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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서울 신호 혼란스럽다,
이 대통령 직접 만나 확인해 오라”
<수정> 북 특사조문단 성사 주역 임동원 전 장관
2009년 08월 30일 (일) 12:02:06 김치관/박현범 기자 tongil@tongilnews.com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대화에 관심이 있는데, 그동안 서울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확인해서 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북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의방문단'(특사 조문단)의 그간 알려진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계기로 삼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겠다”는 '임무' 외에 새롭게 밝혀진 임무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한 남북 정상 간 '간접대화'를 막후에서 성사시킨, 김대중평화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28일 서울 한 사무실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특사 조문단의 '임무'를 비롯한 2박 3일 방문의 전말을 밝혔다.

"金위원장, 서울 신호 혼란스러워... 李대통령 직접 만나 확인해 오라"

   
▲ 28일 임동원 김대중평화센터 이사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방문의 전말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북 특사 조문단 파견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8월 18일 저녁, 임시 빈소였던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지하 2층에 ‘김대중평화센터 사람들’인 임 전 장관과 정세현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이사(민주당 의원), 문정인 자문위원(연세대 교수) 등 네 명이 모이면서 시작됐다.

이전 정부들에서 남북관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 네 명의 베테랑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첫날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측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을 목적의식적으로 추진했다.

임 전 장관은 “남북 간에 소통이 안 되는 마당에 우리가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합의를 봤다”며 "그래서 조문단이 와야 하고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김대중평화센터의 임동원, 박지원 이사 이름으로 이사장이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했다는 것을 (북측에) 알렸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에 대한 기대에는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이번 8.15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는 대목이 있다”며 “조문단이 오면 청와대 방문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고 메시지를 띄운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의 ‘기대’대로 이튿날인 19일, 김 전 대통령 조문만을 위한 ‘조의방문단’이 아닌 ‘특사 조의방문단’을 당일 또는 1박 2일로 보내겠다는 북측의 답변이 돌아왔다. 임 전 장관은 “특사를 보낸다는 것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고, 1박 2일이라는 말을 한 것은 시간을 갖고 꼭 만나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며 “그래서 즉각 네 사람이 다시 모여서 정부에 이 전문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이제부터 정부가 맡아서 조문뿐만 아니라 청와대 예방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 21일 북측 특사 조문단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만난 임동원 전 장관.
[사진출처-고 김대중대통령 추모 공식홈페이지]

당시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측 회신에는 “남측 당국자를 포함한 많은 인사들과 기탄없이 만나서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북측 역시 처음부터 남측 당국과의 대화와 청와대 예방 의지가 확고했던 셈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쪽은 이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정부에 전달했지만, 정부 쪽은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정부 측과는 “정세현 장관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나서, 그리고 박지원 의원이 청와대 모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연락했다.

‘특사 조의방문단’의 임무는 확실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남북대화,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 임 전 장관은 특사 조문단과의 만찬과 조찬에서 “청와대 방문을 원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대화에 관심이 있는데, 서울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 얘기인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확인해서 오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계기로 삼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을 전달한다”는 것이 특사 조문단이 원했던 것이라고 임 전 장관은 전했다.

"대북특사로는 김덕룡 특보가 제일 적임자"

   
▲ 임동원 전 장관은 처음부터 북측 특사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북측이 청와대 예방을 통한 남북대화 및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했지만, 정부 쪽은 뜨뜨미지근 했다. 정부 쪽은 김 전 대통령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는 만큼 북 특사 조문단의 방문에 대한 경비와 경호 등을 책임지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통일부 장관이나 만나고 가면 되지 않냐”는 식의 반응이 읽혔다.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자칫 남북관계 돌파구의 기회가 사라질 찰나, 민간통일운동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의장을 맡고 있는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 김덕룡 국민통합 특보 겸 민화협 의장께서 전화를 걸어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조찬에 오시라 했다. 그래서 조찬에 와서 직접 북측 대표들하고 대화를 나누고, 정확한 의견을 알아서 대통령께 전달하고, 이렇게 되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임 전 장관은 특사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 성사에 핵심적 역할을 한 김덕룡 특보를 이후 대북특사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특사에 적합한 사람이 남쪽으로서는 이 정부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덕룡 특보, 민화협 의장께서 북한의 대남관계 최고 책임자들과 첫 만남을 통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구면이 됐고, 서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며 "이런 사람을 보낸다면 즉각 저쪽에서 받지 않겠나. 제일 적임자다"고 말했다.

