서 식민주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세계사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 전까지는 세계사가 단절, 분리돼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 같은 경우는 지리적 이유도 크지만 교류가 되긴 해도 좀 다른 차원의 역사가 독자적인 체계를 가지고 구축이 돼 있었다. 그러나 근대로 오면서 통합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무너지면서 서양 중심의 세계사가 왔다.

그런데 그것이 최근에 와서 다시 회복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중국이 부상하는 과정이 결국 다시 그걸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통합된 세계사에서 중국의 역할이나 위치가 새롭게 다시 부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진정한 의미에서 통합된 세계사’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 그 이전부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교류가 활발했고,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는 굉장히 연결돼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었다.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인도, 중근동, 서양이 각기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굴러왔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세계사는 어느 정도 단절돼 있고 분절돼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근대로 오면서 서양을 중심으로 해서 확장 과정에서 통합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역시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지금은 그야말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지 않나. 여러 가지인데, 과학기술의 발전, 세계 체제, 그리고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자본주의로 시장이 통합된 결과 등이 총합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진짜 지구촌이라는 표현이 거의 틀리지 않게 쓰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축적된 문화역량 주목

□ 세계의 통합은 더 깊이, 실제적으로 통합됐는데, 그것이 어떻게 서양 중심의 세계를 변동시키는가? 중국이 자력으로 한 것인가? 진정한 통합이 심화될수록 동양의 가치가 어떻게 회복되는 건가?

■ 예를 들면 근대세계를 서양이 주도했다고 하지만 오랜 역사 과정에서 축적된 문화역량이라든지 이런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게 그냥 어느날 갑자기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된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중국이 그전 2천년 동안 세계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그런 역량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3,40년 만에 경제개발을 통해서 빠르게 부상했다. 물론 현상적인 내용은 맞지만 긴 역사과정을 보면 그럴 수 있는 역사적 과정에서 축적된 자기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것이 어느 조건과 맞아 떨어지면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온 것이라고 보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동아시아가 이미 역사과정에서 축적된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동아시아가 세계사의 중요한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 동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하나?

■ 그걸 뭐라고 표현할지 잘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종합적인 내용들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같은 경우 관료를 뽑기 위해 이미 한나라 때부터 시험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당나라 때면 시험제도가 정착해서 관리를 채용할 수 있는 엄격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그게 하나의 단적인 예인데, 관료체계라든지 국가체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시스템화 하는 과정 이런 게 동양이 일찍부터 만들어졌다.

중동의 경우도 페르시아는 사실 그리스 보다 훨신 문화역량이나 국가를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일찍부터 있었다. 서양의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시험제도가 19세기에 나온다. 그전에는 관리 뽑는 제도 같은 것이 전혀 안 돼 있었던 거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한 나라 또는 한 민족, 한 지역에 어떤 문제를 받아들여서 소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늦게 도입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서 우리 형편에 맞게 발전시키고 소화시켜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기술이라는 점에서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꼭 같이 비교할 수 없지만 근대 정치학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정도의 내용이 상당 부분 이미 정리돼 있었다.

□ 한반도가 현대사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반도 분단과 통일이라는 화두에 대한 맥락은 어떻게 보나?

■ 세계사를 쓰면서 당연히 우리 역사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한반도가 계속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도 그렇고, 90년대부터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도 그렇다.

이 두 가지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강대국들이 전부 관련돼 있다. 최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결국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이 다 관련돼 있고 한반도가 역사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상당 기간 이게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서 세계사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 조건에서 보면 남과 북이 분단돼 있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서 통합해나갈 힘은 없는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가 뭔지는 내가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일단 역사를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꼭 같이 비교할 수 없지만 고구려와 당나라가 전쟁할 때 사실 고구려가 2,30년 동안 계속되는 전쟁과정에서 국력이 소진됐다.

거기에 더해 신라는 어떻게 보면 한반도 한 귀퉁이에서 백제한테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 고구려를 찾아갔는데 고구려에서 신라의 요구를 안 들어주고 옛날 고구려 땅을 내놓으라면서 김춘추를 가둬버리니까 김춘추가 돌려주겠다고 하고 도망갔다.

신라가 결국 붙을 데가 당나라 밖에 없으니까 생존을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은 거다. 신라는 당나라에 완전히 모든 것을 다 바치는데, 선덕여왕이 직접 수를 놓아 바치고 시도 바치고, 그것밖에 살길이 없었으니까.

내가 볼 때는 신라가 통일을 하겠다는 관점보다는 자기들 생존을 위해서 당나라하고 손을 잡은 거고 당나라도 그런 관점에서 고구려를 치기 위해서 백제를 먼저 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백제를 친 거고, 백제가 망하니까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는 배후가 어려워진 거다.

그렇게 해서 결국 고구려가 망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신라가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일정한 자주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 뒤따르는 것 같다. 당나라가 한강이남 백제 땅까지 완전히 내놓으라고 하니까 신라가 거기에 대해서 저항하는 ‘나당전쟁’이 벌어지는데 나당전쟁 과정에서 신라가 그나마 자주의식을 일정부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 3국과 지금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교훈으로 연결시켜 사고해봐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북한 50년사』 증보판 준비

□ 『북한 50년사』 1,2권을 냈는데, 시간이 꽤 지났다. 새롭게 정리할 계획이 있나?

■ 지금 증보판을 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99년에 냈는데 내용이 98년도까지 정리돼 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보충해서 증보판을 내려고 준비한다.

요새 자료 읽고 글도 약간은 정리를 했는데, 그 당시 봤던 것과 다른 생각도 들더라. 내가 세계사를 정리하면서 동아시아 역사를 봤던 것과 연결되는 사고도 좀 있다. 그래서 역사는 역시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재의 역사라는 말이 실감이 많이 간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증보판 계획을 알려 달라.

