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5일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측의 두 동생을 만나는 허경옥 할머니. 할머니는 60여년 만에 동생들을 만나는 기쁨을 연신 '좋다'고 표현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1951년 추운 날씨만큼 매서운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1.4후퇴의 피난행렬 속에는 남편이 있었다.

개성시 고려동 427번지. 부지런하던 시어머니 밑에서 신혼살림을 살던 25살의 허경옥. 말로만 듣던 망부석 인생이 될 뻔 했던 그에게 이듬해인 1952년 남편에게 소식이 왔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루터로 오라.'

그렇게 한살박이 아들을 업고 깊은 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루터에 왔건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배 한 척이 내려오자 어머니들은 그녀의 등을 떠밀며 배에 태웠다.

그날 밤 나루터에 서있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1년이면 개성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60년이 흘렀다.

오는 25일 금강산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에 남측에서는 96명, 북측에서는 100명이 서로의 가족을 만난다.

그 중에 허경옥 할머니가 포함됐다. 어두운 밤, 개성 어느 나루터를 떠나던 25살의 새색시는 85세의 할머니가 됐다.

이산가족 대상자가 확정, 통보되던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개성상회'를 운영하는 허경옥 할머니를 <통일뉴스>가 만났다.

▲ 허경옥 할머니.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개성상회'는 할머니와 남편의 고향에서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개성에서 태어나 피난내려오던 1살의 아들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대를 이어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허경옥 할머니는 1남 4녀의 장녀로 이번에 셋째, 넷째 여동생 허유강, 허옥진을 만난다. 둘째 동생은 확인 불가, 막내 남동생은 사망했다는 소식을 대한적십자사가 알려왔다.

60년 전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동생들을 만날 생각에 허경옥 할머니는 "어떻게 살았느냐. 좋다라는 말 외에 더 뭘 말해야 하겠느냐"고 소감을 밝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생 생각나죠. 안 날 수 없죠. 핏줄인데"라고 말을 흐리는 할머니는 동생을 찾던 지난 세월도 떠올렸다.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할 때부터 동생을 찾았어요. 소식이 없더라고. 적십자에도 이야기했어. 작년에는 여기 와서 사진도 찍어가더라고. 아무런 말이 없데. 그런데 시방 내가 살아서 이번에 만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무슨 말을 어찌 더 해요."

60여년 전 밤. 피난을 내려온 허경옥 할머니는 김포 나루터에서 남편을 찾았다. 남편과 김포에 살다가 서울로 왔다. 그리고 통인시장 터줏대감으로 '개성상회'를 운영했다. 남편은 당장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집도 사지 않았다. 고향가는데 집을 사서 뭐하냐고.

고향을 그리던 남편은 3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고향의 가족들을 그리던 남편을 대신해 허경옥 할머니는 시누이들도 찾으려고 했다.

▲ 허경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7살 증손녀가 듣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시댁식구도 상봉 희망대상자 명단에 적었는데 말이 없데. 시누가 둘이거든. 남편이 없으니까 시집식구들은 안쳐주나 보다 했어요. 적을 적에는 시누들도 적었는데. 남편이 얼마나 고대했다구."

자신의 혈육만 만난다는 생각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허경옥 할머니는 혹시라도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못 만나게 할까봐 아프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사실 혼자서 못 가죠. 난 딸이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혹시라도 아프다고 하면 못 만나게 할까봐 걸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혼자 걸어서 동생들 만나겠다."

연신 '좋다'는 허경옥 할머니의 표현은 이산가족의 애환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 기자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좋다'는 말로 부족한 듯 같은 질문을 거듭 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변은 '좋다'.

'좋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지만, 25일 금강산에서 동생들과 얼싸 안을 허경옥 할머니의 모습. 상상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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