"DJ, 화해협력 새 역사 연 것이 가장 위대한 업적"

임 전 장관은 이번 특사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을 통해 “남북 최고 당국자 간에 간접 정상회담이 성립이 된 것”이라며 “앞으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했다. 달리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께선 세상을 떠나면서도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주고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는 선물을 남겨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그분이 남긴 많은 업적 중에서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서 남북 간에 반세기나 지속한 불신과 대결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협력의 새 역사를 연 것이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며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에서뿐만 아니라 남과 북을 통해서 온 겨레가 존경하고 전 세계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고 평했다.

임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이 민족화해의 새 길을 열었던 2000년 6.15공동선언의 주역을 맡았듯,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서까지 남북을 잇는 데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강조했지만 임 장관 역시 6.15공동선언의 산파역을 해냈고, 북측 특사 조문단을 성사시킴으로서 남북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9월 남북 당국회담도 가능, 우리측 특사 보낼 수도”

   
▲ 9월 남북 당국회담도 가능하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임 전 장관.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군사전략가로 27년간 군에서 복무한 '군사전략통'이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그리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의 산파 역할을 한 명실공히 한반도 문제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임 전 장관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정책적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남북관계 악화의 근본원인'을 묻는 질문에 북핵 문제의 본질이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의 산물”임을 설파한 임 전 장관은 “(정부가) 남북관계를 북한 핵문제에 종속시키면서 남북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이 정부가 '비핵.개방.3000'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정책을 쓰는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에 이전 정부에서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태도”가 남북관계 악화의 주요인이 됐다며, 현 정부가 내건 ‘상생공영’ 정책 역시 포용정책인 만큼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임 전 장관은 “8월은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을 많이 전해주는 것 같다”며 최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반기며 “그동안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고, 남북이 서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9월 남북 당국 간 회담도 열릴 것이고, 우리 측에서 북한에 특사를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한 “남북관계도 6월 쯤부터 북측은 풀려고 한 것 같다”며 “잘 살펴보면 대남 비판이 조금씩 수그러지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도 미.북관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고 짚었다.

“오바마 대통령, 북한과 관계정상화 결단 내려야”

   
▲ 임 전 장관은 북측의 전격적인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 행보를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북측이 최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에 예상 외로 속도감을 내고 있는데 대해서는 “북한은 사실은 오바마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면서 “이번에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4월초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일본과 한국이 앞장서서 떠드는데 오바마가 거기에 휘말려서 강경하게” 나오자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다"며 “크게 잘못한 것이다.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의 미숙한 대처를 지적했다.

임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60여 년간 지속해온 대북 적대관계를 이제 끝내고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는 결단을 내려야 될 때가 됐다”며 “그래야만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핵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책무를 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6월부터 풀기 위한 노력을 북한이 했다. 그러다가 8월 초에야 클린턴이 오면서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며 “인공위성 발사로 비틀어졌다가 정상화해 가는 과정이다”고 해석했다.

<임동원 전 장관 인터뷰 전문>


□ 통일뉴스 :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안다. '인간 김대중'은 어떤 분이고 임 장관께는 어떤 분인가?

■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 나는 1995년 초부터 15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일한 것을 정말로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그분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의 화해 ,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온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분이 남긴 많은 업적 중에서도 제가 보기에는,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서 남북 간에 반세기나 지속한 불신과 대결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협력의 새 역사를 연 것이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8년 동안 남북관계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서거하셨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에서뿐만 아니라 남과 북을 통해서 온 겨레가 존경하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아마 분단 역사에서 있어서 남북이 다 같이 인정하는 지도자는 이분이 처음 아니겠냐고 생각할 때 이분이 우리 민족 역사에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참으로 훌륭한 정치인이요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탁월한 지식인이고 사상가인 동시에 역사를 창조하는 실천가였다고 평하고 싶다.

□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북측에서 특사 조의방문단이라는 조문단을 보내왔다. 이를 김대중평화센터가 맞았는데, 특사 조의방문단의 진행경과와 메시지 내용에 대해 밝혀달라.

■ 8월 18일 오후 1시 43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즉각 세브란스 임시 빈소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누는 얘기 가운데 모두가 저한테 묻는 것이 "북측에서 조문단이 오느냐, 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초청해야 하는 게 아닌가"였다.