■ 특히 2000년대 북한의 정치, 경제, 외교에 초점을 맞춰서 정리하는데 정치 같은 경우 흔히 얘기하는 선군정치 이런 것이 되겠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금 ‘경제-핵 병진노선’ 이렇게 정리 됐는데, 그렇게 정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외교문제에서는 흔히 얘기하는 핵무력 증강을 통한 협상력의 강화, 그것을 통해 생존을 담보받기 위한 과정인데 어떻게 보면 사실 북한에게 굉장히 처절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외교과정에서도 그야말로 전쟁과정이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문가들의 글을 많이 보고 잘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10권의 100꼭지 중에서 인상적이거나 소개하고 싶은 꼭지는?

■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이 글을 쓰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옛날에 기억을 했었는데 까먹었던 내용들 이런 것들이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내가 미션 고등학교 나오고 불교 대학을 나왔는데, 종교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되는 게 많더라.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고등학교 때 많이 이야기 들었는데 이글을 쓰면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경험이나 생각, 이런 게 반영되기도 했다. 석가모니도 한 꼭지 썼는데 대학 때 생각했던 것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반영되기도 했다. 그런 게 한편으로는 인상에 남는 부분들이다. 어떤 글을 쓴다는 게 결국 자료만 가지고 쓰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종합적인 반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세계사 전체를 다루다 보니까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 중 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나?

■ 우선 고대, 상고시대라고 하는데, 내가 정리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신석기 혁명’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의외로 풍부했다.

신석기 시대, 그리고 농경사회로 정착하는 과정이 기간이 워낙 길기 때문에 그렇기는 한데, 우리의 사고에서는 거의 지워져 있는 내용들인데, 그 시대에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많은 발명이나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기술들이라든지 이런 게 많이 만들어졌더라.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하루하루 매몰돼 사는데, 참 인간의 역사라는 걸 보면 어떤 경우는 한 5천 년 전의 사람의 삶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집트 파라오 같은 경우도 소설 같은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생생한 삶이나 이런 게 지금 우리들의 삶하고 사고방식이나 고민이나 이런 게 결코 다르지 않구나 생각이 많이 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도 써보고 싶다”

□ 역작을 완성했는데 몸무게는 줄지 않았나?

■ 우스운 말로 우리는 ‘밥심’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내가 워낙 잘 먹는 편이다. 일을 하면서 안 먹고는 못 견디겠더라. 밥을 열심히 먹어서 몸무게는 별로 안 빠졌다. 그 대신 앉아서 일하니까 배가 약가 나왔다.

□ 다음 구상은 무엇이고, 앞으로 주력하고 싶은 부분은?

■ 우선 북한 현대사 증보판을 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동아시아사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구체화된 것은 아니고 구상이 있는 것이고, 글을 쓰려면 상당히 오랜 동안 생각을 하고 자료를 부분적으로 보고, 딱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집중해서 쓰는데, 당장 쓰는 계획은 없는데 그걸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조건이 되면 『스토리 한국사』도 한번 써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전문 연구가가 되고 싶다거나 이 분야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없나?

■ 그런 생각은 했는데, 이미 나이가 너무 들어서 연구 전문가가 되기에는 조건이 너무 안 되고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욕심은 버리고 일반인들이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교양도 좀 늘리고 역사에 대한 인식이나 폭도 넓히고 시각도 좀 괜찮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그렇게 도움을 주는 책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주로 역사 영역인가?

■ 인간이란 무엇인가도 써보고 싶다. 그건 내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건데 주로 철학자들, 사상가들 중심으로 해서 인간을 어떻게 봤던가, 이걸 전체적으로 정리해보고 그 다음에 내가 보는 인간을 곁들여서 하나 써보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사실 방통대 공부가 도움이 많이 된다. 방통대를 영문과도 졸업하고 중문과도 졸업했고 지금은 문화교양학과에 다니는데 문화교양학과가 그야말로 교양과목들 거의 다 포괄하고 있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문화인류학, 사회학, 이런 분야들을 좀 종합적으로 모아서 하는 건데, 나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더라.

□ 이 책을 내놓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나 메시지가 있다면?

■ 글쎄, 제일 많이 생각 드는 것은 역사의 현재성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경우도 중국과는 동북공정 문제, 일본과는 독도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이 문제들은 고대와도 관련이 있다.

‘임나일본부설’ 같은 경우 그것은 거의 깨졌는데, 어쨌든 이런 게 사실은 현재의 역사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같고, 조금 더 올라가면 일제 식민사관과 연관돼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결국 역사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결정하는데서 굉장히 중요한 거울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라.

□ 『스토리 세계사』가 10권이나 돼 단숨에 읽기는 부담스럽다. 10권을 꼭 다 읽어야 하나?

■ 그럴 필요는 없다. 다 독립돼 있으니까 한 권씩 한 권씩 따로 봐도 되고, 한 꼭지씩 봐도 괜찮다. 그 자체로 독립된 방식으로 스토리가 되도록 쓰려고 노력했다. 교양차원에서 하나씩 둘씩 시간 날 때 읽어보면 괜찮을 것이다.

□ 하루 12시간씩, 거의 모든 생활을 집필에 집중했는데, 가족이나 주변을 돌볼 여력이 없었겠다.

■ 가족이야 뭐 별로 문제가 안 되는데, 우리는 다 각자 자기가 알아서 하니까. 끝나고 나니까 약간 허망하더라. ‘다음에 뭐 해야지’ 이런 생각도 들고 시간이 약간 남으니까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 한동안 뭐랄까 약간 공황상태 비슷하게 그런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 회복됐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