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엔 두 가지 분야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 비길 바 없는 가장 많은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이론과 대학입시 정책에서의 전문가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과 통일 담론 및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전문가이다. 전문가가 많다는 것은 이슈가 되어있는 ‘쟁점’이나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전문화 되어버린 그 이유로 인해 문제가 풀리지 않고 꼬여 있음을 웅변해 주기도 한다. 꼬인 문제를 풀기 위해선 오히려 간단하고 쉬운 ‘원칙과 상식’ 그리고 사회의 보편적 ‘원리’나 인간의 ‘정의와 양심’의 문제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자기 성찰적 자각을 준다.

전문가들이 많은 만큼 백가쟁명의 전문서들도 출판돼 나오고 있다. 복잡하고 첨예한 세상에 책으로 풀릴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지만, 혼돈의 시사에 빠진 답답하고 모호함을 쓸어내려 주는 시원한 책 한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윤대규 교수가 쓴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한울)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윤대규 교수(경남대 부총장)가 쓴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엔 우선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아닌 한국 ‘지식인’들에게 느끼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풀려 내려가는 듯한 개운한 맛이 담겨 있다. 저자는 서문에 이명박 정부의 경색된 남북관계 5년이 안타깝고 박근혜 정부마저 동일한 실책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잘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는 내용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책을 펼치자마자 이 책이 5년만 더 빨리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낸다.

본인은 중국에 거주하는 비지식인으로서 대한민국 교수 지식인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의 교수지식인의 ‘품격이나 몸값’은 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현학적 논리나 고고한 이론을 뽐내고 마는 고담준론에서 내려와 현실적 대안을 찾아내는 보다 ‘실사구시’ 지식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학계)이전투구 이해관계 대변자를 자처하거나 지나치게 시류나 대세에 영합하는 ‘정치적 출세’의 유혹으로부터는 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한다.

사회적 존재로서는 거품을 빼고 역사적 존재로서 의연하게 시대를 통찰하는 실용적 가치창조에 헌신하는 자세, 거기에 교수지식인의 가치와 품격이 매겨져야 진정으로 값진 존경이 따를 것이다. 한반도나 남북문제 전문가집단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체에 등장여부로 전문성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값어치(?)에 걸맞게 자신의 ‘전문성’이 남북관계 개선에 과연 어떤 기여를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냉철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윤대규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함은 무엇일까. 왜 우리 전문가들은 ‘진실’에 대해 정직하게 발언하지 않는가. 왜 국가지도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상으로 느끼며 행하는 상식적인 것들임에도 타자나 다른 국가사회에 적용하면서는 곧잘 오류나 오판을 범하곤 하는가,...라는 지식인의 자기성찰과도 같아 보인다.

얼마 전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가 김정은 위원장 특사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한국 내 많은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접근은 늘 그렇듯 예전과 동일하게 천편일률적이다. 북한 (경제)사정이 어려우니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서의 중국방문이라는 접근이 그 하나요, 최용해 방중을 한반도 정세와 북-중 관계 변화로까지 높이 끌어 올려 복잡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 누구도 자주 거론하고 익숙해진 접근방식 즉,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권력(내부)구조나 권력의 작동원리 시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가 보이질 않는다. 예컨대 김정은이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였고 지지기반을 갖춰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 군부에 큰 폭의 인사교체를 단행하였고 그 정점에 최용해를 등장시켰다는 점, 군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 지도부나 당과 군내 원로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최용해’와 함께 가야 하는 김정은으로선 이를 무마하며 ‘최용해의 군’으로 (당)군내 지위를 확고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 ‘정치적 파워’의 원천이거나 보탬이 되어 주는 ‘중국’과의 외교무대에 최용해를 등장시켜 힘을 실어줬을 것이라는 점. 이러한 일반적이고도 간단한 접근은 배제되고 다들 ‘북중 관계’ 변화나 ‘한반도와 국제정세’나 ‘6자회담’ 향배로 까지 끌어 올려 과잉되게 고도화 전문화시키는 데만 몰두한다.

윤 교수는 세계 ‘문명사적 전환기’에 한국이 중심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도 가장 큰 문제에 봉착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문제’라고 규정한다. 한국이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북한문제’라는 문턱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이 인식과 접근태도의 과잉 탓이다. 사안이 ‘어려운 문제’라서 안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로 만들곤 하는 사람들이 풀려고 하니 안 풀리는 것이다.

윤대규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그 같은 정말 간단하고 쉬운 진실들, 불편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좌파가 아니라고 밝히는 저자가 그동안 ‘국가보안법’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적 민족주의자나 좌파 혁신주의자들이 주장할 만한 내용들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요구한다.

저자는 비록 체제경쟁에서는 남한이 압승을 하였을지라도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않는 이상)북한은 절대로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남한은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북한의 ‘핵문제’가 ‘남북문제’의 중심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석한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방송과 모든 출판물을 전면 개방하자고까지 주장한다. 북한에 가는 개인의 여행 및 경제활동 자유화 조치를 제안하며 남북간 ‘국가연합’을 제시한다.

이게 어느 재야 통일운동가나 좌파 진보주의자의 글이 아니다. 당장 실현가능성이 높진 않겠지만 우선 접근이 아주 쉽고 간명하지 않는가.

저자는 자신이 밝힌 내용들이 적극 고려되고 실현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정책 즉, 대치하는 남북 간이기에 필연적일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에도 폐기되지 않고 계속성이 담보되는 “쓸모 있는 (대북)정책”을 입안해야 함을 주문한다. 그동안 ‘정권특성’에만 맞춰 내는 임기응변식 대북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윤 교수의 이러한 혁신적인 제안들은 당장의 자주통일을 열망해 마지않는 우리민족 제일주의, 통일지상주의자들의 다분히 ‘운동’적인 입장들 즉, 국제 정세에 낙후된 인식에 바탕 한 공허하고 관념적인 통일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먼저 세계사적 전환기를 통찰하고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재고와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설파한다. 이어 주변 강국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가 지금 통 크게 준비해 나가야 할 필수조건들을 제시하면서 국가의 웅대한 비전을 재구성 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실현가능한 대안제시로 나아가고 있다.

서평을 쓰는 필자가 중국에 머물며 고국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안타까움은 대한민국(사회)은 ‘디테일 감각’은 많지만 ‘스케일 감각’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나 전문가집단이 바라보는 관점이나 의사결정 방향에서 가끔 ‘통’이 너무 작음을 느낀다. 중국이 유구한 과거 역사에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러 ‘국민당과 내전 역사’ 그리고 현재 ‘대만’과의 관계에서 ‘통’이 큰 ‘대국’의 면모를 보일 때마다 부럽기만 하다. ‘대국’이어서 ‘통’이 큰 것인지 ‘통’이 크기에 ‘대국’이 된 것인지 연구해 보고 싶을 정도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사고나 안목에서의 스케일은 작으면서 디테일로 빠져들며 모든 사안을 어렵게만 끌고 가는지 모르겠다.

윤대규 교수의 저서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불편하지 않게 금방 다 읽히는 작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 한권이 가진 가치는 색다르다. 나는 이 책의 가치는 대한민국 사회가 통 큰 비전을 세우며 국가의 미래를 웅대하게 열어보자고 윤 교수께서 국가지도자와 전문가집단에게 제안하는 혁신적인 인식전환, 그러면서도 비장한 출발선에서 일종의 ‘서문’을 썼다고 평가한다. 이 책 한권 전체가 거대한 담론의 ‘서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발언하기 시작한 저자의 열정이 식기 전에 이제 누가 누가 뒤를 이어 책임 있는 ‘본론’을 시작할 것인지...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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