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햇살을 받으며 춤추듯 넘실거리는 저 차디찬 강물에 나는 이제 별 성과 없이 지쳐버리기만 한 나의 내장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씻으려 한다.”

먼길을 떠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설레임과 부담감을 안기게 마련이지만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며 마주친 영하 40도에도 얼지 않는 강물 앞에 선 한 사내의 감회는 자못 비장하다.

매서운 추위와 광활한 대지, 비극의 근현대사 등으로 뇌리 깊이 각인된 시베리아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응시하며 차가운 물에 내장을 씻어내기라도 해야만 하는 그는 시대를 노래하는 가수 이지상.

▲ 이지상 신작 『스파시바, 시베리아』, 삼인, 267쪽. [사진제공 - 삼인출판사]

그가 ‘철도를 통해 분단을 극복하고 대륙을 꿈꾸는’ (사)희망래일과 더불어 다섯 번씩이나 기타 하나 메고 시베리아 지역을 찾아다닌 기억들을 오롯이 한 권의 책 『스파시바, 시베리아』에 담았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욕과 비슷한 ‘스파시바’는 러시아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으로, 저자는 책의 후기에서 심지어 “엄마 이거 욕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스파시바”를 연발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역과 조.중접경지대,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가 우리의 관심사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과 북의 교류가 끊긴 시점과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북한 지역을 빼놓으면 섬에 불과한 한반도 남단에서, 북녘 땅에 발을 내딛을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이들이 그나마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들로 눈길을 돌린 탓일까.

“온전한 대륙인으로서의 삶”을 그리워한 저자도 “제 민족의 땅은 밟지도 못하고 기차 여행도 아닌 해외(海外) 여행을 떠나온 사람, 고작 바이칼 호수보다 조금 더 큰 섬나라에서 온 여행객”일 수밖에 없다는 탄식을 한자락 깔고 있다.

어쨌든 저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고, 자신의 내면과 역사와 마주하며, 술과 기타와 동료들과 함께 낯선 곳의 여정을 기록했다.

“사는 날은 언제나 슬펐지만 나도 내 슬픔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무작정 날아온 길이었다. 그리고 무작정 달려야 할 길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긴 여정 동안 나는 내 슬픔의 근원을 알고 싶다.” 물론 저자는 “그 또한 내 욕망의 소산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동트기 전의 미래를 향해 예민한 촉수를 더듬거려야 하는 예술가의 천형을 나누어진 저자의 내면은 언제나 슬프다 못해 비장하고, 분주한 내적 성찰의 칼날은 아프다 못해 처연하다.

“왜 그리운 것들은 다들 지나온 발자국의 뒤편을 서성거리는지” 따위의 음유시인 내면의 깊숙하고 복잡한 갈래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앙가라 강변과 바이칼 호수, 이르쿠츠그 자작나무 숲과 크렘린 궁 등 이름만으로도 경이로운 곳들을 그의 안내로 따라가는 인문학 기행은 풍성하다.
 

▲ 상쾌하다 추워서 더 아름다운 풍경들(이지상). [사진제공 - 삼인출판사]

특히 그가 역사 속에서 호명해낸 한명 한명의 특별한 이름들은 어느 여행안내서나 심지어 역사교과서에서조차 제대로 알기 쉽지 않은 아픈 우리의 근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들춰보이고 있다.

일찍이 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노래를 통해 되살아난 ‘조선 청년 이우석’에서 확인된 그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묵직한 관조는 이 책에서 ‘시베리아 동토에 새긴 이름들’로 본격 등장한다.

“1937년 9월 9일 새벽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가축 칸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어디쯤이라는 목적지도 없는 긴 여행을 떠난 유랑자 홍범도를 아는가”로 시작되는 그의 ‘인물 열차’는 최재형, 김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이동휘, 계봉우, 강우규, 이용, 이범진, 이인섭, 김경천, 김유천, 한창걸, 박일리아로 끝없이 이어진다.

실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진 중국이 ‘항일전쟁승리 기념일’을 앞두고 최근 공개한 ‘저명한 항일영웅열사’ 300명에는 조선인 허형식, 이홍광, 이학복, 여전사 이봉선, 안복숙 등이 포함됐지만 국내에선 이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현실임에랴.

