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호 남북경협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민족21]
“지금의 모든 혼란과 갈등은 결국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위한 진통이라 생각합니다. 남북경협, 나아가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이라는 ‘바른 길’을 믿는 국민들의 힘으로 반드시 지금의 상황이 희망적으로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비대위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난 유동호 위원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시종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좋을 것이 없는 상황이 바로 지금 아닌가. 5년이 넘도록 중단된 남북경협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금에도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 위원장 역시 2008년 개성공단 외곽에 주유소를 건설해 준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멈춰진 후,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3년 남북사회문화교류단체 ‘지우다우(지금 우리가 다음 우리를)’를 설립해 남북교류에 첫 발을 디딘 유 위원장. 이후 그는 2006년 (주)바두바투를 세워 본격적으로 남북경협에 참여했다. 그런 그가 이제 남북경협비대위의 위원장을 맡아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절박감

□ 민족21 : 지난 5월 남북경협비대위가 결성되었습니다. 여기에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지금까지의 비대위 활동을 소개해 주시죠.

■ 유동호 위원장 : 저보다 먼저 남북경협에 뛰어들었던 많은 선배 기업인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렇게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주 무거워요. 현재 비대위는 금강산기업협의회, 남북경협활성화 추진위 일동, 남북임가공협의회, 남북경협경제인연합회, 남북농림수산물사업협의회,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등 남북경협 관련 임의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성 이후 비대위는 이들 단체에 속해 있는 1028개 업체들에게 ‘남북경협 피해 실태조사서’를 보내고 그 결과들을 취합하고 있습니다. 결과들이 모두 취합 되는대로, 이를 바탕으로 통일부와 향후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입니다.

▲ 남북경협기업 비상대책위원회와 민변 남북경협 법률지원단 업무협약식이 6월 12일 민변사무실에서 열렸다. [사진 - 민족21]
아울러 지난 6월 12일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소속 남북경협법률지원단(이하 민변경협지원단)과 ‘남북경협 정상화를 위한 업무 협약 체결식’을 맺었습니다. 이로써 남북경협의 장기간 중단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경협기업인들의 법률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죠. 이제 민변경협지원단은 비대위의 일상적 활동, 즉 피해기업 보상안 마련, 남북경협기업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안 검토, 피해 기업 소송 지원 등에 대한 상시적인 지원 체계를 갖추고 비대위와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여기에 삼일회계법인도 함께 도움을 주기로 했어요. 그동안 경협기업인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채 많은 어려움을 각자가 감내해 왔다면 이제는 모두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기로 한 것이죠.

□ 비대위에 개성공단입주기업들은 참여하지 않는 것인가요?

■ 개성공단은 이미 입주기업협의회가 만들어져 개별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비대위는 MB정권 출범 이후 중단된 남북경협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중심으로 만들어 졌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개별적으로 각각 활동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한 목소리로 경협의 재개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확신합니다. 때문에 저희 비대위는 언제든지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비대위)와 대화하고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당장 계획되어 있는 비대위의 활동이 있는지요?

■ 7월 12일 오후 4시 코엑스에서 남북경협기업인들 전체회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각계 인사들이 영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100여 개 업체 이상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남북경협인들의 마음을 모아 5년 동안 힘들고 지쳤던 상황을 훌훌 털고 피해 보상과 경협 재개라는 우리의 공통된 목표를 이뤄갈 것입니다.

남북청년들의 만남 꿈꾸며 대북사업 시작

▲ 2003년 8월 지우다우의 대학생 금강산 '통일모꼬지' 이후 대학생들의 금강산행이 잦아졌다. [사진 - 민족21]
□ 위원장님이 남북경협, 남북교류사업에 처음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대략 2001년부터 금강산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금강산을 직접 밟을 수 있다는 감격도 컸지만, 한 편으로는 더 많은 남측의 국민들이 이 땅을 밟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중 2003년 당시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님과 함께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어요.

당시 금강산관광은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특검 등으로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때였습니다. 때문에 현대아산은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에 공문을 띄워 대학별로 2명씩 뽑아 무료로 금강산관광을 하게 해주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금강산관광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죠.

