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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를 생각하며
<연재> 정관호 시집 『가고파』 (23)
2020년 05월 27일 (수) 09:30:36 정관호 tongil@tongilnews.com
빨치산 출신 장기수 정관호(96) 선생이 열 번째 시집 『가고파』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시집 출간에 앞서 20여 편을 골라 격일(월 수 금)로 연재한다. 정 선생은 <통일뉴스>에 2008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00회에 걸쳐 시와 사진으로 된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를 연재한 바 있다. / 편집자 주

 

 

 

             아우를 생각하며

 

 

            오늘은 못 간다

            발병이 나서 못 가는 게 아니고

            진달래꽃이 안 깔려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못 간다

 

 

            너를 인민학교에 입학시킨 이듬해에

            전쟁이 나고 서로 헤어졌으니

            이제 네 나이를 세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

            누나들을 따라 나를 오빠라고 부르더니

            어려운 때에 부모님 상(喪)을 치렀겠구나

 

 

            발이 무거워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집이 멀어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못 간다

 

 

            오늘만 못 가는 것이 아니고

            내일도 돌아갈 날 기약할 수 없으니

            살아서는 영영 못 만날 것만 같은

            아, 산이 높고 물길이 먼 때문도 아니건만

            수명이 세월을 이겨내 주겠는가

 

 

            말이 좋아서 아우지

            한 상에서 밥을 같이 먹은 세월보다

            이별이 겪은 세월이 아득히 길어

            너를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구나.

 

 

            오늘은 못 간다

            내일도 못 간다

            이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어려서 헤어진 그리운 아우야!

 

 

저자 소개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남.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내려왔다가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재산기관지 ‘전남 로동신문’ 주필 역임.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되어 형을 삶.

저서로는 음악 오디오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소리의 고향』이 있고, 시집들 『꽃 되고 바람 되어』,『남대천 연어』,『풀친구 나무친구』,『한재』,『아구사리 연가』, 역사서『전남유격투쟁사』, 장편소설 『남도빨치산』 등이 있다. 이외에도 역편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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