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좋은 느낌으로 와닿는 아름다운 국명, 내게는 환상의 조국이다."

60여년 넘게 자리잡은 분단이데올로기 그리고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런 표현은 불편하다. 붓은 총칼을 이긴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붓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혼동의 흉기가 된다.

'가족시네마'로 국내에 유명인으로 알려진 작가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독자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미리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층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더라"라고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왜?"라고 반응한다.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도서출판 6.15)를 쓴 작가 유미리 씨(45)를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심가 한 찻집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의 작가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면서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출간된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는 유미리 씨의 세 차례에 걸친 방북기다. 재일 교포로 한국 국적인 그는 평소 평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지인들을 통해 2008년 10월부터 2010년 4월, 8월, 한번에 10일 정도 방북했다.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며 평양을 방문하고 책까지 낸 이유를 밝혔다.

유미리 씨의 외조부와 어머니는 경남 밀양 출신이다. 외조부는 해방공간에서 약산 김원봉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 뒤 한국전쟁 당시 탈옥,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동생은 손기정 선수의 동료 마라톤 선수로, 역시 우익계에 의해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정신적 이방인'으로 살아온 재일교포 유미리 씨는 자신의 가족사와 만나면서 북한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놓치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일본 보도밖에 접하지 못한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북에 대해서 납치문제, 미사일, 핵문제를 주로 다룬다"며 "제한된 정보는 눈 앞 콘크리트 벽처럼 느끼게 했다. 벽이 있으면 적의를 갖고 보니까 나라라는 덩어리는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알 수가 없다"고 방북 목적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북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서 있는 장소를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전면적으로 (북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서 있는 장소를 바꿨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미리 작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런 이유에서 일까. 책 '평양의 여름휴가'에는 아들 유장양 군과 동행한 방북 내용이 더 많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가 바라본 북한'이 어쩌면 유미리 씨가 바라본 북한일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는 "어린이라면 어른에 비해 선입견이 적다. 있는 그대로 접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어린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남북분단 상황을 두고 일본에서 북을 보도하는 것이고 연평도 등 사건의 배경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장소에 서서 보지 않으면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미리 씨는 책에서 거듭 '환상의 조국',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등 북한에 더 마음을 두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을 여러 번 방문한 그에게 분단선 이남의 땅은 어색한 공간에 불과할까.

유 씨는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외조부와 어머니가 살았던 조국의 풍경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평양, 개성, 백두산 주변을 돌아보면서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았다는 풍경을 알게됐다. 향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은 일로만 왔다. 서울에서 아는 것은 찻집 뿐"이라며 "평양에서는 일이 아닌 느긋한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더욱 향수를 느낀 것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평양의 여름휴가' 뒷 부분에 "방북기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백한 것처럼, 분단 조국의 냉엄한 현실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방북하고 돌아온 뒤 재일 한국영사관에 불려가 방북목적, 만난 사람 등을 취조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을 몰라서 그냥 백지로 냈다"고 고백했다.

유미리 씨의 조국을 향한 마음의 뿌리 내리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는 내년 4월 경 평양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스무살에 소설 쓸 때는 재일교포라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사를 더듬어가니까 역사를 알게됐다. 어머니는 밀양 출신이고 아버지는 산청출신으로 지리산 부근이다. 지리산은 장소 자체가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그렇기에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은 역사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

재일교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책 '평양의 여름휴가'도 유미리식 방북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조금만 톱아보면 책 '평양의 여름휴가'가 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유미리 작가에 대한 불호가 강한, 분단현실에서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아 볼 수 없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북한 땅 이곳저곳을 밟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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