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정치철학 책이 인기였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1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저자는 정의(Justice, 正義)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들면서 그 장단점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를 제시하고 또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들의 가르침도 제시하면서 정의 추구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다. 이 과정은 지적 유희일 수도 있고 지적 탐구일 수도 있다.

◆ 그러나 북한에 있어서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이 그렇게 한가하거나 어렵지 않다. 예전부터 북한은 ‘분단의 원흉’인 미국을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불렀다.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전면대결전’을 선포하면서 이를 ‘정의와 부정의와의 투쟁’이라 명했다. ‘정의’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월 15일 광명성절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전면대결전을 ‘정의의 위업’이라 불렀다. 한.미연합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이 개시되자 <노동신문>도 3월 1일자 ‘최후의 승리는 정의의 수호자들에게’라는 글을 실었다. 이 신문은 2일자에서는 ‘정의의 총대’로 도발자들을 징벌하겠다고 큰 소리 쳤다.

◆ 북한이 보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특히 그를 ‘조종’하는 미국은 ‘부정의’(不正義)의 대상이다.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 위성발사를 해도 이를 장거리미사일 발사라 우기고 제재를 가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한 마당에 핵실험을 해도 추가 제재를 하니 말이다. 이중잣대를 댈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부당해도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것이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비롯해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명명했다. 세계 최강국이 찍었으니 겁을 안 먹을 수가 없다. 그중 하나인 이라크에서는 후세인 정권이 미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당시 핵억지력만이 아니라 특별한 방어벽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인고의 세월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위성발사 성공과 핵실험 성공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강력한 대미 억지력이 생긴 것이다. 북한은 버텼다. ‘악’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 칼 마르크스는 역사가 두 번 반복된다고 말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십여 년 전 북한은 미국의 ‘악의 축’ 공세와 핵선제 공격 발언에 ‘비극적으로’ 시달렸다. 이제 거꾸로 북한이 미국을 향해 ‘전면대결전’을 불사하며 ‘부정의’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번째 역사는 북한에 있어 ‘희극적으로’ 될 것인가? 미국은 과연 ‘부정의’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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