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개봉 직후에 영화를 봤는데, 그 동안 너무 바빠 글 쓸 여유가 없었다. 글쓰기를 계속 미루면서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면 이제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검색해 보곤 했다. O.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마지막 잎새 한 장이 절망 속에 꺼져가는 존시의 생명을 지탱하는 가느다란 끈이 되었듯이, 그래도 상영관이 한 곳이라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영화의 진실이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개봉관이 없다 해도, 그게 이 싸움의 끝일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는 개인택시 기사인 아버지 차도 바꿔 드리고 남동생 학비도 제 손으로 대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윤미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입사한 지 2년 만에 건강하던 윤미는 급성 백혈병 환자가 되었다. 뜻밖의 불행에 충격과 실의에 빠진 윤미와 가족들이 이 개인적 불행에 드리운 석연치 않은 점들에 의문을 품었을 때는 이미 윤미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의 초점은 윤미의 비극이 아니라, 윤미의 죽음 그 이후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깊은 슬픔과 고통이 어떻게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집념으로 화하는가가 절절하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것은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와 그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이다.

영화는 투자에 어려움을 겪다가 시민단체와 개인이 참여한 굿펀딩과 1만 명의 제작두레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다. 출연 섭외도 쉽지 않았다는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노개런티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단다. 원제는 삼성의 유명한 이미지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이었지만, 관객들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법적 문제를 우려하여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꿨다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영화 개봉시 예매율도 높았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상영관 수가 축소되어 삼성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일었고 단체 관람 예매와 대관이 거절당하는 등의 문제로 공정거래위에 제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영진위의 요청으로 개봉관 확대가 이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삼성의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다지만, 영화의 상영은 기적이라고들 한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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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영화가 개봉되고 23일 삼성의 첫 반응이 나왔다. 제목이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였다. 삼성의 공식 블로그인 ‘삼성투모로우’에 삼성전자 DS부문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이 올린 글이었다. 그는 자신이 20년 동안 자랑스럽게 일해 온 회사가 진실을 숨기기 위해 돈으로 유가족을 회유하고 증인을 바꿔치기해 재판의 결과를 조작하려 하는 나쁜 집단으로 묘사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정부의 환경 기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그 사업장에서 일해 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며, 영화에 대한 삼성의 침묵은 영화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동료에게 닥쳤던 불행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시비를 가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그의 글은 악의와 오해로 매도당하는 진실 앞에 의연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뭇 잔잔한 감동조차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속한 회사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그는 정녕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 앞서 2월 6일에는 또 다른 ‘또 하나의 가족’이 인터넷에 영화를 본 후기를 올렸다. 황유미 씨가 죽은 2007년 19살 나이로 삼성의 가족이 되어 7년 동안 반도체 공장에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는 여성이었다. 7년 동안 단 한 번도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못했다는 그는 병마에 시든 몸을 안고 퇴사한 지금, 한 달에 80만 원 벌어도 좋으니 마음 편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자신이 처음 취업 나가던 날 이불 보따리 싸서 자신을 버스 태워 보내면서 손도 못 흔들고 울던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가 자신이 살면서 본 영화 중 최고라며 영화 만들어 주신 분께 정말 감사한다고 글을 맺었다. 두 사람의 직급 차이 때문일까? ‘또 하나의 가족’들이 아는 삼성은 정반대의 얼굴을 지닌 다중 인격자 같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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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5일 삼성의 가족이 된 고 황유미 씨는 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3월 6일 수원병원에서 치료받고 속초의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영동고속도로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였다.

