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8월 8일 오후 2시에 강북구 수유동 소재의 ‘근현대사기념관’에서 개막한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에 유족대표 조근송 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필자는 수차 그에게 연락하였지만, 그는 지금 가짜 유족 이 모씨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조 혜택도 없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1. 이상설 주변의 친일 세력탁월한 독립운동가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의 주변에는 항시 친일 세력이나 밀정, 심지어 악랄한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오는 8월 8일 개막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의 ‘근현대사기념관’ 기획전과 이준 열사 추모 사업의 정상화를 위하여 이 글을 쓴다. /필자 주 유독 이준 열사는 가짜 자손이 많이 출현한다. 직계 자손 모두가 함경남도 북청에 있어 그런 것 같다. 이준 열사의 자녀로는 외아들 이용(李鏞, 李勇) 장군과 장녀 이송선과 차녀 이종숙이 있다.장녀 이송선는 조건학과 결혼하였고, 차녀 이종숙은 역사학자 유자후와 결혼하였다. 외아들 이용 장군은 부인 청해이씨(李周年의 딸)와의 사이에서 장손자 이
거울우렁찬 「통일에의 고동」 ○.... 혜지와 청명에 빛나는 젊은 학생들의 불타는 조국애는 통일촉진의 전위로서 새로운 광명을 겨레들 앞에 비치고 있다. 억누를 길 없는 정열과 힘이 솟구치는 학생들의 통일에의 외침은 십육년동안 무쇠같이 가로막아온 북한의 하늘 멀리 울려 퍼져나갔다. ○.... 내나라 내 겨레가 통일없이 살 수 없으며 민족의 사활문제를 남의 나라에 맡겨만 둘 수 없다는 학생들의 주장... 언제까지나 사대와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어날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기 만하는 기성세대를 믿을 수 없다는 젊은 감성들... 여기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필자는 인물사 연구를 위하여 1975년부터 현재까지 48년간 역사서와 함께 여러 성씨의 초간보 및 재간보, 보학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필자는 자료 수집 초기에 봉건시대의 재래식 보학(譜學)을 배운 바 있다.우리나라에서 보학은 조선초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학의 확산은 조선 영조조 이후 각 문중에서 족보를 편찬하는 시기에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보학이라면 흔히 문중보학(門中譜學)이라 불러왔다. 문중에서 주장하는 것을 되풀이하여 소개하는 수준이었기 때
독자논단제2공화국에의 항의 = 4.19부상자의 한사람으로서=도대체 잘된 것이 무엇하나 있느냐 한동학 4.19혁명의 성과는 도시 무엇인가? 도처에서 들려오는 민생고의 하소연은 고사하고 혁명이 그렇게도 그 제거를 다짐한 부패나 비원부정은 좀채로 제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역행현상까지도 산견한다. 이것은 혁명의 주체가 권력의 담당자가 되지 아니하고 기성정당에게 양보하여 소위 고요한 혁명을 바랐던 때문인 것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의 현상은 한마디로 말하여 너무나 심하다. 실로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개혁되었느냐는 것을 반문하고 싶어진다.