하지만 반응은 미진했어요. 거기다가 사스 여파까지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지금 이 시대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또 우리 모든 한반도 구성원의 미래가 담겨 있는 남북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할 청년학생들이 금강산관광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 실로 가슴 아팠습니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김윤규 사장님께 ‘제가 한 번 뛰어보겠습니다’고 제안했고, 이후 김윤규 사장님의 지원아래 커다란 행사를 함께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2003년 8.15를 기념해 전국 815명의 대학생들을 모아 최초로 육로를 통해 금강산에 가는 프로젝트였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해로를 통해 금강산관광을 하던 때였잖아요. 게다가 대학생들은 북측CIQ(출입사무소)를 통과한 직후에는 금강산까지 8킬로미터를 행군해서 가기로 계획했어요.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최초’인 시도였죠.

그렇게 계획을 세운 뒤 서둘러 사무실을 구하고 전국의 대학을 누비며 학생들을 만났어요. 학생들에게 제 뜻을 전하고 그들의 생각도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해서 1,800여명의 학생들이 뜻을 함께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우다우’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행사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학생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와중에 그만 정몽헌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어요. 남측은 물론 북에서도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북은 모든 관광의 일체 중지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신청한 1,800명의 학생 중 815명을 어떻게 추려야 하나 고민하던 저희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신청을 취소하는 전화가 빗발쳤고,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는 가운데 과연 ‘지우다우’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의도 많았죠.

▲ 지우다우가 추진한 대학생 금강산관광 당시의 모습. [사진 - 민족21]
하지만 ‘지우다우’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내 간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도 오지 말라고 하고 남측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우리 순수한 청년 학생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의 통일을 위해 온 몸으로 철책선을 열어젖히고 들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남북 당국 모두에 전했습니다. 결국 이런 저희의 뜻이 전해졌는지 행사 일정이 코앞에 다가오는 시점에서 북이 방북을 허용했고, 남측 당국 역시 허가를 해줬습니다.

2003년 8월 13~16일 동안 126개 캠퍼스 815명의 대학생, 집행부, 언론인, 참여인사 등 1,000여명이 금강산을 찾아갔습니다. 이 의미 있는 행사로 인해 정몽헌 회장의 사망 등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금강산관광이 다시금 활력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당시 숙소가 부족해 몽골텐트를 설치하고 잠을 잤는데, 모든 학생들이 침낭을 들고 나와 마당에서 북녘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을 새웠으니까요. 그들도 가슴이 벅찼던 것이죠.

□ 그 이후 지우다우가 바두바투로 바뀌게 된 연유도 궁금합니다.

■ 2003년 8월의 행사 이후 남측 대학가에서는 ‘통일모꼬지’ 붐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2004~2005년까지 매년 2만 여 대학생들이 금강산으로 통일모꼬지를 떠났죠. 이러한 열풍은 국민들이 다시 금강산을 사랑하게 되는 작은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고, 금강산관광의 전성시대를 여는데 기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금강산을 찾는 대학생들의 숙소문제가 여의치 않다는 사실에 고민하다 ‘통일수련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수련원을 짓고 남북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민족의 미래와 통일의 희망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설계도 마치고 부지 계약까지 끝냈습니다.

하지만 현대아산의 경영방침이 변화를 겪으면서 이 사업은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느끼게 됐죠. 남북사회문화교류사업이 기부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동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그래서 경제협력사업을 병행하며 그 부가가치를 통해 사회문화교류를 더욱 힘 있게 가져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2006년 바두바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정률 97%에서 멈춘 개성의 주유소

▲ 2008년 바투바투의 개성주유소 착공식 모습. [사진 - 민족21]
□ 바두바투는 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진행해 왔습니까?

■ 처음 생각한 것은 중국, 동남아시아 등 제3국에 나가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남측의 제조업, 임가공업체들을 평양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물론 개성공단도 훌륭한 대안 중 하나지만, 그 확장 속도가 상당히 더디었거든요. 남북경협을 더욱 폭발적으로 확대시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평양공단을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평양시 외곽에 위치한 대안군에 시범단지 3만 평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남포까지 이어 확장해 나가자는 구상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려 했어요.