어떤 분은 정확하지는 않은데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상주 측에서 북측 조문단 초청을 하길 원했는데 정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떨 것인가" 이런 요지의 질문을 나한테 던졌는데, 내가 거기에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온다"였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고, 남북 간에 대화와 통신이 다 두절된 상태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나 의문이 들었다.

마침 저녁에 김대중평화센터에 부이사장인 정세현 장관, 나도 이사로서 그리고 문정인 교수가 자문위원으로, 박지원 의원도 이사로서 “넷이서 같이 만나자”고 해서 대책을 논의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모두가 “남북 간에 소통이 안 되는 마당에 우리가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겠나” 이렇게 합의를 봤다. 그래서 조문단이 와야 하고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이런 기대를 하고 김대중평화센터에 임동원, 박지원 이사 이름으로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했다는 것을 알려드렸다.

이번 8.15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는 대목이 있다. 많은 논의 끝에 조문단이 오면 청와대를 방문할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고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그랬더니, 이튿날 19일 아침에 즉각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김대중평화센터의 임동원, 박지원 이사 앞으로 회신을 보내왔다. 이 내용은 이미 박지원 실장이 그날 오후에 발표했다. 내용인즉, 우리가 어젯밤에 보낸 부고 전문을 잘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즉시 조전을 보내고 노동당 비서와 부장을 포함한 고위급 특사 조의방문단을 파견할 것을 지시했다, 이들이 김 위원장의 화환을 갖고 특별기편으로 가겠다, 방문날짜는 장례식 전으로 하되 언제 하면 좋겠는지 알려 달라, 체류일정은 당일로 하되 필요하면 1박 2일을 예견할 수 있다, 실무적인 문제를 조정해서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착안한 것은 우리가 예측하던 대로 그냥 조문단이 아니라 특사를 보낸다는 것으로, 이것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고, 그날 비행기로 왔다가 그날 갈 수도 있는데 1박 2일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을 갖고 꼭 만나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

그래서 즉각 네 사람이 다시 모여서 정부에 이 전문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이제부터 정부가 맡아서 조문뿐만 아니라 청와대 예방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세현 장관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나서, 그리고 박지원 의원이 청와대 모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다 통보했다.

이렇게 해서 일이 시작됐지만, 정부 측에서는 언론에 계속 보도됐듯이 ‘통민봉관(通'民封官)’이라면서 ‘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을 이용하려는 사설조문단에 불과하다. 정부로서는 조문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뜻으로 계속 부정적인 발표가 나왔다.

어떻든 우리는 북측의 회신을 받고 정부 측에 전달하고, 정부 측과 의논을 잠깐 해서 다시 ‘금요일 오후 3시경 오는 게 좋겠다, 1박 2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문을 보내줬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북측에서 김기남 비서를 단장으로 해서 특사 조문단을 보낸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에 다시 김대중평화센터에 메시지가 왔다. 8월 21일 금요일 3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하겠다, 그리고 6명의 대표단 명단이 있고, 1박 2일 방문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남측 당국자를 포함한 많은 인사들과 기탄없이 만나서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대로 다 정부에 전달했고, 정부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일이 시작된 것이다.

□ 그 당시 정부 당국자를 포함한 많은 인사들과 기탄없이 만나겠다고 한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나?

■ 그것은 우리가 발표를 안 하고 정부 측에서 알아서 발표하라고 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정부 측이 다 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정부 측에서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 아니겠나?

8월 20일 목요일, 정부에서 아마 관계부서 간에 협의를 거쳐서 김대중평화센터 측과 만났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하고 나하고 정세현 장관, 몇 사람이 같이 만나서 정부의 입장을 받았는데, 정부에서는 우리가 일정 안을 냈던 공항영접, 조문, 헌화, 그리고 이희호 여사 예방은 다 좋다, 신변안전 조치, 비용, 숙박은 국장으로 결정됐기에 다 정부가 장의위원회에서 해주겠다, 그런데 그 이상의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다른 건 안 한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당국 간 접촉을 하고 대통령 예방을 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그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21일) 저녁에 만찬도 대접해야 하고 다음날 조찬도 해야 하는데, 정부는 관심 없다, 그래서 김대중평화센터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재해서 만찬, 조찬을 베풀었다.

