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소식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메일보내기  
모악산 전주 김씨 시조묘를 찾아서
`김정일 위원장 33대 시조묘 참배할까`
2002년 01월 29일 (화) 12:00:00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향토사학자 최순식 선생
[사진 - 통일뉴스 황기룡 객원기자]

"오늘 같이 눈 있는 날은 올라가기 힘들 것인디."

김제의 향토사학자 최순식 선생의 걱정을 뒤로하며 금산사에서 올라가는 길보다는 눈이 덜 내렸다는 전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옛날에는 전주에 속했던 완주군 구이(九耳)면에 접어들었다. 도로변에는 모악산(794m) 안내가 잘 되어 있었고 등산로 입구에서 겨울 산행 채비를 단단히 했다.

등산을 막 시작하는 입구에서 마주친 것은 전주 김씨 세덕비와 종중 공덕비 그리고 `전주김씨시조묘소 입구`라는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에는 종친회 서울 전화번호까지 쓰여있었다.

최순식 선생이 일러준 대로 세덕비에는 "시조태서공(台瑞公)은 신라법통을 계승한 김씨의 종성(宗姓)이시다. 고려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5대손에 이르러 문무를 겸비한 중신의 공으로 완산군에 봉하여 본관을 전주로 전주 김씨 시조이시다. 공은 고종 44년 서기 1257년 6월 이곳에서 세상을 뜨시다"고 새겨져 있었고 공덕비에는 전 국회의장 김재순 회장 이름과 비를 세운 `2000.3.1`이라는 날짜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안내판과 전주김씨 세존비, 종중 공덕비.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최 선생이 미리 귀띔을 해준대로 전주 김씨 시조묘가 요즘들어 제법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전주 김씨 시조묘가 세상에 크게 알려진 것은 작고한 육관 손석우가 `터`라는 책을 통해 "전주 김씨의 시조인 태서공(台瑞公)은 김일성의 32대 선조인데 그의 묘소는 대명당(大明堂)"이라고 소개하고 고 김일성 주석이 `94년 음력 9월14일` 사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고 김일성 주석도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계상 할아버지대에 전주에서 북으로 들어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길로 접어들어 초입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폭포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선녀폭포가 나타났고 여기서 왼쪽길로 접어들자 다시 안내판이 나타났다. 우측길은 `모악산 정상 2.6㎞`이고 좌측이 `전주김씨 시조묘 1.0㎞, 해발 250M`라고 쓰여져 있다.

▶모악산 정상과 전주김씨 시조묘 갈림길 안내표지를 산행을 안내한 김제시민
센터 조상식 사무국장이 가리키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일요일이라 등산객들이 제법 눈에 띄었는데 갈림길에서는 모두 정상을 향했고 시조묘 쪽 산길은 적요했다. 설경의 정취를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작은 둔덕을 넘어서자 묘소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 산행길을 각오하며 오른데 비해서는 싱겁기 짝이 없는 산행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얀 눈을 둘러쓴 묘소는 상석과 기단, 비석과 석등, 문무관을 상징하는 수호석과 석련대까지 갖출 것을 두루 갖추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새롭게 축대를 쌓은 흔적이 역력하고 여린 동백나무가 이제서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묘소 후면 좌측에서 내려다본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경사지게 꾸며놓은 묘지 위쪽에서 내려다본 경관은 벌판과 저수지, 마주 보이는 산 등 시야가 좋아 보였다. 뒤쪽 산세는 잘 보이지 않았고 후면 우측에서는 모악산의 다른 줄기를 대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묘소가 새롭게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6.15 정상회담 이후 남쪽 언론사 사장단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할 경우 자신의 시조묘를 참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33대 시조가 묻힌 곳이 바로 여기인 셈이다.

최순식 선생에 따르면 갑자기 이 묘소를 찾거나 위치를 문의하는 사람이 많아서 구이면사무소에서 안내판을 세웠다가 국정원에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묘비 전면
묘는 부인 해주 최씨와 합장묘였고 묘비에 따르면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피안군은열공의 7세손인 문장공이 고려 고종 41년(1254년)에 일족을 거느리고 경주를 떠나 전주로 가 전주군(全州君)으로 봉해져 전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적혀있다.

태서공은 5명의 왕에 걸쳐 관직에 있었고 그의 장녀는 원종비 순경태후라는 사실도 기록되어있다. 이 비석의 기록은 1988년 12월에 작성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런데 최순식 선생은 이전에는 전주 김씨 시조묘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있는 묘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즉 예전부터 그 자리에 두세 기의 묘가 있었는데 특별히 묘비도 없었고 전주 김씨 시조묘라고 단정할 만한 것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예측컨대 족보나 문서에 쓰여진 위치를 짐작하여 그 중의 한 묘지를 시조묘로 가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정보다 이르게 산을 내려오는데 그 길로 하산하는 등산객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전주시 인후동에 산다는 한영희(48세)씨는 모악산에 자주 오르는데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이 길을 택한다고 했다.

전주 김씨 시조묘와 고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의 내력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많이 들었다고 하며 나이 든 전주사람들은 대체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묻자 "누구나 조상이 있는 것 아니냐"며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영희씨는 예전부터 전주 김씨 집안에서 이 묘소에 시제를 지내왔던 것으로 안다고 이야기해 최순식 선생의 주장과는 다른 사실을 전해주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묘소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산길을 내려서자 시골 아주머니들이 길거리에 앉아 이것저것 먹거리를 팔고 있고 일요일 산행을 즐기는 가족들이 오가는 여느 평범한 시골 산 입구의 풍경 그대로일 뿐이다.

"누구나 조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등산객의 말처럼 남과 북이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갈라져 살아온 것이 그리 오래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따름이었다.

▶모악산 등산로 입구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선녀폭포 안내판과 휴식터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묘소 가는길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묘소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김치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뒤로가기 위로가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메일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