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정세에 무언가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미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게다가 우 대표는 2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에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경로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면서 “6자회담 재개에 자신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자신감 있는 표현입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성사시키려면 주위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분주히 만나고 있는 판에 정작 도와야 할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해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칭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28일(현지시간) 국무부 녹취록에 따르면, 케리 국무장관은 전날 워싱턴DC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는 북한에 국제의무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고,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다”면서 특히 “우리는 진전(move forward)이 필요하고,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6자회담 재개와 관련, 북한은 비핵화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없이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사전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전제조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케리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사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일 수도 있고, 나아가 비핵화 대화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게 아니냐는 긍정적 해석도 가능합니다. 어느 쪽이든 다행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발언입니다.

이어, 케리 장관은 “자기 주민들의 삶을 더 낫게 하려는 투자는 하지 않고 살상을 위한 미사일에 부족한 자원을 투입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이 불량국가에는 역사성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미국은 북한에게 ‘테러지원국’, ‘불량국가’, ‘우려대상국’(States of Concern),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딱지를 붙여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2008년에 처음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고, 이로써 북한은 불량국가의 낙인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케리 장관은 상황에 맞지 않게 ‘불량국가’ 운운한 것입니다.

북한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외무성은 31일 케리의 이 발언을 문제 삼아 망발이라 규정하면서 미국측이 “애당초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증시해주고 있다”고 발끈했습니다. 나아가, 북한은 최근 6자회담 재개 움직임에 대한 신호라도 보내듯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할 용의를 행동으로 실증해보이지 않는 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꿈에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느 누구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할 판에 거꾸로 판을 깨는 언행을 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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