톺아보기 18에서 과학기술인재관리법을 살펴본 김에 과학기술 중시와 관련하여 김정은 집권기에 제·개정했거나 강조하는 법·제도의 사례 몇 가지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2019년 4월 개정헌법에 과학기술 중시 반영먼저 이번 글에서는 북 헌법에 반영된 과학기술 중시 노선의 내용을 확인해본다. ‘헌법’은 국가의 형태, 국가기관의 운영 원리, 국민의 기본권과 의무 등을 규정한 국가의 기본 법칙, 최고 법규이다. 북에서도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 국가발전의 원칙을 규정한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 헌법 속의 과학기술 관련 내용을 보면 과학기술에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제대로 보자논문이 밝히고 있는 인용문이나 주(註)는 검토하거나 확인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나 연구가들은 인용문이나 주를 교차 검토하지 않는다. 그러한 현상을 염두에 두고 일부의 논문에서 인용문을 조작하거나 주로 왜곡하는 현상을 보여 준다. 완전히 “눈을 가리고 야옹”하는 현상이다.그 한 예로 지난 수년간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1906년 특사증을 제시하며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 특사증으로 주장하였으나, 필자가 금년 6월 5일 자로 ‘신 잡동산이’ 제13회 연
시론 (하)통한을 위한 유엔의 노력에 대한 재검토 「UN군」이라 할 수 없다.남북한의 정치는 미⋅소의 출장정치 (앞의 것을 이음) 3, 6.25이후 「유엔」에 의한 한국문제취급의 실제적 의미미⋅소공위서 합의보지 못한 문제가 유엔에서 냉전거리로만 더럽혀져오다가 드디어 열전의 폭발로 화하고 만 것이 6.25동란이었다. 그동안 남북한의 정치는 미소의 출장소 정치에 지나지 못하였으며 우리의 민족은 출장소 정치의 희생물에 지나지 않았다. 6.25는 민족의 피를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제해결을 가로 맡은 유엔은 중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주초에 기고한 제19회 연재 ‘허준 묘소를 찾기까지를 소회(所懷)하다’에 이어, 이제는 이후 이야기의 일부를 간략하게 글로 남긴다.6. 허준 묘 취재에 얽힌 이야기1975년부터 나는 우리 민족의 인물사 연구와 자료 수집에 집중하였다. 과학 입국으로서 미래의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을 찾아 나섰다. 이런 시기에 허준의 간찰을 입수하였고 여러 문헌과 자료를 검토한 결과 나는 허준이란 인물에 매료되었다.1983년경에 나는 당시 KBS 보도본부 문화부의 이동식 기자에게 “내가 허준 선생의 묘소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구암 허준(許浚, 1539~1615)의 편지 한 장이 필자로 하여금 운명과도 같이 사십여 년의 세월을 매진하게 하였다. 이제 이 운명과도 같은 업무를 내려놓고자 하여, 그 업무에 얽힌 이야기의 일부를 간략하게 글로 남긴다.1. 허준과의 만남1981년에 골동 거간 강 모 씨는 ‘허준(許浚)’이라 기명 된 간찰(簡札) 1점을 내게 가져왔다. 그가 고려대의 김상엽 총장의 소장품이라고 하여 거액에 매입하였다.입수 후에 나는 허준이란 이름을 쓴 동명이인이 있는지 궁금하였다. ‘허씨대종회’를
거울자유를 도살한 자는 이렇게 됐다. ○.... 여기 왕시에 영화를 자랑하고 민중의 머리 위에 군림하였던 민주주의 반역도배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권세에 아부하고 권력을 마구 휘둘러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질식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던 원흉들... 서슬이 시퍼렇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도살하는데 남다른 위훈을 남긴 자들이 「혁명법정」에서 심판받기 위해 끌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유당 천하에서 이독재 정권의 중추를 이루었던 당시의 「브레인⋅트러스트」들... 오늘은 한낱 죄인의 몸으로 쓰디쓴 반역도배의 「오랏줄」에 묶인 이들을 우리는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시민모임 독립'과 '지역사'(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가 선정한 7월의 근현대사적지는 (서울 혜화동 로터리)입니다. 7월의 근현대사적지 캠페인은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도 함께 합니다. / 필자주혜화동 로터리,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지'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은 '여운형 활동 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어 있는 정류장이다.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서울시가 유명 독립운동가의 활동 터 근처 버스정류장을 정비할 때 14곳 중 한 곳으로 포함된 덕분이다.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개화기의 조선과 대한제국에 진출한 서구(西歐)의 인물들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첫째 부류는 개신교 계열과 천주교 계열의 선교사이고. 둘째 부류는 우리나라에 주재한 구미 각국의 외교관이며, 셋째 부류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상인이나 기술자이고, 넷째 부류가 언론인이며, 다섯째 부류가 군인이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서구인의 대부분은 그들의 가족일 것이다.지난 회에서 다룬 알렌은 선교사이자 의사였으며, 차츰 외교관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고종과 왕비의 총애를 입은 알렌은 우
