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강성주 박사가 29일 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사건 25주기 추모제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제 논문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4가지 것들, 그러니까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4가지 항목들이 ‘김현희 KAL858기 사건’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가 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25주기 추모제에서 자신의 박사논문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 소설쓰기 국제관계학 / KAL858: 115번 죽어야 할 ‘처녀 테러리스트’』의 내용을 요약 발표했다.

10년 전 통일부가 주최한 대학생통일논문 공모전에 응모한 자신의 논문이 우수상에 입선했지만 KAL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문제가 돼 수상이 취소되면서 그는 이 사건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돼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모두 이 사건을 주제로 썼다. 

박강성주 박사는 추모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발표한 직후 인근 커피숍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박강성주 박사의 발표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가급적 가감없이 전제한다.

 

박강성주라고 합니다.
(전략) 먼저 짧게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제 논문은 국제관계학,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KAL858 사건을 소재로 다룬 논문입니다. 좀더 말씀드리면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4가지 것들, 그러니까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4가지 항목들이 김현희 KAL858기 사건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고요.

안보라고 했을 때는 크게 말씀드리면 남북-북남 관계에서 이 사건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 부분이고, 젠더 같은 경우에는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김현희씨가 여성이라는 것, 그 다음에 여성공작원으로서 미모에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 점, 그 부분에 관한 것이고요. 고통이라는 것은 일단 당사자 분들, 그러니까 115분의 실종자분들, 그 다음에 그 실종자분들의 가족분들, 그 다음에 또 저는 김현희씨도 나름의 고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고통의 문제가 있고요. 진실과 관련해서는 저는 이 사건의 이른바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기존의 안기부 수사결과대로 북쪽의 테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쪽의 흔히 말하는 조작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북쪽의 테러도 아니고 남쪽의 조작도 아니고 다른 제3의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논문에서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냐 라고 밝혀냈다라기 보다는 이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진실들이 있다. 그래서 논란이 있다. 그런 과정들을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진실과 관련해서는.

짧게 말씀드리면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문제들이 KAL858기 사건에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제 제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목 안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번역하면 제목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소설쓰기 국제관계학, KAL858’ 이것이 주제목이고요, 부제목은 ‘115번 죽어야 할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는데요, 일단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은 기본적으로는 김현희씨가 여성이라는 점, 미모로 주목받았다는 점인데요, 여성주의라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라 더 넓은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의 문제,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건가. 그 부분이 하나 있고요.

또 다른 것은 고통의 문제, 이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서 이야기할 건가. 그러니까 여성주의라는 것은 이 부분들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런 관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소설쓰기라는 것은 제가 학술회의나 그런데서 논문 쓰는 과정에서 몇 번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이 사건은 미스터리 같다. 소설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부분과 그 다음에 국제관계학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국제관계학에서 정보가 부족한 사건 또는 국가 기밀에 해당되는 부분이 많은 그런 사건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겁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정보가 부족한 이 사건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풀어낼 수 있다라는 것이 제가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이고요.

좀더 말씀드리면 제가 직접 사건을 소재로 해서 쓴 소설이 박사논문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거기서는 실종자 가족분과 김현희씨가 주인공으로 된 소설이고요. 여기에서 제가 실종자 가족분을 모델로 해서 인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레이스 한’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레이스는 영어로 그레이는 회색빛을 뜻합니다. 색깔. 그래서 뭔가 확실하지 않은, 흐릿한 부분들이 이 사건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회색이라는 색깔에서 이름을 하나 가져왔고요, 그리고 한이라는 것은 가족분들 마음 속에 쌓여 있는 그런 응어리들, 한 거기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그레이스 한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은 사실 제가 실종자 가족분의 이야기에서 그렇게 모델을 삼았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오늘 와계시지만 이을화 선생님의 따님, 여성 승무원으로 비행기에 타고 계셨던 그분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는데, 그레이스 한이라는 분은 그 여성 승무원의 쌍둥이 언니입니다. 그냥 언니가 아니라 쌍둥이 언니인데요, 이 부분이 중요한데, 삶과 죽음의 문제, 삶과 실종,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부분, 이것을 상징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해서 그냥 언니가 아니라 쌍둥이 언니라는 인물로서 표현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부분이 소설쓰기 국제관계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KAL 858은 말 그대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부제목인 ‘115번 죽어야할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먼저 처녀 테러리스트라는 것은 1990년에 신상옥 감독이 이 사건을 바탕으로, 더 정확히는 기존에 안기부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마유미’입니다. 그런데 영어의 부제목이 바로 이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제 부제목 중의 하나를 가져왔고요.

