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9일 통일맞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4,5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 평양관에서 4년 만에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려 8개항의 합의를 담은 공동보도문을 채택, 발표했다. 이 회의에는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다.

6.15남측위원회 이창복(75세) 상임대표의장은 9일 <통일뉴스>와의 결산인터뷰에서 “상당히 광범한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이뤘다”며 “합의사항에 대한 성실한 이행을 해야 하는 부담을 주는 선언문”이라고 총평했다.

이창복 의장은 공동위원장회의 결과에 대해 “6.15공동선언 정신, 10.4선언 정신이 통일운동의 근간을 이루어가는 큰 흐름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남북 간의 소통을 위해서 평화지대, 평화센터를 구상했었는데 의도대로 합의는 못했다”고 전하고 “8.15행사, 10.3행사, 이것을 합의해낸 것은 성과였다”고 평했다.

특히 8.15 공동행사를 개성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 배경에 대해 “북쪽에서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강조했다”며 북측이 장소를 개성으로 제안했다고 밝히고, ‘8.15를 개성에서 하자고 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연관돼 있다고 봐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추측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의장은 “나는 남북 간에 이를테면 정치적 색깔 없이 스포츠라든지 연예공연 교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경평축구 대회’와 ‘공연단 교류’를 제의했고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은 검토 여지를 남겨뒀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 참가를 위한 북한주민접촉신고를 통일부가 수리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징행을 강행한 것에 대해 이 의장은 “신고사항인데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며 “행정절차를 정당하게 처리 안 해준 것에 대한 항의”라고 각을 세우면서도 “결코 정부방침을 어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90년대 재야운동 당시부터 통일운동에 앞장서 왔던 이 의장은 “우선 우리들이 자주 좀 만나야겠다. 그래야 소통이 이뤄지고 소통이 이루어질 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라며 “합의된 사항들을 국내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을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의장은 “오랜 동안 6.15공동위원회가 해외측 조직에 대해서 상당히 논란이 많았고, 아직도 해결이 안됐는데 다음 회의 때는 그런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해외측은 공동위원장제로 가는 것이 현실성이 있고 생각된다”고 말해 6.15해외측위원회 조직 정상화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았음을 시사했다.

다음은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9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 소재 통일맞이 사무실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를 결산한 인터뷰 내용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어서 갔다”

▲ 6.15남측위원회 대표단 5명이 인천공항에서 베이징행 비행기 탑승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정현곤 공동집행위원장, 손미희 공동대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이승환 공동대표, 장대현 공동집행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되고 첫 남.북.해외 공동행사를 다녀왔는데, 소감은?

■ 우선 우리는 6.15공동행사를 공동으로 치러졌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서 꾸준하게 추진해왔다. 그런데 결국은 공동행사가 안 되고, 남쪽은 남쪽대로 단독 행사를 임진각에서 하게 됐다.

그때 대회사를 하면서 남.북.해외 3자 공동위원장단 회의를 제안한다고 발표했는데, 그 이후 20여일 동안 7월 4일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여서 서로 토의하고 합의해야 할 절실한 문제들이 남아 있는데, 또한 그런 문제들의 해결은 남과 북, 민족 전체에게 통일을 향해 가는 길에 필요한 조처일 텐데, 이러한 일들이 잘 진행이 안됐다. 잘 진행이 안됐다는 이야기는 정부당국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정부의 신고서 수리를 거부하는 통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북측과 해외측과 연락이 돼서 4일 만나게 돼 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어서 갔다.

가서 보니까 여러 가지로 걱정했던 부분들이 없잖아 있었지만, 다 양쪽에서 고민했던 일들이고 깊이 생각했던 일들인지라 한두 가지 조금 토론을 전개하는 것 외에는 다들 흡족하게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우선 우리들이 자주 좀 만나야겠다. 그래야 소통이 이뤄지고 소통이 이루어질 때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자주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의한 것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해서 6.15정신을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해외는 해외대로 실천할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겠는지.

