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극장정치’를 잘 활용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폐쇄사회다. 따라서 외부 세계가 북한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한다. 북한의 변화나 의도를 못 짚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으로 북한이 자신의 의도를 외부에 전할 마땅한 방법도 많지 않다. 굳이, 당이나 정부의 언론매체를 통해 가능하다. 그것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북한이 잘 짜인 극장정치를 즐겨하는 이유다. 북한은 최근 장성택 숙청 과정에서도 이 극장정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북한이 극장정치를 통해 알리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이번 장성택 숙청이라는 극장정치를 통해 외부 세계에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 먼저, 투명성과 공개성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전날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적시한 결정서를 공개했다. 노동신문도 9일 정치국 확대회의 사진을 게재했다. 특히, 조선중앙TV는 9일 장성택이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군복 입은 인민보안원에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 투명성과 공개성은 김정은식 정치방식이다. 이에 앞서 김 제1비서는 2012년 4월 위성 발사 후 바로 실패를 인정했으며, 또 놀이공원에서 관리 부실을 들어 간부를 심하게 질타했는가 하면 부인 리설주도 공개했다. 장성택 숙청과정도 공개성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 물론 이전에도 그 조짐들이 있었다. 이 조짐들도 극장정치의 일환이다. 왜냐하면 영화에서의 복선(伏線)처럼 결과를 예상하게 하는 조짐을 내비치는 것은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극장정치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남측 국가정보원이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을 밝힌 것은 지난 3일. 이에 4일 노동신문은 ‘정론’에서 “신념과 의리를 지키면 충신이 되고, 버리면 간신이 된다”며 사실상 장성택을 ‘간신’으로 지목했다. 7일에는 기록영화의 이른바 ‘1호 영상’에서 장성택이 나오는 장면은 모두 삭제되거나 편집됐다. 이에 앞서 지난 달 3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시절 유적지인 백두산지구 삼지연에서 현지지도를 했다고 보도했는데, 노동신문이 11일 ‘길이 빛나라 삼지연의 강행군길이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 삼지연 체류’를 재강조함으로써 이때 이미 장성택 숙청을 결심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 다음으로, 장성택 숙청이라는 극장정치를 통해 김 제1비서의 확고한 지도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북한식 통치체제인 유일지도체제가 건재하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에서 붙인 것이긴 하지만 ‘북한의 2인자’,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불린 장성택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에 가차 없는 철퇴를 가하고 그 종파행위자가 TV에서 체포되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북한의 기류를 전해온 재일 조선신보가 9일 평양발 기사에서 장성택 숙청 소식을 전하면서 “반당반혁명 종파행위에 대한 단죄규탄은 일심단결의 사회적 기운을 더욱 거세차게 분출시키는 계기로 되고 있다”고 평양의 민심을 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또한, 숙청이라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지만 평양의 일상(日常)을 전하고자 했다. 장성택 숙청이 발표된 9일 조선신보는 “(북한)사람들의 일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일상성을 강조했다. 중국통인 장성택 체포 당일에 북한은 중국 투먼시와 온성경제개발구 개발 계약서를 체결했으며, 하루 전인 8일에는 중국 대기업과 ‘신의주-평양-개성’ 간 고속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합의서를 체결한 것이 공개됐다. 아울러, 장성택 측근이라는 지재룡 주중 대사의 건재도 확인됐다. 북한 내부는 물론 대외 경제도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장성택 숙청이라는 극장정치를 통해 외부세계에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처럼 ‘평양 이상 무(無)’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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