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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낙하산을 편 채 - 이수명 비 오는 날, 나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우리는 낙하산을 편 채 걸어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와 함께 공부하는 인문학반들이 개강을 했다. 다들 만나자 마자 이번 여름의 살인적인 폭염에 대해 얘기를 했다. 기온이 3도만 올라가도 빙하기가 다시 온대요. 지구의 물이 사라진대요. 등등.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9.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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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란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9.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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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니리. 약수터에 갔더니 사람들이 ‘정치 토론’에 열중해 있다. ‘문재인 못 믿겠어.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야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8.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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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술잔을 앞에 놓고 - 백거이 달팽이 뿔같이 조그만 땅에서 뭘 그리 다투고들 있는가? 부싯돌에서 튀는 불꽃처럼 짧디짧은 인생인데 부자든 가난하든 기쁘게 살아야 될 것 아니겠는가? 입 벌려 웃을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바보 천치라네! 보르헤스의 소설 ‘비밀의 기적’을 읽었다. 갑자기 사는 게 신난다! 그의 소설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8.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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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문의 즐거움 - 프랑시스 퐁쥬 왕들은 문에 손대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 친숙한 널빤지 하나를 부드럽게 혹은 거칠게 앞으로 밀고, 다시 그쪽으로 몸을 돌려 그것을 제자리에 밀어두는, ---팔로 문 하나를 껴안는 행복을. 옆구리쯤에서 어느 방의 이 높다란 방해물을 자기로 된 고리로 움켜잡는 행복...... 이 재빠른 백병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8.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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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비- 백석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아랫집 담배 냄새 때문에 창문을 못 열겠어요- 모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아랫집에서 담배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속에서는 부아가 들끓고.같은 주택에 사는 이웃인데,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데, 도움을 청할 수 없다니! 우리는 그런 이웃들과 데면데면 만나며 하루하루를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8.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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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짐승들 - 휘트먼 나는 짐승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면 한다. 그들은 아주 침착하고 과묵하다. 나는 서서 오래오래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제 처지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애처롭게 울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앉아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구역질나게하지 않는다. 한 놈도 남에게 또는 몇 천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8.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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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손으로 느끼는 삶 - 옥타비오 파스 나의 손은 너의 존재의 커튼을 연다. 너를 또 다른 벌거숭이 옷으로 입히고 네 몸의 그 많은 육체들을 벗긴다. 나의 손은 너의 몸에서 또 다른 몸을 창조한다. 모 고등학교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다 한 남학생에게 나눠준 자료를 읽으라고 했더니 그 남학생은 ‘선생님, 저는 미성년자라 못 읽겠어요.’‘응?’ 나는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7.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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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세계 위에, 지붕과 풍경들 위에, 내 몸을 풀어놓고 싶구나, 나의 꿈속에서는 쥐를 쫓는 불타는 욕망과 함께. -파브로 네루다, 「고양이의 꿈」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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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8.07.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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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귀천 - 천상병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소풍이 마냥 아름다웠을까? 내 뇌리에는 흑백 사진처럼 새겨진 학창 시절의 소풍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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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8.07.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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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그 여자 늑골 아래 - 황인숙 그 여자 늑골 아래 흉가 한 채 있다네.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놈은 그럭저럭 자리 잡아 별 해꼬지를 않았고 그녀 역시 손닿지 않는지라 그들은 하여간 그럭저럭 잘 지내네.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하지만 나 잘 있어요, 하고 전보라도 보내듯 이따금 놈은 느닷없이 물어뜯네. 느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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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8.07.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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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어린이 - 이정석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아 놓은 꽃게들. 영어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주 오래 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감기 증상이 있기에 감기약을 먹였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졸렸나 봐요. 집에 가서 엄마한테 학원 원장선생님이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 엄마가 만나자고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
2018.06.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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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일 - 요시노 히로시 정년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잠깐 놀러 왔어 하며 나의 직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심심해서 말야 -팔자 좋군 그래 -그게 글쎄, 혼자 있자니까 엉덩이가 굼실거려서 예전 동료의 옆 의자에 앉은 그 뺨은 여위고 머리에 흰 것이 늘었다. 그가 위로를 받고 돌아간 다음 한 친구가 말한다. 놀랍군, 일을 하지 않으면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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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8.06.20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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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레이스 짜는 여자 - 김혜순 송편을 빚다가 떡 반죽을 두 손으로 마구 짓뭉개고 침을 탁 뱉고 마구 내던지고 싶다가도 형형색색의 가지런한 송편 술을 따르다가 술잔을 내던지고 깨뜨리고 깨어진 술병을 들고 마구 찌르고, 뚝뚝 듣는 선혈을 보고 싶다가도 약간 떨며 술잔 모서리에 찰랑 알맞게 언제나 고요한 시선, 고요한 수면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6.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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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연(蓮) - 허영자 꽃아 정화수(井華水)에 씻은 몸 새벽마다 참선(參禪)하는 미끈대는 검은 욕정(欲情) 그 어둠을 찢는 처절한 미소로다 꽃아 연꽃아. 모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거기’라는 말을 썼다가 한 여학생에게 ‘성적(性的)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학교폭력위원회에 제소되었다고 한다. 그 남학생은 학폭위 조사를 받으며 ‘맨붕’이 되었다고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6.0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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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하 늘 -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5.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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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병든 장미 - 윌리엄 블레이크 오 장미여, 그대 병들었구나! 폭풍 울부짖는 어두운 밤 보이지 않는 벌레가 날아와 그대 침상에서 진홍빛 환희를 찾아내 그 은밀하고 어둔 사랑으로 그대 생명을 파괴하는구나. ‘유흥업소 성폭행 피해자의 눈물 ..미투운동 보며 답답’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댓글을 읽어보니 ‘힘든 일은 안하고’ ‘죄다 유흥 등 쉽게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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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8.05.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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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전문가 - 기형도 이사 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 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5.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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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부두 위 - 흄 한밤중 고요한 부두 위 밧줄 드리운 높다란 돛대 끝에 달이 걸려 있다. 그렇게 멀어 보이던 것은 놀다가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풍선뿐이다. 임신하여 배가 불러오는 엄마에게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기가 어눌한 발음으로 ‘내 동생 없어.’ 하더란다. 병원에 갔더니 정말 가상 임신이었다고 한다. 아기 눈에는 세상만사가 그냥 보이나 보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5.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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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야생 보호 구역 - 강기원 나마스테, 내 안의 황야에게 황야의 굶주린 맹수에게 피 흘리는 옆구리에게 옆구리에서 자라나는 가시에게 가시뿐인 덤불에게 덤불을 키우는 바람에게 침묵의 동굴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어떤 사육사로도 길들여지지 않는 태양을 삼켜 버린 달처럼 빛나는 홀로인 야수 야수인 예수에게 합장,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그의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8.05.02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