또 6.15정신만이 아니라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해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해서 실천해 나가야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해 봤다.

□ 이번 회의에서 어쨌든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의 북한주민접촉신고 수리 거부였던 것 같다. 정부의 수리 거부에도 불구하고 다녀왔는데, 정부의 수리 거부에 대한 입장은?

■ 신고사항인데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행정절차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행정절차를 정당하게 처리 안 해준 것에 대한 항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도 정부의 입장이 있겠지만 민간들의 활동에도 어떤 입장이 있는 건데, 이런 것을 헤아려주지 않고 정부 입장만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해 봤다.

□ 이전에도 정부가 수리를 거부했을 때, 못 가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간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수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가야되겠다고 판단한 배경이나 입장이 있다면?

■ 실제로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한 5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그것은 어떤 여건에서라도 충실히 6.15정신을 실천하는 단체의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의 협조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려고 했었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 남북회담을 처리함에 있어서 정부는 정부의 해야 할 일이 있고 민간은 민간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간이 해야 할 일을 우리가 찾아서 알아서 해나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강행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남북 간의 소통은 그냥 어떤 감정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또 그것을 성취하려는 충정에서 하는 것이지 결코 정부방침을 어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8.15, 10.3행사 합의해낸 것은 성과”

▲ 5일 오전 베이징 평양관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정부의 수리 거부를 무릅쓰고 갔는데, 가서 김완수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을 만나서 환영만찬부터 진행했다. 첫 북측 대표단과의 상면이었는데 느낌이나 판단은?

■ 우리가 6.15 기념식장에서 3자 공동위원장단 회의를 개최하자고 할 때는 김령성 위원장을 상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별안간 바뀌었다. 그래서 김완수 위원장은 잘 몰랐다. 접촉해본 경험도 없고, 그래서 상당히 불안했는데 만나서 수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걱정했던 것보다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더라. 그래서 좀 다행스럽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둘째날 공동위원장회의였을텐데, 회의에서 다룬 의제는 무엇이었고, 소개할만한 내용이 있다면?

■ 이를테면 6.15공동선언 정신, 10.4선언 정신이 통일운동의 근간을 이루어가는 큰 흐름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남북 간의 소통을 위해서 평화지대, 평화센터를 구상했었는데 의도대로 합의는 못했다.

그리고 8.15행사, 10.3행사, 이것을 합의해낸 것은 성과였다 생각한다. 우리가 통상 6.15행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계획했었는데, 이제는 광복절과 개천절까지 그리고 10.4와 함께 기념하는 활동도 같이 의논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폭넒은 사업계획을 논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논점 중의 하나가 개성 8.15 공동행사였던 것으로 안다. 시간적으로도 임박하고 장소도 민감한 곳인데, 어떻게 논의됐나?

■ 북쪽에서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강조했다. 장소까지 찍어가면서. 그래서 우리로서도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고 그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주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실무선에서 절충을 했기 때문에 위원장단 회의에서는 그것을 추인하는 형식의 모임이었지 토론하는 모임은 아니었다.

□ 이번 공동보도문에는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한 비판과 개성공단 정상화 등 정치적 현안들도 포함됐다.

■ 대화록 공개한 것에 대해서 양쪽 다 공감을 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다음에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까지, 이것은 우리 쪽에서 쭉 문제가 돼 왔었고 재개하기 위해 노력해온 의제였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민간차원에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자는 이야기였다.

□ 8.15를 개성에서 하자고 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연관돼 있다고 봐도 되겠나?

■ 그렇게 추측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김완수 위원장, 예상 밖으로 겸손”

▲ 5일 오후 6시 공동보도문 발표의식의 하나로 공동위원장이 손을 맞잡았다.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실제로 테이블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다면 상대가 어느 정도 정치적 권한이나 판단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완수 위원장은 상급(장관급)이라고 하던데 권한이나 직위가 느껴지던가?

