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독일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른바 ‘드레스덴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더 꼬이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선언에서 회심(會心)의 대북 제안으로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 주요 내용으로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북한에 전력·통신 인프라 제공, 남북교류사무소 설치 등이 들어 있습니다.

애초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와 독일 순방을 앞두고 이번 여정이 ‘통일기행’이 될 것이라며 들썩거렸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마냥 기대에 매우 못 미칩니다. 기대는커녕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 정도의 명분과 내용으로 북측을 유인하려 했을까요?

한마디로 북측이 원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북측의 현실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최소한 통일의 파트너인 북측을 배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안인 5.24조치 해제나 북측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왜 포함하지 않았냐고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무언가 제안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상대편을 존중하는 우호적인 분위기라도 연출해야 하는데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즉, 드레스덴선언은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라며 ‘꽃제비’와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라며 탈북자 등을 거론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핵포기’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북측이 싫어하고 아픈 곳만을 콕 찌르니 이는 제안이라기보다는 성토에 가깝습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때도 북측은 일단 ‘허튼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이미 남북 당국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던 탓인지 그해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결실을 맺은 바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김 전 대통령이 베를린자유대 연설에서 북측에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험담 없이 광범한 대북 지원과 남북경협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상대편을 배려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선언에서 밝힌 대북 3대 제안에 대해 북측이 사흘째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한반도 분위기가 긴장되고 남북관계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측은 지난 27일 박 대통령이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한 데 이어, 28일에도 대북 전단 살포 등 비방 중상을 들어 박 대통령의 실명비난을 지속했습니다. 30일 유엔이 북측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규탄하자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을 경고했으며, 급기야 31일에는 북측이 사전 경고에 이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사격훈련을 실시하자 포탄 중 일부가 NLL 남쪽 해상으로 떨어져 우리 군이 대응사격을 실시하고 연평도와 백령도 주민이 대피소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해 NLL상에서 남북이 주고받는 포연(砲煙) 속에 드레스덴선언이 ‘3일천하’로 유실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드레스덴선언이 유실된다면 통일대박론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아시아평화협력구상 그리고 DMZ 국제평화공원 등 박 대통령의 여러 대북정책과 구상들도 자연사(自然死)할 것입니다. 상대편의 현실을 헤아리지 않고 또 상대편을 배려하지 않는 제안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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