하지만 결국 평양이 깊은 내륙이라는 특징으로 접근성이 용이치 않아 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고, 고민하던 중 통일수련원 사업을 이미 설계는 해놓았으니 다시 실현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개성에 다시 2만 평의 부지를 얻었습니다. 금강산이 아닌 개성에다 통일수련원을 짓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물론 이는 현대아산과 사업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사항이죠. 하지만 일단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미 인연을 맺고 있던 GS칼텍스와 협의해 2만평 부지 초입에 주유소를 먼저 지은 것입니다.

□ 왜 갑자기 통일수련원 사업에서 주유소 건설이 포함된 것인가요.

■ 주유소 사업 역시 나름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업은 단지 개성에 주유소 하나를 지으려고 한 게 아니라,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북이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를 예상해서 추진한 것입니다. 북에 수많은 SOC건설사업이 진행될 때, 현실적으로 북의 여건상 화석연료가 기본 동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정유사가 들어가 토대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가능하면 민족자본화될 수 있는 기업이 들어가길 바랐어요. 그러기위해선 최고 경영자의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GS칼텍스는 GS가 50% 지분이고 쉐브론이라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한.미가 같이 들어가는 개념이라 생각했죠. 그래야 북이 세계 무대에 나서는 길도 더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GS의 오너쉽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짧은 시간에 의기투합해 1차적으로 안테나숍으로서 개성에 첫 번째 주유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인만 아직 하지 않았을 뿐이지, 북에서 이미 초안까지 온 상태인데, 평양에 5개소의 주유소를 세운다는 것까지 합의가 되어있어요. 일단 평양에 5개소를 짓고, 그리고 북 전역에 확장할 생각인 것이죠. 북은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그 이후 세계시장에 진출한다면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이라는 경제강국이 함께 할 것이기에 그 속도는 더욱 눈부시겠죠. 하지만 이 사업은 안타깝게도 2008년 11월까지 97% 공정률을 마친 상태에서 12월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남북경협 1세대를 기억해야

□ 다시 비대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동안 남북경협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떠올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개성공단의 중단 이후 ‘남북경협의 최대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사업 이전에 이미 북에 진출해 경협사업을 진행해온 업체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어찌 보면 남북경협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동안 이들 업체의 고통이나 억울함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 그동안 개성공단을 제외한 내륙기업의 목소리가 작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태에 대해 다소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전체가 힘을 가지려면 조직이 사분오열되어 개인적인 역량들이 표현되는 것보다는 단일한 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조직화가 필요한 것이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지역은 지역적 성격으로 외형적인 조직화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 내륙진출 기업들의 경우 모두 개별적으로 진출해 사업을 진행해 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직적인 틀 속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남북경협이라는, 국가가 열어준 큰 틀 속에서 개인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진출한 것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사건이나 변화 앞에서도 신속히 조직화되거나 결집되기 힘들었던 것이죠.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희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결집되지 못했던 많은 기업들이 비대위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MB정권 5년의 고통을 더 이상 연장시킬 수 없다는 절박감과 남북경협이라는 소중한 ‘통일의 씨앗’을 다시 가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대위는 이제부터 어느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아닌 전체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의 억울함을 알리며, 다시 열릴 남북경협 시대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 남북경협의 장기간 중단 상태에 대해 지난 MB정권의 과오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남북경협이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들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경협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 어떤 특정권력이나 일개인이 역사의 큰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한 개인의 성격과 특정 권력에 의해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기보다는, 국민의 집단 무의식이 역사의 실질적 변화요인이라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남북의 통일과 통합을 위한 실험장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때문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국민들이 바라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제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기대에 부응한 면도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북은 북대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역사의식을 토대로 경제협력 방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대로 물질주의에 만연되어 물질적 우세에 의해 상대를 하대하고 우리의 방식만이 옳다는 아집과 고집을 부리진 않았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울러 기업은 기업대로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 존재합니다. 개성공단에 들어간 기업의 대다수가 어떤 기업입니까. 대부분 단순히 저렴한 북의 노동력을 통해 부가가치를 획득하고 경쟁력을 얻기 위해 들어간 기업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북을 바라보는 일방적인 시각이 존재해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북측의 근로자들 역시 자신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죠. 이러한 분열의 씨앗을 계속 잉태하고 있는 ‘통합의 실험장’. 과연 국민들이 100% 만족하고 안심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남북경협의 시련이라는 것도 그런 시각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MB정권도 그랬고, 지금의 정부도 부분적으로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여겨도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며 고집을 부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멈춰진 남북경협이 다시금 살아나고, 그것도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욱 더 개선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 못지않게 국민들의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개성공단이 파국의 위기에 있습니다. 전체 경협사업 중 마지막 남은 개성공단마저 이런 상황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경협을 멈추기를 바라기 때문일까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남북당국회담을 앞두고 국민들이 얼마나 큰 희망을 가지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촉구했습니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남북관계가 정말 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냥 잘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정말 잘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양보도 하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서로의 뜻을 잘 모아 기존의 모순을 잉태한 경협이라든가 교류를 넘어서 진정한 미래 비전을 담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해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진정한 국민의 마음입니다.