‘115번 죽어야할’, 이 부분은 논문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분들을 면접했는데 제가 면접했던 가족분 중의 한 분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분은 기존 수사결과가 맞다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김현희씨가 폭파범이라고 믿고 계십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김현희씨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바로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가족분은 김현희씨를 사형시켜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김현희씨가 일단은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김현희씨를 죽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만약에 김현희를 죽어야 한다면 한번이 아니라 115번을 죽여야 한다. 왜냐하면 비행기에 타고 계셨던 분들이 115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김현희씨 본인의 입장에서는 115번 죽어야 한다는 말이 가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실종자 가족분들의 마음은 응어리가 쌓여있다, 그런 뜻에서 115번 죽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문의 그런 핵심내용은 다 말씀 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말씀드리자면 고통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115분 실종자분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심했던 결과가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서 제안했는데요, 한국어로 옮기면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라는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The unliv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실종이 이 사건과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시신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분들에 문제가 있는데, 시신을 보셨으면 포기를,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종이기 때문에 다른 사건과는 많이 구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장준하 선생의 경우는 시신이 있었고, 두개골에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종에서 오는 고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이분들이 가족분들의 꿈에 나타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과 관련해서 ‘살아 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라는 개념으로 논문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가족분들 면접을 나름대로 했는데요 홧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고요, 그러한 답답한 그런 마음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 다음에 머리가 아주 답답하고 뭔가 꽉 차여 있고, 아프고 그래서 병원에 다니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고요.

또 하나는 진실과 관련해서 저는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기존 안기부 수사결과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철저하고 전면적인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비공개 공문을 살펴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이 5개국에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밀문서를 나름대로 받아왔는데요, 그 중에 시간이 없어서 딱 한부분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88년 1월 12일자 호주 비밀문서의 내용입니다. 당시 서울에 있던 호주 대사와 한국의 외교부 관리가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관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김현희씨가 사형을 당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사회에 새롭게 정착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1988년 1월 12일 이 날짜입니다. 수사결과는 1월 15일에 발표가 됐습니다. 그 다음에 김현희씨 재판은 훨씬 뒤에 진행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진행되기도 훨씬 전에, 그 다음에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김현희의 사면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요. 그러니까 김현희씨에 대한 사면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그 시간에 실종자분들, 아니면 실종자 가족분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이라도 더 했으면 어땠을까. 나아가서는 87년 12월 2일에 안기부에서 무지개공작이라는 문건을 작성합니다. 이 KAL858기 사건을 당시 대선에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문서입니다. 저는 또 생각이 들었던 게 그 공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예산이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예산의 일부분이라도 수색하는데 좀더 썼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생활이 어려워진 실종자 가족분들을 위해서 그런 예산을 조금이라도 썼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영국에 있다가 스웨덴으로 옮겨가게 됐는데요, 논문 심사를 마치고 영국에 남아 있는 짐을 스웨덴으로 부쳐야했습니다. 그런데 제 책들과 물건들이 도중에 분실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소포가 실종이 됐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소포회사에 많이 연락도 하고 했는데 결국 찾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최근의 일인데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좀 춥고 으시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딱 들었던 생각이 ‘어딘가에 있을 내 책들 물건들은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라는 생각이 아침에 눈을 뜨는데 들었습니다. 또 들었던 생각이 ‘아, 이게 혹시 실종자 가족분들의 그런 심정이 아닐까. 내 딸들, 내 아들들, 내 남편, 내 가족들은 지금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라는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그날 아침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책들을 잃어버리면서 또 생각하게 된 게, 제가 이 사건으로 박사논문도 썼고 해서 저는 이제 다 끝난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 잊어버려도 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입장인데, 그렇게 잊지 말라는 뜻에서 제 책들이 도중에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논문을 통해서 이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이 무엇이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기 때문에.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이 결국에는 제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문 면접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국정원에서 왔느냐, 아니면 북쪽에서 왔느냐, 아니면 KAL858기 실종자 가족이냐, 친척이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학부생일 때 통일부에서 주최했던 통일논문공모전이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응모를 했는데 운이 좋아서 우수상에 입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전화가 왔는데 “논문 내용 중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으니까 다른 내용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삭제를 해라”.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하니까 그 상이 취소가 됐습니다. 그 문제가 됐던 부분이 바로 이 KAL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나름대로 신경쇠약 비슷한 증상도 겪고 나름의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 신경쇠약을 겪고 그랬던 시간, 제가 마지막으로 논문을 다 쓰고 책들을 잃어버린 그런 사건.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 KAL858기 사건이 저 자신의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논문은 다 썼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이 사건, KAL85기 사건을 제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가겠다라는 말씀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

 

▲ 박강성주 박사는 29일 추모제 직후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박사학위를 언제부터 썼고, 왜 외국으로 나가서 박사학위를 했나?