“평화로 가는 긴 여정에서 부득이 전사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숱한 사연과 더불어 차르 체제에 도전한 혁명가 발콘스키, 저자가 ‘공력’을 부러워하는 러시아 시인 불라트 오쿠자바, 지금은 동상으로만 남은 불세출의 혁명가 블라드미리 일리치 레닌까지 그의 눈길과 마음을 붙잡는 이름들은 이미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다.

저자 스스로는 ‘중얼 가요’를 중얼거린다고 할진 몰라도 그가 그저 그런 노래하는 가수에 머물지 않고 시대를 읇조리는 음유시인의 칭호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이같은 깊고도 광활한 인식의 지평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과거의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미래에서 왔으나 주위를 둘러보면 불의와 반목, 그리고 전쟁이 멈추지 않는 미래였다. 레닌의 동상과 그 안의 역사를 보면서 다시 미안해졌다.”

저자는 아직 전쟁이 멈추지 않은, 아니 포연이 감도는 한반도 남단에서 제 민족의 땅도 밟지 못하고 떠나왔기에 일상을 떠나온 홀가분한 여행객으로만 머물 수 없었던 것일까.

여행 간간이 보드카를 들이키고, 기타를 두드리며,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을 카메라에 담는 작은 여유들, “이만한 시간이라면 내 삶의 몇 부분 정도는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나도 느긋해진다”는 대목이 그나마 얼핏얼핏 스치는 데서라도 위안을 얻어야 할까.

어딜 가더라도 도저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내면의 비장미와 추위와 수면부족을 무릅쓰는 분발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심사겠지만, 다섯 번의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의 약간의 버거움은 읽는 이의 작은 불편을 살지도 모르겠다.

▲ 지평선 넘어 지평선 거기에 살포시 자리잡은 노을 한줌(이지상). [사진제공 - 삼인출판사]

저자와 함께 떠나는 시베리아 여행길이 아직은 깊은 성찰과 아픈 근현대사의 기억에 젖어 있을지라도 분명 시베리아는 우리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을 터.

“대륙을 품고 있으니 이미 이 땅은 대륙의 시작”이며, “이 책을 통해 함께 대륙을 꿈꾸게 될 미래의 독자”를 저자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산 또는 목포나 여수에서 기차를 바꿔타지 않고도 시베리아 지나 유럽까지 달릴 수 있을 때 저자는 『랏브스뜨레체(반갑다) 시베리아』를 다시 써낼 수 있으려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궤적과 함께 밤을 지새며 드넓은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둔 그의 낮은 읇조림은 언젠가 큰 메아리로 되살아올지 모른다. 소곤거리는 말이 더 멀리 퍼져나간다는 경구처럼.

오는 12일 오후 7시 서울 홍익대 인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책 읽어주는 콘서트’ 『스파시바, 시베리아』가 열린다. 저자의 노래 외에도 정호승 시인, 더숲트리오(김창남, 김진업, 박경태) 등이 출연한다. 시베리아 한기로 더욱 단단해진 ‘조선 청년 이우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만주벌에서 풍찬노숙하던 조선청년 이우석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까지 병서를 다 옮기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사들인 신식총
백두산 화룡혼 청산리 가져왔지

삼일 밤낮을 싸워 청사를 빛냈건만
마침내 부대원들 뿔뿔이 흩어져
노스케 한인부대 찾아갔지만
볼셰비즘에 물든 사람들과 다투다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했지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했지

눈보라 몰아치고 달님도 잠든 날밤
시베리아 탈출한 그 사내 다시 만주벌을 누비는데
조국은 해방됐지 그러나
상처뿐인 몸뚱이로 엿장수가 되었지

의혈남아 기개와 순정뿐인 그 사내
보상심사에서 빠지더니 18년 꼭 18년만에
오만 천원 씩 연금받았지

난곡 철거민촌 단칸 셋방에서
부인은 파출부로 여든일곱 그 사내
막노동판에서 노익장 자랑한다지

공장에서 첫월급 12만원 받아온 외아들
만주벌에서 풍찬노숙에서 하던 조선청년의 기쁨이지
만주벌에서 풍찬노숙에서 하던 조선청년의 마지막 희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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