■ 김완수 위원장은 예상 밖으로 겸손한 사람이더라. 자신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이야기하면서도 “검토해 나가자. 노력해 나가자.” 이렇게 이야기해서 좀 믿음직한 분이었다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안 된다고 자르지 않나. 그런데 그런 자세가 아니라 “더 연구해보자. 노력해 보자.” 말미를 두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일을 많이 해봤고 그 사회에서는 신뢰가 있는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공동보도문이 채택되고 간략한 발표의식도 가졌다. 8개항에 걸친 포괄적 내용인데, 실제로 이번 합의를 이끈 주역 중의 한 명으로서 공동보도문 채택의 평가와 소감은?

■ 상당히 광범한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너무 실천력 없는 합의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면 합의가 무력해질 수 있는데, 사실 그것을 실천해나감으로써 6.15정신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양쪽 다 그러한 합의사항에 대한 성실한 이행을 해야 하는 부담을 주는 선언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 사실 지금 민간교류가 다 막혀 있어서 할 수 없는 건데, 그걸 또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 그렇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막혀있지만 내일 또 어떻게 발전할지 모른다. 이번에도 6.15행사를 추진하고 7월 4일 회의를 추진하면서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결정을 하더라.

그러니까 너무 지금 현재를 가지고서 이런 일들이 전혀 실천 불가능한 일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게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런 환경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평축구, 공연단 교류 제안
“해외측은 공동위원장제로 가는 것이 현실성 있어”

▲ 5일 공동위원장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면서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특별히 이번 공동보도문 내용 중 애착이 가거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나는 남북 간에 이를테면 정치적 색깔 없이 스포츠라든지 연예공연 교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평축구 대회나, 공연단 교류가 전혀 막혀있는 것은 아니다.

(김완수 위원장이) 지금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답변할 수 없었겠지만 그러나 협의과정에서 노력하려고 하는 여지를 남겨둔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다.

□ 간략하게 공동보도문 발표의식을 5일 오후 6시에 가졌는데, 남측이 요구한 것인가?

■ 그냥 보도문만 돌리는 것이 건조하니까 사진을 찍기 위한 세레모니를 한 거다. 예상치 못했는데 <KBS>와 <연합뉴스>가 왔다.

□ 공동보도문 발표의식을 가진 뒤 환송만찬을 남측위원회가 주최했다. 환송만찬장 분위기를 전한다면?

■ 공식 석상에서 나눈 이야기보다는 비공식으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동안 6.15공동위원회가 해외측 조직에 대해서 상당히 논란이 많았고, 아직도 해결이 안됐는데 다음 회의 때는 그런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는 뜻으로 들린다. 해외측 위원장을 현재는 한 명이 맡고 있는데 단일위원장제로 가는지 공동위원장제로 계속 가는 방향인지?

■ 해외측은 공동위원장제로 가는 것이 현실성이 있고 생각된다. 기존에 계신 분들도 존중하면서 앞으로 참여하실 분들도 배려하는 건데, 결론은 안 났지만 다음번 회의 때는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의 협력을 꼭 받아야 한다”

▲ 5일 평양관에서 환송만찬을 주재하고 있는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박 3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걱정도 됐을 것 같다. 남측 언론에서 어떻게 보도했는지, 과태료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돌아올 때 심경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나는 정부가 협조하지 않은 행보를 했기 때문에 제재가 있으리라는 건 생각했고, 제재가 어느 수위로 될 것인가에 대해서 좀 궁금해 했다. 앞으로 시간 있으니까 조치를 취할 건 취할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이 와서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 “불편한 것 없느냐, 도와줄 것 없느냐” 묻고 갔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남자 승무원인 사무장도 와서 똑 같은 이야기를 묻고 가더라.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 내가 탔다는 것을 확인하러 왔구나’. 내가 이를테면 ‘VIP니까 잘 해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탑승했다는 것을 확인하러 왔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니까 혹시 내려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은 좀 했었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웃음)

□ 총평하면 홀가분한가 어깨가 좀더 무거워졌나?