■ 박강성주 박사 : 원래는 이 사건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다 쓰고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다. 밖에 나가서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가 석사학위 논문을 썼던 시기가 마침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한 시기였다. 조사관으로 지원을 해보라는 주위분들의 말씀에 고민을 하다가 대여섯 번을 계속 지원했지만 안됐다. 어차피 공부할 계획이었으니까 준비를 해서 2008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박사과정 공부하면서 이번 논문을 쓰게 된 거다. 올해 7월에 심사가 있었고, 학위가 나온 건 8월이다. 이번 여름에 학위까지 다 끝난 거다.

□ 어느 대학에, 어떤 인연으로 공부하게 됐나?

■ 영국의 랑카스터 대학 소속이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였는데, 제가 같이 공부하고 싶었던 선생이 영국에 계셔서 그 학교에 가게 된 거다. 박사과정을 지원할 때 선생과 미리 이야기한 다음에 했고, 지원도 딱 한 군데 했다. 크리스틴 실베스터 선생인데,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분야에서 꽤 괜찮은 학자다.

□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국내가 아닌 국외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들었다. 이유는?

■ 처음에 영국으로 가기 전부터 밖에서 자리잡을 생각을 하고 간 거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국에 들어올 계획은 없었던 거다. 어떤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사실은 학부생 때 기회가 좋아서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밖에 나가서 경험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하다보니까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혹시 밖에 나와서 공부할 기회가 다시 있으면 쭉 바깥에서 생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약간 공부와 관련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타자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이른바 유럽에서 공부하는 제3세계 국가의 학생이라는 것 때문이다. 이런 타자성이 제가 공부할 수 있는, 이렇게 사유하는 자원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점을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느꼈다. 그래서 이런 타자성을 나한테 부족하고 불리한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공부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원으로 전환시켜서 하나의 힘으로 이용을 하면 괜찮겠다 는 생각을 했다.

□ 논문 작성과정에서 실종자 가족 등을 면접조사 했는데, 어떻게 진행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소개해달라.

■ 일단은 63명을 면접했고 그 중의 절반 정도가 실종자 가족들이다. 그런데 처음 계획은 실종자 115명의 가족들 전부를 면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상의 제약이나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일단은 30여명 면접했고, 나머지는 이 사건을 다뤘던 언론인들, 국정원발전위나 진실화해위에서 이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전직 공무원들, 이 사건을 어떤 형태로든지 짧게나마 다뤘던 역사학자들이 절반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이 사건에 대해서 기존수사 결과를 지지하시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가족들 중에서도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의 위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언론인은 언론인의 입장에서, 재조사에 참여했던 이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기존 수사결과를 지지하는 이들은 또 어떤 입장인지, 그에 반해서 의문점을 제기하는 이들은 어떤 입장인지. 다 그들의 위치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랐다. 실종자 가족들 중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고 기존 수사결과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 논문 부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115번 죽어야 한다”고 한 이 가족은 김현희씨가 폭파범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유일한 증인이기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에 죽어야 한다면 실종자 가족의 수만큼 115번을 죽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이렇게 여러 가지 갈래구나. 그런 느낌도 느끼게 됐다.

□ KAL858기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꾸준히 해왔는데, 정보공개 청구를 소개해주고 그 내용을 평가해 본다면?

■ 일단은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5개국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한국의 경우는 국정원이 거부했고, 미국 CIA(중앙정보국)와 국무부, 영국 외무성, 호주 외무부, 스웨덴 외무부 이런 기관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했다.

이미 <통일뉴스>에 모두 기고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일단은 미국 중앙정보국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이 북쪽이 한 것이 맞다라고 했을 때 너무 빨리 일어났다’라든가, 아니면 미국 국무부가 통일원의 남북회담 사무국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또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말했던 ‘동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게 특히 미국 쪽 같은 경우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한국 수사결과를 지지했다는 그런 큰 방향에서 이런 부분들을 부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밀문서에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해서 바로 이 사건에 어떤 커다란 중대한 조작이 있었다고 바로 연결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런 비밀문서에 남아있는 그런 기록들은 생각할 지점들이 있다고 보는 거다.

