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에 의한 대통령 선거 부정이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1987년 11월 29일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생했던 KAL858기 사건을 재조명한 책이 출판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건의 자료를 10여 년 동안 검토하고 분석한 결과 13대 대선 시기에 안기부가 노태우 당선을 위해 개입한 기획적인 공작 사건으로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정권을 잡기 위해 자국민의 목숨을 희생물로 삼았던 것이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신성국 신부와 김종대 신부가 목림출판사에서 펴낸 『전두환과 헤로데』라는 책의 결론이다.

나아가 “1987년 안기부가 대선 개입을 위해 KAL858기 사건을 조작한 것을 정리하거나 매듭을 짓지 않은 결과는 실로 참담하다”며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과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없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자들은 지난해 『KAL858 사건, 전두환 김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통해 김현희의 진술서를 분석,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번 책에서는 이 사건을 대선에 활용한 ‘무지개 공작’과 김현희와 김승일의 행적을 추적해 이 사건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무지개 공작,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북괴’, ‘폭파’

▲ 신성국.김종대 신부가 지은 『전두환과 헤로데』(목림출판사)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무지개공작(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은 2006년 8월 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KAL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 실체가 알려졌으며, 이 사건을 13대 대선에 활용한 공작이다.

저자들은 무지개공작의 작성 일자가 12월 2일로 사고 발생 사흘 만에 불과한데도 “금번 사건은 북괴가 아국의 대통령 선거 및 88서울올림픽 방해를 위해 자행한 사건”이라고 규정한 대목에 주목한다.

아직 김현희의 신원파악과 진술은커녕, 사고지점 마저 특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인으로 ‘북괴’가 지목되고 목적이 대통령 선거와 10개월이나 남은 88서울올림픽 방해였다고 적시됐으며,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 됐다고 ‘예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 등 일간 신문들은 12월 2일을 전후하여 ‘폭탄 테러 추정’, ‘콤포지션4 폭약으로 폭파’, ‘빈-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 행로’, ‘서울올림픽 실패를 노린 것’ 등 당시로서는 국정원 시나리오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사건의 전모를 이미 다 보도하고 있었다.

저자들은 “이 보도 내용은 당시로서는 사실 확인 여부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쓰였다”며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은 사건을 조사한 지 한 달 뒤인 1988년 1월 15일에 안기부가 발표한 수사 결과 내용과 완전히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김현희는 ‘일본’에서 출발했다

이번 신간에는 특히 KAL858기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승일(사망)과 김현희의 행적과 관련된 의문점들이 물증과 함께 소상히 제시돼 주목된다.

이들은 일본 나리타 공항의 1987년 11월 14일자 출국 스탬프와 11월 10일자 예방접종서, 귀국시 제출할 귀국신고서 등을 제시하고 “김현희 일행은 1987년 11월 14일 일본에서 출국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김현희가 북한에서 출발해 이라크 바그다드 사담 후세인 공항에서 대한항공 858편으로 탑승했다는 안기부 발표는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현희가 주장한 북한 →이르크츠그 →모스크바 노선은 존재하지도 않고 비행 소요시간 역시 실제시간과 6시간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

앞서, 김현희의 일본 출입국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본인용 띠지’와 일련번호가 적힌 일본인 귀국기록용 ‘귀국카드’, 일본 보건진료소가 발급한 ‘예방접종서’ 등이 2004년 KBS 취재 결과 사실로 밝혀진 바 있다.

또한 KAL858기 사건 직후 김현희 일행이 투숙한 바레인 리전시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 전화가 걸려온 사실도 이들의 일본 출국설을 뒷받침하며, 안기부는 당시 이에 대해 어떤 조사결과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승일 한국 호텔 예약 대행자는 타이항공사 박경희

▲ 신성국 신부가 지난달 29일 프란치스코형제회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사건 26주기 추모제에서 새 책을 소개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책에서 가장 새롭게 제기한 의혹은 단연 김승일의 한국 체류 사실이다. 이들은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을 보면 두 개의 대한민국 입출국 스탬프가 선명히 찍혀 있다”며 “김승일은 1984년 9월 21일에 김포공항에 입국, 9월 26일 출국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승일에게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 예약을 대행해준 타이항공사 여직원에 대해 “진상규명조사팀은 최근에 한국인 이름 박경희로 확인했다”며 “어떻게 된 일인지 타이항공의 Miss H, Park에 대하여 어떤 조사를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고 지적했다.

“항공사 직원이 여행자 업무를 대행한 것은 극히 드문 특별한 경우”이며 “타이항공사 직원이 일본 여행객을 위해 서울의 호텔 대행 업무까지 해준 일은 상호간 특수한 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이들은 “주일한국대사관이 김승일에게 비자를 발급해 준 사실도 의문”이라며 “안기부는 김현희와 김승일이 1984년도에 일본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줄곧 북한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한국 비자를 신청하거나 발급받을 수 있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저자들은 “전두환과 헤로데는 공통점이 많은 인물”이라며 “민족을 배반하고 반역했으며, 교활하고 잔인한 권력자다. 제국주의에 충실한 하수인으로서 자국민을 탄압하고 인정사정없이 죽인 살인자들”이라고 결론지었다.

한편, 김종대 신부는 “KAL858기 사건으로 크나큰 실의에 빠진 가족들이 그들의 죽음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래서 이별도 할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전두환 정부는 더 큰 돌을 가족들의 어깨에 올려놓았다”며 남편을 잃은 임옥순 씨와의 장문의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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