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1초 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토록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던가 처음 알았고, 저게 어떻게 될까 싶었던 배우들의 눈물 연기쯤은 이제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 같아졌다.

마음 밑바닥이 짙푸른 바다 밑 색깔이라 어디선가 늘 그렁그렁하게 물이 고여 있는 느낌으로 지난 한 달여를 보냈다.

딱히 끌리는 영화도 없었지만, 색깔옷을 입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져 꺼내 놓은 봄옷도 그대로 묵혀둬 온 터인지라 극장으로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온 나라를 초상집으로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고 떠들지 않아 나라 경제가 침체되었다고 타박을 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한들 마음이 탐탁할까.

그렇게 망설이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평이 좋아서 충격과 슬픔으로 일시 정지된 일상에 소일거리는 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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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특별할 게 없었다. 우연히 살인 사건의 현장에 있게 된 남자가 살인 피의자의 누명을 쓰고 그를 구하려는 사람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 모두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자기 때문에 이 사건에 휘말린 동행과 갈등하고 협력하며 음모의 실체를 파헤쳐 간다.

이 단순한 줄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은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로, 영화의 결을 풍부하게 채우고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주연과 조연의 구분 없이 모든 배역이 빛을 발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 영화를 탄탄하게 이끌어 가는 것은 바로 이런 배우의 힘이다.

묵직하고 투박한 액션을 밀고 나가는 류승룡의 연기도 좋지만,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배역과 하나가 된 진구의 연기는 뭉클하다.

영화는 가히 진구의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기는 김성령의 강렬한 연기가 전반부의 정점을 찍는다면, 후반부에는 터질 듯이 차오르는 분노를 담은 조은지의 연기가 숨은 한 방이 된다.

이렇게 영화는 제몫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한 편의 멋진 액션 영화가 되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사건의 조각들을 맞춰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나면 영화는 오롯이 액션에 집중하게 만든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액션으로 알맹이를 채운 영화는 잘 키운 근육을 가진 남자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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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가슴이 뻐근하다. 우리가 눈앞의 사건과 액션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저 뻔한 스토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개연성을 관객에게 수용시키고 있다.

우리는 일말의 슬픔도 분노도 없이 타의에 의해 삶을 유린당한 자들의 절박한 사투를 관망하고 있으며,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대결에 시선을 뺏긴 나머지 저 모든 일이 어디로부터 연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뻔한 얘기지만,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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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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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뻔한 얘기란, 이렇다.

부모의 이혼 이후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의 풍파를 헤쳐 왔을 여훈과 성훈 형제는, 한 사람은 튼실한 몸을 밑천 삼아 돈에 팔린 용병이 되어 이국을 떠돌았고, 틱 장애를 가진 동생은 여기 남아 보호 관찰자 신세가 되었다.

필시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교도소를 들락거렸을 테고, 그러다 보호 관찰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텐데, 물론 그 모든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고 하다못해 울어 줄 가족도 없는 장애인,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소모품으로 버려져도 누구 하나 슬퍼하거나 항의할 리 없는 그의 변변치 못한 처지는 이 탐욕스런 사회에서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만만한 것이 된다.

태준은 다른 계층이다. 경제적으로 유족하고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며 같은 병원 의사이자 임신 중인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가 뜻하지 않게 범죄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래도 그에게는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공권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순진한 기대는 그의 눈앞에서 스러진다. 그는 정의와 진실이 어떻게 뒤통수를 맞는지 목도했으며, 탐욕이 장악한 이 사회의 시스템 앞에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가 자신과 가족을 방어할 방법은 없으며, 그는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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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의 삶을 한순간에 침몰시킨 이 음모의 정점에 탐욕의 화신 송기철 광역수사대 반장이 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첫인상은 조금 유들유들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 냉철해 보이기도 한다. 여타의 악역들처럼 온몸으로 악의 카리스마를 뽐내는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도 아니고, 말투나 행동에서 타고난 사악함이나 광기가 엿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직무에 충실하되 적당한 선에서 일을 마무리짓고 싶어 하는 공무원 스타일로 스크린으로 걸어들어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

그렇다고 그가 살인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광역수사대 반장이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사익을 도모했을 뿐이고, 그것은 기껏해야 직권 남용죄쯤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탐욕에 눈먼 그는 살인 청부를 업으로 삼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것들은 가차없이 제거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그는 결국 ‘그 시작은 소소한 직권 남용 수준으로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공권력을 사유화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되어 비교 불가능한 비정함으로 창대하리라’가 되었다.

일명 관피아로 일컬어지는 부정과 부패의 네트워크가 국가 시스템을 장악한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천박한 구호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며 공공성의 가치는 상실된 나라, 경쟁적으로 사익을 도모하는 것이 국부의 축적인 양 오도되며 공익이란 개념이 사라진 나라, 한 마디로 거대한 탐욕의 용광로로 화해 버린 가치 전도의 나라에서 송기철 같은 인간이 뭐 그리 놀라울 것이 있겠는가.

그는 광수대 반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능력 있고, 상황 판단력과 추진력도 좋아 수하들의 실책을 한 방에 정리할 줄 알며, 경찰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하여 자신에게 승복하지 않는 여훈을 향해 “감히 공권력에 도전을 해?”라고 분개한다.

탐욕에 눈멀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유능한 경찰관이다, 끔찍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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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이는 ‘뻔한 이야기’의 내용이다. 그럼 그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얌전하게 선실에서 기다린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선량한 틱 장애 청년은 순순히 여자를 내어 주고 탐욕의 제물이 된다. 이 사회의 대접받는 계층으로 살아온 의사 청년도 탐욕의 총구 앞에서는 열외가 되지 못한다.

이 사회에 발붙일 데 없었던 이들이든, 불만 없이 이 시스템을 누려 온 이들이든,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세월호의 승객이 될 수 있다.

양심이나 윤리라는 평형수를 빼버린 채, 고정 장치 없는 컨테이너 박스처럼 규제 풀린 이윤 추구의 욕망이 과적된 사회에서, 참사는 예견된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이라는 여객선에서 국가 권력은 끊임없이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눈앞에서 부패가 무엇인지, 비열함이 무엇인지, 부도덕이 무엇인지, 무능함이 무엇인지, 무책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중략> 어쩌면 우리들 고등학교 2학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세월호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말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학생 수습기자, <아하 한겨레>, 334호) 이 글을 쓴 기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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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영화는 재미있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는 인간 병기 여훈이 아니다.

거대한 탐욕이 우리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을 때, 동생을 지키고 아내를 구하는 일이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떨어질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떨던 희주는 성훈을 이해하게 되면서 감싸 주고, 다른 방법이 없었을 성훈 역시 그녀를 염려하고 미안해한다. 여훈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고 복수의 질주를 시작하며, 여훈이야 누명을 쓰든 말든 여훈 때문에 아내가 납치된 게 더 억울했을 태준은 자신과 아내가 표적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누구와 손잡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결말은 대개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게 마련이지만, 액션의 속을 드라마로 실하게 채운 이 영화의 결말은 좀 더 긴 여운을 남긴다.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안전지대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탐욕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탐욕스런 사회에서는 항상 인간의 생명보다 돈이 중요시된다는 사실이 ‘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의 불감증을 넘어, 성훈과 희주의 교감이, 여훈과 태준의 연대와 반격이, 앞서 인용한 학생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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