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철 열사 27주기 추모식이 12일 모란공원에서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대학동문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박종철 열사 27주기 추모식’이 12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주최로 유족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서울대민주동문회 발족을 준비 중인 자하연(회장 정병문, 이호윤), 이공회(회장 김명원), 김상진열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병호) 세 단체도 공동으로 참여했다.

추모식은 민중의례와 열사약력 소개, 내빈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에 이어 유족 인사말과 추모 노래를 마지막으로 한 시간여 만에 끝났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마친 추모객들은 남영동 옛 대공분실로 이동해 1987년의 고문 현장과 기념관을 참관하고 박종철장학금 전달식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 열사약력을 소개하는 박종철기념사업회 남택범 동문.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1965년 4월 1일 부산에서 박정기 님과 정차순 님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 1984년 3월 서울대 인문대 언어학과 입학. ‘대학문화연구회’ 가입
◇ 1986년 언어학과 학생회장. 학생운동과 노학연대투쟁으로 수차례 구류, 구속
◇ 1987년 1월 수배 중인 선배 박종운을 도왔다가 13일 자정경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 물고문 끝에 14일 오전 11시 20분경 사망. 당국,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 16일 화장되어 임진강에 뿌려지고 이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됨
◇ 2009년 6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와 검찰의 사과 권고 결정
◇ 2001년 서울대 명예졸업. 서울대(97년)와 혜광고(2004년)에 추모비 건립

▲ 백기완(왼쪽), 장남수(경원대 장현구 열사의 부친) 선생의 추모사.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왼쪽부터) 서울대문과대민주동문회 정병문 회장,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 이은호 서울대 55대 학생회 총부학생회장의 추모사.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먼저 추모사에 나선 백기완 선생은 “역사의 싸움터에 나서면 돌아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열사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일당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자”라고 짧게 일갈했다. 야간 촛불집회와 각종 행사에 연이어 참석해 기진한 상태의 선생은 곧바로 언 땅에 주저앉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어 서울대문과대민동 정병문 회장이 “갑오농민혁명 120주년을 맞는 올해 장엄한 대항쟁의 각오와 결의를 새롭게 다지자”고 호소했고, 추모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 역시 “열사가 그리던 세상, 그 삶을 잊지 말고 민중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제국주의와 자본에 맞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재학생 대표로 나선 이은호 서울대 55기 총부학생회장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쌍차, 밀양, 삼성서비스지회 등 민중에 대한 광범한 억압이 지속되고 있다”며 “선배 열사의 뜻을 계승하여 억압된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 함께 연대하는 싸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추모시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를 낭송하는 추모모임 ‘이끌림’ 변다영 회원.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유가협에서 활동하는 열사의 형 박종부 님은 얼마 전 선종한 한 신부님이 마지막 남긴 “길에서 지내온 나날들, 그 때가 사제로서 가장 행복했다”는 말로 간단히 유족 인사를 대신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분향, 헌화하는 유가협과 제 단체 회원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서울대민주동문회(준) 회장단.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열사의 선후배 동문들, 스물 세 살 열사 영전에 50대 전후 장년이 되어 잔을 친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헌화할 꽃을 들고 천진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열사묘역 전경.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남영동 옛 대공분실 뒤편 통로 입구에서 당시 상황과 고문용 건물로서의 용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이 날 참석한 적잖은 추모객들이 20여 년 전 극한의 공포감을 느끼며 좁은 나선형 철계단을 통해 5층 고문실로 끌려 올라갔다. 건물은 당대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서 그의 대표작인 원서동 공간사옥은 ‘지킬’로, 이 건물은 ‘하이드’로 불린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탈바꿈해 509호 고문실과 4층 박종철기념관이 내방객들을 맞고 있다.

▲ 열사가 죽어간 5층 509호실에 마련된 영정에 헌화하는 어린 아이.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4층 박종철기념관을 둘러보는 일행들. 화장한 아들을 임진강에 뿌리며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읊조리던 열사의 부친 박정기 선생은 몸이 불편해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열사가 목숨으로 지켰던 박종운은 훗날 뉴라이트 계열 새누리당 정치인으로 극적으로 변신했고, 이 날 모란공원 추모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기념관에서 열사가 남긴 편지와 유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가족.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박종철장학금을 받고 즐거워하는 성산동의 꼬마 아이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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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협이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입구에 세운 추모비.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만인을 위한 꿈을 하늘 아닌 땅에서 이루고자 한 청춘들 누웠나니
스스로 몸을 바쳐 더욱 푸르고 이슬처럼 살리라던 맹세는 더욱 가슴 저미누나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 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어두운 세상 밝히고자 제 자신 바쳐 해방의 등불 되었으니
꽃 넋들은 늘 산 자의 빛이요 볕뉘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추모시>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솟아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

차가운 날
한 뼘의 무덤조차 없이
언 강 눈바람 속으로 날려진
너의 죽음을 마주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곁에 맴돌
빼앗긴 형제의 넋을 앞에 하고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
누가 너를 앗아 갔는가
감히 누가 너를 죽였는가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우리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끝까지 살아남아 목청 터지도록 해방을 외칠
그리하여 이 땅의 사슬을 끊고 앞서 나아갈 너는
결코 묶인 몸이 될 수 없음을

너를 삼킨 자들이
아직도 그 구역질나는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이 땅 이 반도에
지금도 생생하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너

철아
살아서 보지 못한 것 살아서 얻지 못한 것
인간, 자유, 해방
죽어서 꿈꾸어 기다릴 너를 생각하며
찢어진 가슴으로 네게 약속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 땅
너의 죽음마저 거짓으로 묻히게 할 수 없다.

그리고 말하리라
빼앗긴 너를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일어서서 말하리라
오늘의 분노, 오늘의 증오를 모아
이 땅의 착취
끝날 줄 모르는 억압
숨쉬는 것조차 틀어막는 모순 덩어리들
그 모든 찌꺼기들을
이제는 끝내주리라
이제는 끝장내리라

철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동지여
마침내 그날
우리 모두가 해방 춤을 추게 될 그날
척박한 이 땅 마른 줄기에서 피어나는
눈물뿐인 이 나라의 꽃이 되어라
그리하여 무진벌에서 북만주에서 그리고 무등에서 배어난
너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는
그날
비로소 그날에야
뜨거운 눈물을 네게 보내주리라
 

<추모곡> 그날이 오면 _ 노래를 찾는 사람들(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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