□ 논문이 마무리됐는데, 이후 출판 계획 등이 있는지?

■ 일단은 영국 쪽 출판사에 지금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서 이야기를 진행했었고, 영어권 쪽에 논문을 출판할 계획이다. 그 다음에 한국 쪽도 당연히 출판할 계획으로 있다. 그런데 한국 쪽 같은 경우는 일단 번역하는 문제가 있고 논문 자체가 학술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좀 쉬운 언어로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래도 한국어로 나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 '진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박강성주 박사.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오늘 추모제에서 논문 내용에 대해 축약해 발표했는데, 추가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이 논문을 쓰면서 석사논문 썼을 때랑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2007년에 냈던 책에서의 진실과 관련된 입장이, 생각이 변하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이 뭐냐면 2007년 정도까지는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입장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분명히 기존 수사에 문제점들이 많기 때문에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계속 똑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

그 전에는 일단은 진실이라고 했을 때 ‘이 사건이 북쪽의 테러라는 쪽, 남쪽의 조작이라는 쪽,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실체적 진실이라고 볼 수 있는 그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논문을 쓰면서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담론의 효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진실은 어떤 진술이나 증거에 의해서 밝혀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말들, 그 다음에 해석들, 그 다음에 이것들을 포함한 정치가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실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고정돼 있지 않다. 이게 여러 가지 과정이나 해석들, 정치에 의해서 끊임없이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게 실체로 딱 있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 논문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다.

그런데 또 하나는 위치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는데, 제 논문의 결론 부분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제가 만약 실종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진실이라는 문제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면, 제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제가 연구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연구자의 위치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또 제 진실과 관련해서 논문의 결론 부분에, 전체적으로 논문을 돌아보면서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 언제 출국하고 이후 계획은?

■ 이번에 온 것은 추모제 때문에 잠깐 온 것이고 월요일 아침에 나간다. 언제 한국에 들어올지는 모르겠고, 저는 일단은 밖에서 자리잡을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계속 밖에서 아마 머물 것 같다.

□ 추모제 발표에서 고비도 있었다고 얘기했는데, 유학생활이 힘들거나 어렵지 않나?

■ 일단 공부를 제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고, 또 제가 원해서 간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아까 말한 고비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좋았다. 제가 겪었던 고비, 고통의 문제가 다 연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고통, 실종자들의 고통, 아니면 김현희씨도 나름대로 고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통과 제 고통도 다른 차원이지만 서로 공명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여성주의 국제학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소재로 쓴 논문인데, 여성주의는 어떤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관점 중의 하나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고통이 서로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가, 그런 쪽과도 연결이 돼서 논문에 쭉 제 이야기를 녹여내고자 했던 것 같다.

□ 이름도 박강성주라고 오래전부터 썼던 것으로 안다. 여성주의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

■ 계기라기 보다는 여성주의자인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제가 나름대로 책을 읽거나 아니면 여성주의 관련된 기사나 글들을 읽으면서 접하게 된 것이다.

□ 남기고 싶은 말은?

■ 저는 박사논문을 이 사건을 토대로 썼지만 단순히 하나의 특정 사건을 소재로 쓴 논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2002년 여름 통일논문 사건으로부터 정확히 10년 걸려서 박사논문을 썼다. 저는 이 논문이 하나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10년의 삶을 나름대로 아로새긴 그런 작업이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 가장 중요한 청춘의 시기 10년을 KAL858 사건과 함께 한 것 같다. 이후 생각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 사실 KAL858 사건 같은 경우는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이 중요시하는 ‘제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을 논문으로 쓴 것이었는데,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텐데 제 몸 바깥에 있는 제가 경험하지 않은 다른 사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 사회과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연구자와 연구대상을 분리시키는, 그러니까 연구자를 객관화된 위치에서 어떤 특정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주류 사회과학의 접근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박사논문 공부하면서 공부했던 방향은 기존의 연구자와 연구대상이 객관적으로 분리되는 방향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 방향에 맞는 다른 연구소재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고민도 더 필요할 것 같고, 아무튼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계속 한국 현대사와 관계된 주제를 연구할 생각은 없나?

■ 일단은 남북관계, 북남관계에 관련된 사건들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정2, 2015.7.8 17:16 : 박강성주 박사의 요청으로 일부 내용을 삭제.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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