■ 거기서 합의된 사항들을 국내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협력을 꼭 받아야 한다. 정부의 협력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정부 당국에게 “민간차원에서의 활동에 길을 열어달라. 민간 활동의 역할이 따로 있고 정부의 역할이 따로 있다. 이것이 서로 상호 보완돼 나갈 때 더 일이 차분하게,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해시켜주려고 한다. 그래서 협력을 얻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 예전에 재야를 책임지기도 했고, 국회의원 직을 수행하기도 했는데, 지금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가지고 첫 중요 임무를 수행했다. 개인적으로 회고하고 평가한다면?

■ 나는 민통련, 전민련, 전국연합을 이어오면서 통일문제, 통일운동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간 뒤로부터는 2선에 물러나 앉게 됐지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해서 4년 동안 다른데 가지 않고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통외통위에서만 법을 제정한다든지 예산을 편성한다든지 할 때 노력을 기울였다.

의원직이 끝난 다음에 7,8년 동안 통일운동의 뒷전에 있었다. 그동안 민화협 상임의장을 했다든지,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를 했다든지 했지만 운동의 중심에는 비켜서 있었다.

이번에 대표를 맡게 돼서 조금 소신있게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개인의 희망과 그 희망을 실천할 수 있는 주변 여건과 환경이 맞아떨어져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상당히 괴롭게 생각한다.

그런데 주위의 환경이나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통일운동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을 해야겠다.

□ 실무회담이나 공동위원장회의가 공개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언론이 동행취재를 했고 과정들이 계속 보도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나는 참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면 우리들이 진행하는 것이 흑막에 가려있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우리 소속원은 아니면서 객관적으로 취재를 위해 기자가 참여한 것은 회의를 투명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도 언론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공개해주기 바란다.

■ 물론이다.

□ 김완수 위원장과 곽동의 위원장을 처음 본격적으로 만났을 텐데 소개해본다면?

■ 김완수 위원장은 적십자사 서기국에도 있었던 것 같고, 유엔대표부에서도 근무하고, 대사도 했고, 하여튼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해왔고, 그 나름대로의 경륜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 점에서 대화의 상대자로서 만나기 전까지는 상당히 불안한 점이 있었는데 만난 후에는 불안이 사라졌다.

곽동의 위원장은 깊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말씀도 많이 없으셨다. 그러나 중요한 말씀은 짚으시더라. 건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참여해주신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 북측 실무대표단도 처음 보았나?

■ 금강산 행사(2008년 615공동행사) 때 나는 몰랐는데 자기들이 만났었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분들과 이야기를 깊이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 남측위 대표단과 호흡을 맞춰 일했는데 간략히 평가한다면?

■ 이승환, 정현곤, 장대현, 손미희는 회의 때 자주 만났던 동지들이고 또 민화협 때 같이 만났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아주 이번에 호흡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 공동위원장회의 기간과 당국의 개성공단 실무회담 추진이 겹치면서 언론의 조명을 덜 받은 것도 있고,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열린 점도 있는 것 같다. 개성공단 실무회담 등 전체 맥락에서 평가한다면?

■ 사실 남북당국 간 회담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6.15남측위원회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615공동행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동행사가 성공되려면 북측 정부의 협력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3통이라든지 전화가설, 신변안전 보장 이런 것들은 전부 정부 당국자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래서 당국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라고 북측위원회에 촉구했다. 북측은 다시 회담을 제안할 때 개성공단 문제뿐만 아니라 금강산과 이산상봉 문제까지도 포함해서 논의하자는 것 아니냐.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그 성사를 위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또 7월 4일 베이징회의를 앞두고 7월 2일에 마지막 점검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먼저 김완수 위원장에게 남북대화를 빨리 개최할 것을 촉구하자고 내부에서 합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북이 제안해서 당국 간 회담이 이뤄졌는데, 우리가 요청해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측위원회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북도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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