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1민주구국선언', '1989년 4.2남북공동성명'.

민주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늦봄 문익환 목사의 명징한 두 개의 발자취다. '통일을 꿈꾸던' 문익환 목사는 분단선을 넘고 방북, 김일성 주석을 만나 4.2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시대의 등불이었다.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문익환 목사가 소천한 지 20년이 됐다.

문 목사 20주기를 맞아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지난 15일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인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지난 15일 성공회대에서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위원회'는 'Restart', 즉 다시 통일을 이야기하자는 주제로 2014년을 꾸리고 있다.

이재정 위원장은 "요즘 정치적 이슈가 압도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문제가 근본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부각이 잘 안 된다"며 "20주기를 계기로 통일운동의 불씨를 살리자. '왜 지금도 통일운동인가',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문익환 목사 20주기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익환 목사의 통일운동 중 가장 큰 발자취는 1989년 4.2남북공동성명이다. 당시 문 목사는 '분신 정국' 속에서 근본문제인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3월 방북,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으며 얼굴을 맞대던 모습은 유명하다.

4.2남북공동성명은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 9개 항에 대한 합의 성명'으로 이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선언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됐다. 이를 이재정 위원장은 "오솔길이 아니라 통일의 대로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북 간 통일논의는 요원하고, 한국사회에서 통일 담론은 고리타분한 영역으로 치부된 지 오래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은 '문익환 목사'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은 '다시 통일을 이야기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이재정 위원장은 "잊은 분을 되살리기보다는 그 분이 남긴 뜻이 뭐냐를 되살리고 이를 통해 8천만 겨레가 통일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재정 위원장은 "청년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다 잊었다. 잊은 분을 되살리기보다는 그 분이 남긴 뜻이 뭐냐를 되살리고 이를 통해 8천만 겨레가 통일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위원회'는 오는 17일 서울 수유리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추모예배를 시작으로 '통일 불씨 살리기'를 연다. 뒤이어 18일 모란공원 묘소참배, 3월 1일 '3.1민주구국선언' 발표 38주년 기념행사, 4월 2일 '4.2공동성명' 발표 기념 학술 심포지움, 5월 중국 용정 및 백두산 통일기행, 6월 '8천만겨레 통일맞이운동', 11월 한반도 평화기원 그림전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004년 10주기 당시 남북이 함께 서울에 모였던 행사는 열리지 못한다. 당시 북측에서는 주진구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을 단장으로 윤창조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부장 등이 참석했다.

▲ 2004년 문익환 목사 10주기 당시 서울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주진구 북측 단장(오른쪽)과 이재정 위원장(왼쪽)이 박용길 장로와 인사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재정 위원장은 "북측과 한 차례 실무접촉했다. 모여서 논의하고 필요하면 또 모인다고 했다"며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니까 공동으로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10주기 때 북한 대표단이 참석해서 같이 했는데 20주기에 좀 더 확대된 모임을 갖지 못하고 축소된 상황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문익환 목사 20주기 남북 공동행사 개최 대신, 북측에서는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위원장 김양건) 주관으로 별도의 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에 대해 이재정 위원장은 "대중적인 통일운동, 통일운동도 대중들이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통일이 얼마나 절대적인 우리의 과제인가를 인식하는 그런 과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즉, 문익환 목사 20주기는 단순한 추모가 아닌 통일 담론을 대중화시키려는 다짐인 셈이다. 자칫 들으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논의에 무관심한 이들을 향해 '통일은 대박이다'라며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과 엇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 이재정 위원장은 전직 통일부 장관답게,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를 내놨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하지만 이재정 위원장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볼 게 아니라 통일은 꿈이다. 꿈은 언젠가 이뤄지고 그 꿈을 이뤄가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며 '통일대박론'과 선을 그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통일부 해체' 위기를 통일부 장관으로 온몸으로 겪었던 이재정 위원장은 문익환 목사 20주기 통일 담론 대중화 운동의 입장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를 내놨다.

이재정 위원장은 "통일대박은 가만히 보면 흡수통일론자들의 주장"이라며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로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잘못된 관점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는 통일이 오지도 않고 대박도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일대박론'을 두고 '천박하다', '불행'이라고 표현, "우리가 꿈꿔온, 이루지 못한, 새로운 나라의 가치가 이뤄지는 것이 통일 아니냐. 그럼 통일은 대박이라고 할 수 없다.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별안간에 통일 오느냐? 온다면 상대방이 무너지거나 어느 한쪽이 무너지게 하거나 이다. 불행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데 대해서도 "참 무리한 요구다. 적어도 이산가족이 만날 때 준비기간은 두 달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못할 거 뻔히 알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무례한 것"이라며 "물론 간절한 소망을 대통령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금강산도 풀고 5.24도 풀겠다는 의지라도 이야기하고 만나자고 하면 그건 문제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등불이 사라지고, 다시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그때 그 분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남북관계 상황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요즘, 문익환 목사가 살아계셨더라면 어떠하셨을까.

"문익환 목사님은 평양이 아니라 청와대 앞에 가서 가부좌 틀고 1인시위를 했을 것"이라고 이재정 위원장은 상상했다.

이 위원장은 "'남북문제를 정치적 관점, 군사적 관점에서 보지 마라. 민족과 민족의 미래와 내일을 위해서 풀어나갈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것"이라며 "청계광장, 시청광장에 나와서 촛불 들고 젊은이들과 어깨를 걸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현실은 문익환 목사가 없다. 어쩌면 문익환 목사의 통일운동 정신보다 문 목사의 형상만 추억하고 그리워만 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우상숭배처럼 말이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절망의 나락에 빠질 찰라, 문익환 목사 20주기를 맞아 '다시' 통일을 이야기하자는 움직임이 반갑다.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기념사업위원회'의 다양한 활동이 기대된다.

▲ 늦봄 문익환 목사 20주기 준비위원 모집 및 행사 안내. [자료제공-통일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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