북측 대표단들과의 만찬과 조찬에서 나온 얘기는 서울에 와서 분명하게 청와대 방문을 원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동안 남북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 얘기인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확인해서 오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측이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계기로 삼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물론 정부 측에 그대로 전달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더 높은 사람이 참석하기를 원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국장급 담당자가 조찬과 만찬에 참석해 직접 다 들었다.

그러나 직접 북측의 의사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부 측은 청와대 방문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고, 다만 나중에 밤에 보니까 그냥 통일부 장관이나 만나고 가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래선 좀 곤란하다 싶었는데, 마침 김덕룡 국민통합 특보 겸 민화협 의장께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전화를 걸어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조찬에 오시라”했다. 그래서 조찬에 와서 직접 북측 대표들하고 대화를 나누고, 정확한 의견을 알아서 대통령께 전달하고, 이렇게 되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덕룡 특보가 중요한 일을 했다. 김덕룡 특보는 정부를 대표해서 온 것은 아니었겠지만 민화협 의장이고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고, 특보니까 대통령과 접근이 아주 용이하고 그렇기에 큰 역할을 해줘서 아주 다행이다.

물론 맹형규 정무수석도 8월 21일 국회의사당에 조문을 왔었는데, 그분을 만나서도 북측의 의사가 이렇다 하는 걸 전달하고 청와대 방문을 실현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국회의장도 만나길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어떻든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청와대 방문이 실현돼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물론 토요일에 청와대 방문이 됐으면 더 좋았는데 여러 가지 논의 끝에 외국에서 온 조문사절단과의 면담 일환으로 일요일에 15분 만나준다고 했지만 어떻든 30분 동안 만나서,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다 밝혔을 것이다. 30분이면 긴 시간이다.

그래서 남북 최고 당국자 간에 간접 정상회담이 성립된 것이다. 의사소통이 됐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나, 그렇게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김기남 비서는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나?

■ 물론이다. 그분들은 다 잘 알고 있다. 김기남 비서는 2005년에 6.15공동선언 5주년 행사 때 내가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정동영 장관 모시고 평양에 가서 만났고, 그해 8.15대축전 때 서울에 김기남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왔다. 그래서 이 대표단이 현충원을 참배했다. 아주 역사적 사건이다.

또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셔서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짧은 일정 중에 경주에 가 불국사와 석굴암도 봤다. 불국사에서 아침 음식을 들고 같이 올라왔는데, 이번에 만났을 때도 불국사에서 아침 공양, 그거 먹었던 것을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말씀하더라. 성격이 좋고 부드럽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의 위기, 이른바 ‘3대 위기’ 극복을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당부했는데, 남북관계의 위기는 어디서 초래되었고, 어떻게 극복 가능하다고 보나?

■ 남북관계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답이 나오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의 근원은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에서 기인한다.

1990년대 초 국제냉전이 끝나면서 당시에 소련과 중국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관계정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에 관계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나.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지 않고, 냉전시대에 해오던 봉쇄정책을 지속하면서 북한을 압박과 제재로 다뤄보려고 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그토록 원하는데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압박과 제재를 해 오니까 이에 반발해서 결국은 핵개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핵개발은 북한으로서는 안보위협에 대처해서 억제력을 확보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한 것은 다 알려진 바와 같다. 이것이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다.

따라서 변화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이 돼서, 지금 외교정책에서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60여 년간 지속해온 대북 적대관계를 이제 끝내고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는 결단을 내려야 될 때가 됐다. 그래야만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핵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책무를 다할 수 있다.

이제 관계정상화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고 가겠느냐 이거다. 바로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되어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문제의 가장 근원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원인은 어디에 있나? 김대중, 노무현 진보정부 10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해왔고, 많은 진전을 이뤘고,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거기에는 두세 가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이 정부가 '비핵.개방.3000'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정책을 쓰는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그런데 북한 핵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정상화 되어야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미.북관계 정상화와 북한 핵 폐기는 맞물려 있다.

이같은 사실은 제네바 합의 때도 이 두 가지를 같이 해결한다고 합의돼 있고, 9.19 합의 때도 두 가지를 같이 해결한다고 합의돼 있는 것에서도 분명하지 않는가?

그런데 남북관계를 북한 핵문제에 종속시키면서 남북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 정부는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해결해야 될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서 미.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병행전략을 써 왔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와서는 연계전략을 쓰면서 이렇게 됐다.

