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레길이 막히다" 원래 이 길은 올레길 7코스였으나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위한 담이 생기면서 올레길도 막혔다. [사진-김양희]

▲ 해군제주방어사령관 안내 표지판. 이미 2011년 2월 4일자로 기존의 해안길 코스의 올레길이 중단됐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김양희]

올레길이 막혔다.

작년 9월, 제주도 강정마을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이 그 아름답던 바닷가 올레길 7코스를 막아버리고 까마득히 높은 회색담을 쳐버렸다. 여전히 집집마다 노란색의 해군기지반대 깃발이 걸려 있고 일부 감귤나무는 흉측하게 잘려져 있다.

예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구럼비 해안이 예쁜 바다와 함께 올레꾼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해군기지 반대 요구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또 다른 평화마을로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가만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올레꾼들이 끊이지 않고 지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곳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이 찾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회색담이 너무 서늘한데다 올레길을 혼자 걷다가 사고를 당한 여성 관광객 사건이 생각나 한낮인데도 혼자만의 강정마을 방문은 용기를 내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참을 지키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없다. 회색으로 된 철제 담은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올레길을 끊어놓고 강정 바닷가와 사람들의 사이마저 가르고 있었다.

▲ 올레7코스 입구. 왼쪽 안내표지판에는 올레길 7코스 길이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오른쪽 장대에 달린 붉고 푸른 리본은 올레길임을 알리고 있다. 진입로 바닥에는 "구럼비야 보고싶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사진-김양희]

공사장 정문은 막혀있었고, 그 앞에는 강정 평화를 위해 싸우다 구속된 이들이 구속 수감된 지 며칠이나 지났는지를 보여주는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오랫동안 옥중단식을 하며 강정을 알렸던 양윤모 영화평론가는 벌써 구속된 지 100일이 넘었다.

건너편엔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활동가들이 곧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그곳을 지키는 모습으로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강정을 알리고 있다. 원래의 올레길 7코스로 진입을 하면 해군 측에서 만든 올레길 코스 변경을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 있고 바닥에는 ‘구럼비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 담 사이로 보이는 공사현장, 이미 강정마을 해군기지공사는 30% 이상 진척됐다. [사진-김양희]

회색 담을 따라 얼마쯤 가다보니 담 사이로 공사현장이 살짝 보이는데 벌써 바닷가에 많은 구조물들이 서있다. 이미 공정의 30% 이상 진행됐다고 한다. 지난 가을 방문했을 때는 태풍 때문에 케이슨(토목 공사를 할 때 물 속에서의 건설 작업용으로 이용되는 콘크리트로 만든 상자형의 구조물)이 7개 모두 파손됐었다. 케이슨은 방파제의 뼈대가 되는 대형 구조물로 아파트 8층 높이(20.4m)에 무게만 8,885톤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 큰 태풍이 아니었는데도 케이슨이 모두 파손되면서 과연 강정해안이 해군기지에 적합한 곳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었다. 또한 파손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인해 바닷가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들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케이슨으로 인해 공사현장의 예인선이 태풍으로 부서진 케이슨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다.

해군기지 건설현장에는 총 57기의 케이슨이 설치된다고 하는데 이미 꽤 여러 개의 케이슨이 설치됐고 배가 정박하는 시설도 자리를 잡았다.

▲ 강정지도-강정지도에 표기된 A삼거리 쇠사슬 농성장에 활동가들의 보물 삼거리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다음까페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cafe.daum.net/peacekj)]
▲ 강정마을 활동가들만 알 수 있는 간판도 없는 삼거리식당. 강정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이곳으로 가져오면 언제나 환영받는다. [사진-김양희]

그리고는 회색 담을 따라 조금 가면 삼거리식당이 나온다. 삼거리식당은 강정바다를 지키는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활동가들에겐 너무도 중요하고 잘 알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도 강정마을을 방문했지만 전혀 모르다가 작년 9월 한 선배의 심부름 때문에 이곳을 알게 됐다.

선배는 강정마을의 삼거리식당에 물건을 맡겨놓으라고 했다. 일행이 있었던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아무리 눌러대도 삼거리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몇 번을 길을 잃으며 물어물어 골목 사이에 간판도 없이 소박하게 있는 이곳을 봤을 때 오히려 보물이라도 찾은 느낌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강정 활동가가 아니면 삼거리식당을 알 수 있을까(지도와 함께 사진을 올리니 강정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은 꼭 삼거리식당을 찾아보는 재미도 클 것이다)하며 일행은 진정으로 강정을 방문한 기념이라며 삼거리식당의 인증샷을 찍었었다.

삼거리식당에는 활동가 한 사람이 나와 있는데 이것저것 묻는 내게 스스럼없이 “식사 안했으면 밥 먹고 가라”고 권한다. 각지에서 후원을 하거나 또 지인들이 보내주는 음식 등으로 활동가들이 식사의 즐거움을 공유할 이곳에서 밥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제주 하늘은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 김중덕 선거운동본부-2012년 대선 후보 김중덕의 선거용 포스터. [사진 제공: 다음까페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cafe.daum.net/peacekj)]
▲ 2012년 대선 후보로까지 추대됐던 강정마을 지킴이 '김중덕' [사진-김양희]

삼거리식당을 지나다가 아주 반가운 이를 만났다. 강정마을의 유명인사 김중덕.

김중덕은 새끼 때부터 5년이 넘도록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개로 성은 주인인 김 씨의 성을 따랐고 강정마을 구럼비 중심부에 중덕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이름을 빌어 중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중덕은 워낙 순해서 낮선 사람들을 봐도 잘 짖지 않고 애교도 많고 장난끼도 많지만 신기하게도 공사 업체 사람이나 군복을 입은 사람들만 보면 그렇게 짖는다고 한다. 목줄에는 ‘해군기지 반대’가 적혀 있다.

▲ 올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없어도 끊임없이 강정마을을 알리기 위한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공사장 정면 건너편에 설치된 홍보부스 모습. [사진-김양희]

특히 지난해에는 해군기지건설 찬성주민의 개와 싸워 큰 부상을 입혀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하는 무용담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중덕의 유명세는 2012년 대선에 후보로 추대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김중덕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들의 지지 속에 지난 8월 대통령 후보 발대식까지 진행했었다.

김중덕 후보는 △해군기지사업 백지화 △구속자들에게 무공훈장 수여 △구속을 주도한 법관, 검찰 2년간 감옥체험 △폭력 수사과장, 해군 방 소령 파면 △제주도지사 9급 공무원으로 강등 △조현오 경찰청장 돌섬 유배 △제주경찰 중덕해변 관리원으로 전환 △이명박에게 개의 작위 수여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2 대통령 후보’ 김중덕 선거운동본부는 “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폭력 사업들이 자질이 안 되는 인간들에게 세상을 맡긴 결과로 이제는 차라리 대한민국을 개에게 맡기자”며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개 같은 세상을 인간이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고 싶은 후보! 이제는 개에게 한 번 맡겨보자,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덕이의 집에는 문패는 물론 ‘2012년 대통령 후보 김중덕 생가, 이제는 개에게 맡겨봅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바 있다.

이처럼 강정마을의 주요 평화활동가 김중덕은 원래 공사장 정문 앞에 터를 잡고 해안가를 뛰어 놀며 지냈는데 이제는 공사장 정문이 굳게 닫히면서 찻길이 위험해 삼거리식당 앞으로 옮겼다. 이제는 그처럼 뛰어 놀던 바닷가를 방문할 수조차 없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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