세상 (2)/ 기아(棄兒) 싸늘한 세파(世波)에 버려진 싹들금년(今年)들어 252명그 설움 그 안타까움 〇... 5일은 어린이날 - 「가정과 사회의 참된 애정으로 키워야 한다」는 어린이 헌장이 무색하게 서울 거리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기아 수는 금년 들어 253명, 하루 평균 두 명 꼴이 넘는 아기들이 부잣집 문간이나 공중변소에 내동당이쳐졌다. 그들의 어버이는 왜 자기의 피를 나눈 귀여운 생명을 따뜻한 품속에서 키우지 못하고 싸늘한 세파 속에 내던져 버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이 사회의 슬픈 생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특수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조선과의 통상교역 및 진출을 위한 조선 침략, 즉 1871년 신미양요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변화가 일어난다. 미국은 조선에 직접적인 거점을 마련할 수 없으므로 일본 요코하마 지역을 조선 진출의 거점으로 이용하게 된다.당시 중국은 두 차례의 아편전쟁으로 인하여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이 진출해 있었고, 일본은 1853년 페리 제독의 함포 외교의 위협으로 1854년 3월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고 개항을 하게 된다. 이후 일본의 근대화는 급속도로 진척되는데, 신미양요시
사설통한을 위한 유엔의 노력에 대한 재검토 한국문제의 성격UN에서의 논의는 정당했던가전승국간의 전후처리문제이다. 장총리 발언의 중대성UN 결의에 불복시사북한만이 참석한다면은 그 손실을 어이하려는가1, 4.21 장총리 언명 것이 의미하는4월 21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장총리는 유엔을 통한 한국통일에 관해서 획기적인 발언을 하였다. 즉 「국토의 통일이 우리의 소원대로 되지않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 용공적인 면모의 통일이라면 차라리 현상대로의 남북분단상태를 택하겠다.」고 언명하였다한다. 이 말은 그냥 듣고 넘기면 아무것도 아닌
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과학기술 인재의 효율적 관리, 활용이 목적2023년 4월 11일 북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과학기술인재관리법을 채택(제정)했다. 북에서 말하는 ‘과학기술 인재’는 ‘대학 졸업 정도의 과학기술 지식을 갖고 있고, 그 지식을 현실에서 응용할 수 있는 과학자나 기술자, 또는 그 정도의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인재관리법은 국가가 모든 과학기술 인재를 파악하고 관리하면서 그들을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인민생활 향상에 효율적으로 조직, 동원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은 6개 장 43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는 무엇이고 미래에는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는 정치적 문제이기에 쉽게 답하기도 주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민감한 뜨거운 감자를 ‘신 잡동산이’에서 차갑게 다루고자 한다.조선시대 말기에 미국에 대한 관점을 돌이켜 보자. 1871년 4월 어전회의(御前會議)에서 고종(高宗, 재위 1864~1907)은 영의정 김병학(金炳學, 1821~1879)에게 “미리견(彌利堅: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사설 「음모조작업자」와 「반공청부업자」들은 「하와이」로 가라= 홍광표의원의 반민주적 언동을 규탄하며 = 붉은 「블랑켓」(천)만 보면 미친 듯이 날뛰는 서반아 투우처럼 진보적인 정치인만 보면 징그러운 구렁이 같이 추근추근 감겨 달라붙는 정치적 속물들이 우리 정계에는 너무나 많다.「혁신공포증」 걸린 이런 「보수한다」는 정치상인배들은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간지와 매춘부의 「갈보생리」를 갖고 강력한 정치세력의 혼뢰가 되어 권모술수의 서투른 곡예를 넘는 것이다.이와 같은 「공공환자」 「정치사기한」 「음모장이」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대한제국을 염탐하다임진왜란 직전에 왜(倭)는 많은 밀정을 조선에 잠입시켜 조선팔도를 조사하고 지도까지 그려갔다. 조선 침략에 앞서 사전준비를 한 것이다.이러한 정탐 행위는 조선후기에도 그대로 답습되었다. 1875년 9월 20일 발생한 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은 일본 군함 운요호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조선 정부의 동태를 살피다가 조선 수비대에 발각되어 전투를 벌인 사건으로, 이 사건은 근대 일본이 조선을 정탐한 대표적인 사례이다.이후 일본은 강화도조약(1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