다행이도 이번 8.15경축사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최초에 강경노선에서 후퇴한 말로 들리는 말을 했다. 지금까지는 핵을 폐기해야 남북관계가 발전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북한이 핵폐기의 ‘결심을 보여준다면’ 우리 정부는 이렇게 저렇게 해나가겠다고 상당히 변화된 태도를 보였기에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는 남북관계가 악화된 요인 중 하나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에 이전 정부에서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북한은 “이 두 선언은 남북이 화해.협력하자는 선언이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실천해 나가자는 것인데,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신과 대결로 되돌아가자는 얘기인가?” 이렇게 나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됐다.

일부 반북.극우 세력들은 6.15공동선언을 마치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에 우리가 놀아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굉장한 피해의식을 가진 생각이다. 이런 분위기가 현 정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이건 바로잡아야 될 것이다.

이 정부도 대북정책은 ‘상생공영’의 정책이라고 말로는 하고 있는데, 상생공영의 정책이라는 게 뭔가? 화해협력, 포용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을 그렇게 안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남북 간에 합의한 5대 중점사업들이 다 중단되지 않았나. 다만 개성공단 하나 제외하고는 올 스톱됐는데, 이제 드디어 다시 이산가족 상봉도 시작될 것이고 개성공단 사업도 활성화 될 것이다. 물론 금강산 관광사업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남북 간 경제협력도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튼 8월은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을 많이 전해주는 것 같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해야 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기회가 오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금년 8월 들어서 미.북, 남북관계에 좋은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어서 8월 4일에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미.북관계 개선을 위한 많은 논의를 했고, 여기자 석방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거기에 입각해서 대북정책을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방법론과 절차상의 문제들을 따지고 있는 것 같은데 잘 풀리리라고 본다.

남북 간에 있어서는 8월 16일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 만남을 통해서 여러 가지 합의를 보고, 또 그전에 억류돼 있던 근로자도 석방됐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통행제한 조치도 해제하고, 아주 중요한 것은 문을 닫았던 개성공단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복원했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즈음해서 특사 조문단을 보내서 청와대를 방문해 이 대통령과 의사소통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해서 완전히 두절됐던 통신망이 재개되고, 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이 열리고 있다. 추석 이산가족 상봉은 실현될 것이다.

이렇게 진전이 되면서 그동안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고, 남북이 서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9월 남북 당국 간 회담도 열릴 것이고, 우리 측에서 북한에 특사를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는 특사를 보내도 (북한이)받을 것이고, 또 특사 보내기에 적합한 사람도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우리 의지 여하에 따라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동시에 미.북관계도 같이 개선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께선 세상을 떠나면서도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주고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는 선물을 남겨주고 떠났다.

□ 북에 보낼 특사에 적합한 사람도 생겼다고 했는데,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

■ 지금까지 특사에 적합한 사람이 남쪽으로서는 이 정부에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덕룡 특보, 민화협 의장께서 북한의 대남관계 최고 책임자들과 첫 만남을 통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구면이 됐고, 서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원한다면 이런 사람을 보낸다면 즉각 저쪽에서 받지 않겠나. 제일 적임자다. 그 외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범위에서는 그렇다.

□ 북한이 최근 들어서 갑자기, 속도감 있고 의외일 정도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나?

■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은 사실은 오바마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인공위성 발사로 인해서 미국이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최고인민회의를 연 계기로 해서 또 김정일 3기 체제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했는데, 98년에도 그랬다. 그걸 일본하고 한국이 앞장서서 떠드는데 오바마가 거기에 휘말려서 강경하게 나왔다. 크게 잘못한 것이다.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었다.

몇 달 전에 이란이 발사했을 때는 조용히 넘어갔는데, 왜 북한만 안 된다고 하나. 그래서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북미관계가 어려워져 풀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다. 5월에 핵실험 했고, 6월부터 풀기 위한 노력을 북한이 했다. 그러다가 8월 초에야 클린턴이 오면서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에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 개선을 모색해 해왔는데 인공위성 발사로 비틀어졌다가 정상화해 가는 과정이다.

남북관계도 6월 쯤부터 북측은 풀려고 한 것 같다. 북한의 군부강경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다. 그 다음에는 다시 협상파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대남 비판이 조금씩 수그러지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미.북관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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