우리 경협기업인들도 기존 경협과정에 문제점이 있었다면 그것을 깊이 있는 자성과 각성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고, 향후 진정으로 남북이 윈-윈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성과 책임 있는 자세를 갖는다면 북 또한 다시 테이블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경협기업인들이 진정 고민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향후 남북경협이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될 것이라 보는 것인가요.

■ 저는 남북경협이 국민의 뜻에 따라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물론 정부가 시작을 했고, 기업이 함께 하면서 발전해 왔지만 국민의 뜻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결코 지금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북경협의 장기간의 중단 이후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보상, 지원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출 방식이든, 무상지원 방식이든 결국 이는 국민들의 혈세로 나가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주는 것이란 소리입니다.

위기에 처한 경협기업인들이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정부도 기업도 아닌 국민인 것입니다. 저는 남북경협이 국민의 뜻으로 시작되었고, 국민의 뜻에 의해 유지되어 왔고, 또 결국은 국민의 뜻에 의해 다시금 열릴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경협인들에게 주시는 그 소중한 피와 땀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한 번 힘내 정말로 잘해보라는 경책과 사랑, 주시와 격려라 생각합니다.

다시금 시작될 남북경협시대를 위해

□ 마지막으로 북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것과 중장기적인 비대위 활동계획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현재 남북관계의 경색은 남북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 중단 과정에서 북 당국자 중 한 분이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우리들은(북) 손해 볼 것이 하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정말 어린 아이 장난과 같은 말입니다. 누구는 이익이고 누구는 손해 본다는 관점으로 남북관계, 남북경협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상생의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서로 대립하고,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을 견지하며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 대화를 재개하기를 바랍니다.

한편 비대위는 큰 틀에서 몇 가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그동안 많은 경협기업인들이 스스로 ‘버려졌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외, 설움 등이 응어리져 있습니다. 더구나 문제는 어느 누구도 ‘나의 설움’을 토로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설움이 왜 만들어졌는지, 우리 사회와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들의 고충을 담아내 가능한 현실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지금까지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러한 피해가 발생되지 않고 더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소리를 담을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피해를 입은 경협인들의 현실적인 생존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선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부의 대출 형태로부터 시작해 앞으로 궁극적인 피해보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경협기업인들이 경협을 하는 데 있어 섬세한 안내가 절실합니다. 실질적 지원 외에도 상세한 정보와 제도, 해당 기업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살펴 전문적으로 카운슬링 하는 것 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에 있어 경협기업인들은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경협기업인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제도도 소개해서, 경협활동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경협인들이 재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도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번 경협기업인들과의 간담회 등에서 좋은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농활’처럼 청년학생들과 함께 하는 ‘경활’도 좋은 프로그램의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등과 함께 강연 및 지원프로그램도 많이 만들고, 통일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그런 것들이 함께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경협인들의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이들이 남북경협을 준비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제 이런 논의들이 다시 새롭게 대두되어 준비할 시기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남측의 문제도 나오고 북측의 문제도 나오고 우리 기업의 문제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그냥 비판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잘할 수 있는 토대 속에서 대안들을 만들어 북에도 건의하고 우리 정부에도 건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암울하고 패배적인 시각이 아닌 긍정적인 미래 비전속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남북경협은 보다 큰 차원에서 더욱 잘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월간 <민족21>과의 기사교류협약에 의해 <민족21> 2013년 7월호와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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