유미 씨와 2인 1조로 일하던 이 역시 2006년 6월 같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두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후임자는 임신 중이었는데 아기가 유산되는 바람에 사표를 썼고, 그 뒤를 이은 후임자가 유미 씨와 한 조가 되어 일했으나 그 역시 유미 씨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무슨 공포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아버지 황상기 씨는 CBS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영화가 관객들 눈높이를 고려해서 실제보다 수위를 낮췄다고 했다. 삼성의 협박은 집요했고 회유하기 위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끌면서 거짓말과 은폐로 일관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 블로그의 김 부장은 고인과 유가족과 접촉한 당시 인사 담당자를 잘 아는데, 그는 고인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고 했다. 유미 씨의 아버지는 그가 몇 번씩이나 집에 찾아와 협박한 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김 부장은 글에서 삼성이 직원의 불행 앞에 예를 갖추느라 근거 없는 비방과 허위 사실 유포에도 묵묵히 인내하고 있다고 썼다. 유미 씨의 아버지는 삼성과의 대화 테이블에서 삼성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죽은 이들을 위해 묵념을 제안했다가 그런 것을 하려면 집에서 하고 오든가 당신네들 나가서 하고 오지, 왜 여기에서 하자고 그러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증언했다.

김 부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삼성의 다중 인격 장애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삼성의 직원들에게도 전이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람의 도리로서 그럴 수 있냐는 황상기 씨의 항변 앞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과 부끄러운 대한민국 최고의 악덕 기업 삼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라는 이름에 미련이 남아 해명의 기회를 주고 싶고 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싶다면, 그는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아니면 그 역시 다중 인격 장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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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놓인 진실은 훨씬 엄혹한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의심 환자들은 200여 명에 이른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그들은 원인도 모른 채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는 92명이다. 그 중 73명이 삼성에서 일했다. 영화는 삼성을 둘러싼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우리 옆의 이 믿기지 않는 괴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한다.

현실은 여전히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삼성전자 김 부장이 일한다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얼마 전에 그 앞에서 황유미 씨 7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자리에 내걸린, 삼성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정 사진은 슬프기보다, 무섭다.

성실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근무 환경에 죽음의 공포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세계초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독성 화학물질 목록을 영업 비밀이라고 밝히지 않는 게 법정에서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기막힌 나라의 현실, 이런 것들은 괴기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정작 더 무서운 것은 눈앞에 펼쳐진 진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는 우리 자신의 두려움이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 삼성’이라는 위세 앞에 주눅 든 우리의 의식, 삼성의 승승장구가 우리 모두의 성공인 양 받아들여지는 허위의식에 짓눌려 있는 우리의 허약한 자존감이야말로 진실의 눈을 가리고 우리 스스로를 이 범죄의 공범으로 몰아넣는다.

이경영이 연기하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존경받는 팀장 교익의 딜레마는 그 자신 역시 피해자지만 회사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평생을 회사에 바쳐 온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게 된다는 데 있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 회사의 결백을 납득시키고 싶은 삼성전자 김 부장도 또 다른 교익일지 모른다.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는 민감한 현실 문제를 다루지만 결코 기세등등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의외의 신파가 고슴도치처럼 곤두서 비판의 칼날을 벼르고 있는 관객을 속절없이 무장 해제시킨다. 영화는 급작스레 닥친 불행 앞에 망연자실하고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 무너져 내리면서 무엇이 진정 자식을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어 고뇌하고 갈등하는 부모의 모습을 투박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싸움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며,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소박한 요구라는 사실은 애잔함을 더한다.

영화는 말한다. 멍게는 태어날 때는 뇌가 있는 동물이었는데, 바다에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리고 식물이 되어 버렸단다. 영화가 의미심장하게 제시하는 멍게 이야기는 삼성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이 싸움은 이미 지는 싸움이라는 말로 들린다. 삼성 앞에서는 법정도 기고 언론도 기고 전문가도 긴다. 알아서 긴다.

삼성이 거대 기업이라 한들 그 힘이 그토록 클까. 삼성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삼성이 행사하는 외압을 운운할 때 삼성이 우리 사회를 속속들이 통제하는 엄청난 빅브라더일 것이라는 믿음이 스스로에게 자발적인 족쇄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딸을 잃고 더 많은 딸들과 그 가족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인 아버지의 쉽지 않은 결단 못지않게, 자신의 존재 근거인 회사를 부정하진 못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저버리지 않으려던 교익의 고뇌는 멍게의 바다에서 건진 작지만 소중한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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